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20화 (20/349)

제20화

20화. 천마신공 (2)

“거짓……말!”

힘없이 떨리는 음성.

그도 그럴 것이 현 돈킹의 상태를 돌이켜 보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소위 말하는 ‘교복’ 수준에 들어가는 우월한 방어구.

특히나 충격 흡수에 뛰어난 효능을 보이는 가죽 재질임에도.

그의 가죽 갑옷은 태풍이라도 만난 것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으니까.

더불어.

또옥.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연상시키듯.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오른손은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무슨 수류탄이 맨손에서 터진 것처럼.

형체도 남김없이 사라졌으니까.

오로지.

-……미친!

-방금 그거 뭐임?

-순간 화면 다 일그러져서 하나도 못 봤는데?!

-나 저거 본 적 있음. 옛날에 돈킹 다이아 갈라고 빡겜할 때 쓰던 권기가 딱 저랬음.

-X랄 ㄴ. 돈킹도 스탯 딸려서 권기를 못 쓰는데. 심해 구간에서 권기를 어케씀?

-그럼 ㅅㅂ! 아이템이나 특성이라도 썼겠지! 넌 저게 뭔지 설명이나 가능함?

잠시의 침묵과 함께 불타는 채팅창만이 돈킹의 생존 소식을 알려 왔다.

물론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털썩.

방송의 주체인 돈킹이 쓰러지자, 방송 화면 역시 꺼져 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퍼스트 블러드를 달성하셨습니다.]

[이번 아레나의 클리어 보상이 증가합니다.]

일련의 알림이 시문의 앞으로 떠올랐다.

* * *

‘후. 초식 자체를 펼쳐 내는 건 아직 힘드네.’

감기 몸살에라도 걸린 기분이랄까.

전신이 축 처지는 피로감에 시문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

[성좌 천마가 패도적인 당신의 행보에 굉장한 만족감을 보입니다.]

[성좌 천마가 업적 포인트 500점을 후원합니다.]

성좌 천마의 후원이 시문의 앞으로 떠올랐다.

“미션도 모자라 이런 걸 다 주시고.”

피로감이 싹 가시는 기분.

물론 영약 섭취로 7이나 되는 체력과 압도적인 연성력 회복 속도 덕분이긴 했지만.

정신적인 피로 회복도 무시 못 하지 않는가?

“천마 님이 걸어 주신 미션도 만족하실 수 있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성좌 천마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시문은 흐뭇한 미소로 화답했다.

‘상위 서열의 성좌라 그런가? 확실히 후하네.’

그러나 시문이 후원의 기쁨을 곱씹을 틈도 없이.

[상위 서열의 성좌 3명에게 후원받은 당신에게 갤럭시 아레나가 찬사를 보냅니다.]

[업적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1,000점을 획득합니다.]

[업적 보상으로 칭호 ‘왕들의 픽’을 획득합니다.]

잇따른 알림창이 시문의 앞으로 떠올랐다.

‘엥? 이런 업적이 있었어?’

시문은 즉시 상태창을 열어 획득한 업적 포인트 1,000점을 확인하곤.

칭호란을 살폈다.

[왕들의 픽] - 갱신형

상위 서열 성좌들의 관심을 받는 당신.

그들의 관심이 늘어날수록, 당신의 미래도 커지리라.

-모든 능력치 +3

-상위 서열 성좌의 후원을 받을 때마다 옵션이 갱신된다.

등록된 성좌 : 제우스, 검은 염소, 천마

“미친…….”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온다.

당연했다.

‘갱신형 칭호라니?!’

갱신형 칭호.

성장형 칭호와 비슷하게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옵션이 달라지는 칭호였다.

그러나 ‘갱신형’이라는 말답게.

성장형 칭호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성장형은 옵션의 저하가 없지.’

말 그대로 ‘성장’을 하는 칭호이기에.

특정 상태이상이나 페널티를 받지 않는 이상, 옵션의 저하는 없었다.

하지만 갱신형 칭호는 달랐다.

조건에 따라 옵션이 낮아지기도 하는 칭호.

