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24화 (24/349)

제24화

24화. 수소문 (3)

“드시죠.”

“감사합니다.”

고소하면서도 화사한 향.

냄새만 맡아도 고급스러운 커피였다. 시문은 그것을 한 모금 머금으며.

“그래, 의뢰 때문에 절 찾아오셨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이 고급스러운 커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테킬라를 연상시키는 굵직한 사내, 박진욱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하나를 찾고 있거든요.”

“사람이라…… 제대로 찾아오긴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런 쪽으론 또 확실하거든요.”

한쪽 입꼬리를 씨익 끌어 올리는 박진욱.

누가 봐도 암흑가를 누비는 조폭과도 같았으나.

시문은 박진욱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밤사냥꾼에게 사람 하나 찾는 건 문제도 아니겠지.’

밤사냥꾼 박진욱.

조폭을 연상시키는 거친 외모와 달리, 그는 암살계의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가 가진 SS급 특성인 ‘밤의 가호’는 암살 계열에 최적화된 특성이었으니까.

또한 여타 암살계들이 그렇듯, 암살만이 아니라 첩보나 정보 수집에도 유용했다.

해서 박진욱을 찾아온 것인데…….

‘이놈은 여기에 왜 있는 거야?’

시문은 죄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을 꼼지락거리는 건너편의 미청년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시혁의 머리는 더욱 내려갔다.

시문은 작게 한숨을 쉬곤 입을 열었다.

“야. 너 뭐 하냐?”

“으, 응?”

“뭐 하냐고, 인마.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으려는 줄 알겠다. 고개 좀 들어.”

그도 그럴 것이.

“그……래도 돼?”

이 잘난 동생 놈이 무슨 죄인처럼 풀이 죽어 있지 않은가?

현재까지 알려진 김시혁의 이미지.

동시에 시문이 알고 있는 밝고 청량한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실은.

“새끼, 그럼 뭐 안 되겠냐?”

시문도 동생 녀석이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10년 전 그 사건 때문이겠지.’

갤럭시 아고라에서 만난 유정이처럼.

자신에게 마력불능을 선사했던 그 사건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아이러니한 것은.

전생에 대한민국이 멸망하고 처음 시혁이 녀석을 만났을 때도.

녀석은 지금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그만 고개 들어.”

시문은 저렇게 풀 죽어 있는 동생 녀석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유정이 하나로 충분하거든.”

아고라에서 이유정을 만났을 때도 했던 말이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자신은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말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유정이?”

풀이 죽어 있던 시혁이의 눈이 처음으로 반짝였다.

“그래. 얼마 전에 아고라에서 만났다. 유정이가 말 안 하더냐?”

“어. 난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잠깐. 아고라를 형이 왜 가?”

“왜 가긴, 템 팔러 갔지 인마. 근데 무슨 취조 하냐?”

“그, 그런 게 아니라…… 근데 유정이를 왜 만난 거야? 연락 안 하던 거 아니었어?”

“성삼 상점 들렀다가 우연치 않게 만났다.”

“성삼?!”

반짝임을 넘어 번들거린다고 해야 하나?

어느새 목소리도 한 톤 높아진 김시혁은 다소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물었다.

“형! 괜찮아? 무슨 일 없었어?”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사람 놀라게.”

“미, 미안.”

“미안할 거까지야. 그리고 딱히 일이라고 할 건…….”

아! 하나 있긴 했다.

[홉고블린의 전투 도끼]을 처분하려다 사기꾼으로 몰릴 뻔했었지.

그것도 성삼의 상점에서 말이다.

하나 딱히 큰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11년 후엔 흔한 아이템이라 회귀한 내가 생각 짧게 움직였어.’

라고 말할 순 없었기에.

“없었어.”

시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렇구나. 알았어.”

잠시 턱을 괴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김시혁.

어딘가 묘하게 취조당하는 기분이었으나.

“그나저나 시혁이 너.”

