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29화. 특수 아레나 (4)
‘설마 [힘을 잃은 광산핵]이 이곳에서 쓰일 줄이야.’
힘을 잃은 광산핵.
상황이 이렇게 맞아떨어져서 특별해 보일 뿐.
-아니, 저게 여기서 쓰이는 아이템이었어?
-ㅅㅂ! 나 저거 얻는 족족 다 버렸는데!
사실 힘을 잃은 광산핵은 흔하디흔한 재료템.
즉, 잡템으로 치부되는 아이템이었다.
-여기니까 쓰이는 거죠. 우리한텐 의미가 없어요.
-ㅇㅇ. 애당초 여기 입장 아이템을 먹어야 사용이 되는 거임.
-ㄹㅇ. 근데 이분은 어쩜 이렇게 아다리가 딱딱 맞냐?
-걍 운빨이지 뭐. 갤럭시 아레나가 이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시문은 채팅창을 흘낏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정말 내 운이 좋았던 거지.’
힘을 잃은 광산핵.
이름 그대로 힘을 잃었기에.
특별한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F급 재료 아이템보다 못한 잡템이 광산핵이었다.
반대로 시문과 같이 특별한 공정이 가능한 이들은 쓰려면 쓸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마력석에 속하니까.
‘그래서 나중에 쓰려고 처분하지 않았던 건데…….’
그게 특수 아레나에 쓰이는 아이템이었을 줄이야.
시문은 작은 두 손으로 [힘을 잃은 광산핵]을 꼭 쥐고 있는 마르넬을 바라봤다.
그녀는 연신 광산핵을 주물럭거리며 살피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은인, 핵심부에 쓰이는 광산핵과 이상할 정도로 유사하지만…… 이건 쓸 수가 없겠네요.”
시문은 그 이유가 짐작이 간다는 말투로 답했다.
“광산핵에 마력이 없어서지?”
“맞아요. 정확히는 마력이 아닌 지력(地力)이에요. 광산핵은 지력의 결정체거든요.”
“호오? 그래?”
그건 또 처음 알았다.
보통 [힘을 잃은 광산핵]은 마력 보충을 베이스로 정제하기 마련인데.
‘지력이라? 그럼 땅과 관련된 기운을 부여하면 진짜 광산핵의 능력을 알 수 있겠네.’
-ㅁㅊ! 마력이 아니라 지력이었음?
-대박! 한동안 가격 폭등하겠네 ㅋㅋ.
-시문좌…… 이런 걸 그냥 알려 줘도 됩니까!
시청자들 역시 놀랐는지 채팅 알림이 멈추지 않고 반짝였다.
하지만 시문은 광산핵의 정보가 알려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내가 얻는 게 더 많으니까.’
특수 아레나 방송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바로 이런 정보들 때문이 아니던가?
시문은 시청자 수를 힐끗했다.
[8,546명 시청 중]
방송 시작 당시 2천 명이었던 시청자는 어느새 8천이 넘어가는 상태.
더불어 몇 초마다 수십 명의 시청자들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가 공유되는 대신 방송에서 오는 여러 수익과 업적을 클리어할 수 있으니.’
더불어 회귀 전 자신이 저 시청자들의 입장이었던 만큼.
어지간한 특수 아레나발 정보들은 대부분 꿰고 있는 시문이었다.
즉.
‘나로선 잃을 게 없지.’
작게 웃은 시문은 슬슬 날아올 후원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야골드 님이 AP 2,000을 후원하셨습니다.]
=시문좌…… 정보 풀어 주셔서 감사하무니다. ㅜㅜ
[심해학살자 님이 AP 1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장갑 맞추려던 거 그냥 다 후원함! 정보 ㄱㅅ!
[가능충 님이 AP 500을 후원하셨습니다.]
=형! 나 진짜 가능해졌어!
[dlrjfclrpTdj 님이 AP 700을 후원…….]
줄줄이 이어지는 후원들.
1만 AP부터 100AP까지.
다양한 액수의 후원들이 밀려들었다.
아마 결산해 보면 상당한 양이 될 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생산계협회 님이 AP 1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재료 아이템의 정보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협회 한번 방문해 주세요!
이러한 상황에 꼭 등장해, 후원과 방문 메시지를 날리는 대표적인 세력.
생산계협회가 후원을 보낸 것이다.
액수를 확인한 시문의 눈이 조금 커졌다.