시문은 [왕들의 픽] 칭호의 정보를 세세히 살폈다.

‘저거로군.’

시문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상위 서열 성좌의 후원을 받을 때마다 옵션이 갱신된다.

후원을 받을 때마다 모든 능력치가 +1씩 증가되는 사기 옵션.

하지만 반대로.

‘후원하던 성좌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만큼 옵션도 내려가겠지.’

시문은 칭호란을 끄고, 상태창의 스탯을 살폈다.

레벨 : 7

소속 : 대한민국

힘 : 6 (+3)

민첩 : 6 (+3)

체력 : 7 (+3)

연성력 : 17 (+3)

-마기 : 10

잔여 스탯 : 0

“하…… 미친 옵션이긴 하네.”

힘, 민첩의 총 스탯은 9.

체력은 무려 10에 달하고 연성력은 20이다.

누가 이걸 7레벨의 상태창으로 보겠는가?

입을 헤 벌리던 시문은 마기를 보고선 입맛을 다셨다.

“쩝. 마기는 적용되지 않나 보네.”

연성력에 귀속된 스탯이라서 그런 걸까?

8이었던 마기는 20이 된 연성력의 절반인 10으로 변해 있을 뿐.

추가로 [왕들의 픽]이 주는 +3의 옵션은 적용되지 않았다.

“좋게 생각하자. 그렇다고 마기 스탯이 아예 증가 안 한 것도 아니니까.”

연성력의 증가로 마기 스탯 역시 2나 증가했으니.

아마 아까 사용했던 천마신공보다 위력이 더 강해질 터.

‘왕들의 픽. 확실히 까다롭긴 해도 관리해 줄 맛이 나는 칭호야.’

올 스탯 증가 옵션은 분명 엄청난 옵션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순수하게 모든 스탯을 +3씩 올리려면 잔여 스탯만 총 12개가 필요하다.

이는 곧 열두 번의 레벨업이라는 뜻으로 직결된다.

헌데 고작 칭호 하나만으로.

시문은 +12레벨의 스탯 효율을 보는 것이다.

연성력에 비례로 상승하는 마기는 덤이고 말이다.

‘성좌들이 얼마나 까다롭게 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미션 같은 건 최대한 받아줘야겠어.’

호응도 적절히 해 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한 시문이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돈킹이…… 진다고?”

“거, 거짓말이지?”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저 사람들이 남아 있었지.’

돈킹의 손님들.

잠시 그들을 보던 시문은 주먹을 말아 쥐고 다가갔다.

“히, 히익!”

“오, 오지 마! 오면 찌를 거야!”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말.

실제로 벌벌 떨며 무기를 들어 올리는 손님들의 모습은 퍽이나 어이가 없었다.

‘대체 튜토리얼은 어떻게…… 아니지. 내가 특수 케이스이긴 했네.’

회귀 전엔 마력 10.

회귀 후엔 연성력 10.

1레벨이 지닐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스탯인 10짜리 스탯을 지니고 있었으니.

시문이 치렀던 튜토리얼은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의 것과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곤 하나.

‘이건 좀 심하잖아.’

배치고사는 끝낸 플레이어들 같은데.

“이익!”

“쏘, 쏠 수 있어! 나 정말 쏠 수 있어!”

달달 떨리는 검 끝과 화살촉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인간들 때문에 정규 아레나에서 멀쩡한 플레이어들이…….’

아직 정규 아레나는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이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보기만 해도 화가 솟구쳤다.

시문은 그런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후웅.

[오우거의 신체조직]은 연성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마기를 담은 주먹을 휘두르기만 해도.

“끄악!”

“컥!”

검과 활을 든 두 손님은 허무하게 쓰러졌으니까.

지금 지닌 스탯만으로도.

버스만 타 온 이들을 처리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뚜벅.

그렇게 두 손님이 쓰러졌지만.

시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이 상황을 보고 있는 마지막 손님.

중년의 플레이어가 남아 있는 것이다.

“자네는 강하군. 무척이나.”

앞서 벌벌 떨던 두 손님과 달리,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는 중년인.