시문은 캐묻는 대신 다른 질문을 택했다.

“여기 박진욱 씨랑 아는 사이냐?”

이유는 간단했다.

‘밤사냥꾼 박진욱이 시혁이와 동료가 되는 건 대한민국이 멸망하고 나서인데?’

전생의 기억으론 이 시기의 김시혁과 박진욱은 함께하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응? 아! 어음…… 그게…….”

자연스럽게 걸려 있는 청량한 미소.

하나 그 위로 맑은 두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였다.

모로 봐도 의심스러운 모습이었으나.

“하하! 시혁이는 아카데미 선후배 사이기도 하지만, 제 주 고객 중 한 분이십니다.”

옆에서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에 시문은 의심을 거두었다.

“고객이요?”

“예. 아무래도 시혁이가 랭커다 보니, 이리저리 불편한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아아!”

박진욱의 말에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랭커.

모든 플레이어가 바라는 꿈 같은 위치였으나.

그만큼 잃는 것도 많은 자리였다.

‘사실상 연예인과 다를 바가 없지.’

그 탓에 개인 방송을 하지 않아도 타 플레이어로 인해 신상이 노출되어 버리기 일쑤다.

특히나 거대 세력에 의탁하지 않은 랭커들은 사생활부터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많았다.

‘이맘때의 시혁이는 길드도 없었지.’

나중에야 개인 길드를 창설하는 시혁이 녀석에겐 많이 불편할 시기였다.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됩니다. 그나저나 두 분이 선후배 사이인 줄은 몰랐네요. 많이 친하시겠어요?”

“아뇨. 철천지원수 사이입니다.”

“예?”

“랭커라는 입지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제가 수발을 들어 주는 상태입니다. 노예처럼.”

싱긋.

험악한 얼굴을 한껏 펴며 웃는 박진욱.

“하아…… 선배.”

그리고 이마를 턱 짚는 김시혁의 모습은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씨익.

“그것참, 힘들겠네요.”

시문은 동생 녀석을 변호하는 대신, 박진욱과 같은 미소를 선택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녀석이 사람을 귀찮게 하는 구석이 있거든요.”

“혀, 형?!”

“과연 형님 되는 분이라 그런지 잘 아시는군요.”

“별말씀을. 그래도 막 모난 놈은 아닙니다. 좋게 봐주세요.”

“크하하핫! 이거 모처럼 마음에 드는 의뢰인을 만났군요!”

뭐가 그리 좋은지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묵직한 손을 건네는 박진욱.

그에 시문이 악수를 받자, 썩어 들어가는 김시혁의 얼굴을 한껏 음미한 박진욱이 말했다.

“그래, 사람을 찾으신다고요? 혹시 해외 쪽일까요?”

“아뇨. 국내에 있는 사람입니다.”

“다행이군요. 국내면 해결률이 확 오르거든요.”

자신의 테이블에서 패드를 가져온 박진욱은 펜을 들고 물었다.

“찾는 이의 인상착의나 정보가 있을까요? 최대한 자세할수록 좋습니다.”

“이름은 고말숙, 부산에 거주 중이고 24살입니다.”

“우리 망할 후배님과 동갑이군요. 보아하니 여성분 같은데…… 아시는 사이신지?”

“예에……니오,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도 모르게 ‘예’라고 답하려던 시문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알아봐야 회귀 전이지, 지금은 아니니까.’

다행히 자연스러웠는지.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주소 정도만 알려 드리면 되겠군요.”

박진욱은 별 물음 없이 말을 이어 갔다.

“예. 찾을 수 있을까요?”

“하하! 이 정도 정보로 못 찾으면 이쪽 일 접어야죠.”

“어? 그럼 선배, 당장 은퇴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시문이 오기 전 건넨 서류를 팔랑거리는 김시혁.

청량한 미소 위로는 방금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가 그득한 눈빛이 반짝였으나.