‘10만 AP라니? 생각보다 큰데?’
이들의 후원을 진즉 예상하고 있던 시문이었으나.
10만 AP라는 액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광산핵이 이만한 가치가 있나?’
보통 [힘을 잃은 광산핵]은 정제를 거쳐도 E급 마력석 대용으로밖에 쓰지 못하는 아이템이거늘.
지금까지 누적된 생산계협회의 후원 행보를 돌아보면.
10만 AP는 최소 C급 이상의 재료 아이템에 해당하는 정보여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렇구나.’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을 생산계협회의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보면서 바로 확인해 본 거야.’
그리고 힘을 잃은 마력핵은 C급의 아이템으로 변해 생산계협회에 알렸겠지.
[업적 ‘100,000AP 후원받기’를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점을 획득합니다.]
[업적 ‘시청자 10,000명 돌파하기’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점을 획득합니다.]
일련의 업적창들이 줄지어 시문의 눈앞으로 떠오른다.
그중 시청자 ‘10,000명’이라는 문구에 시문은 놀란 눈으로 시청자 수를 확인했다.
[11,846명 시청 중.]
‘뭐야? 벌써 만 명이 넘었네?’
힘을 잃은 광산핵의 정보 때문일까?
어느새 시청자는 만 명을 가뿐히 넘어가고 있었다.
‘과연, 특수 아레나가 대단하긴 하네.’
자꾸 올라가는 시청자 수는 마치 급등하는 주식처럼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정신 차리자, 김시문! 아직 아레나 중이야.’
시문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풀이 죽어 있는 마르넬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곤 마르넬이 쥐고 있는 힘을 잃은 광산핵 위로 손을 올렸다.
“은인?”
“마르넬, 아직 기회는 있어.”
“하지만 은인! 이 광산핵으론…….”
“그건 내가 충분히 정상화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그, 그게 정말이세요?”
마르넬은 놀란 토끼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힘을 잃은 광산핵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니?
하지만 시문은 별다른 설명 없이.
“그래. 그러니 넌 저걸 맡아 줄래? 광산핵을 쓰려면 결국 저 장치가 필요한 거잖아.”
부서진 구조물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에 마르넬은 글썽이는 눈으로 부서진 구조물과 시문을 번갈아 보더니.
“조, 좋아요! 지력 엔진이 완전히 부서진 것도 아니니까, 수리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어느새 본래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땅!땅!
마르넬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망치와 도구들로 지력 엔진을 수리하는 사이.
‘현자의 돌.’
시문은 현자의 돌에게 물었다.
‘넌 알고 있었지? 힘을 잃은 광산핵이 마력이 아니라 지력으로 작동한다는 거.’
-웅웅! 당연하지. 참고로 왜 말 안 했냐고 하지 마. 난 오빠가 그거 쓸 때 알려 주려고 했다?
‘탓하려는 게 아냐. 그냥 왠지 너라면 알고 있었을 거 같아서 물어본 거야.’
연성물에 관해선 모르는 것이 없는 현자의 돌.
그러나 이따금 녀석이 하는 말들을 들어 보면 연성 외에도 아는 지식들이 많아 보였다.
-헤헤! 내가 말했잖아. 나 지적인 여자라고.
‘그래그래. 어쨌든, 이거 복구 가능한 거지?’
-물론이지! 연성력으로 지력을 연성해서 충전해 주면 금세 본 모습을 되찾을 거야.
‘연성력으로 기운을 연성해서? 그런 것도 가능해?’
-모든 기운을 연성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력 같은 흔한 기운은 가능해.
그 말에 시문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어쩌면.
‘핑거에몽이라는 드립이 진짜가 될 수도 있겠는데.’
실없는 생각에 고개를 저은 시문은 연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럼 시작하자.’
-웅! 지력의 구조는 되게 단순하거든? 오빠라면 금방 캐치할 거야. 자!
본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시문은 머릿속으로 흘러드는 지력의 구조에 작게 탄식했다.
‘정말 땅 그 자체의 기운이구나.’
기운이라 그런 것일까?
뭐라 콕 집어 형용할 순 없었으나, 지력에 대한 이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느낌을 따라 연성력을 운용하자.
우우웅.
손에 들린 힘을 잃은 광산핵이 작은 이명을 토하기 시작했다.
지력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점차 노란빛을 머금더니, 잘 익은 과일처럼 진한 색을 띠고 나서야 울림이 멈췄다.
