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32화 (32/349)

제32화

32화. 기미 (3)

“아! 시문 씨, 오셨습니까.”

선이 굵직한 사내.

박진욱이 비즈니스 미소를 걸치며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그에 시문 역시 반가운 미소를 띠며 답했다.

“하핫!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일전에 방송도 너무 잘 봤고요.”

“제 방송을 보셨어요?”

“VIP시니까요.”

고작 사람 하나 찾는 의뢰로 무슨 VIP가 돼?

라는 물음은 하지 않았다.

‘아마 시혁이 녀석 때문이겠지.’

애당초 동생과 선후배 사이인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전 세계에서 랭커급 플레이어가 가지는 위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당연히 박진욱의 입장에서도 그런 랭커의 가족을 쉬이 볼 수는 없을 터.

그런 시문의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참고로 시문 씨를 VIP로 지정한 건 어제부텁니다.”

박진욱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요?”

“네. 어제 시문 씨의 방송을 보고 확신이 섰거든요. 이 사람, 크게 되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 말에 시문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거 부끄럽네요. 다이아 랭크의 눈엔 많이 부족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박진욱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브실골대의 플레이를 보면 좀…… 불편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만, 어제 제가 본 시문 님은 최소 플래티넘 구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하네요.”

“빈말이 아닙니다. 특히나 실버신데 드라칸을 그렇게 쉽게 잡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뭔가 기본적인 스탯 자체가 남다르신 거 같은데…….”

박진욱은 묘한 어조로 말끝을 흐렸지만.

“하하. 제 스탯이 좀 유별나기는 하죠.”

별말 없이 웃으며 인정하는 시문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상태창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겠다는 시문의 뜻을 눈치챈 것이다.

“여하튼, 이 정도의 실력자시면 치료제를 만들어 주겠다는 말은 확실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 알고 승낙하신 거 아니었어요?”

“물론 믿고야 있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주 작은 의심은 남아 있었습니다.”

곤란하게 웃는 박진욱에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나 질병은 현대식으로 풀이하면 불치병이다.

그걸 저레벨의 플레이어가 갑자기 고쳐 주겠다고 하는데.

무려 다이아급 플레이어가 그 말을 덥석 믿겠는가?

아마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또한 김시혁의 형 되는 사람의 말이니 속는 셈 치고 믿어 본 거겠지.

‘근데 어쩌나. 이미 만들어 버렸는데.’

시문은 인벤토리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치료제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걸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일까?

“아! 제가 말이 길었네요. 여기 의뢰하신 정보입니다.”

박진욱은 품속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넸다.

시문이 그것을 빤히 보자, 박진욱은 앞에 놓은 제 핸드폰을 슬쩍 건드렸다.

“원하신다면 메시지 발송도 가능합니다만…… 아날로그긴 해도 이쪽이 제일 확실해서요.”

“확실히 그렇겠네요. 메시지는 괜찮습니다.”

핸드폰은 혹시 모를 누출이 있을 수 있지만.

쪽지는 읽고 태워 버리면 그뿐이니까 말이다.

시문은 쪽지를 펼쳤다.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

쪽지엔 고말숙의 주소뿐만 아니라, 그녀의 현 상황과 각성 여부 등.

의뢰하지 않은 내용들도 다수 담겨 있었다.

시문이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자.

“서비스입니다. 보아하니 찾아가실 거 같은데, 아무래도 그쪽 사정을 알아야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 덜 생기지 않겠습니까?”

박진욱은 사람 좋게 웃을 따름이었다.

‘과연 프로긴 프로구나.’

이내.

“참고로 그…… 플레이어긴 합니다만, 이리저리 유명하더군요.”

“예. 그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조금 껄끄러운 듯한 박진욱의 말투에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화륵.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튕겨 쪽지를 불태웠다.

“에? 바로 태우십니까?”

“제가 기억력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물론 제 기억력만이 아니라.

‘현자의 돌, 다 외웠지?’

-물론이징! 나 지적인 여자라니까.

현자의 돌이라는 최고의 동료를 믿고 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 모습에 박진욱은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

“과연 신기하군요. 캐스팅이나 시동어도 없이, 손가락만으로 능력을 발현하다니.”

“진욱 씨는 제가 연금술사인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 더 놀라운 거죠.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채팅창이 난리도 아니었어요. 마법계들이 그렇게 거품 무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 콧대 높은 마법계들이 서로 침을 튀겨 가며 흥분하는 모습이라니?

시문의 직업을 아는 박진욱의 시점에선 무척이나 즐거운 상황이었다.

“크흠! 시문 씨, 이왕 말이 나와서 말입니다.”

박진욱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연금술사이기만 한 겁니까?”

“예?”

