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12화. 배치고사 (4)
털썩.
붉은 피부의 덩치.
목이 부러진 홉고블린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성좌 검은 염소의 미션을 완수하였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점을 획득합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인체 연성의 활용도에 굉장한 만족감을 표합니다.]
[추가로 업적 포인트 500점을 획득합니다.]
“오오!”
서늘했던 시문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진다.
‘업적 포인트 500점을 또 주다니!’
속으로 쾌재를 내지른 시문은 은근슬쩍 하늘을 힐끔거렸다.
‘역시 제우스는 짠돌이였나.’
과거 튜토리얼에서 1등에 업적 포인트 1,000점 미션을 걸었던 제우스.
튜토리얼이 끝나고 추가로 100점을 줬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물론.
‘뭐, 총량을 따져 보면 제우스가 더 준 거긴 하지만.’
튜토리얼 때 1,100점을 쐈던 제우스와 비교하면, 이번에 1,000점을 준 검은 염소와 큰 차이가 없긴 했다.
어쨌거나 업적 포인트 1,000점에 아까 제우스가 후원했던 100점을 더하면 1,100점.
튜토리얼 때와 변함없는 점수 벌이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히든 보스 ‘홉고블린’을 단신으로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500점을 획득합니다.]
‘히든 보스라고?’
추가로 업적 포인트를 500점이나 더 벌었음에도.
시문의 미간은 찌푸려질 따름이었다.
‘잡으라고 만들어 둔 게 아니었구나.’
히든 보스.
종종 해당 랭크대의 수준을 벗어나는 힘을 지닌 괴랄한 존재들.
물론 그런 히든 보스를 역으로 잡아 버리는 괴물 루키들도 있었다.
‘시혁이 녀석이 대표적이지.’
자신의 동생인 김시혁.
후에 ‘검성’라고도 불리는 잘난 동생 녀석은 날 때부터 떡잎이 다르다고.
저랭크 때부터 히든 보스를 죽이고 다니긴 했었다.
‘누구는 현자의 돌에 신화급 무구들을 연성해서 잡는데 말이지.’
동생의 터무니없는 업적에 헛웃음을 터뜨리던 그때.
[당신에 대해 의논 중이던 갤럭시 아레나가 당신의 소식에 경악합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병X들, 행정 하는 꼬라지하곤. 이러니 내가 성좌 등록을 안 했지.’ 의회를 비웃습니다.]
[당신에 대한 갤럭시 아레나의 논의에 더욱 박차가 가해집니다.]
허공으로 메시지창이 우수수 떠올랐다.
그중에서 시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나에 대한 논의라고?’
고개를 갸웃하던 시문.
하나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옵시디언 태블릿을 만들었을 때도 이런 말이 있었지.’
[연달아 이어지는 믿을 수 없는 업적에 갤럭시 아레나에서 플레이어 김시문에 대한 논의가 들어갑니다.]
아마 튜토리얼 때부터 행한 일들이 갤럭시 아레나에 어떤 영향을 준 모양.
또한 검은 염소가 ‘갤럭시 아레나에 등록되지 않은 성좌’라는 말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문은 턱을 괴었다.
‘갤럭시 아레나의 관심. 이게 좋은 쪽일까?’
갤럭시 아레나의 관심.
전생에도 갤럭시 아레나 자체의 관심을 받았던 플레이어는 본 적이 없었다.
아니면.
‘해당 플레이어가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거나.’
어느 쪽이건.
갤럭시 아레나의 관심이 반갑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게 생각하자. 리스크와 리턴은 확실히 해 주는 게 갤럭시 아레나니까.’
이번 아레나만 해도 무려 5인 협력에, 플래티넘에서나 등장하는 검문소 맵.
거기에다 시문 혼자서 모든 고블린들을 쓸어버리지 않았는가?
클리어 보상이 얼마나 될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고민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보상이나 받으러 나가자.’
그렇게 시문이 몸을 돌리는 순간.
“키, 키킥!”
“키이…….”
10여 마리의 고블린들이 풀썩 주저앉으며, 온몸을 덜덜 떨었다.
