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39화. 기반 (1)
시문은 곧장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칭호 : 연금술의 선구자 (외 3)
계통 : 마법계
레벨 : 30
소속 : 대한민국
힘 : 6 (+3)
민첩 : 6 (+3)
체력 : 7 (+3)
연성력 : 33 (+3)
-마기 : 18
잔여 스탯 : 8
보유 특성 – 현자의 돌 (E), 성흔
업적 포인트 – 9,500
매번 압도적인 아레나 클리어 덕에 벌써 30레벨에 도달했지만.
시문의 시선은 한 곳만을 향했다.
“진짜 성흔이잖아…….”
특성에 버젓이 존재하는 성흔.
분명 동생 시혁이 녀석의 상태창에서 보았던 그것과 똑같았다.
하나 놀란 건 시문만이 아니었다.
-뭐? 성흔? 성흔이라고?
가슴 정중앙에서 왕왕 울리는 목소리.
상당히 흥분했는지.
현자의 돌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가슴에 위치한 본체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디! 어디 좀 봐! 하…… 진짜잖아?
이어지는 허탈한 목소리까지.
-이 망할 놈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현자의 돌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 보였고.
그에 시문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현자의 돌, 너 이 일에 대해 아는 눈치다?”
-아니, 나도 갤럭시 아레나의 속은 잘 몰라. 근데 대뜸 성흔을 이렇게 줘 버리니…… 그냥 뭔가 꿍꿍이가 있구나 싶은 거지.
“음. 확실히 나도 그 부분은 좀 의문스러워.”
시문은 영약 숙성이 한창인 작업 테이블을 보며 턱을 괴었다.
“내가 알기로 성흔은 고유 등급의 특성일 텐데 말이지.”
-맞아. 자세한 건 제약 때문에 말해 줄 수 없는데, 본래 이 세계에 하나밖에 없어야 하는 거야.
“그렇지?”
근데 그런 고유 특성을 2개나 푼 저의가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전부터 의회니 회의니 하는 말이 많기는 했지.’
갤럭시 아레나가 자신에 대한 논의를 한다는 사실은 앞서 몇 번이고 꾸준히 알려 주었었다.
‘개인적으론 내 능력에 대한 제재가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스스로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
신화급 무구를 연성하고.
손가락만으로 대부분의 연성을 이루어 내는 이 능력은 시문 스스로가 보아도 굉장히 사기적이었다.
물론 완성도나 업적 포인트 등, 이리저리 따져 보면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포텐셜만큼은 어느 특성에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데.
‘제재가 아니라 특성을 하나 더 줘? 그것도 고유 등급을?’
본인들의 내부 규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갤럭시 아레나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고유 등급의 가치를 깨고 성흔을 부여하다니?
뭐, 여기까지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아레나에서 보여 준 행보는 분명 이레귤러적인 면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자의 돌, 한 가지만 답해 줄 수 있어?”
한 가지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뭔데? 들어 봐야 알아.
“이 특성 성흔이라는 거, 성좌의 자격이라는 거랑 관련이 있는 거지?”
시문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회귀 전.
갤럭시 아레나의 보호가 철회되던 그날.
[성좌의 자격 보유자 사망 확인.]
[더 이상 NO. 274 지구에서 아레나를 진행할 이유가 없습니다.]
[NO. 274 지구의 아레나를 완전히 종료합니다.]
시스템은 분명 이러한 문구를 보내왔다.
말숙이의 말도 그렇고 아마 지구에 남아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보낸 메시지겠지.
-응, 맞…… 아우! 아주 지X들을 하네. 지들이 줘 놓고 말도 못 하게 해!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현자의 돌.
-미안, 오빠. 답은 못 해 주겠어. 그래도 이건 말해 줄 수 있겠네. 성흔이 있으면 다른 성좌의 피후원자가 되는 건 불가능해.
그 말에 시문은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거면 충분해.”
저 대답만으로 이미 답은 얻었으니까.
다만.
‘회귀 전, 그 검붉은 눈깔의 일까지 고려해 보면. 성흔은 분명 종리추 그놈이 그토록 원하는 특성이었겠지.’
성좌가 될 자격을 부여하는 특성.
종리추가 그토록 동생 시혁이를 죽이려 들었던 걸 돌이켜 보면.
아마 성좌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앞서 현자의 돌이 말했던.
‘본래 이 세계에 하나밖에 없어야 하는 거야.’ 라는 말을 떠올려 보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갤럭시 아레나가 심사숙고 끝에 자신에게 성흔을 부여했다는 건.
