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33화. 기미 (4)
“키야! 커피 맛이 정말 좋습니다.”
“그렇죠?”
싱긋 웃는 시문.
그러나 그의 속은.
정확히 가슴 정중앙은 그렇지 못했다.
-저 몸에 어떻게 단 거가 맛이 없겠어?
투덜거리는 현자의 돌.
이번엔 그런 녀석을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뭐, 노린 거긴 하니까.’
안호진은 분명 통통한 편이긴 하지만, 중년 남자치고 흔한 체중이다.
단지 그런 것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나온 배와 볼살로 보아.
‘술과 담배, 그리고 달거나 자극적인 맛을 즐긴다는 건 뻔하지.’
그의 취향을 쉽게 파악하고 단맛이 가장 강한 커피를 시킨 것이다.
“바닐란지 헤이즐넛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오묘한 이 맛이라니!”
“입에 맞으신 거 같아 다행이네요.”
시문은 시럽 짬뽕인 커피에 연신 탄성하는 안호진을 보며 드립 커피를 홀짝였다.
이내.
“안 과장님.”
순진무구한 눈으로 무장한 채 입을 열었다.
“제게 영입 제안으로 오신 게 맞은 거죠?”
“에? 아! 이거 커피가 너무 맛있어 결례를 범했군요.”
얼른 입가를 닦은 안호진은 가방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냈다.
“여기, 저희 성삼의 계약서입니다.”
‘성삼 길드가 아니라 성삼이라?’
다시 한번 속으로 그 부분을 되짚은 시문은 찬찬히 계약서를 읽었다.
“아마 모르시는 것이 꽤 많을 겁니다. 제가 천천히…….”
“죄송하지만, 제가 한번 읽어 보고 물어봐도 될까요?”
시문의 말에 계약 조건을 설명하려던 안호진이 눈을 끔뻑인다.
그도 잠시.
“하핫!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계약서는 뭐든 꼼꼼히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호진은 능글맞게 웃으며 다시 커피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시문에게 꽂혀 있었다.
네까짓 게 보면 뭐, 얼마나 알겠어?
딱 이러한 눈빛.
당연했다.
20대에 막 데뷔한 심해 랭크 플레이어, 거기에다 순진한 얼굴까지.
‘호구도 아주 상호구야.’
안호진의 입장에선 이만한 호구도 없어 보일 테니까.
‘박민철 이 병X 새끼. 이런 호구를 진작 영입했으면 특수 아레나 방송부터 꿀을 빨았을 텐데!’
이 일이 끝나고 이 회장님께 보고가 들어가면 그 재수 없는 동기 놈은 어떻게 될까?
그전에.
이 영입을 성공시키면 자신에게 어떤 콩고물이 떨어질까?
‘일단 내게 성삼 길드의 과장 자리 정도는 주시겠지. 성과를 내면 그만큼 우대해주시는 분이니까.’
그럼 그 콧대 높은 각성자들도 비각성자의 명령에 복종해야겠지.
‘그럼 우 대리도? 크흐흐!’
그런 상상에 저 혼자 히죽거리는 안호진.
물론.
-오빠, 그냥 저 기분 나쁜 아저씨 죽빵이나 치고 집으로 가면 안 돼? 우리 준비할 것도 많잖아.
‘조금만 참아. 헤실거리는 걸 보니 거의 넘어온 거 같으니까.’
시문은 안호진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당연했다.
애당초 이 상황 자체를 시문이 유도한 것이니까.
시문은 계약서를 빠르게 훑었다.
계약서 내용을 함께 본 현자의 돌은 탄식을 내뱉었다.
-히야! 오빠. 내가 이쪽 계약 조건은 잘 모르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호구 취급하는 거 같은 내용이 많은데?
‘그래. 딱 봐도 독소 조항이 천지네.’
많아도 너무 많다.
거의 절반 이상이랄까?
‘보통 길드는 3년 계약이 기본인데 6년 계약이야. 거기에다 매년 활동 지원금이 2천만 원도 안 되는데. 이조차 성과제로 묶어서…….’
계약서를 읽어 나가는 시문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무구는 계약 끝까지 대여고, 각종 소비품은 활동 포인트로 성삼의 상점에서 구매 가능, 주간 최소 5회 이상 아레나 진행에다가…….’
보면 볼수록 심각한 내용들.
시문은 정말 가까스로 순진무구라는 가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안호진 과장이 내민 영입 계약서는.