수십의 동족들이 단숨에 죽어 나가고.
대장인 홉고블린마저 죽어 버렸으니, 전의 상실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보니 괜히 마음이 아프네.”
-잘생긴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우리 오빠, 마음 이렇게 약해서 어디 쓰겠어?
시문의 읊조림에 현자의 돌이 대번에 반응했다.
“그래 보이냐.”
너털웃음을 흘리는 시문.
그가 아무런 제스처 없이 그저 걸음을 옮기자.
“키, 키익…… 인간, 우리 살려 주나?”
“착한 인간!”
영악한 고블린답게.
녀석들은 더욱 몸을 떨며 눈망울을 적셨다.
-고블린 주제에 가지가지 하네. 오빠 속지 마. 저러고선 뒤론 칼 갈고 있을 거야. 뻔하다고!
“나도 알아.”
앙칼진 현자의 돌의 말을 뒤로하고.
시문은 고블린들을 지나 목표 지역으로 걸어갔다.
“킥! 인간! 착하다!”
“키킥! 고맙다, 인간!”
뒤에서 고블린들의 열띤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머? 이 오빠 봐라? 이것들 진짜 살려 주게? 진짜? 리얼?
얼이 빠진 현자의 돌의 목소리.
그러나 시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키킥! 답례, 해 준다!”
그건 고블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자의 돌, 너 아까부터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응?
그 비루한 살기를 느끼며.
“난 살려 준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따악.
시문의 손가락이 튕겨졌다.
* * *
잔잔한 빛과 함께 자취방으로 귀환한 시문.
그의 앞으로.
[아레나 ‘잠식된 고블린의 교두보’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5인 협력 조건에서 홀로 모든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활약에 따라 클리어 보상이 증가합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4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2 상승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홉고블린의 전투 도끼’를 획득합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시스템창이 범람했다.
[히든 보스 홉고블린을 혼자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잠식된 홉고블린의 혈청’이 지급됩니다.]
[히든 업적 ‘히든 보스 잡기 (1/?)’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점을 획득합니다.]
“와아…….”
눈이 어지러워지는 보상들.
시문은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레벨부터 살폈다.
[상태창]
칭호 : 연금술의 선구자 (외 2)
계통 : 마법계
레벨 : 7
소속 : 대한민국
힘 : 4
민첩 : 4
체력 : 5
연성력 : 13
잔여 스탯 : 4
보유 특성 – 현자의 돌 (E)
업적 포인트 – 9,350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업적 포인트였다.
검은 염소의 미션 보상으로 총 1,000점.
홉고블린 처리 업적으로 다시 총 1,500점이 더해져 6,850점이던 업적 포인트는 무려 9,350점이 되었다.
“이 기세면 만 점은 금방 달성하겠네.”
만점이 된다면 또 옵시디언 태블릿을 연성할 수 있을 터.
시문은 제 가슴을 내려다봤다.
“현자의 돌, 만 점이면 옵시디언 태블릿을 또 연성할 수 있는 거 맞지?”
-응. 근데 뒤로 갈수록 업적 포인트의 요구량이나 상승 퍼센티지가 달라질 거야.
“그래? 알았어.”
-잉? 뭐야. 왜인지 안 물어봐? 물어볼 줄 알았는데.
“연금술 경력이 몇 년인데. 그 정도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어.”
이미 비슷한 아이템인 에메랄드 태블릿을 접촉해 본 시문이다.
뒤로 갈수록 엘릭서와 현자의 돌 연성에 중요한 내용들이 실렸던 만큼.
옵시디언 태블릿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투자를 안 할 수 없어.’
당장 소모성인 아스트라페와 다르게.
옵시디언 태블릿은 무려 영구제다.
게다가 옵시디언 태블릿이 선사하는 인체 연성의 위력은 이미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나?
‘연성력의 성장에 맞게, 꾸준히 투자를 해줘야 해.’
어느 버프도 해내지 못하는 능력치 상승에다, 연성 종족의 특징까지 고스란히 가져온다.
