제48화
48화. 의외의 재회 (3)
상어의 이빨.
그것도 수십 마리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날아드는 듯한 착각이 든다.
시문은 이 날카로운 마법에 작게 감탄을 흘리며 백 스텝을 밟았다.
‘과연 하프라도 드래고니안이라 이건가.’
드래고니안.
용족 중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마법과 전투 모든 부분에서 우월한 이들.
심지어 날개와 마법으로 전투 비행까지 가능해 다이아 랭크에서나 등장하는 용족이었다.
물론 저 사르쿠라는 드래고니안은 하프답게 날개도 없고 체격도 왜소한 편이었지만.
파스스!
뻗어 오는 냉기는 얕잡아 볼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인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왼쪽 눈.
오딘의 눈은 마법의 흐름까지도 읽어 내고 있었다.
시문은 손쉽게 수십 마리의 상어 떼를 연상시키는 서릿발 사이를 역으로 파고들었다.
“음?”
그에 푸른 비늘의 남성.
하프 드래고니안 사르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인간 주제에 혹한의 서릿발을 피한다고?’
용족의 마법은 타 종족이 펼쳐 내는 마법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용족만 다룰 수 있는 힘인 용력이 섞여들어 가니, 전체적인 위력부터가 남다른 것이다.
‘내가 아무리 하프라지만…… 이건 말이 안 돼.’
한데 저 인간은 약해 빠진 육체로 용족의 마법을 피하는 걸 넘어 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는 제법 우수종인 엘프들도 쉬이 시도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단순한 연금술사인 줄 알았더니, 제법 잔재주는 있나 보구나.”
사르쿠의 시선은 서릿발 사이사이를 누비며, 전진하는 시문의 왼쪽 눈을 향했다.
“그래 봐야 인간.”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리는 사르쿠.
동시에 그의 몸이 흐릿해졌다.
정확히는 앞으로 쏠려 나갔다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얼마나 천한 종인지 친히 새겨 주마!”
드라코들의 날랬던 움직임조차 비교하기 미안해지는 속도.
그야말로 쏜살처럼 날아든 사르쿠는 시문의 머리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손톱이 활짝 펼쳐지는 것이, 꼭 먹이를 물어뜯을 짐승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하나.
터억.
허무하게 잡혀 버리는 사르쿠의 손목.
믿기 힘든 현실에 사르쿠의 눈이 부릅떠졌으나 그뿐.
중급 용족답게 얼른 잡힌 손으로 용력이 실린 냉기를 터뜨렸다.
파스스스.
허연 서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자연스레 시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사르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백 스텝을 밟았다.
‘방금 그건 뭐였지?’
처음엔 인간치곤 제법인 움직임.
그러나 우월한 용족 앞에선 한없이 느린 움직임이었거늘.
‘갑자기 빨라졌다.’
어떤 보조 마법이나 아티팩트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신의 손아귀에 머리통이 잡히기 전, 급속도로 빨라진 것이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저 인간 놈 역시 아레나의 참가자라는 것.’
참가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능력인 특성.
그것이라면 저 갑작스러운 움직임도 납득이 된다.
거기에다 드워프의 영역에 뜬금없이 나타난 개연성까지도 설명이 가능하지.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저만한 속도를 지니고 있다는 건데…….’
예컨대 자신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전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라거나.
그런 이유라면 방금의 움직임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이내.
“하.”
짧게 헛웃음을 흘린 사르쿠는 슬쩍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군.”
어느 종이건 뛰어난 이들은 존재한다.
저 인간 역시 그런 종류일 터.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이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이미 숱하게 경험해 온 사르쿠였다.
“대적하지도 못할 힘으로 짓눌러 버리면 그뿐이지.”
휘오오오.
분명 지하 속의 통로이거늘.
심상치 않은 바람이 사르쿠의 손아귀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점차 크기를 키우며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고.
육각형의 정돈된 형태로 얼어붙었다.
“이 몸의 전력을 받는 걸 영광으로 알거라, 인간.”
용족 특유의 오만함.
그것을 한껏 내비친 사르쿠는 육각형의 얼음 덩어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사아아아.
천장과 바닥, 벽면을 막론하고 사방천지가 얼어붙는다.
육각형의 얼음 덩어리에서 불규칙하게 쏘아지는 시퍼런 광선들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었다.
