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46화. 의외의 재회 (1)
“꺄하하! 은인!”
해맑은 웃음과 함께 공중으로 붕 떠서.
덥석.
품으로 폭 안기는 소녀.
아니, 폭이 아니라.
“컥!”
‘퍽’이라고 해야겠지.
등에 메고 있는 거대한 해머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완력 때문인지 몰라도 소녀가 가해 오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본인도 그걸 깨달은 것일까.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소녀는 후다닥 시문의 품에서 떨어졌다.
“정말 죄송해요! 안 그래도 요즘 힘 조절 때문에 혼났는데…… 너무 반가운 나머지 제가 실수를 저질렀어요!”
“아, 아니요. 근데 누구…….”
되묻던 시문의 말이 뚝 끊어진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큼직한 눈망울,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완력과 거대한 해머까지.
다시 한번 소녀의 외형을 살피자, 대번에 한 종족이 연상되었고.
“서, 설마!”
한 아이가 떠올랐다.
“마르넬?”
시문의 물음에 얼굴이 환해지는 소녀.
“맞아요! 기억하고 계셨군요!”
그리도 기쁜지 폴짝폴짝 뛰는 마르넬.
그녀가 뛸 때마다 바닥이 쩍쩍 갈라졌으나, 시문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마르넬이 여기 왜 있는 거지?’
이전 [도리아의 미스릴 광석]으로 입장했던 특수 아레나 ‘열띤 광산의 악몽’.
그곳에서 만났던 드워프 소녀 마르넬은 그냥 특수 아레나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로 생각했다.
실제로 상위 랭크의 특수 아레나는 플레이어를 도와주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은 경우가 달랐다.
‘여긴 100인 서바이벌인데…… 어떻게 된 거지?’
이곳은 특수 아레나는커녕, 끽해야 몬스터 정도나 등장하는 100인 서바이벌.
거기에다 드워프와 관련된 맵도 아닌데 어떻게 마르넬이 벽 뒤에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시문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스쳤다.
‘만약 여기가 드워프와 관련이 있는 맵이라면?’
예컨대 이 하수도의 건설자가 드워프라면 어떨까.
이젠 사라져 버린 폐광 맵처럼.
하수도 맵 역시 드워프와 관련이 있다면 마르넬의 등장도 나름 납득이 되었다.
무엇보다.
‘원래라면 마르넬은 열띤 광산의 악몽에서 죽었어야 하는 운명이었지.’
플래티넘에 육박하는 스펙으로 드라칸을 학살했던 시문.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특수 아레나를 빠르게 진행해, 마르넬이 죽기 전에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플래티넘급 힐러가 와도 치료가 불가능한 마르넬을 살려 냈지.
‘그 여파가 아레나에 뭔가 변화를 준 건가?’
당시의 반응만 봐도 그랬다.
갤럭시 아레나의 침묵이 그렇게 길었던 건 처음이었다.
더불어 시스템도 분명 운명이 크게 바뀐다고 했었지.
뭐가 되었든 간에.
“미안. 그때랑 달라져서 못 알아봤어. 많이 컸네?”
“정말요? 정말 저 많이 컸어요?”
“그래.”
시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마르넬은 다시 폴짝폴짝 뛰며 환호했다.
“꺄하하! 컸대! 나보고 엄청 컸대!”
“어…… 저기 마르넬?”
온갖 액션을 다 취하며 기쁨을 표출하는 마르넬.
‘말이 들리지도 않나 보네.’
컸다는 말이 그렇게 기쁜 걸까.
시문은 기쁨을 주체 못 해 주변을 박살 내고 있는 마르넬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내.
‘여긴 또 왜 이래?’
쉴 새 없이 알림이 반짝거리는 채팅창으로 가는 시선.
그곳엔.
-드워프? 갑자기 드워프라고?
-드워프는 플래티넘 상위권에서나 나오는 거 아님?