그는 시문의 위아래를 무슨 상품을 보듯 훑었다.

“타고난 스탯도 우월해 보이고, 약자라고 봐주지 않는 것 또한 마음에 들어.”

그 말에 시문은 어이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기요, 뭔가 착각하고 있으신 거 같은데. 여기 아레납니다. 원래 약자를 봐주는 건 없어요.”

“그렇지.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드는 거라네. 알다시피 우월한 스펙을 지니고도 활용 못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그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게임의 형태나 마찬가지.

따라서 아레나에서의 통증은 현실의 절반조차 되지 않았고.

그조차 접속기기를 통해 줄일 수 있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이 특유의 리얼리티 때문인지.

생명을 죽인다는 거부감에 아레나 자체를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재능에 비해 과한 스탯이나 특성을 받은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문은 뚜둑, 하며 손을 풀었다.

“혹여나 시간 끌 생각이라면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전 그쪽 살려 둘 마음이 없거든요.”

“하하! 패기도 마음에 드는군. 당연한 말이네. 자네는 강자고 난 엄연한 약자 아닌가?”

중년인의 호탕한 웃음에 시문의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이 사람, 대체 뭐지?’

저 태연한 모습에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 중년인은 단순히 쩔이나 받는 손님이 아니라고.

그것을 증명하듯.

“하지만 말일세, 세상은 무력만으로 돌아가진 않다네.”

중년인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곤 손바닥을 펴려다 잠시 주춤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 방송을 켠 거 같던데. 혹시 꺼줄 수 있겠나?”

“그럴 이유는 없습니다만…….”

말끝을 흐린 시문은 잠시 채팅창을 훑었다.

방송을 켜고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떤 채팅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시청자라곤 고작 3명 있는데 그들 모두가 상위 서열의 성좌이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딱히 보는 사람도 없거든요.”

“하핫! 역시 아까의 그 미션 이야기는 허세였나 보군.”

“그건 허세 아닌데…….”

“크하하! 이해한다네. 무릇 싸움이란 기세도 빼놓을 수 없는 노릇이지!”

무언가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새이지만.

시문은 굳이 중년인의 오해를 풀어 주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진 탓이다.

그리고 그건.

“자. 여기 받게나.”

중년인이 내민 한 조각의 종이를 보고 완전히 풀려 버렸다.

“이건?”

“내 명함일세.”

[인사부 과장 후연룡]

그 옆으론 이름으로 추정되는 한자들이 쓰여 있었고.

아래론 전화번호와 이메일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문제는.

‘+86? 이거 중국 번호 아냐?’

언젠가 한번 메시지로 받아 본 적이 있는 번호.

뒷자리는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앞자리 +86은 외워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스팸이나 보이스피싱 관련 번호였으니까.’

하지만 아레나 내에서 그딴 짓을 할 머저리는 없으니.

답은 하나였다.

“당신, 중국의 스카우터였군요?”

“호오, 거기까지 알아보다니. 머리도 꽤나 쓰는 친구로군.”

더더욱 마음에 들어.

그렇게 읊조린 후연룡은 탐욕이 가득한 눈빛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본래라면 스트리머 돈킹에게 건넬 제안이었네. 고작 버스 기사 노릇만 하기엔 그의 재능이 너무나 아까웠거든.”

“그럼 돈킹에게 주면 되지 않습니까.”

“물론 그럴 생각이네. 그가 다시 방송을 켠다면 말이지.”

빙긋.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베어 문 채, 명함을 흔드는 후연룡.

시문은 그런 후연룡의 명함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정확히는.

‘이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명함 최상단에 위치한 익숙한 한자를 바라봤다.

‘대륙성이라니.’

대륙성.

미국과 함께 세계의 투 탑을 달리는 중국 최대의 길드.

창왕 종리추가 길드 마스터로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발돋움을 시작하는 길드이기에.

안 그래도 슬슬 움직일 것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인재 빼내기는 진즉부터 하고 있었나 보군.’

“의심되겠지. 이해한다네.”

시문이 명함을 받지 않고 빤히 보는 것에 무언가 떠오른 걸까.