‘아레나측에선 내가 시혁이와 경쟁하기를 바라는 건가?’
이내 시문은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만약 내가 성좌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 아무 의미 없어지니까.’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만약 시혁이 녀석에게 ‘야, 형 성좌할 거다. 비켜라.’ 하면.
녀석은 대번에 ‘응! 형이 해. 내가 뭐 도와줄 건 없고?’라고 답하겠지.
어느 쪽이건.
‘성좌는 1명밖에 탄생하지 않아.’
한데 왜 굳이.
그토록 엄격했던 규정을 깨어 가면서까지 성흔을 부여한 것일까?
‘설마 어디 다른 세계라도 가서 그곳의 성좌가 되라, 이런 건가?’
에이, 설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어도.
아레나 이외의 일로 타 차원으로 이동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거늘.
“하도 어이가 없으니 별 미친 생각이 다 드네.”
-그러게 말이야. 이 미친놈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이건 그쪽에서도 엄청 위쪽의 결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믿기지가 않는지 말끝이 흐려지는 현자의 돌.
시문 역시 고개를 절레 젓고는 말했다.
“현자의 돌, 혹시 성흔으로 얻는 불이익 같은 건 없어?”
-있지. 아까 말한 성좌의 피후원자가 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
“그거야 뭐…….”
일반적인 플레이어의 입장에선 명백한 불이익이겠지만.
‘나한텐 아니지.’
이미 신화급 무구를 연성할 수 있음은 물론.
칭호 [왕들의 픽]까지 얻은 시점에서 특성 성좌에게 속한다는 건 무조건적인 손해였다.
“됐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시문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갤럭시 아레나에서도 대놓고 입막음하는 마당이니, 고민해 봐야 나만 손해야.’
언젠가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지난 30여 년의 세월을 살아온 시문은 이 삶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다.
“보상이나 정리하자.”
시문은 지금껏 해 왔던 대로.
상태창의 잔여 스탯 8을 모두 연성력에 투자했다.
‘이걸로 순수 연성력은 41인가.’
거기에 칭호 [왕들의 픽]으로 인해 +3이 더해져 총 연성력은 44.
마기는 연성력의 귀속값으로 그의 절반인 22.
단순 연성력만 계산해도 총 44레벨치의 스탯이었고.
마기까지 합치면 총 66레벨에 해당하는 스탯이었다.
그것도 다른 스탯은 1도 투자하지 않고 오로지 두 스탯만 투자한 기준으로 말이다.
“진짜 미치긴 미쳤네…….”
이러니 히든 보스가 원킬이 나지.
물론 아스트라페와 천마신공의 위상이 상당했겠지만.
그것들 역시도 강력한 스탯이 기반이 되니, 그만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였다.
“이 정도면 중위권의 플래티넘들과도 비비겠어.”
현자의 돌로 인한 사기적인 부분들을 제외하더라도.
오로지 주력 스탯에만 올인한 공격력은 가히 어마어마할 터.
여기에 부족한 힘민체를 인체 연성으로 메꾸어 버리니.
진실로 플래티넘 플레이어들을 상대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일단 이걸로 스탯은 정리됐고.”
상태창을 닫은 시문은 즉시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게 히든 보스 보상이란 말이지?”
[오염된 씨앗 조각]
등급 : F
무언가에 오염된 씨앗의 조각.
이름 그대로 검고 작은 씨앗 조각의 아이템은 히든 보스를 잡고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나 허접했다.
그랬기에.
‘수상해.’
그때.
-어머, 요것 봐라? 재밌는 걸 받았네?
현자의 돌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이거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조져 놓은 거야.
“조져 놔? 망가뜨렸다는 거야?”
-응. 보아하니 보통 씨앗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망가뜨린 힘이 뭔지는 알겠어.
“뭔데?”
-용력. 그것도 굉장한 수준의 용력으로 박살 내고 정제하고…… 여튼! 박살을 내놓은 거야.
용력.
흔히들 쓰는 마력처럼 기운의 일종이었다.
단지.
‘용족만 쓸 수 있는 기운이라는 게 문제지.’
용족은 지난 특수 아레나에서도 그렇고.
성좌들 역시 어째서인지 싫어하는 종족이었다.
고로.
‘냄새가 난다. 수상한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나.’
그리고 이런 직감은 보통 틀린 적이 없었다.
시문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가슴께로 가져다 댔다.
“현자의 돌, 이거 감정할 수 있겠어?”
-잠시만.
일련의 연성력이 팔을 타고 씨앗으로 모여든다.
이내.
