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36화 (36/349)

제36화

36화. 고말숙 (3)

[10팀 중 최초로 ‘상록숲의 중심부’에 입장하셨습니다.]

[아레나 클리어 시 보상이 증가합니다.]

최초.

그 달가운 문구가 시문을 반겼다.

“다행히 최초 입장이구나.”

혹여나 매칭이 잘된 다른 팀이 먼저 입장했을까 했던 걱정이 싹 사라졌다.

그런 시문의 반응과 별개로.

-? 다행이라니?

-이분 설마 자기가 최초 입장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임?

-표정 보니 진짜 같은데…….

-허허…… 이 형, 겉만 아니라 속까지 기만자네?

[나는야골드 님이 AP 500을 후원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심해 플레이어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채팅창은 후원 메시지까지 이어지며 난리가 났다.

당연했다.

상록숲은 외부 맵이면서 마법계인 초목지기가 등장하는 악명 높은 던전.

그런 상록숲을.

-거 형씨,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여기까지 혼자서 밀어 놓고!

-이 형 혼자 죽인 숫자만 수십인데 ㅋㅋㅋ.

-ㄹㅇ. 거기에다 고말숙도 혼자서 몇 마리 찢었자너.

-내가 다른 방송 같이 켜 두고 있는데, 거긴 지금 초목지기 셋에 놀아나는 중임 ㅋㅋ.

고작 둘이서 상록숲을 돌파해 놓고 최초 입장을 걱정하다니?

그러나 아레나 중 채팅창을 자주 확인하지 않는 시문이고.

시청자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진정해, 얘들아. 애초에 상식이 통하는 방송이 아니잖아.

-22. 그냥 그러려니 해. 난 이분 첫 방송 때부터 봐 왔는데 걍 해탈했음.

-진심 어디 길드 유망주일 거다. 정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음.

-난 고말숙 저 애도 개궁금한데? 대체 특성이 뭐길래 맨손으로 몬스터를 찢어?

저들끼리 타오르고 식기를 반복했다.

그런 채팅창의 상황도 모른 채.

‘음. 여기가 실버 랭크대니까…… 보스는 역시 그 녀석이겠지?’

시문은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리며 주변을 살폈다.

어느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듣기 좋은 새의 지저귐과 형형색색의 꽃과 풀들이 가득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중 두 가지 독특한 게 있었는데.

하나는 들판 한쪽에 위치한, 지나칠 정도로 맑고 푸른 물웅덩이였고.

다른 하나는.

‘잿빛에 삐쩍 마르고 뾰족한 나무. 틀림없네.’

그 반대편에 우뚝 솟은 잿빛 거목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던 시문의 귓가로.

사박.

풍성한 풀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시문은 황급히 외쳤다.

“고말숙! 잠깐!”

어느새 고말숙이 시문보다 앞서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누가 봐도 수상한 잿빛 나무 쪽으로.

“뭐? 1등 하자메. 빨랑 보스 잡아서 패야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고말숙.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부아앙!

엄청난 파공음의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쿠우웅.

대번에 바닥에 처박히며 묵직한 진동을 울리는 무언가.

자욱한 흙먼지와 꽃잎, 풀잎들이 흩어지고 나서야 무언가의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그그극.

아까 보았던 잿빛 거목이었다.

“퉤퉤! 아X! 뭔데 이건!”

용케도 잿빛 거목의 기습을 피한 걸까?

먼지투성이가 된 고말숙은 연신 흙을 뱉으며 몸을 털어 냈다.

그녀의 귓가로 한숨 섞인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뭐긴 뭐야. 여기 보스지.”

“보스?”

“그래.”

그 말에 고말숙은 고개를 돌려.

쿠르르르.

진동과 함께 ‘일어나고’ 있는 잿빛 거목을 바라봤다.

“X나 크네…….”

“메마른 껍질이라고, 상록숲의 보스 중 하나야.”

삐쩍 마른 몸체 중앙에 날카롭게 자리한 눈매와 입.

메마른 껍질은 방금 내려친 팔마저 회수하고 나서야 똑바로 일어섰다.

어림잡아 30미터는 넘어 보이는 크기.

“여하튼 주변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일정 거리는 유지해. 저건 애당초 공략을 지키지 않으면…….”

시문은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덩치는 산만 한 새끼가 비겁하게 기습을 해? 넌 뒤졌어!”

고말숙이 어느새 잿빛 거목, 메마른 껍질에게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하아.”

절로 쉬어지는 한숨.

‘제 입으로 천마를 만나기 전까진 나름 독고다이의 삶을 살았다고 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러나 시문의 한숨은 곧 미소로 변했다.

‘그래도 한결같아서 좋네.’

회귀 전, 고말숙을 처음 만났을 때도 딱 저랬었지.