아니지.
노예 계약서는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수준이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쓰여 있지.
‘이건 호구도 아니야. 그냥 가축 취급하겠다는 거지.’
아무리 심해 플레이어라 해도.
이 계약서의 조건대로 아레나 활동을 한다면 연봉으로 환산해도 최소 5천만 원 이상 번다.
거기에다 운이 좋아 득템이나 여타 보상 증가를 얻으면 목돈이 훅 들어온다.
한데 그런 득템조차 ‘성과제’가 있다는 이유로 보상 아이템의 절반을 수수료로 뜯어 가다니?
그걸 또 성삼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환산해 준다는 조항을 달아, 성삼 상점만 이용하게 만들어 두었다.
‘도저히 성삼의 이름이 들어갔다고는 믿을 수 없는 계약서군.’
그 지독하다는 전갈 길드도 영입 계약서를 이따위로 쓰진 않으리라.
시문은 몇 번이고 계약서에 찍힌 성삼의 날인을 확인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런 시문의 눈에 성삼의 날인 옆에 있는 문구가 잡혔다.
‘이건 그냥 성삼이잖아?’
성삼 길드는 말 그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성삼 길드’라는 말을 붙인다.
그게 성삼 그룹과는 다른 노선을 탄다는 건지.
성삼 그룹의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건지는 몰라도.
성삼 길드는 모든 공식 석상에서 반드시 길드라는 단어를 붙였다.
한데 지금 안호진 과장이 내민 계약서는 오로지 ‘성삼’이라는 단어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가면을 쓴 시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까 성삼이라고 말했던 것도 그렇고. 일단 이걸로 확실해졌군.’
안호진 과장.
예상대로 이 사람은 성삼 길드 소속이 아니었고.
‘이순철 회장과 확실히 관련이 있어. 거기에다…….’
미래의 유정이가 그런 짓을 하게 된 원인.
또는 그와 관련된 인물 중 하나가 분명했다.
“헤헤, 시문 씨. 이해 안 가시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어느새 커피를 비워 버린 안호진이 손바닥을 비비며 히죽거렸다.
마음 같아선 대답도 없이 주먹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예.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었기에.
시문은 애써 본능을 가라앉혔다.
“아무렴요! 뭐든 물어보십시오.”
“성삼의 과장님이시니, 이유정 님과도 친분이 좀 있으시죠?”
이유정.
그 이름에 처음으로 능글거리던 안호진의 입가가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
괜히 스카우터로 온 것이 아닌지.
“하하하! 유정 아가씨 말이죠! 있고말고요.”
안호진은 금세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네요! 사실 제가 이유정 님의 광팬이거든요!”
“그러…… 셨군요.”
“네! 솔직히 어느 플레이어라고 팬이 아니겠어요? 성격도 실력도 좋으시고, 또…… 그 이, 이쁘기까지 하시니까.”
슬쩍 고개를 숙이며 수줍음까지 표현하는 시문.
-웩!
그에 격한 반응이 들려왔지만.
그것을 가볍게 무시한 시문은 반짝이는 눈으로 두 손을 모았다.
“이런 부탁드리기 좀 그렇지만…… 혹시 이유정 님의 싸인 좀 받아 주실 수 있나요?”
“아. 저 그것이, 아시다시피 아가씨께선 그런 걸 잘 안 해 주시기도 하고…… 또 길드 마스터시다 보니 워낙 바쁜 일정을…….”
“그럼 신입인 저는 아예 만나지도 못한다는 거잖아요! 제발 좀 부탁드려요!”
시문의 애원에 머리를 긁적이는 안호진.
분명 미소는 그대로고 약간의 곤란함만 내비치고 있었으나.
시문은 알 수 있었다.
‘속이 타겠지.’
시문은 현재 본인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최소 다이아급의 유망주.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저번 방송까지의 시청자 수와 그간의 활약만 보더라도 차후 상위권 플레이어가 될 잎새였다.
못해도 그에 준하는 플레이어는 되겠지.
스카우터로 나선 이가 그 정도 셈을 못 할 리는 없을 터.
거기에다.
‘난 계약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
아직 사회생활을 접하지 못한 젊은 각성자들에게 종종 있는 일이다.
저레벨 때 계약이라는 족쇄를 잘못 차서 플레이어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경우.
지금의 시문처럼 계약 내용 자체를 아예 안 물어보는 이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그렇기에.