“며칠 걸리긴 합니다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박진욱은 모처럼 망할 후배 놈의 말을 깔끔히 씹어 버렸다.

평소 같으면 자기 말을 씹냐며, 하늘 같은 선배에게 주먹을 내지르는 하극상이 벌어질 텐데.

까득.

제 형 앞이라 그런 걸까.

그저 이만 빠득 가는 김시혁의 모습은 퍽이나 속이 시원했다.

“다행이군요. 듣기론 현금만 받으신다고 하던데, 의뢰비는 얼마면 될는지요?”

“시문 씨께서 워낙 주신 정보가 많은지라, 또 그리 어려운 의뢰도 아니고…….”

즐거운 얼굴로 아이패드를 툭툭 두드리던 박진욱.

그는 제 형의 뒤편에서 잔뜩 골이 난 김시혁을 힐끔하곤 말했다.

“첫 의뢰에다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시기도 하니, 이번 일은 무료로 해 드리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무료라니요. 그럴 순 없죠.”

시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려 다이아 랭크시지 않습니까? 그런 고급 인력을 무료로 이용할 수는 없죠.”

“크핫! 이거 참! 볼수록 동생분과 딴판이시군요. 더더욱 무료로 해 드리고 싶군요.”

가볍게 웃은 박진욱은 김시혁 쪽을 바라봤다.

“정 신경 쓰이시면 이 망할 후배님에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어떠냐?”

“……얼마든지.”

그럴 줄 알았다.

하는 눈빛으로 씨익 웃는 박진욱.

하나 형인 시문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아닙니다. 제 의뢰인데 동생이 내게 할 순 없죠.”

“형, 괜찮아. 나 돈은…….”

“내가 안 괜찮아, 인마. 그리고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다.”

만류하는 김시혁을 가볍게 쳐 낸 시문은 말을 이었다.

“관계의 문제지.”

“호오? 이제 보니 단발성 의뢰인이 아니시군요?”

“맞습니다. 전 밤사냥꾼과의 관계를 길게 이어 가고 싶거든요.”

“그래서 무료 의뢰는 거절하겠다라……. 이거 정말이지, 같은 핏줄이 맞나 싶을 정도네요.”

그 말에 시문은 물론 김시혁 역시 몸을 움찔했으나 그뿐.

너무나 미세했기에.

아무리 밤사냥꾼 박진욱이라도 그걸 눈치채지는 못했다.

시문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해서 다른 조건으로 의뢰비를 충당하면 어떨까 하는데요.”

“다른 조건?”

고개를 갸웃하는 박진욱.

시문은 김시혁과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듣기로는 최근에 꽤 고등급의 재료들을 매입하신다던데…….”

그 말에 박진욱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고.

‘역시.’

시문은 박진욱의 반응에 전생의 기억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오해는 마세요, 나쁜 의도로 말한 건 아니니까. 단지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도움을 주신다고요?”

“예.”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에 박진욱의 한쪽 눈썹이 쭉 올라간다.

험상궂은 외형에 더해져 퍽이나 위협이 넘쳤지만.

시문은 그저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밤사냥꾼 박진욱. 다이아급 실력자임에도 돌연히 아레나를 은퇴해, 현재는 현금만 받는 사업을 하고 있지.’

일종의 흥신소 같은 일을 말이다.

그토록 대단한 실력자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분명 마력경화증이라고 했었지?’

대한민국이 멸망한 이후.

박진욱이 김시혁의 길드에 합류하고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당시 박진욱이 돌연히 아레나를 은퇴한 이유는 다름 아닌 마력경화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레나 질병의 일종으로 마력이 조금씩 경화, 즉 굳어 가는 병이었다.

‘마력경화증의 치료제 레시피는 앞으로 약 5년 후에 등장하지.’

생각보다 별거 없는 재료들이었고.

당연하게도 그 레시피는 머릿속에 잘 들어와 있다.