한데 이 당시에도 저렇다는 건.

고말숙이라는 사람 자체가 한결같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 말은 즉.

“내가 말려 봤자 소용없다는 거지.”

시문은 주변의 평평한 바위에 앉았다.

-오빠, 안 나서게? 아무리 천살성이라도 타락한 나무 정령은 무리일 텐데?

‘알고 있어. 나서긴 할 거야.’

당장이 아닐 뿐.

시문이 여유롭게 고말숙과 메마른 껍질의 전투를 관람했다.

사실 전투랄 것도 없었다.

‘메마른 껍질은 물리적인 공격엔 내성이 상당하지.’

물론 고레벨의 플레이어.

대충 골드 최상위권에서 플래티넘 구간의 스펙을 지닌 전투계들이 패면 충분히 타격이 갈 것이다.

‘그 구간대 플레이어라면 대부분 기의 형상화가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이곳은 실버 랭크고.

아무리 천살성이라도 해도 기운의 형상화를 이룰 정도는 아니었다.

고로 답은 하나.

‘철저하게 공략을 따라야 하는데…….’

애당초 메마른 껍질은 실버 랭크대의 수준과 맞지 않는 스펙의 보스였다.

일반적으로 기의 형상화를 할 줄 모르는 실버대에서.

저 막강한 물리 내성을 뚫어 낼 방법은 마법이나 그에 준하는 아이템밖에 없는데.

그런 능력을 지닌 아이템이나 스크롤의 값은 실버가 감당하긴 힘들었다.

결국 마법계 플레이어와 매칭되지 않는 이상.

정규 공략법 말곤 답이 없는 것이다.

‘괜히 마법계가 귀족 취급받는 게 아니지.’

그래서 갤럭시 아레나는 뚜렷한 공략법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비…… 켜라…….”

“이 개자식이! 서! 안 서?!”

“목…… 마르다…….”

메마른 껍질의 이동 동선이 정해져 있다는 것.

시문은 고말숙의 주먹질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묵묵히 물웅덩이로 걸어가는 메마른 껍질을 바라봤다.

‘메마른 껍질은 깨어나면 반드시 저 물웅덩이에 들어가지.’

그리고 저 맑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다.

하지만.

‘놈은 타락한 나무 정령이지.’

고로 저 맑은 물은 독이 되어.

언데드나 마족을 정화하듯, 저 잿빛 거목의 곳곳을 본래의 모습으로 정화해 버린다.

그 압도적인 물리 내성도 함께 말이다.

바로 그곳을 공격하는 게, 메마른 껍질의 정석적인 공략법이었다.

‘보아하니 물웅덩이엔 금방 도달하겠네.’

말숙이의 눈이 시뻘건 것을 보아, 천살성이 발동된 모양이지만.

퍽, 퍽!

천살성의 기운이 서린 주먹으로도 메마른 껍질에겐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나마 아까와 다르게 작은 부스러기라도 흐른다는 게 고무적인 변화긴 했으나.

‘저걸론 어림없지.’

결국 기의 형상화나 마법과 같은 이능의 힘이 아니라면.

물 마시기 전의 메마른 껍질에겐 타격을 줄 수 없다.

그래.

분명 그래야 할진대.

“캬아아아아! 서라고 X발!”

쿵!

걸쭉한 욕설과 함께 휘청이는 메마른 껍질.

-? 방금 뭐임?

-미친! 맨주먹으로 메마른 껍질을 휘청거리게 한 거야?

-맨주먹은 아닌 듯. 눈 빨간 거 보면 광폭화나 뭐 그런 특성인 거 같음.

-광폭화는 물리 공격 아니냐 ㅋㅋㅋ. 기의 형상화 못 하면 결국 똑같은데 무슨.

-놔둬. 심해라 모르는갑지.

채팅창이 들썩이는 건 고사하고.

방금의 일격을 지켜본 시문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방금 그거 천마신공 아냐?’

방금 고말숙이 갈긴 주먹엔 분명 천마신공의 묘리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아니면 메마른 껍질이 휘청인 게 말이 되질 않는데…….’

시문의 예상은 완벽히 적중했다.

[성좌 천마가 공간이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광소를 터뜨립니다.]

[성좌 천마가 퀘스트 ‘제자를 찾아라’의 조건을 ‘플레이어 고말숙’으로 수정합니다.]

[성좌 천마가 ‘난 저 여아 아니면 안 되는 몸이 되어 버렸네. 연자여! 부탁하네!’ 간곡히 요청합니다.]

천마가 열렬한 반응을 보내오는 것이다.

‘설마 퀘스트 내용까지 수정할 줄이야.’

뭐, 어차피 무슨 조건을 달든 말숙이를 그의 제자로 넣을 생각이긴 했다.

“그나저나…….”