만개한 꽃처럼 활짝 핀 얼음 덩어리가 통로 자체를 얼려 버리며, 점차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현자의 돌이 시문에게 속삭였다.
-오빠, 어쩔래. 물러날 거야?
“뭐?”
아직 얼어붙지 않은 벽들을 연성해 마법의 전진을 막으려던 시문은 움직임을 멈췄다.
이내 피식 웃은 시문이 답했다.
“그럴 리가. 이 아레나가 어떤 의미인진 너도 잘 알잖아.”
-그렇긴 하지.
정규 아레나도 아닌 상황에서 타 종족의 아레나로 난입해 버렸다.
그도 모자라 뭘 건드렸는지, 히든 보스마저 등장해 버렸지.
플레이어로선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고 대부분이 물러날 생각을 하겠지만.
시문은 아니었다.
왜냐고?
‘여기서 히든 보스까지 잡으면 보상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
갤럭시 아레나의 몇 안 되는 장점이 정당한 리스크와 리턴이다.
당연히 사르쿠를 잡았을 때의 보상은 상당하겠지.
심지어 정규 아레나도 아니니, 혹여나 여기서 실패한다고 목숨이 날아갈 위험도 없다.
기회만 된다면 몸소 힘든 아레나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란 말이다.
더불어.
‘마르넬도 도와주고 말이지.’
저 멀리서 변이종 드라칸과 접전을 펼치는 마르넬을 힐끔한 시문은 벽면을 연성해.
끼기긱.
얼음 덩어리의 전진을 지연했다.
-하여간에. 반(半)6성급 마법을 눈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을 거야.
“6성? 저게 6성의 마법이라고?”
휘둥그레지는 시문의 눈.
-오빠. ‘반’6성급이라고. 분명하게 따지고 들면 6성의 마법은 절대 아니야.
그러나 이어지는 현자의 돌의 말에 시문의 눈은 다시 차분해졌다.
‘하긴. 6성이었다면 이 통로가 진즉 내려앉았겠지.’
마법은 보통 1에서 10으로 정의한다.
그중 6성은 속성이나 여러 요인에 따라 위력이 갈리겠지만.
보편적으론 미사일급의 파괴력을 자아낸다.
생각해 보라.
하수도와 연결된 이 지하 통로에서 미사일이 터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저 얼음 덩어리는 통로를 서서히 장악할 뿐.
진짜 6성급 마법처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럼 근본적인 수준 자체는 5성 수준이라는 거네?”
-그렇지. 하지만 마법의 시전자가 우리가 아는 5성의 마법사가 아니잖아?
까드득.
두텁게 연성했던 벽들을 손쉽게 와해하며 서서히 전진해 오는 얼음 덩어리.
분명 6성급 마법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5성급으로 분류하기엔 위력이 너무 강했다.
시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전자가 용족이라서구나.”
-그렇지. 오빠도 알잖아? 용족은 마법을 마력만으로 쓰지 않는다는 거.
마족의 마기처럼.
용족 역시 최상위에 존재하는 종족으로 용력이라는 자체적인 기운을 사용한다.
더군다나 마법에 능한 종인 드래고니안이라면.
마법에 용력을 섞는 것쯤은 숨 쉬는 것보다 쉬울 터.
헛웃음을 흘린 시문은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현자의 돌이 왜 물러날 거냐고 물어본 건지 깨달은 것이다.
“지금 내 스펙으론 저 마법에 대항할 수 없구나?”
-정확해. 오빠가 강하긴 하지만, 결국 실버 랭크 내에서잖아?
“따지고 들면 플래티넘 초입도 털 수 있어.”
-키킥! 그럼, 그럼. 우리 오빠가 얼마나 센데. 내가 말을 잘못했네!
슬쩍 입술을 삐쭉거리는 시문에 까르르 웃는 현자의 돌.
이내.
사아아아!
어느새 가까워진 얼음 덩어리에 녀석은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보아하니 저 마법에 힘을 꽤 쓴 모양이거든? 마법이 소강될 때까지 빠졌다 싸우자. 그럼 오빠가 무조건 이겨.
“도망을 쳐라?”
-이왕이면 작전상 후퇴라고 하자. 실제로도 그게 맞잖아.
그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진 시문.
그러나.