시문은 곧바로 정보창을 확인했다.
[광산핵]
등급 : C
지력의 결정체. 드워프들의 기술로 자체 회복 능력을 지녔다.
-주변 광물량에 따라 소모된 기운을 회복한다.
‘자체 회복이라…… 이래서 동력원으로 쓰는 거구나.’
드워프들의 영역에서 광물이란 곧 식수원과 같으니.
굉장히 효율적인 동력원이었다.
시문은 되살아난 광산핵을 들고 마르넬에게 다가갔다.
어린 나이 때문에 일반적인 드워프보다도 더 조그마했지만.
투다다닥!
“흐럇!”
드워프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의 손보다 두 배나 큰 망치를 장난감인 양 다루고 있었다.
“어라? 은인, 제가 도와드릴 게 있나요?”
시문을 발견한 마르넬은 이마의 땀을 슥 훔쳤다.
시문은 대답 대신 노랗게 빛나는 광산핵을 들어 올렸다.
“벌써 해결하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에 얼굴이 확 밝아진 마르넬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이윽고.
콰쾅!
“저도 끝! 이제 광산핵을 넣기만 하면 돼요!”
폭음과 함께 수리를 마친 마르넬은 온전해진 지력 엔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를 본 시문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근력이면 드라칸도 상대 안 될 거 같은데…….”
“네?”
“아, 아니야. 광산핵은 어디에 넣을까?”
“저기 중앙에 홈 보이시죠? 그쪽에 넣으면 엔진 중심부까지 알아서 들어갈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곧바로 지력 엔진의 중앙에 광산핵을 넣었다.
데구루루.
내부는 경사로 이루어져 있는지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지력 엔진이 점점 떨리기 시작하더니, 끓는 주전자처럼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치이익!
엔진 상층부에서 허연 김이 힘차게 뿜어진다.
그를 본 마르넬은 반짝이는 눈으로 폴짝폴짝 뛰었다.
“다행이다! 제대로 작동하나 봐요!”
그 말과 함께.
쿠르르르르르.
이곳을 기점으로 거대한 떨림이 이어졌다.
떨리는 강도로 보아 아마 광산 전체가 떨리고 있으리라.
이어.
철컥.
정문으로 보이는 곳과 사방의 벽면이 움직이며, 금속 물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저건…….”
그걸 본 시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포?”
“정확히는 경계 포탑이라고 하죠. 여긴 지력 엔진이 있는 중요한 곳이니까요.”
“하지만 톱날 같은 것도 보이는데…….”
“포탑으로 해결되지 않는 침입자들을 처리하기 위한 근접 절단 기기예요. 포탑과 한 쌍으로 늘 설치해 두는 녀석이죠.”
제 발명품을 만난 공돌이, 혹은 공순이가 떠오른다면 착각일까.
“그리고 저건 초고열 칼날이에요! 그 질긴 트롤도 저거 한 방이면…….”
마르넬은 굳이 묻지도 않은 방어 시스템과 기술들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톤이 높아질수록, 지력 엔진이 내는 진동은 더욱 커져 갔고.
“……해서 이곳의 방어 시스템이 모두 가동되면! 광산 역시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고!”
마르넬은 밝고 명랑한 얼굴로 마무리하듯.
짝.
“등록되지 않은 이들을 공격하게 된답니다?”
박수를 치며 설명을 끝마쳤다.
그녀의 말대로 방어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걸까?
끄아아악!
크르륵!
용족의 것으로 예상되는 비명이 사방 천지에 메아리쳤다.
아마 광산 통로 곳곳에 설치된 저 포탑과 칼날들이 침입자를 해체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비명을 피날레 삼아.
[특수 아레나 ‘열띤 광산의 악몽’을 상상치도 못한 형태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이번 아레나의 클리어로 결정된 운명이 크게 뒤바뀝니다.]
[해당 클리어의 여파로, 모든 아레나에서 ‘폐광’ 관련 맵이 삭제됩니다.]
아레나의 클리어를 알리는 시스템창이 눈앞으로 주르륵 올라왔다.
그중 가장 시선을 끄는 내용은 바로 맵 삭제였다.
‘폐광 맵이 삭제된다고?’
당연했다.
지구의 멸망까지 살았던 시문이었지만.
맵의 삭제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아니, 딱 한 번 있긴 했다.