육체적인 부분이 부족한 마법계에겐 최고의 능력이었다.
더불어 업적 포인트를 소모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이는 순수한 자신의 전투력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그래도 두 번째 연성까진 만 점에 20%의 성장치가 그대로 적용될 거야.
“그럼 당장 40%의 완성도까지는 연성 비용이 그대로란 거네?”
-응응. 맞아.
“좋아. 그거면 됐어.”
시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수치로만 계산해도 인체 연성의 능력이 지금보다 두 배는 강해진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여유 포인트는 좀 남겨 두고 연성하는 게 좋겠지. 업적 포인트는 내 주력 자원이니까.’
만 점을 달성하자마자 톡 털어 쓰기보다는.
2,000~3,000점 정도의 여유 포인트를 더 쌓고 연성하는 게 효율적이리라.
‘그나저나 클리어 보상이 증가해도 AP는 안 주는구나.’
AP(Arena point).
방송이나 아레나 클리어 보상으로 간혹 얻을 수 있는 점수로 화폐 대용으로 자주 쓰였다.
아레나가 등장한 초반부엔 당장 돈이 필요한 이들이 AP를 현금으로 팔았고.
장비나 기타 무구가 필요한 이들은 아레나 상점에서 AP를 사용했었다.
지금에 와선 플레이어 간의 거래나 경매장 등에 주로 쓰이는 달러 위의 화폐라 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각성한 이들만 보유가 가능했기에.
지구의 화폐가 아예 휴지 조각이 되는 불상사는 없었다.
‘뭐, 아직 배치고사 구간이니까.’
아쉬움을 털어 낸 시문은 레벨업으로 얻은 잔여 스탯 4개를 모두 연성력에 투자했다.
이로써 연성력은 총 17.
더불어 현자의 돌의 레벨도 5에서 2레벨이 올라 7레벨이 된 상태다.
등급은 옵시디언 태블릿을 만들었을 때 달성했던 E등급 그대로였으나.
전반적인 연성 수준이 나아졌으리라.
“자. 그럼 이제 메인 디시인가.”
시문은 두 손을 슥슥 비볐다.
사실 메인은 레벨업과 같은 능력의 증가였지만.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보상인 만큼, 기대감이 상당했다.
특히나 익숙한 이름의 보상도 있었으니까.
“인벤토리.”
시문의 앞으로 작은 창이 열린다.
흔한 RPG게임의 아이템처럼.
인벤토리 속엔 축소화된 형태의 양날 도끼와 유리병에 담긴 검붉은 액체가 보였다.
시문은 양날 도끼부터 확인했다.
[홉고블린의 전투 도끼]
등급 : B
-모든 베기 공격 10% 증가.
-생명체 공격 시 마비 발생.
-힘 스탯 +5
제한 : 50레벨, 힘 35 이상.
정보를 확인한 시문의 눈이 반짝였다.
“오오!”
홉고블린의 전투 도끼.
전투계들이 선호하는 그린스킨 시리즈의 아이템.
흔히들 말하는 ‘교복’, 그중에서도 도끼류에 속하는 아이템이었다.
마법계인 시문도 잘 알고 있는 아이템이었으나, 놀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이템 옵션은 플래티넘 드랍 그대로네?”
너프를 당한 상태로 출현했던 홉고블린.
물론 배치고사 구간이기에, 그조차도 히든 보스로 분류될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일까?
보상으로 나온 [홉고블린의 전투 도끼]는 따로 옵션의 너프를 받지 않고.
플래티넘 구간에서 드롭되는 옵션과 똑같았다.
“심지어 힘은 +5나 붙었어.”
보통 힘 스탯 옵션은 1~3으로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5나 붙은 건 최고급 옵션이라 볼 수 있었다.
“최대가는 확정이겠군. 이거 과하게 짭짤한데.”
흡사 소금 한 주먹을 퍼먹은 느낌이다.
시문은 기쁜 마음 그대로 옆의 유리병을 확인했다.
[잠식된 홉고블린의 혈청]
등급 : C
홉고블린의 혈청.
과도한 마기에 잠식되어 독성이 한결 강해졌다.
