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45화. 승급전 (3)
콰르르!
터져 나가는 바닥.
점프로 그것을 피한 최진수는 곧장 야수화로 인해 변이된 팔을 내질렀다.
그러나.
빡.
기다렸다는 듯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돌주먹은 정확히 그의 팔꿈치를 노려 제재를 가했다.
“이 빌어먹을 마법!”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박살 낸 최진수는 급히 백 스텝을 밞으며 몸을 물렸다.
이내.
쾅!
다시 한번 터져 나가는 바닥.
이번엔 돌주먹이 아닌 호리호리한 남성의 주먹이 처박혀 있었다.
하나 그 언밸런스한 광경보다.
‘뭐지? 대체 무슨 능력인 거야?!’
최진수는 아까부터 계속 자신의 공격이 완벽히 봉쇄되어 버리는 이 상황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매번 내 공격을 막아 내는 거지?’
야수화와 직업 드루이드의 연계를 통해 변신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난 최진수.
거기에 과거 UFC 헤비급 선수이던 경험이 더해진 전투력은 분명 심해 플레이어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데.
저 김시문이라는 자는 그런 자신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막아 낸다.
사실 막아 낸다는 표현 자체가 웃겼다.
‘내 움직임을 완벽하게 읽고 있다.’
격투기에 다년간 종사한 경력이 있어서일까?
최진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체구에 맞지 않는 괴력으로 돌아오는 반격은 그 위력을 논하기 이전에.
상대는 자신의 움직임을 꿰뚫고, 완벽한 타이밍에 차단한다는 걸.
따악.
또 한 번 튕겨지는 김시문의 손가락.
‘이번엔 또 뭐냐!’
이미 수차례의 공수 교환으로 저 핑거 스냅이 어떤 행위인지는 뼈저리게 경험한 상태.
‘정면!’
최진수는 정면의 털들이 바짝 서는 감각에 곧장 등을 내보였다.
우드득.
순식간에 단단한 등딱지가 최진수의 널따란 등을 뒤덮었다.
쿠웅!
“큽!”
등 전체로 묵직하게 전해져 오는 충격.
그러나 SS특성 야수화와 프로 격투가로 살아온 정신은 그것을 깡그리 씹어 먹게 해 주었고.
터업.
“잡았다! 요놈!”
드디어 저 요망한 놈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네가 김시문이지? 퉤!”
머금고 있던 핏물을 거칠게 뱉고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최진수.
“쥐새끼처럼 숨어서 갈긴 덕분에 고생 좀 했다. 그러니…….”
우드득.
늑대처럼 날렵했던 그의 팔은 더 두텁고 거대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김시문을 붙잡은 왼팔 역시 아까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을 선사했다.
“이제 뒈져라.”
지금까지 처맞기만 했던 울분을 토하듯.
최진수의 곰과 같은 팔이 흉흉한 기세로 내리꽂혔다.
하나.
턱.
너무나 쉽게 잡혀 버리는 최진수의 팔.
마치 단단한 바위 사이에 끼인 나뭇가지처럼.
그의 거대한 곰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익!”
순수 근력으로 막힌 것은 처음인 걸까?
아니면 곰의 팔과 정반대인 늘씬하고 하얀 손에 잡혀서일까?
최진수는 뾰족한 송곳니로 곧장 연계를 이어 가는 대신.
“이런 비실한 팔 따위로!”
꾸우욱.
잡혀 버린 팔에 더욱 힘을 주며 내리눌렀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그 팔을 막고 있는 시문의 얼굴은 지나치게 평온했다.
웅.
희미한 이명이 시문의 왼쪽 눈에서 흘러나왔다.
그에 따라 눈앞으로 자리한 기이한 마법진이 회전했다.
그걸 보고 나서야 최진수는 알 수 있었다.
마법진이 아니라, 마법진‘들’이었다는 걸.
스르륵.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서로 겹친 채 돌아가는 황금색의 마법진들.
특성 야수화로 인한 동물적인 직감이 강하게 경고해 왔다.
‘저건 위험해!’
온몸이 발가벗겨지는 기분 나쁜 시선.
연신 경종을 울려오는 직감에 최진수는 내세우던 자존심을 빠르게 접고, 곧장 아가리를 벌렸다.
쩌억.
“크앙!”
* * *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송곳니.
당장 서로의 팔을 붙잡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문의 눈빛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그럴 수밖에.
‘보인다.’