“더블 클래스라든가,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아레나에서 연금술사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시문 씨처럼 연성하는 건 못 봤거든요.”

그게 그렇게나 궁금했던 걸까.

시문은 피식 웃으며 답해 주었다.

“더블 클래스는 아니고 그냥 특성 관련이라고 말해 두죠.”

“역시! 특성이었군요. 아마 고등급이겠지요. 부럽습니다.”

SS급 특성 ‘밤의 가호’를 지닌 사람이 할 말이겠냐만은.

‘우리 현자의 돌이 우월하기는 하지.’

마력불능의 치료, 회귀와 더불어 신화급 무구까지 연성하는 현자의 돌을 떠올리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물론.

-아이! 오빠도 참! 그렇게 말하면 나 빨개져?

곧바로 반응하는 녀석의 말은 못 들은 척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제 의뢰를 신경 써 주시니 저도 만족스럽게 드릴 수 있겠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눈을 끔뻑이는 박진욱.

시문은 인벤토리를 열고.

그런 박진욱의 앞으로 남색의 액체가 담긴 포션병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직접 확인해 보시죠.”

박진욱은 의아한 얼굴로 포션을 받아 들었고.

“…….”

그대로 굳어 버렸다.

충격이 꽤 큰 것일까.

박진욱의 침묵은 생각보다 길었다.

3분? 5분?

그러나 시문은 별다른 말 없이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불치병 환자가 치료제를 만났을 때의 기분은…… 내가 잘 아니까.’

애당초 치료제로 갑질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밤사냥꾼 박진욱은 동생의 최측근이 될 인물이었으며.

나아가.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될 수도 있겠지.’

회귀 전.

시혁이 길드의 주요 업무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던 것이 박진욱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시문은 그 탁월한 능력을 미리부터 좀 빌릴 생각이었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쉬는 박진욱.

건달을 연상시키는 외형 때문일까.

그의 한숨은 뿌연 담배 연기를 내뱉는 그 모습과 다름없었다.

“이거 참…… 뭐라고 말을 해야…….”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박진욱.

[마력경화증 치료제]를 쥐고 있는 그의 손은.

다이아 랭크의 플레이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박진욱은 그런 제 손을 꽉 감싸 쥐고는 몇 번 심호흡한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군요. 이리 귀한 것을 주셨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애초에 우린 거래를 한 거잖아요.”

“거래……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거래. 그쪽은 제 의뢰를 들어주고, 전 그 대가로 치료제를 만들고. 그렇게 딜했잖아요?”

“허허.”

박진욱의 입에서 힘없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 말끔한 남자는 알까?

지금 건넨 이 치료제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거대 세력의 정보도.

누군가의 암살도 아닌, 고작 사람 하나 찾는 대가로 정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그건 아니겠지.’

박진욱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가 본 김시문이라는 인물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그 망할 후배 놈을 꼼짝도 못 하게 하는 것만 봐도 확실하지.’

그렇다면 굳이.

당장 암시장에 던져 놓아도 큰돈을 만질 수 있을 이 치료제를 의뢰의 대가로 지불한 이유는 뭘까?

박진욱은 아무 말 않고, 조용히 기다려 주는 시문을 바라봤다.

“일단 시문 씨가 제게 호감이 있으시다는 건 알겠습니다.”

아마 제 동생과 선후배 하는 사이이니 좋게 보는 거겠지.

하지만.

“하나 그것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죠. 그럼 제가 도출해 낼 수 있는 답은 하나. 제게 바라는 게 있으신 걸로 보입니다만?”

“역시 밤사냥꾼은 허명이 아니네요.”

시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박진욱이라는 사람을 좋게 보는 것도 있지만, 결국 바라는 게 있어서긴 하죠.”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될는지요?”

안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 박진욱.

실제로 그의 세상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내가 누구 하나 묻어 달라고 해도 그럴 기세야.’

역시 사람을 잘 골랐어.

그렇게 생각한 시문은 만족스러운 뉘앙스로 답했다.

“박진욱 씨. 혹시 저랑 사업 하나 해 보실 생각 없습니까?”

“사업…… 말씀입니까?”

“예. 정확히는 대리, 혹은 위탁 판매라고 봐야겠지요.”

“그게 무슨…… 헛!”

시문이 뭘 말하는지 깨달은 것일까.

“서, 설마!”

박진욱의 눈은 찢어질 듯 커졌다.

* * *

해 질 녘의 골목 계단.

불규칙하고 조잡한 계단을 오르는 남자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경쾌했다.

-오빠,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가슴 정중앙에서 울리는 현자의 돌의 말에.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의 결정이니 뭐라 하진 않았는데, 솔직히 난 그 박진욱이란 사람 못 믿겠어.

하나 현자의 돌의 목소리는 주인처럼 밝지 못했다.