-ㅇㅇ. 수인족이랑 같이 플래티넘 아레나에서나 나오는 종족인데…….
-하수도 맵에 원래 드워프가 있었음? 끽해야 랫맨이나 리자드맨 정도 아냐?
-벽 부수고 나온 거 보니까 무슨 비밀 통로 같던데.
-아까 이 형 벽을 막 살폈잖아. 관련 정보 같은 거 있는 듯?
갑작스러운 드워프의 등장으로 수많은 의문이 범람하고 있었다.
하나 저들끼리 논해 봐야 실버 아레나에서 드워프가 등장하는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그리하여.
-근데 이분 저 드워프랑 아는 눈친데?
-분명히 은인이라고 했었음.
-드워프랑 은인이라니 ㅋㅋ. 나중 가면 무슨 수인이랑도 은인 관계 하겠누.
-ㄹㅇ ㅋㅋㅋㅋ. 근데 수인족이 워낙 지X 맞아서 그렇지, 드워프도 어지간히 적대적이지 않나?
-맞음. 나 플랜데, 얼마 전에 던전에서 드워프 무리 만나고 몰살당함 ㅋㅋㅋ.
자연스레 채팅창의 반응은 시문과 마르넬의 친분으로 이어졌다.
-여기 유입 개많네. 저 드워프 저번 특수 아레나 때 구해 준 걔잖아.
-어? 진짜네? 마르넬. 기억난다. 많이 컸네?
-그러게. 애가 좀 커서 못 알아봄 ㅋㅋ. 진짜 걔 맞잖아?
-ㅁㅊ! 그 앤 그냥 NPC 같은 거 아니었음? 여기서 또 나온다고?
처음엔 시문처럼 확 성장한 모습 덕분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점차 특수 아레나 ‘열띤 광산의 악몽’에서 구해 준 드워프 소녀임을 알아차리는 채팅창들.
당연히 시문이 떠올렸던 의문처럼.
마르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다들 혼란에 빠져, 저마다 추측을 뿌려 댔다.
[업적 ‘시청자 50,000명 돌파하기’를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0점을 획득합니다.]
또 다른 갑작스러운 소식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시문.
그 시선은 자연스레 채팅창 옆 시청자 수를 향했다.
[51,271명 시청 중.]
‘뭐야. 언제 5만이 넘은 거야?’
얼이 빠질 정도로 갑작스러웠으나, 시문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예상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승급전이랑 드워프 등장 때문인가.’
이미 심해 방송치고 1만에 가까운 고정 시청자를 지니고 있는 상태.
여기서 원래부터 핫한 콘텐츠인 승급전과 고랭크에서나 나오는 드워프의 등장까지 더해졌으니.
그 시너지로 5만 이상의 시청자를 확보한 것이다.
‘어쩐지 평소보다 유독 채팅이 많다 했어.’
각성자의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아니던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좌 오딘이 ‘호오, 의회 놈들이 성흔 하나로만 시끄러웠던 게 아니었잖아?’ 마르넬을 보며 눈을 반짝입니다.]
[성좌 천마가 ‘그대는 저 때 일을 직접 못 봐서 아쉽겠구려. 그런 김에 얼른 꺼져 주는 게 어떠한지?’ 안타깝게 웃습니다.]
[성좌 제우스와 검은 염소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오딘이 ‘싫지롱~. 거기에다 이미 소문나서 기다리는 녀석들도 많다고.’ 능글맞게 웃습니다.]
주르륵 올라오는 성좌들의 반응.
그에 시문은 확신했다.
‘마르넬이 살아난 게 무슨 변화를 주긴 줬나 보네.’
그런 시문의 귓가로.
“아차! 내 정신 좀 봐! 삼촌이 제발 정신 좀 놓지 말랬는데! 죄송해요, 은인!”
어느새 하수도 파괴를 멈춘 마르넬이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연신 사과를 건넸다.
앞선 파괴 행각을 본 시문으로선 참 어색한 모습이었으나.