후연룡은 어색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명함을 거두며 말했다.

“한국 내에서의 중국 이미지를 나도 모르진 않으니까.”

“그러시겠죠. 귀화까지 해 가면서 한국 아레나 매칭을 돌렸을 테니까.”

“하하! 어쩔 수 없지 않겠나? 글로벌 매칭은 플래티넘 랭크부터 가능하니 말일세.”

어깨를 으쓱하는 후연룡.

그는 시문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물었다.

“혹여나 이렇게까지 스카우트 행위를 하는 내가 불편한가?”

“썩 좋지는 않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닙니다.”

“호오? 그렇게 말하는 플레이어는 처음 보네만.”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아주 흔한 일이니까요.”

사실 중국뿐만 아니라.

이미 2020년부터.

미국을 비롯한 여러 강대국들은 암암리에 타국의 플레이어들을 스카우트하고 있었다.

물론 간판 플레이어나 랭커급의 플레이어들은 스카우트가 굉장히 힘들었기에.

저랭크 존에 싹이 될 만한 존재들을 주로 노렸었다.

이 후연룡이라는 아저씨도 그런 부류의 스카우터겠지.

“흔한 일이라…….”

후연룡의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간다.

“자네는 단순히 무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군.”

시문에게 측정했던 가치가 더 올라간 것일까?

시문을 보던 후연룡의 눈빛이 한결 깊어졌다.

“어찌 알았나? 나처럼 귀화까지 해 가며 스카우트를 행하는 나라는 굉장히 적을 텐데.”

“제가 그걸 그쪽에게 말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그도 그렇군.”

한 번쯤 더 물어볼 법도 한데.

후연룡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내.

“측정 가치를 더 높여야…… 가용 가능한 조건은…… 흠, 좋아. 이만하면 되겠군.”

그는 잠시 턱을 괴며 중얼거리더니, 시문을 향해 손가락을 쫙 펼쳤다.

“뭐 하는 겁니까?”

“500만 위안.”

후연룡은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 환율로 약 9억 2천에 달하는 돈이지. 바로 선지급하겠네.”

“이보세요.”

“잠깐.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네.”

후연룡은 어느새 손에 쥔 막대로 허공에 조건들을 줄줄 써 나갔다.

일종의 아티팩트인 건지.

“이는 그저 성의 표시에 지나지 않네. 우리 대륙성으로 가입만 한다면 추가금을 더 지불하지.”

“한화로 5억 상당의 무기와 한 피스당 1억 이상의 방어구 역시 지급될 거네.”

“계약 조건은 3년 갱신이네. 물론 계약이 끝나더라도 지급한 아이템은 자네의 소유라네.”

허공에 쓰인 후연룡의 조건은 어둑한 폐광 속에서도 반짝거렸다.

“더불어 중국으로 귀화까지 선택한다면.”

그는 한 번의 멈춤도 없이 허공에 조건들을 줄줄 써 나갔다.

“차후 선지급의 열 배인 5천만 위안을 추가로 지급하겠네. 한화로는 약 92억에 달하는 금액이지. 물론 자네의 활약에 따라 금액은 올라갈 수도 있다네.”

그렇게 마침표를 찍으며 말을 끝맺은 후연룡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시문을 직시했다.

‘거절할 수 없겠지. 그 잘난 성삼도 저랭크 플레이어에게 이만한 조건을 내걸진 않으니.’

성삼 길드가 신입 길드원에겐 C~B급대의 장비를 지급한다는 건 이미 다 파악한 사실.

물론 그조차 어마어마한 투자였으나.

감히 대국의 자금력에 비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증거로.

‘지금껏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던 제안이지.’

비록 국적을 바꾸는 일까진 자주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가 스카우트했던 이들 중 99%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고 현재 대륙성의 이름으로 활동 중이었다.

또한 3년 계약이 만기된 플레이어들 중 대다수가 재계약을 했지.

‘뭐, 당연한 결과지. 이런 소국에선 감히 상상도 못 할 조건이니까.’

결코 거부할 수 없을 거다.