정면에서 날아드는 서슬 퍼런 송곳니.
당장 목을 물어뜯을 기세이나, 시문의 시선에선 무척이나 느리게 느껴졌으니까.
‘왼쪽, 아니 오른쪽이군.’
멈춘 세상 속에서 억지로 움직이는 왼쪽 시야의 최진수.
성난 야수의 모습 그대로 득달같이 날아드는 오른쪽 시야의 최진수.
신기하게도 정반대로 나누어진 시야는 반반씩 따로 놀 거라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날아드는 공격 궤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잠시나마 오딘의 눈을 사용해 본 결과.
‘상대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리고 시야에 있냐 없냐에 따라 들어오는 정보가 천차만별이야.’
찰랑이는 털과 송곳니 사이에서 흩날리는 침방울까지.
시문은 최진수와 대면한 시점부터 그의 모든 움직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 마주했을 때에는.
우웅.
작은 이명이 울리며, 마주하고 있는 최진수의 전신이 옅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정확히는 시문의 왼쪽 시야에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 맞겠지.
이내.
-오빠, 분석 끝났어. 약점을 표시할게.
현자의 돌의 목소리와 함께 최진수의 전신에 맴돌던 옅은 황금빛이 그의 명치로 스르륵 모여들었다.
‘저기구나. 수고했어.’
-헤헤! 난 별로 한 것도 없는걸.
그 말에 시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현자의 돌의 말대로.
특성화 된 오딘의 눈을 가동하는 건 전부 자신의 연성력이긴 했다.
그러나 특성화되며 새겨진 오딘의 눈 사용법은 평범한 사람이 사용하기엔 굉장히 난해했다.
아마 현자의 돌과 연동되지 않았다면 시문 역시 고생 꽤나 했을 터.
“그럼…….”
느려진 세상 속에서.
시문의 머리와 몸은 여유롭게 아래로 숙여졌다.
따닥!
시문의 정수리를 스치며 울리는 딱딱한 소리.
최진수의 서슬 퍼런 입이 다물리는 소리였다.
“잘 가세요. 최진수 씨.”
어느새 시커먼 기운으로 휘감긴 시문의 주먹.
그는 주저 없이 오딘의 눈이 포착한 최진수의 약점, 명치를 향해 뻗었고.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절세무공의 묘리를 담은 마기가 노도처럼 파고들었다.
쿠아아아앙!
주먹과 명치가 맞닿았다고 하기엔 믿을 수 없는 폭음이 일어났다.
털 덮인 팔다리, 머리와 다르게 상체는 거북이의 단단한 등딱지를 둘렀던 최진수.
비록 등 부위만큼은 아니었으나.
앞쪽 역시 어지간한 방어구 부럽지 않은 단단함을 자랑했건만.
“……커헉!”
최진수는 명치가 뻥 뚫린 채 핏물을 한 됫박 토해 낼 뿐이었다.
“빌어…… 먹을…….”
털썩.
설마 일격에 죽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일까?
최진수는 경악에 찬 얼굴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시문의 얼굴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과연 야수왕. 이때도 여전했네.’
마치 너를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듯한 최진수의 최후에.
시문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대한민국 멸망 후.
중국에서도 터프한 활약과 승부욕을 보여 주었던 야수왕 아닌가.
‘기분이 좀 묘하긴 해. 그 대단한 하이랭커를 내 손으로 쓰러뜨리다니…….’
물론 지금은 하이랭커는커녕 고작 실버대의 플레이어에 불과했지만.
저 야수같은 사내의 미래를 아는 시문으로선, 감회가 새로웠다.
[성좌 오딘의 ‘벌써 약점 포착을 사용하다니…….’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오딘의 눈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그런 시문의 감성을 성좌들이 일깨운다.
정신을 차린 시문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활성화되었던 연성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스으으.
희미해지더니 아예 사라져 버리는 황금색의 마법진.
시문이 다시 눈을 떴을 땐.
황금색으로 빛나던 눈동자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후. 성능만큼이나 연성력 소모가 크구나.’
보이지 않는 곳을 머릿속에 입체화하여 보는 것.
일종의 레이더, 맵핵에 가까운 형태로 사용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상대를 본 시야에 두고 분석하여 약점을 포착하는 건.
천마신공의 초식인 패황쇄에 버금가는 연성력을 소모했다.
‘육체적인 부담도 생기고 말이지.’
아마 영약 섭취로 인한 스탯 증가와 연성력 올인, 관련 칭호가 아니었다면 탈진을 했으리라.