두웅.
둥.
뒤편에서 연달아 울리는 진동을 느끼곤 정면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에 현자의 돌이 작게 투덜거렸다.
-쯧. 내 이럴 줄 알았어.
“어쩔 수 없잖아. 여기서 물러나면 마르넬이 위험해.”
-핑계도 좋다. 저 드워프 계집애가 신경 쓰여서만은 아니잖아?
현자의 돌의 물음에 시문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서렸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대로 물러나는 건 폼이 안 살잖아.”
-하여간에,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 속은 모르겠다니까.
예나 지금이나?
묘한 말투였지만 시문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사실 그럴 여유가 없다고 봐야 하겠지.
사아아아!
어느새 호흡까지 불편할 정도로.
가까워진 냉기를 느끼며 시문은 외쳤다.
“현자의 돌!”
-응, 준비됐어~.
눈앞에 떠오르는 익숙한 문구.
‘예’를 터치한 시문은 곧장 손가락을 튕겼고.
쿠르릉.
지하와는 어울리지 않는 천둥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시문은 앞에 내리꽂힌 벼락을 움켜쥐고는 곧장 정면을 향해 집어 던졌다.
“울어라, 아스트라페.”
콰자자자작!
수십 줄기의 벼락.
갈기갈기 뻗어 나온 벼락 줄기를 휘감은 아스트라페가 얼음 덩어리와 마주하는 순간.
쿠르르르.
통로가 크게 진동하며 굉음이 일었다.
이능끼리 붙으면 흔히 일어나는 현상.
일종의 힘 겨루기였다.
당연히 결과는 뻔했다.
짜자작!
열화판이더라도 무려 상위 서열 성좌의 벼락이다.
대포알 같은 얼음 덩어리를 꿰뚫은 아스트라페.
하얀 몸체를 휘감은 벼락 줄기들은 얼음 덩어리가 남긴 냉기의 잔해마저 찢어발기며.
시전자인 사르쿠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 이 힘은!”
그런 아스트라페를 경악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르쿠.
그러나 반쪽짜리라도 드래고니안은 드래고니안인 걸까.
“이익! 아이스 스피어!”
양손을 모은 사르쿠는 또 다른 마법을 시전해, 냉기가 풀풀 흐르는 창을 쏘아 상쇄를 노리는 한편.
“프로즌 배리어!”
용력을 최대한으로 짜내 단단한 얼음 보호막마저 둘렀다.
크츠측.
보호막 앞까지 도달했는지.
하얀 섬광과 함께 격하게 흔들리는 프로즌 배리어.
하지만 거기까지.
보호막에 금이 가긴 했으나, 더 이상의 위협적인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이 어떻게 아스트라페를 불러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 때문일까?
진짜 아스트라페의 위력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뚫리지 않은 프로즌 배리어와 멀쩡한 자신이 그 증거다.
진짜 아스트라페였다면 자신 같은 반쪽짜리는 그 여파만으로도 소멸해 버릴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으득.
‘고작 인간 하나에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목구멍까지 치미는 치욕감에 이가 절로 갈렸다.
사르쿠는 즉시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며 프로즌 배리어를 거두었다.
첫눈처럼 사르륵 녹아 버리는 배리어.
동시에 시커멓게 타 버린 주변과 정면의 인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만한 힘을 사용했으면 놈도 온전한 상태는 아닐 테지. 아주 갈기갈기 찢어 주겠노라!’
사르쿠가 남은 용력을 모조리 쥐어짜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따악.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청천벽력이 맞았다.
“어, 어떻게 아스트라페가 또!”
방금 전까지 목숨을 위협했던 하얀 막대가 또다시 인간의 손에 쥐어져 있었으니까.
“아, 이거?”
그에 천하다 여겼던 인간은 약이라도 올리듯.
어깨를 으쓱하며 입꼬리를 슥 끌어 올렸다.
“난 조건부 무제한으로 사용이 가능하거든.”
“그게 무슨 개소…….”
사르쿠의 의문이 풀릴 틈도 없이.
“울어라, 아스트라페.”
두 번째 아스트라페가 날아들었다.
* * *
하얗게 서렸던 성에는 온데간데없다.
치이이.
시커멓게 타 버린 통로는 오로지 후끈한 열기와 허연 김만을 풀풀 흘릴 따름이었다.