‘시혁이가 숲 관련 특수 아레나를 클리어했을 때였지?’
악명 높은 맵인 ‘저물어 버린 숲’.
거대한 숲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변덕스러운 기후는 물론.
타락해 버린 정령부터 야수, 엘프 등 강력한 몬스터들까지 더해진 최악의 맵 중 하나였다.
‘보통 매칭되면 죽었다 봐야 하는 맵 중 하나였지.’
그러나 최고 플레이어 중 하나인 동생 놈은 결국 메인 목표인 용족과 그 근원을 처리함으로써.
‘저물어 버린 숲’이라는 맵을 아예 없애 버린 적이 있었다.
하나 이는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고도 몇 년이나 지난 후의 일.
지금은 정규 아레나마저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맵 삭제라니…… 이거 좀 싸한데?’
시문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갤럭시 아레나가 긴급회의를 소집합니다.]
[의회에서 이번 일을 빌미로 그간 이어진 플레이어 김시문의 안건에 종지부를 요청합니다.]
[과반수 이상의 의원이 동의를 합니다.]
[다음 아레나 클리어 시, 그간의 논의에 대한 결과가 공표됩니다.]
시스템은 불안감만 더해지는 문구들을 늘어놓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성좌 검은 염소가 ‘캬하핫! 드디어 내 아가가 일을 냈네? 그 망할 파충류들이 거품을 물겠어!’ 대소를 터뜨립니다.]
[성좌 천마가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닐세. 놈들이 움직이면 어쩌려고?’ 걱정을 표합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그 겁 많은 놈들이? 퍽이나!’ 빈정거립니다.]
[성좌 제우스가 ‘하긴, 반칙만 써 대는 버러지들에게 그럴 용기는 없겠지.’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 명의 상위 서열 성좌들이 이번 클리어로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좌 검은 염소가 ‘난 제발 용기 좀 내줬으면 좋겠어. 그럼 우리에게 인과가 부여될 테니.’ 섬뜩한 미소를 짓습니다.]
[성좌 제우스와 천마가 ‘그럼 그날이 용계의 마지막이 되겠지.’ ‘그렇군. 허헛! 부디 놈들이 미치길 빌어야겠구먼!’ 잔혹하게 웃습니다.]
‘인과? 용계?’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에 시문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충 두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일로 내가 용제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거군.’
그리고 인과라는 것 때문인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다고 싸한 느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거기까지.
‘어차피 대륙성과 그 검붉은 눈알과 싸울 마음을 먹은 상태야.’
이미 거대한 적들을 목표로 둔 상태이기에.
용제 하나 더해지는 것이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성좌 검은 염소가 ‘이번 일로 확실해졌어. 이 아인 가능성이 있어.’ 당신을 보며 입술을 적십니다.]
[성좌 천마가 ‘동감일세. 허헛! 무르익을 때가 기대되는군.’ 당신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습니다.]
[세 명의 성좌가 당신의 활약에 굉장한 만족감을 표합니다.]
[세 명의 성좌가 업적 포인트를 5,000점을 후원합니다.]
‘5, 5,000점!’
금융 치료.
아니지.
업포 치료라 불러야 할 성좌들의 후원은 작은 긴장감마저 날려 버렸다.
그때.
“은인!!”
흐뭇해하는 시문의 귓가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르넬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은인의 몸이!”
그녀는 울상인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시문은 대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아레나가 끝나도 상황이 멈추지 않은 거로군.’
특수 아레나라 그런 것일까?
기존의 아레나와 다르게 아레나가 끝나고도 상황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시문은 차분히 답했다.
“별거 아냐.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거지.”
“그런……! 아니, 아니지. 이게 맞긴 하겠네요.”
마르넬은 자조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족의 기습만큼이나 갑작스러웠던 것이 은인의 등장이다.
그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난 드워프야. 드워프는 은혜를 잊지 않아!’
드워프의 핏줄에 새겨진 정신은 마르넬의 입을 움직였다.
“그래도 은인, 부디 이름만이라도 알려 주세요.”
그에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문. 김시문이라고 해.”
“김시문…….”
“그럼 마르넬, 잘 지내.”
이젠 형체마저 흐릿해진 시문은 마지막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철컥, 덜컹!
방어 시스템의 요란한 기계음만 맴돈다.
차갑고 딱딱한 철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김시문…… 김시문…….”
양 갈래 머리의 소녀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