“커, 커흠!”
안호진이 자신을 호구 잡으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결코 이 제의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
‘제안은 받아들이되, 일단 시간을 벌려고 하겠지.’
어차피 이유정의 사인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일.
일단 도장만 찍게 하면 나중엔 오리발을 내밀어도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좋습니다.”
빈 잔을 홀짝이던 안호진은 큰마음 먹은 사람처럼 어깨를 활짝 폈다.
“유정 아가씨의 사인은 제가 어떻게든 받아 보겠습니다.”
“와! 정말요?”
“물론입니다. 단, 아가씨께선 아레나 말고도 성삼 그룹 내의 업무까지 보셔서 다소 시일이 걸릴 수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이로써 확실해졌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이순철 회장은 성삼 길드를 두고 또 다른 세력을 만들려는 게 분명해.’
그것도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세력 말이다.
“그렇죠! 하하! 그럼 여기 계약서 아래쪽에…….”
이미 다 넘어왔다고 생각한 것일까.
안호진은 아예 대놓고 식어 버린 시문의 눈을 확인하지 못하고.
싱글벙글하며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오빠. 이제 알아낼 거 다 알아낸 거 같은데, 그냥 확! 죽여 버리면 안 돼?
‘현자의 돌, 농담이라도 그런 말 쉽게 하지 마.’
-히히! 반쯤은 진담이긴 한데. 뭐, 이쪽 세상은 살인에 민감한 거 같으니까. 그냥 적당히 두들겨 패 주기라도 하자. 응?
현자의 돌의 살벌한 제안에 잠깐 피식한 시문은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정보야 다 알아냈다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쳐 낼 필요는 없어. 다른 활용 방법이 있으니까.’
-이 사람을 역으로 이용하자, 이거야?
‘그래.’
결국 계약을 하지 않는 이상,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
그러니 이걸 잘 굴려서 안호진 과장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를 알아내면.
‘이순철 회장이 왜 플레이어로 세력을 만들려는지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시문이 입을 열려던 찰나.
“어머!”
“헉!”
카페 입구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물론 시문이나 안호진이나,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는 않았다.
그 소란의 주체가.
“안 과장!”
탕!
자신들의 테이블을 내려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군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청순, 청아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외모.
더불어.
“세상에! 진짜야?”
“자기야, 이거 실화 맞지?”
“이런 곳에서 랭커를 보게 될 줄이야…….”
주변 사람들의 경악까지.
시문은 저도 모르게 등장인물의 이름을 불렀다.
“이유정?”
그에 시문을 흘낏한 그녀는 시문의 예상과 달리.
휙.
‘엥?’
어떤 인사도 건네지 않은 채, 안호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이유정의 고운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아, 아, 아가씨!”
능글맞던 미소를 잃고.
새파랗게 질린 안호진의 얼굴을 보니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안 과장님. 제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죠? 박 과장님이 분명…….”
이유정의 청아한 목소리가 흐려진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사락.
“으앗! 아가씨! 그, 그건!”
반쯤 금이 간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어느새 그걸 집은 이유정의 시선이 빠르게 그 내용을 훑고 있는 탓이었다.
이내.
“하……!”
꽉 움켜쥔 종이만큼이나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장담컨대.
‘제대로 화났구나. 10년 전 그때처럼.’
시문은 지금 이유정이 폭발 직전의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언성을 높이며, 감정이란 감정은 모조리 표출하겠지.
그러나 1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지 않은 것일까.
시문을 또다시 힐끔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까득.
“……안 과장, 따라 나와요. 당장.”
뭔가가 갈리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컥! 아, 아가씨! 잠시만요! 제가 다 설명을!”
안호진의 멱살을 쥐어 올리곤 곧장 카페를 나가 버렸다.
“…….”
“…….”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작은 카페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바, 방금 이유정 맞지?”
“아까 얼굴 봤니? 나 깜짝 놀랐어! 이유정이 저런 무서운 표정을 지을 줄은…….”
“결국 다 이미지 관리였던 건가. 현실은 진짜 다르네.”
“애초에 랭커가 이런 곳을 왜 온 거야?”
굳이 아는 척하지 않고 곧바로 자리를 뜬 유정이의 배려를 모르지 않았기에.
시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갤럭시 아레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아레나의 종목은 던전이고, 참가 인원은 50명입니다.]
[조건 ‘협력’이 추가됩니다.]