-응, 가능해. 온갖 종류의 방법으로 망가뜨린 모양인데. 다행히 그중에 연금술도 있거든.
반가운 답변이 들려왔다.
“부탁할게.”
-맡겨 두라궁~!
힘찬 답과 함께 훅하고 빠져나가는 연성력.
어느새 금속에 어린 녹을 벗겨 내듯.
검었던 씨앗 조각의 표면이 점차 흑갈색으로 변해 갔다.
이어.
씨앗 조각 위로 달라진 정보창이 떠올랐다.
[망가진 세계수의 씨앗 조각]
등급 : X
설명
-아레나 매칭 때 사용 시 ‘자연의 몰락’으로 입장합니다.
-제한 인원 1인.
-골드 랭크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이건!”
정보창을 확인한 시문의 눈이 부릅떠진다.
단순히 그 귀하다는 특수 아레나 입장 아이템을 두 번이나 얻어서가 아니었다.
“세계수라고?!”
전생에 등장했던 이종족 엘프.
아름다운 외모 이면에 걸쳐진 그들의 잔혹성은 역사의 광신도들을 방불케 했다.
그 광신의 원인이 바로 세계수 아니던가?
무슨 일을 하든 세계수를 입에 담아.
당시 ‘세계수무새’라는 별칭을 얻게 된 건 코미디 아닌 코미디였다.
그리고 그 세계수의 씨앗이.
‘입장 아이템이라니?’
수상했던 냄새는 감정 과정을 거치고 더욱 진해졌다.
“현자의 돌. 너 분명 이 씨앗 조각이 용력으로 망가졌다고 했었지?”
-맞아.
짧게 돌아오는 현자의 돌의 대답.
그에 시문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자세한 건 갤럭시 아레나 때문에 이야기할 수 없을 테고.”
-응, 역시 오빠야. 눈치 하난 지린다니까.
지린다니.
대체 그런 표현은 또 어디서 배운 거란 말인가?
시문은 짧게 한숨을 쉬고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후.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입장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니까.”
지금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옵션은 하나다.
입장 제한이 골드 랭크라는 것.
‘골드 승급을 서둘러야겠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시문은 [망가진 세계수의 씨앗 조각]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아레나를 뛰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 * *
“정말 이러실 겁니까? 밤사냥꾼께서 저희를 이렇게 우습게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우습게 보는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겠지. 내가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굵은 선에 다소 험상궂은 얼굴.
그래.
딱 조폭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얼굴과 덩치의 표본인 남성.
박진욱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말해 줄 의무는 없으니 꺼지라고.”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가지만 알려 달라는 겁니다. 혹시 랭커 김시혁이…… 헙!”
“X발 놈이 진짜.”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박진욱의 얼굴.
그러나 앞의 남자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그의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한동안 활동 좀 안 했다고 내 말이 X으로 들리냐? 꺼지라고, 이 새끼야!”
화아아아!
그의 기세와 함께 쏟아져나오는 시커먼 기운 때문이었다.
“저, 정말이었어…… 정말 마력경화증을 회복한 거야!”
SS급 특성인 밤의 가호.
그 특유의 으슬으슬한 기운을 느낀 남성은 서둘러 사무실을 떠났다.
예전 같았으면 저 망할 뒤통수에 주먹이라도 박아 넣었겠지만.
“하아…… 더럽게 귀찮군.”
저 남자의 배경이 전갈 길드라는 걸 아는 박진욱은 그저 한숨을 쉬며 화를 달랠 따름이었다.
“전갈 길드와 옛정이라니? 선배, 옛날엔 제법 구리게 놀았나 봐요?”
더불어.
“옛정은 지X! 그냥 마력경화증 회복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으니, 온갖 개소리 흘려 대는 거지.”
사무실 소파 위를 제 침대인 양 누워 있는 잘생긴 후배 놈을 보고 있자니.
진짜 아까 그놈의 뒤통수에 주먹이라도 시원하게 박아 넣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박진욱이었다.
“거기에다 전갈 길드가 처음부터 저랬던 건 아냐.”
“그래요?”
“뭐냐? 그 의미심장한 눈빛은. 나 거짓말은 안 해. 지금은 저래도 전대 길드장이 뒤지기 전까진 나름 괜찮은 길드였어.”
그 말에 김시혁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진욱의 말대로.
그는 결코 거짓말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가까이 지내는 거지.’
피식 웃은 김시혁은 잔에 양주를 따르는 박진욱을 바라봤다.
“선배. 대낮부터 술이에요? 영업 시간이잖아요.”