천마의 메시지를 옆으로 치운 시문은 정면을 바라봤다.

“말숙이의 공격이 먹힐 줄은 몰랐는데…….”

본래라면 물을 마시고 약점이 드러난 놈과 약 1분 정도 전투를 벌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쯤에 전투에 참여하려 한 것인데.

‘이거 일 났군.’

따악.

시문은 즉시 [블랙팬서의 신체조직]을 전신에 연성하곤 들판을 내달렸다.

이유야 간단했다.

“물…….”

공략법이기도 한 메마른 껍질의 동선.

그것이 틀어지는 유일한 상황이 바로.

“못 마…… 시게 해?”

메마른 껍질이 물을 마시기 전.

타격으로 인정되는 수준의 공격을 받는 거니까.

“너…….”

잿빛 거목의 상단부가 화난 얼굴처럼 일그러졌다.

눈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붉은 안광이 어리는 순간.

“죽인다.”

콰앙!

귀청을 때리는 폭음.

집채만 한 메마른 껍질의 팔이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내리꽂힌 것이다.

하나.

“아슬아슬했네.”

피떡이 된 고말숙 대신 뚜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말숙의 목덜미를 낚아챈 시문이 내리꽂힌 메마른 껍질의 팔 옆에 서 있었다.

“뭐, 뭐야? 너 언제!”

“저리 빠져 있어. 이젠 너라도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캬악! 뭐래! 저 새끼가 내 주먹에 휘청거리는 거 못 봤냐!”

“그래?”

한쪽 눈썹을 슬쩍 치켜올리는 시문.

이내.

“그럼 어쩔 수 없지. 죽지만 마라.”

고양잇과 특유의 움직임으로 가볍게 물러났다.

“그게 무슨 소리…….”

그에 고말숙이 뭐라 의문을 표할 틈도 없이.

뻐걱!

그녀의 옆구리로 거대한 잿빛의 뿌리 뭉텅이가 처박혔다.

메마른 껍질이 발차기를 날린 것이다.

비명 하나 남기지 못하고 허공을 나는 고말숙.

시문은 그런 그녀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천살성이 발동된 상태니 죽지는 않겠지.’

어쩔 수 없다.

말숙이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애당초 천살성은 자신의 목숨을 불태우더라도 오로지 살의만을 추구하는 특성.

아까처럼 느긋하게 천살성을 달래 줄 수는 없었다.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우수수.

푹신하게 연성된 풀과 흙더미가 떨어지는 고말숙을 조심스럽게 받아 냈다.

-오빠, 얘 살아 있어. 팔이 부러지긴 했지만.

‘알아.’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우월한 스탯과 전체적으로 [블랙팬서의 신체조직]을 연성한 시문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설마 그 찰나에 방어 태세를 갖출지는 몰랐어.’

기습적으로 파고드는 메마른 껍질의 발에 맞춰.

양팔로 가드를 올리며 몸을 뒤로 빼, 충격을 최소화한 말숙이를.

“야 이…… 개X…….”

충격 요법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천살성 특유의 으르렁거림 대신 숨 가쁜 욕설이 들려왔다.

‘다시 정신이 들었나 보네.’

그에 피식 웃음을 흘린 시문은 즉시 바닥을 박찼다.

쾅!

그 아래로 강렬한 충격음이 터져 나온다.

메마른 껍질의 걸음이었다.

‘메마른 껍질은 선공자에게 확정 어그로가 끌리는 보스지.’

본디 지능이 높은 보스라면 확정 어그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버 랭크에다 타락으로 제정신이 아닌 메마른 껍질의 어그로는 설정상, 무조건 선공자에게만 집중되었다.

‘다행히 높은 물리 내성 덕에, 놈의 체력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아.’

어그로는 자신을 향하지 않고.

비물리적인 공격만 가능하다면 너무나 쉬운 보스.

고로.

‘이건 기회다.’

“너…… 죽인다……!”

눈앞까지 뛰어오른 시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 쓰러진 고말숙만을 향하는 메마른 껍질.

그에 시문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말숙아, 잘 봐 둬라.”

힘차게 끓어오르는 연성력.

그것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감각을 일깨웠고.

따악.

핑거 스냅과 함께 [오우거의 신체조직]이 [블랙팬서의 신체조직]과 동시 인체 연성을 이룬다.

“아까 그 주먹은…….”

우웅.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가 불가한 이종족의 신체 능력과.

필멸의 존재를 성좌라는 위치에 오르게 한 절세의 무공.

그리고 지난 특수 아레나에서의 10레벨업으로 총 연성력 33과 18에 달하는 마기 스탯까지.

“이렇게 쓰는 거다.”

그 모든 것을 한 손에 움켜쥐고 뻗어 내는 순간.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잿빛의 거대한 나무가.

콰즈즈즈측!

바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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