[참가자 모두 5인으로 팀이 맺어집니다.]
[인원이 모두 보이면 아레나가 시작됩니다.]
작은 빛과 함께 나타난 시문은.
-시하!
-시하!
-알림 보고 바로 달려왔어요!
“반갑습니다, 여러분.”
시문은 우수수 올라오는 채팅창에 가볍게 인사를 표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이네.’
우거진 숲.
하지만 튜토리얼 때와 달리 나무만 우거진 것이 아니라.
따스하게 비치는 햇살과 이름 모를 풀과 꽃들 역시 가득했다.
자연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이거 안 좋은데…….’
시문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뭐야. 외부 맵이네?
-하필 던전인데 외부 ㅋㅋ.
-그래도 핑거에몽이라면 문제없겠지.
-ㄹㅇ. 형 손가락 튕겨서 여기 숲 싹 태워 버리자. 나 여기만 보면 정신병 걸릴 거 같애!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던전 아레나는 크게 외부와 내부, 두 가지의 형태로 나뉘는데.
외부 맵의 경우.
날씨부터 길 찾기 등 내부보다 짜증 나는 요소들이 많아 플레이어들이 기피했다.
하나 시문은 금방 표정을 풀었다.
‘아니다. 오히려 잘됐어.’
유정이가 안 과장과 함께 사라진 후.
시문은 집으로 이동해 영약을 제조했었다.
물론 이전처럼 제작 후에 바로 먹는 영약이 아니었다.
‘제조한 영약을 전부 숙성기에 재어 두고 왔으니.’
-그러게. 숙성 시간도 그리 길게 잡지 않았잖아. 이 아레나가 끝날 때쯤이면 50% 이상은 숙성되겠네.
영약 숙성.
영약의 성능을 조금 더 높일 때 들어가는 공정.
영약을 숙성시키는 만큼 무척이나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 했다.
물론 시문과 현자의 돌에게는 문제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문제가 되면 안 된다고 봐야겠지.
왜냐하면.
‘숙성기 만들자고 업적 포인트를 500점이나 썼으니…….’
1아스트라페급의 업적 포인트까지 들여 연성한 영약 숙성기니까.
본래라면 그냥 영약을 섭취하고 아레나를 시작할 생각이었으나.
‘당장 스탯이 급하진 않으니까.’
이미 보유한 스펙은 탈실버급이니.
조금이라도 영약의 효율을 높이는 쪽을 택한 거였다.
“그나저나, 아무도 안 오나?”
시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 던전이라고?”
“아씨! 외부 맵이잖아!”
“망할! 탐지 특성자가 있으면 좋겠는데…….”
3명의 남녀가 우수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장비에 치타 문양을 지니고 있었다.
‘같은 길드인가 보군.’
3인 길드 파티에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는 시문인지라.
뚜렷한 눈가가 살짝 굳었지만.
파앗.
마지막 매칭 인원을 확인했을 땐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시문뿐만이 아니었다.
“엇!”
“저 사람은!”
-헐? 쟤, 그 애 아님?
-그 애가 누군데?
-ㄴㄱ? 유명한 사람이야?
매칭된 사람들과 채팅창 역시 경악에 빠졌다.
그럴 수밖에.
“아, X발. 외부 맵이가?”
고양이와 여우 사이 어딘가인 눈매.
날카로운 콧날과 턱선, 도발적인 입술과 체형까지.
분명 전체적으로 섹시함이 다분한 외모였지만.
“뭐고? 초면부터 야리고 있노. 눈 깔아라, 잡아 지기기 전에.”
거친 언사와 강한 억양의 사투리, 그리고 껄렁한 몸짓은 섹시함 대신 뒷골목의 건달을 연상시켰다.
-엌ㅋㅋㅋㅋㅋㅋ 시문좌, 이번 아레나 망했네 ㅋㅋ.
-뭔데? 왜? 저 여자 누구임?
-저거 심해에서 유명한 미친년임. 이번 아레나 조건 5인 협력이던데, 끝났네.
-이 형 개쇼크받은 듯. 표정 봐 ㅋㅋㅋ.
-아무리 핑거에몽이라도 네임드 트롤끼곤 답 없지!
-시문 님…… 힘내요!
시문의 반응을 본 채팅창이 들썩인다.
하나 시문이 놀란 이유는 저 여성의 충격적인 행태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단 하나.
‘마, 말숙이?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상상도 못 한 옛 친구와의 재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