“아니야. 나도 잠시 생각할 게 있었거든.”
내색하지 않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헤헤! 감사해요. 근데…….”
연신 헤실헤실하던 마르넬의 웃음기가 누그러든다.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부수고 나온 벽면을 힐끗거렸다.
“은인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된 건 너무 기쁜데요…… 저 일 때문에 이만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일?”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
이내 그 시선은 무너진 벽 잔해 속에 파묻힌 드라칸을 향했다.
“용족 때문이야?”
“예? 그걸 어떻게! 아…… 그렇지 참.”
화들짝 놀라는 마르넬이었으나, 시문의 시선이 드라칸을 향한 것을 보곤 어깨를 늘어뜨렸다.
“저번에 은인의 도움으로 목숨도 건지고 용족도 몰아냈지만…… 결국 도리아는 지킬 수 없더라고요.”
미소의 주축인 올라간 입꼬리는 그대로였지만.
마르넬의 큼지막한 두 눈은 어느새 촉촉이 젖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남은 동족들이랑 북쪽의 하수 시설에서 은닉하고 있었는데…… 또 놈들이 들이닥쳐선!”
꽉 쥐어지는 마르넬의 두 손.
그에 시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경청해 주었다.
“하지만 괜찮아요! 망치 쓰는 법도 제대로 배웠고, 도주로도 많이 파 뒀거든요. 또…… 은인 말대로 저 많이 컸으니까. 헤헤!”
눈가를 빠르게 닦고는 불끈 쥔 두 주먹으로 힘차게 답하는 마르넬.
그녀를 바라보는 시문의 앞으로.
[성좌 오딘이 당신에게 미션을 겁니다.]
미션창이 떠올랐다.
[미션]
-성좌 오딘과 그가 속한 ‘아스가르드’는 드워프의 안정을 원합니다.
드워프 마르넬을 도와 습격자들을 처리하십시오.
보상 : 업적 포인트 5,000
미션 내용을 슥 읽은 시문은 마르넬을 바라봤다.
“그러니 은인, 아쉽지만 얼른 가 봐야 해서요. 이만 작별을…….”
“마르넬, 내가 도와줄게.”
“에?”
눈을 끔벅이는 마르넬.
그러나 시문은 대답 대신 무너진 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단순히 오딘이 걸어 준 미션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미션 보상으로 주는 업적 포인트 5천 점은 시문 입장에서 매력적인 보상이었다.
앞서 시청자 업적 달성으로 얻은 것까지 합치면 오딘의 눈을 연성한 값을 그대로 복구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은인? 잠시만요. 전 정말 괜찮아요! 용족 정도는 저 혼자서도…….”
“마르넬.”
오딘이 건 미션의 보상을 논하기 이전에.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그냥 도와주고 싶었다.
그저 특수 아레나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인연이었다.
하나 이렇게 다시 만나 해후를 나누고 있는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앞으로 마르넬은 계속 만나게 될 거야.’
어쩌면 플래티넘 랭크에 도달해서 또 만날지도 모르지.
플래티넘 구간부터 이종족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니 말이다.
‘어차피 정규 아레나로 진입하면 이종족과의 만남은 필수적이지.’
이미 전생에서 한차례 정규 아레나를 경험한 시문은 안다.
아레나에 등장하는 종족들이 단순 갤럭시 아레나가 만들어 낸 가상의 존재들이 아니라는 걸.
아웃브레이크라고 무조건 몬스터들만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니까.
거기에다.
‘마르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찝찝하니까.’
나쁜 아이도 아닐뿐더러, 함께 특수 아레나라는 난관을 헤쳐 나오지 않았던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시문은 마르넬을 진심으로 돕고 싶었다.
그런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은인…….”
눈가와 몸을 살짝 떠는 마르넬.
이내.
“좋아요! 은인 같은 강자가 도와주신다는데, 저야 좋죠! 사실 혼자선 좀 버겁던 참이었거든요. 헤헤!”