에메랄드 태블릿을 얻기 전.

마력불능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치료법을 다 뒤졌으니까.

더군다나.

‘박진욱의 합류가 빨라지면 시혁이 녀석에게도 나쁠 건 없겠지.’

시혁이가 종리추의 손에 죽는 그날까지 녀석의 옆을 지켰던 게 박진욱이다.

앞으로 동생 놈이 만들 길드의 핵심 인물이자 핵심 동료 중 하나란 말이다.

고로 박진욱이라는 인물이 시혁이 녀석에게 빨리 붙으면.

협회를 비롯한 한국의 내부적 문제부터, 대륙성까지도 어느 정도는 억제가 되리라.

생각을 정리한 시문은 가볍게 운을 띄웠다.

“대충 재료 목록을 보아하니 마력경화증 같던데…… 맞죠?”

“뭐?! 선배! 아레나 질병에 걸렸어요?”

옆에서 눈만 끔뻑이고 있던 김시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턱을 괸 박진욱은 무서운 눈초리로 시문을 노려볼 뿐이었다.

“재료 목록까지? 하! 암시장도 다됐군요. 감히 남의 거래 내역까지 흘리다니.”

“암시장이 원래 그렇죠. 돈 말곤 아무것도 없는 곳 아닙니까?”

시문은 가볍게 이 모든 걸 암시장의 탓으로 돌렸다.

밤사냥꾼 박진욱이 암시장의 단골인 건 익히 아는 사실이고.

실제로 아고라가 아닌 암시장에서의 거래는 정말 돈 말고 믿을 것이 없었으니까.

“……후, 그렇긴 하죠.”

한숨을 쉰 박진욱은 이마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시문이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알아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시문에게 어떻게 알아냈냐고 따질 수 없다는 말이 더 적합하겠지.

애당초 암시장을 이용한 그의 잘못도 있을뿐더러.

‘시혁이 놈의 형을 건들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다면.

‘챙길 수 있는 건 챙겨야지.’

박진욱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그래서, 제 마력경화증에 그쪽이 어떤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그 재료들을 저한테 주시면, 마력경화증의 치료제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예?”

돌아온 시문의 답에 박진욱은 고사하고.

“혀, 형? 그게 무슨 말이야? 치료제라니?”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김시혁마저 경악했다.

“죄송합니다만…… 하시는 모든 말씀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현 다이아급 연금술사들도 아레나 질병 치료제는 만들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거기까지는 말씀드릴 이유가 없죠. 확실한 건.”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시문.

그는 여유롭게 잔을 내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마력경화증 치료제는 제가 확실히 만들어 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내키지 않으시면 제안을 안 받으셔도 상관없고요.”

“…….”

박진욱의 입이 꽉 다물린다.

당연했다.

‘이런 말을 듣고 누가 거절하겠냐고!’

아레나 질병은 공식적으로 불치병이다.

당연히 치료제가 없는 병인 줄 알았는데 치료제가 있다니?

‘이건 설령 거짓말이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

애당초 김시혁의 형님 되는 사람이 이런 거짓말을 할 리도 없겠지만.

이미 마력경화증으로 아레나까지 잠정적으로 은퇴한 상황이다.

박진욱으로선 감히 거절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시문 씨.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말씀하시죠.”

“왜 굳이 이런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의뢰라면 무료로도 가능했잖습니까.”

박진욱의 물음에 시문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그것은.

“그냥 시원시원하신 게 마음에 들어서?”

망할 후배 녀석과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였다.

“어쩌시겠습니까?”

“……하, 제게 달리 선택권이 있겠습니까.”

피는 못 속이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박진욱은 마른세수를 하곤 손을 내밀었다.

“부디 치료제를 부탁드립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제가 구입한 재료는 모두 건네드리죠.”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아, 걱정은 마세요.”

그 손을 마주 잡은 시문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재료 떼먹는 일은 아마 없을 테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