[히든 업적 ‘히든 보스 잡기 (3/?)’를 달성하셨습니다.]
[히든 보스 ‘하프 드래고니안 사르쿠’를 단신으로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를 총 2,000점을 획득합니다.]
사르쿠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시문은 사르쿠가 존재했던 방향을 바라봤다.
‘후. 졸지에 아스트라페를 두 번이나 연성했네.’
반쪽짜리라도 과연 최상급 용족 드래고니안이라는 걸까.
아스트라페 한 방으로 끝낼 수 있을 거란 시문의 예상과 달리.
사르쿠는 아스트라페를 두 번이나 사용하게끔 만들었다.
사실 첫 번째 아스트라페 이후, 천마신공을 이용한 근접전으로 처리해도 되었지만.
‘갈기는 맛이 있단 말이지.’
아스트라페의 어마어마한 화력은 뇌속성 특유의 화려함과 더해져 묘한 중독성을 선사했다.
‘그래도 뭐, 업적 포인트를 2,000점이나 땡겼으니까.’
아스트라페 두 자루 분을 제외해도 업적 포인트는 1,000점 이득이었다.
거기에다.
[성좌 오딘의 미션을 완수하였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0점을 획득합니다.]
오딘의 미션을 완료하며 추가로 5,000점까지.
앞서 얻은 것들까지 합치면 업적 포인트는 총 11,500점이 되었다.
“달다, 달아.”
순식간에 채워진 업적 포인트에 흐뭇하게 웃는 시문.
“은인!”
그런 시문의 귓가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피떡이 된 변이종 드라칸을 뒤로한 채, 총총 달려오는 마르넬이 보였다.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마르넬의 모습에 시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변이종 드라칸을 상처도 없이 잡았어?’
대충 견적을 뽑아 봐도.
이 정도면 능히 플래티넘 랭크에 들어갈 만한 수준이었다.
“대박! 엄청났어요!! 방금 그건 무슨 마법이에요?”
그런 시문의 놀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천둥소리가 쿠르릉! 들려서 얼마나 놀랐던지. 하마터면 망치로 제 발등을 찍을 뻔했지 뭐예요? 히히!”
마르넬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물어 올 따름이었다.
그에 시문이 뭐라 답할 틈도 없이.
[아레나 ‘북쪽 하수 시설’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잠시 후, 대기실로 돌아갑니다.]
시스템창이 떠오르며 시문의 몸이 흐릿해졌다.
“어엇! 으, 은인!”
당황스럽게 외치는 마르넬.
하나 이전 특수 아레나에서도 있었던 일이었기에.
“아…… 본래 세계로 돌아가시는 거군요.”
마르넬은 시문을 붙잡는 대신, 아쉬운 얼굴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까 전투를 힐끔힐끔 봤는데, 역시 은인께서도 갤럭시 아레나의 참가자이신 거죠?”
“어. 나도 마르넬 네가 아레나의 플레이어인진 몰랐네.”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 전 참가 자격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헤헤!”
“그래? 그런 것치곤 잘 싸우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용족들의 마무리는 넘겨줄 걸 그랬어.”
“엥? 마무리요?”
“그래야 네 보상이 늘어나잖아. 난 히든 보스랑 클리어만으로 충분해서.”
“은인? 뭔가 착각하신 거 같은데, 여긴 제 아레나가 아니에요.”
“……뭐?”
네 아레나가 아니라고?
순식간에 얼이 빠지는 시문.
그러나 듣지 못한 것일까?
마르넬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건넬 따름이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설마 드래고니안까지 있을 줄은 몰라서…… 은인이 아니었다면 전 죽었을 거예요.”
“잠…….”
시문의 몸과 함께 목소리마저 점차 희미해진다.
그에 마르넬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마쿠르 삼촌이 그러셨어요! 아레나에 참가한 이들은 언젠가 서로 만날 수 있다고요! 그러니 은인을 만나게 되면 꼭…….”
아쉽게도.
시문의 물음도, 마르넬의 말도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파앗.
완전히 희미해진 시문이 빛에 휘감겨 사라진 것이다.
마르넬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시문이 있던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철컥.
그녀는 해머를 등에 메며 못다 한 말을 읊조렸다.
“꼭…… 이 은혜를 갚을게요, 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