평소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온 마르넬은 얼른 시문의 앞으로 섰다.
“가시죠! 제가 안내할게요.”
“그래.”
그에 피식 웃은 시문은 마르넬의 뒤를 따랐고.
[이곳으로 입장하시면 진행하고 있던 아레나에서 제외됩니다.]
[해당 아레나의 보상은 현재 기록 중인 성적으로 결정됩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남은 생존자도 적고 최진수도 처리했으니, 이대로 가도 1등은 문제없겠네.’
떠오르는 시스템창에 아레나 보드를 잠시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 아레나를 이탈합니다.]
[아레나 ‘북쪽 하수 시설’로 이동합니다.]
[특별 상황으로, 방송으로 나가는 모든 대화는 음소거됩니다.]
* * *
“이런 멍청한!”
뻐억.
매섭게 터져 나오는 타격음.
“쿠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두툼한 드라칸의 상체가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분명 동시에 습격하라 하지 않았나!”
“쿠, 쿠륵…….”
분노 섞인 고함까지 이어지자, 드라칸은 파르르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다.
비단 상대가 배나 큰 덩치를 지녀서는 아니었다.
“그만하면 되었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
앞선 고함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 때문이었다.
“쿠륵! 나 다시 간다. 땅꼬마들을 다시…….”
그리고 드라칸의 불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다시? 누가 다시 기회를 준다 하더냐.”
콰직.
곧장 터져 버리는 드라칸의 머리.
고함을 외치던 거구는 잠시 이마를 짚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무릎을 꿇었다.
“직접 손을 쓰시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사르쿠 님.”
그곳엔 푸른 비늘이 곳곳에 덮여 있는 남성이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있었다.
“넌 항상 드라칸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구나. 드라칸의 지능을 모르느냐?”
“알고 있습니다.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참 신기해. 너는 드라칸치고 이토록 뛰어난 지능을 지니고 있는데 다른 놈들은…… 하긴, 괜히 변이종이 아닌 게지.”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호기심이 담긴 시선.
분명한 무례임에도.
“칭찬 감사합니다.”
근 6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드라칸은 저보다 작은 이에게 그저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쯧. 하프인 내가 할 소리도 아니겠구나.”
그 모습에 푸른 비늘의 남성은 혀를 차고는 허공에 손을 저었다.
복잡하게 얽힌 푸른 기운이 순식간에 무언가를 그려 나간다.
“천한 땅꼬마들의 땅굴이다. 도착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탐지 마법으로 만들었으니, 오류는 없을 거다.”
“과연 드래고니안이십니다.”
“흥. 천한 것들의 머리를 믿지 않았을 뿐이지.”
항상 붙던 하프라는 수식어가 없어서일까?
푸른 비늘의 남성은 대답과 달리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허공에 그린 지도를 내밀었다.
“가져가서 모조리 잡아 오거라. 그리하면 너 역시도 사르가스 님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다.”
그 말에 거대한 드라칸의 눈이 반짝였다.
불패의 사르가스.
그는 위계질서와 혈통을 중시하는 용족 사회에서 능력을 우선으로 보는 몇 안 되는 용족이었고.
거대한 드라칸이 지금의 임무를 자처한 이유이기도 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거대한 드라칸.
그때.
키잉.
하프 드래고니안이 건넨 마력 지도에서 불쾌한 이명이 들려왔다.
원인은 마력 지도에 표시된 붉은 두 점이었다.
“호오? 이리도 가까이 있는데 이제야 포착되다니.”
그것을 본 하프 드래고니안은 눈썹을 샐쭉 치켜올렸다.
“드워프 주제에, 탐지 마법을 피하는 아티팩트라도 지니고 있었나 보군.”
“당장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죽이지는 말거라. 검은 제련소에서 쓰일 녀석들이니까.”
“예. 사지 정도만 박살 내겠습니다.”
거대한 드라칸은 곧장 몸을 돌려, 마력 지도가 표기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