그렇게 쐐기까지 박은 후연룡은 당연히.

“당장 결정하라는 것은 아니네. 해외 생활을 하는데 어떤 각오가 필요한지는 내 무척이나 잘 이해하니.”

거두었던 명함을 다시 내밀었다.

그 모습에 헛웃음을 흘린 시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히 어마어마한 조건이긴 하네요.”

“하하! 자네 같은 이들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 조건이라네.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나?”

“예. 꽤 많이들 넘어갔겠어요.”

“그렇다네. 사실 지금까지 접선한 이들 중 9할 이상이 조건을 받아들였지.”

“음음, 그럴 만해요.”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해로 분류되는 저랭크만 노렸다면.

당연한 눈을 뒤집고 넘어갈 조건이다.

심지어 3년이라는 짧은 계약 기간에 족쇄가 되는 조건은 1도 없지 않은가?

귀화를 선택하지 않고 꿀만 쪽 빨아 먹고 와야지!

하고 넘어가는 이들이 많을 터였다.

하지만.

‘난 대륙성의 방식을 잘 알지.’

아주 신물이 날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잘 안다.

저런 식으로 넘어가, 점차 저도 모르게 놈들의 수작에 잡아먹히게 된다.

그 루트는 언론과 인터넷을 통한 매국노 프레임부터 이중 사기 계약.

또 극단적으론 약이나 정신계 능력을 통한 세뇌까지 무척이나 다양했다.

결정적으로.

‘각성 전이면 모를까, 각성 후에 국가를 버리는 건 미친 짓이야.’

플레이어의 소속이 정해지는 시점이 바로 각성 당시의 국가라는 점이었다.

해외여행 와중에 각성을 해, 타국의 소속이 되어 버린 경우도 있는 마당에.

‘귀화한다고 소속이 달라질 리 없지.’

미리 다른 나라로 귀화하더라도 결국 지구의 서류상 귀화이지.

갤럭시 아레나가 각성 시 정해 둔 소속은 변하지 않는다.

당장 상태창의 소속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귀화를 하는 이유는.

‘해당 국가에 귀화하면, 그때부턴 매칭이 해당 국가로 잡히니까.’

당장 상태창의 소속 문구보단 현실적인 금액이 더 체감되니까.

좋은 조건이 오면 해당 국가로 귀화해버리는 것이다.

또 저 후연룡처럼 물밑 스카우트 작업도 있고 말이다.

‘뭐, 이해는 가. 국가 소속을 잃었을 때 페널티는 겪어 본 적도 없을 테니까.’

소속을 잃은 패널티는 정규 아레나부터 시작되는 일이니까.

생각에 잠기는 시문.

이런 시문의 침묵이 망설임으로 보인 것일까?

“슬슬 받아 주지 않겠나? 이젠 나이도 있다 보니, 팔이 좀 아픈데 말일세.”

후연룡은 명함을 내민 팔을 슬쩍 흔들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생각에 빠지면 주변을 잘 못 봐서.”

싱긋 웃은 시문은 후연룡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근데 있잖아요, 후연룡 과장님.”

그러곤 아주 자연스레.

스윽.

마주 잡은 후연룡의 손을 당겼고.

“명색의 인사부 과장이신데, 사람 보는 눈을 좀 키우셔야겠어요.”

뻐억.

명치로 검은 기운에 휩싸인 주먹이 틀어박혔다.

“끄……!”

눈을 부릅뜬 채,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후연룡.

“어째…….”

그의 핏발 선 눈엔 육체의 고통보다.

자신의 조건을 거절한 시문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했다.

그에 시문은.

“아아, 별거 아니에요.”

빠각!

미소를 유지한 채 또 한 번 명치로 주먹을 박아 넣을 따름이었다.

“조건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거기에다…….”

털썩.

명치가 함몰되어 쓰러지는 후연룡.

시문은 그가 들을 수 없는 뒷말을 읊조리며.

“너희가 어떤 놈들인지 몸소 겪어 봐서 너무 잘 알거든.”

뚜벅.

어둑한 폐광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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