재료 아이템답게 정확한 효과가 표기되지 않았으나.
“회귀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뭔가 되게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네.”
시문은 누구보다 이 재료의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연금술사라서가 아니었다.
-응? 오빠, 뭐 말하는 거야?
“이거 말이야.”
인벤토리에서 잠식된 홉고블린의 혈청을 꺼내는 시문.
느릿하게 찰랑거리는 검붉은 액체를 보며, 시문의 얼굴은 조금 복잡해졌다.
-이건 홉고블린의 혈청이잖아? 이게 왜…… 아.
의문을 표하던 현자의 돌이 작게 탄식한다.
연금술의 신화적인 산물답게.
[홉고블린의 혈청]이 지니는 효력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오빠, 나 연성하기 전까진 약으로 버텼구나?
시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불능의 부작용.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고 진행되는 육체의 쇠락은 설명하기 힘든 고통을 선사했었고.
시문은 그때마다 특제 마취 포션을 사용해 왔다.
그리고 이 [홉고블린의 혈청]은 마취 포션에 들어가는 주재료 중 하나였다.
홉고블린의 피는 그 자체만으로 뛰어난 마비 독성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근데 오빠는 엘릭서까지 만들었잖아. 그거 왜 진작에 마시지 않았던 거야?
“그건…….”
잠시 머뭇거리던 시문이 조용히 말했다.
“……사정이 좀 있어서.”
-으이구! 그런 게 어디 있어? 본인 몸부터 챙겨야지! 뭐, 덕분에 내가 거의 최상의 상태로 연성되긴 했지만.
그 말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 말대로네. 엘릭서를 기반으로 널 연성 안 했으면 이런 회귀도 불가능했겠지.”
마력불능의 회복과 11년이나 회귀시키려면 어지간한 대가론 등가교환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
-그건 그래. 회귀라는 거 자체가 성좌도 못 하는 일이니까.
“그래? 근데 넌 뭘 연성해서 날 회복시키고 회귀까지 한 거야?”
-그게 가능한 존재가 있거든. XXXX라고…… @#!*
“뭐? 너 뭐라고 했어?”
중간부터 잘려 버리는 현자의 돌의 말.
시문의 의문에 현자의 돌은 짧게 혀를 찼다.
-쯧. 언급하면 안 되나 보네. 하긴, 성좌들도 경계하는 존재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말해주고 싶은데 못 들을 거야. 갤럭시 아레나에서 나한테 지금 개X랄하고 있거든.
“갤럭시 아레나가?”
-엉. 아주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 언급하지 말라고.
시문의 앞엔 어떤 시스템창도 떠오르지 않는데.
하나 현자의 돌이 거짓말할 이유도 없으니.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시문은 별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고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헤헤. 얼굴만큼이나 쿨해, 울옵! 그나저나, 혈청으로 어쩔 거야? 오빠 이제 마력불능도 없잖아.
“맞아 이제 진통제 형식으로 제조할 일은 없긴 하지.”
-근데 왜…… 어멋!
갑자기 하이톤으로 솟구치는 녀석의 목소리.
그 목소리엔 얕은 흥분이 어려 있었다.
-서, 설마 이 독으로 영약을 만들려는 거야?!
“그래. 연금술사에게 독은 약이기도 하니까.”
-어머어머어멍!! 나 이런 거 너무 좋아!!
극도로 텐션이 올라가는 현자의 돌.
그에 시문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곧 현자의 돌의 마음을 이해했다.
애당초 녀석의 존재 의의는 연금술에 있으니.
연금술로 무언가를 연성하는 것이 이토록 즐거운 것이겠지.
-녀석의 근본을 우리 마음대로 조교하는 거잖아? 앗흥! 너무 기대된다아앙!!
라고.
-마기 좀 섞인 걸 보니 아주 앙칼진 녀석이겠지?
“…….”
-독이라는 본래의 자신이 정반대인 영약의 성질로 변해 버리면 얼마나 치욕스러워할까! 하아…… 흥분돼!
아주 어리석은 오판을 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