시문은 약간 얼얼한 왼쪽 눈을 가볍게 문질렀다.
손바닥의 온기가 전해져서일까.
얼얼했던 느낌이 빠르게 가셨다.
잠시 숨을 고르고 페이스를 되찾자, 시야 한쪽에 어마어마하게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채팅 알림이었다.
-미친…… 일방적으로 딜교만 하네.
-저 사람 최진수 아님? 현 한국 실버 매칭대에선 최강자 아니었나?
-ㅇㅇ. 야수화 쓰는 거 보니까 맞는 듯. 신화 길드에서 계속 러브콜을 보낸다고 들었음.
-와 신화 길드라고? 찌라시 아님?
-맞아요. 얼마 전에 신화 길드 유망주 발라 버렸잖아요.
-어지간한 길드 유망주들도 꼼짝을 못 하는 플레이언데. 한 방에 발라 버리네 ㅋㅋ.
채팅창을 열자 우수수 쏟아지는 채팅들.
상당히 빠른 속도라 각성자인 시문도 눈으로 좇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엄마! 난 커서 김시문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김시문이 될래요!
-명존쎄보소! 손가락만 사기가 아니었네.
-그래 봐야 실버 새낀데 왜 이렇게 빨아댐? 개꼴뵈기 싫네 ㅋㅋㅋ.
-싫으면 나가 이 새끼야!
[심해학살자 님이 AP 100을 후원하셨습니다.]
=이게 마법계라니! 아레나 참 어질어질하죠?
[실번데요 님이 AP 500을 후원하셨습니다.]
=실버의 영웅! 골드 가즈아아아아~!!
도배인 채팅도 있었으나, 워낙 채팅 수가 많아 도배가 묻히는 상황.
거기에다 후원까지 계속 터지며, 채팅창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후원과 응원 감사합니다. 나중에 방종할 때 제대로 인사드릴게요. 도배 자제해 주시고 매너 채팅 부탁드립니다.”
시문은 간단한 멘트로 채팅창을 정리하곤 매니저 채팅창을 열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김시문: 혹시 가능하시면 도배나 욕설, 분탕치는 사람들 있으면 채금 좀 부탁드립니다.
-성좌 검은 염소: 고작 채금? 걍 목을 치면 안 될까?
-김시문: 안 됩니다. 강퇴는 심한 욕설이나 선을 넘는 분들만 해 주세요.
-성좌 검은 염소: 아쉽지만 ㅇㅋ! 내가 다 처리함. 늙은이들은 가만히 있도록.
-성좌 제우스: 웃기는군. 제일 늙은 게 누군데?
-성좌 검은 염소: ……내가 진짜 조만간에 올림포스 한번 찾아간다, 이 개X끼야!
채팅창만큼이나 뜨거워지는 매니저 채팅.
그러나 다행히도 성좌는 성좌인 것인지.
[매니저 ‘성좌 검은 염소’가 전문어그로 님을 강퇴하였습니다.]
[매니저 ‘성좌 검은 염소’가 djrmfhwhgdk 님을 강퇴하였습니다.]
[매니저 ‘성좌 검은 염소’가…….]
-오오! 염소 눈나 돌아왔구나!
-도배충 싹 다 쳐 내!
검은 염소는 매니저 채팅으로 열을 올리면서도, 본방 채팅창을 학살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모습에 시문은 볼을 슬쩍 긁었다.
‘이거 참. 믿음직스럽기는 한데…….’
내심 성좌한테 이런 걸 시켜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키야! 깨끗해진 거 봐.
-ㅋㅋㅋ. 채팅창 바로 1급수 전환되어 버렸죠?
-성능 확실하네. 역시 분탕 학살자 킹갓 염소!
-미친 어그로 도살자! 검은 염소!
[성좌 검은 염소가 채팅창을 보며 굉장히 만족스러워합니다.]
채팅창과 검은 염소의 반응을 보며 그런 걱정을 털어 버렸다.
‘뭐, 본인이 좋으면 됐지.’
어깨를 으쓱한 시문은 아레나 보드를 열었다.
방금 최진수를 처리하고 총 26킬로 1등.
그 아래론 5킬이 2등을 이어 가고 있었다.
‘오딘의 눈을 연성하지 않았으면 26킬은 불가능했겠지.’
이 복잡하고 어두운 하수도를 맵핵처럼 볼 수 있었던 오딘의 눈이 아니었다면.