“이제 이 일 접는다고 몇 번을 말해? 그리고 능력도 온전해진 마당에, 이런 거 좀 마신다고 취하겠냐?”
하긴.
무려 다이아 플레이어다.
아레나의 부산물로 만든 술이 아니고서야, 어지간해선 취하기 힘들었다.
아까 전갈 길드의 간부를 위협하던 밤의 가호 특유의 기운도 그렇고.
“선배, 진짜 회복되긴 했네요.”
김시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박진욱을 훑었다.
“새끼가. 제일 먼저 알고 있던 놈이 새삼스레 무슨.”
“전 솔직히 마력경화증이 완벽하게 회복되리라곤 생각 못 했거든요. 왜, 후유증 같은 거 있잖아요.”
“그 말은 네 하늘 같은 형님의 능력을 의심했다, 뭐 그런 거냐?”
“아! 그런 게 아니라요!”
대번에 언성이 높아지는 김시혁.
그 생소한 반응에 눈이 동그래지는 것도 잠시.
“그게 아니면 뭔데? 왜 생각 못 한 건데?”
박진욱의 눈매는 장난스럽게 찢어졌다.
“이 새끼, 말만 형님형님 하지, 사실은 아래로 보고 있었구나?”
“선배.”
“맞구만! 하긴, 역대급 초신성으로 랭커까지 찍었는데. 아무리 형님이라도 브실골이면 좀 그렇지.”
“선배? 그러다 진짜 죽어요.”
오싹.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오싹한 기분.
순식간에 냉랭해진 후배 놈의 태도에 박진욱은 멋쩍은 듯 볼을 긁었다.
“거, 농담도 못 하나.”
“목숨 건 거면 하실 수는 있죠. 선배 목숨인데.”
“새끼, 빡빡하게 굴긴.”
한 걸음 물러서는 박진욱.
그러나 기죽은 기색은 아니었다.
‘이 새끼, 우리 VVIP가 진짜 약점이긴 하구나.’
완벽, 기계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천하의 김시혁이 이토록 다양한 반응을 보일 줄이야.
흐흐!
‘앞으로 뺀질뺀질 까불면 자주 써먹어야겠어.’
후배 놈의 반응을 보아 적당히 선은 타야겠지만.
잘만 이용한다면 저 뺀질이 괴물 놈에게 한 방 먹일 유일한 무기가 되리라.
“왜 기분 나쁘게 헤실거려요?”
“이 새끼가. 내 사무실에서 내 맘대로도 못 웃냐?”
“기분 나쁘니까 그렇죠. 그나저나, 정말이죠?”
“망할 새끼. 뭐가?”
“형이 준 치료제 단 한 병으로 완치됐다는 거.”
“인마, 넌 여태 보고도 모르겠냐?”
박진욱은 보란 듯이 양팔을 벌렸다.
스아아아아.
창을 타고 쨍쨍한 햇볕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그의 주변만은 밤처럼 어둑했다.
밤사냥꾼 박진욱.
다이아 랭크의 암살계 실력자로 활동하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이다.
“정말이네요. 역시…… 우리 형이야.”
그 모습에 밝게 웃는 김시혁.
그의 미소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네 형님이 만들었지, 네가 만들었냐? 웬 대리 만족이야.”
“대리 만족이 아니라, 가족이 대단한 일을 해냈으면 당연히 기쁜 거예요.”
“얼씨구? 네가 언제부터 남의 일에 감명을…….”
“선배.”
그리고 거짓말처럼 싸해지는 김시혁의 얼굴에.
박진욱은 애써 뒷말을 삼킬 따름이었다.
‘X새끼. 진짜 내 더러워서 랭커 찍든가 해야지.’
어쩌겠는가.
플레이어에겐 사실상 힘이 전부인 것을.
그때.
획!
살기가 가득하던 김시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돌아간다.
그렇게 몇 초 후.
“엇!”
박진욱의 얼굴 역시 밝아지더니 같은 방향을 향했다.
사무실의 입구였다.
스아아.
스멀스멀한 검은 기운이 입구에서 솟아오르더니 박진욱으로 변한다.
SS급 특성 밤의 가호로 이동한 것이다.
그는 아주 정중히 사무실 문을 열고, 허리를 깊이 굽히며.
“어서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라? 제가 오는지 알고 있었어요?”
“우리 VVIP께서 오시는데 나라를 털어서라도 알아내야지요. 자자! 어서 들어오시죠.”
“에? 언제 V가 하나 더 붙은 겁니까?”
이젠 VVIP 고객인 김시문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