-밤 능력을 쓰는 것도 모자라서 생긴 거까지 건달 같잖아. 혹시 뒤로 딴 주머니라도 차면 어쩌게?

‘그냥 생긴 게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니고?’

-꼬,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잇! 솔직히 험상궂게 생기긴 했잖아! 난 관상이라는 걸 믿는 편이라구!

정곡이 찔린 것일까.

순식간에 톤이 높아지는 녀석의 목소리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여간에 이 얼빠 녀석.

‘걱정 마. 굉장히 능력 있고 믿음직한 사람이니까.’

현자의 돌은 험상궂은 외모를 지적하지만.

반대로 박진욱이 저런 외모에 어울리게 심지도 굳고, 의리도 강철 같다는 걸 시문은 모르지 않았다.

그는 시혁이 녀석 옆에 있으면 언젠가 대륙성의 손에 죽을 거란 걸 알면서도.

끝까지 동생 곁을 지켰던 사나이니까.

‘그러니 걱정 말고 최대한 치료제를 제조할 수 있는 환경에만 집중하자. 많이 만들어야 좋은 연구실을 얻지.’

-응! 알았어.

그렇게 시문이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엇! 드디어 오셨군요!”

자취방 입구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소 벗어진 머리에 통통한 살집, 그리고 능글맞은 미소까지.

시문은 생전 처음 보는 중년인에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세요?”

“이런. 너무 반가워서 소개도 못 했군요.”

그는 얼른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을 받아 든 시문의 눈은 조금 커졌다.

“성삼?”

“맞습니다. 성삼의 안호진 과장이라고 합니다.”

“성삼에서 제게 무슨 볼일이신지?”

“하하! 스카우터들 마음이야 뻔하지요. 떠오르는 슈퍼 루키 아니십니까? 좋은 기회를 드리고자 이리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시문의 눈가가 살짝 꿈틀했다.

성삼 길드의 스카우터라니?

‘성삼 길드의 인사 권한은 유정이가 꽉 잡고 있을 텐데?’

그런 성삼 길드에서 자신을 영입하려 한다면.

이런 스카우터가 아닌 유정이 본인이 직접 움직였을 것이다.

아니, 설령 그녀가 직접 오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게 연락은 했을 텐데…….’

유정이의 성격상 이렇게 사람만 불쑥 보낼 리가 없었다.

거기에다.

‘내가 아는 성삼 길드의 인물 중 안호진이라는 사람은 없어.’

소개와 명함에서 과장 직급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성삼 길드에서 과장 직급은 다이아 랭크의 플레이어인 박민철 말고는 없다.

‘심지어 명함엔 어느 부서인지도 적혀 있질 않아.’

물론 사기꾼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대놓고 성삼을 사칭할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

그렇다는 건.

‘성삼 그룹에 속하되, 성삼 길드의 관계자는 아닐 가능성이 높겠군.’

성삼 길드의 인물이 아니면서 성삼에 속한 자.

마침 이 상황에 딱 맞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회귀 전.

‘형. 지금껏 내 인생에 후회되는 게 딱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그날, 형의 뒤에 숨어만 있었다는 거고…….’

언젠가 중국에서 시혁이 녀석과 술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말이다.

‘다른 하나는 유정이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거야. 그 녀석, 길드 문제로 나한테 몇 번 연락이 왔었거든.’

시문 자신에게라면 몰라도.

동갑인 탓인지, 동생 시혁이 녀석에겐 뭐 하나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유정이다.

그런 그녀가 시혁이에게 ‘몇 번이나’ 도움을 구했다는 건 무척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나와 삼촌과의 전쟁을 떠나서, 그때 내가 한 번이라도 유정이를 도울 수 있었다면…… 그 앤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을까?’

한국의 고위 인사들을 포함해.

그녀의 할아버지인 이순철 회장의 목까지 베어 죽여 버리고, 이유정 자신도 목숨을 끊은 사건.

‘어쩌면 유정이가 그렇게 극단적인 일을 벌였던 것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촉이 왔다.

‘이 사람, 이순철 회장과 관련이 있는 거야. 그리고 유정이가 벌인 그 일과도 관련이 있겠지.’

그러나.

“미, 믿기지가 않네요! 성삼에서 절 찾아올 줄이야!”

그걸 겉으로 드러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 길드의 제의를 받은 브실골의 플레이어처럼 반응했다.

“하핫! 시문 씨의 반응을 보아하니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겠네요.”

무릇 스카우터들이란.

아주 작은 감정 변화에도 민감한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시문 씨. 여기서 이러지 말고,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누시는 게 어떠실지요?”

시문은 되레 어리숙하고 밝아 보이게 웃었다.

“좋아요! 마침 근처에 커피 맛있는 곳이 있거든요. 그리로 가시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