최진수는커녕 주변 플레이어를 찾는 데도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시문은 양팔을 쭉 뻗으며 몸을 풀었다.
“읏차! 이로써 1등은 확정이니 회복도 할 겸, 좀 쉴까.”
현자의 돌과 사기적인 스탯 덕분에 이 순간에도 연성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지만.
오딘의 눈 때문에 정신적으론 피로한 상태니까.
시문은 팔짱을 낀 채, 통로 벽면에 편히 등을 기대곤 눈을 감았다.
그때.
둥, 둥.
등을 기댄 벽면에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누가 근처에서 싸우고 있나? 진동을 보아하니 위력이 좀 있어 보이는데…… 마법계인가?’
실버 랭크임에도 진동을 일으킬 정도의 공격이라.
눈을 감은 채 팔꿈치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시문.
‘마법계면 혹시 모를 변수가 생길 수 있으니까, 미리 처리해 두는 게 좋겠지?’
쉬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혹시나 하나는 변수를 사전에 차단할 겸, 시문은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이내.
“음?”
진동 방향으로 몸을 돌린 시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둥, 둥.
‘벽 안쪽에서 나잖아?’
마법계의 소행으로 생각했던 진동이 방금 자신이 기대었던 벽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문은 벽면에 귀를 가져다 대고.
따악.
인체 연성으로 전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 냈다.
그러자.
쿵! 쿵!
……!
‘무슨 말소리도 들리는 거 같은데?’
진동은 한결 강하게 느껴졌고.
말소리로 추정되는 희미한 음성 역시 들려왔다.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어.’
시문은 거의 다 회복된 연성력을 끌어올렸다.
목표는 왼쪽 눈.
키이잉.
황금빛과 함께 눈앞으로 떠오르는 마법진들.
발동된 오딘의 눈은 어둑한 하수도의 벽면을 뚫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플레이어의 접근이 불가한 영역입니다.]
[이 이상의 간섭은 아레나 탈락 등, 불이익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일련의 경고문들이 시문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접근 불가의 영역이라고?’
대체 저 벽 너머에 뭐가 있길래 갤럭시 아레나가 친히 경고를 보내온단 말인가?
뭐든 간에.
‘어쩔 수 없지.’
갤럭시 아레나가 직접 경고해 오는 거라면 이유가 있을 터.
거기에다 오딘의 눈으로 스캔해서 알 수 있었다.
벽 너머로 쳐진 모종의 결계는 결코 자신의 힘으로 뚫어 낼 수 없다는 걸.
시문은 깔끔히 포기하고 아레나 참가자를 찾아 눈을 돌리려 했다.
우웅.
“음?”
인벤토리에서 희미한 이명이 울리기 전까진 말이다.
“이건…….”
순백에 가까운 아름다운 백은괴.
미스릴이었다.
그걸 꺼내 들자.
[‘도리아산 미스릴괴’ 소유 확인. 접근 자격 검토 중…….]
[검토 완료. 접근 자격을 부여합니다.]
시스템의 알림과 함께 벽 너머에 쳐진 결계가 조금 옅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젠 넘어갈 수 있나 보군.’
시문은 즉시 손가락을 튕겼다.
정확히는 튕기려 했다.
콰아아아앙!
“우왓!”
갑작스레 벽이 터져버리기 전까진 말이다.
우수수 떨어져 나오는 잔해들.
그 속에는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생명체가 섞여 있었다.
“이건…… 드라칸?”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상체와 그에 비해 다소 비루한 하체, 그리고 멍청해 보이는 얼굴까지.
피투성이가 된 저 생명체는 분명 최하급 용족인 드라칸이었다.
하나 시문은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순 없었다.
저벅.
“아코! 또 힘 조절을 못 했네.”
무너진 벽면.
그곳에서 소녀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시문의 금빛 눈은 빠르게 무너진 벽 속의 인물을 훑었다.
양 갈래로 무릎까지 길게 땋아 내린 머리.
큼직한 두 눈과 자신의 허리쯤 오는 작은 키까지.
그러나 그런 체구와 달리.
‘망치?’
야수왕 최진수에게나 어울릴 법한 거대한 망치는 소녀의 앙증맞음과 완전 상반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엇보다.
“또 하수도 부쉈다고 마쿠르 삼촌한테 혼나…… 어라? 어라라라?!”
이 정체 모를 소녀는.
“은인!!”
자신을 잘 아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