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10화. 배치고사 (2)
‘교두보라니…… 거짓말이지?’
허공에 떠오른 정보창에 시문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교두보.
흔히 ‘검문소’라 부르는 이 교두보는 맵에 따라 환경이나 모양이 조금씩 다를 뿐.
기본적으로 다리 위의 진지라는 형태를 지녔다.
디펜스라면 교두보에 소환된 플레이어들의 다리를 넘으려는 적을 막아 내고.
오펜스라면 역으로 교두보를 뚫고 다리를 넘어야 하는 입장.
시문 역시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방송과 김시혁, 고말숙의 경험담으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게 왜 여기서 나와?’
검문소 형태는 최소 플래티넘 이상의 랭크에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브론즈, 끽해야 실버 랭크 수준에 나타날 맵이 아니란 말이다.
‘설마 내 MMR 때문인가?’
그렇게 고민하던 시문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너무 과한 비약이야.’
아무리 MMR 시스템이 공명정대하다지만.
한 사람 때문에 아레나 난이도를 확 높여 버리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하려면 적어도 플래티넘 랭크 이상의 플레이어들과 매칭시켰…….
‘잠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시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아, 매칭!”
“예?”
뒤를 따라 걷던 김민형이 의문을 표했지만.
시문의 신경은 차마 거기까지 쓰이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잖아?’
아레나의 진행 인원을 총 50명으로 뽑아 5인 협력이란 조건이 걸렸을 뿐.
애당초 5인씩 맺어진 팀끼리 클리어 시간을 다투라는 내용은 없었다.
즉, 먼저 클리어한다고 순위를 세우진 않는다는 것.
거기에다 보자마자 시비를 털어서 그렇지.
‘애당초 전갈 3인방은 배치고사 구간에 매칭될 수준이 아니었어.’
당장 리더 격인 최기열만 따져도 여기 수준이 아니었다.
김시문이라는 8톤 트럭을 만나서 그렇지.
수준만 따진다면 무조건 더 높은 랭크로 올라갈 인재란 말이다.
‘김민형 씨도 그렇고, 이 팀의 전체적인 수준 자체는 배치고사 수준을 넘어섰어.’
만약 다른 팀들도 목표 지역이 [잠식된 고블린의 교두보]라면.
이쪽 팀이 무조건 1등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시문은 이마를 턱 짚었다.
‘다른 매칭팀들의 목표 지역은 [잠식된 고블린의 교두보]가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 이런 팀 매치에서 흔하게 나오는 선 클리어 순위가 없는 것이다.
“하…… 진짜 공명정대한 매칭이긴 하네.”
너무 공명정대해서 짜증이 날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전갈 길드 3인방을 처리한 것에 미련을 가지진 않았다.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런 팀원은 없는 편이 더 나으니까.’
어느새 가까워진 다리 초입.
그 너머로 드문드문 달린 횃불과.
“키킥!”
“키랏.”
고블린 특유의 괴상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문은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대신 보상 하나는 확실하겠지.’
매칭의 공명정대함은 보상으로도 이어진다.
타 팀들보다 어려운 조건이라면 클리어 보상도 타 팀들보다 높겠지.
‘오히려 좋아.’
레벨만 낮을 뿐이지.
이미 심해에 있을 종자가 아닌 시문에겐 오히려 성장을 장려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갤럭시 아레나 역시 자신이 얼른 이 구간을 벗어나길 바라고 있겠지.
‘싹 쓸어버리고 킬 보상까지 전부…….’
“아.”
잠시 탄식한 시문은 고개를 돌렸다.
“저기, 김민형 씨?”
“예.”
뒤에서 가만히 대기하던 김민형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킬 욕심이 있으신가요?”
“킬이요?”
눈을 끔뻑하는 김민형.
이내 다리 너머를 슥 훑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막 튜토리얼을 통과한 몸으로 고블린은 무리죠. 안전하게 클리어 보상만 챙겼으면 합니다.”
김민형은 알까.
“다행이네요. 그럼 거기에 맞춰 공략을 짜 보죠.”
방금 8톤 트럭이 잠시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는 걸.
* * *
키킥.
기분 나쁜 웃음소리.
정확히는 고블린 특유의 비음이 섞인 소리였다.
“키킥! 교대 시간이다!”
“킥, 신난다!”
경계를 서던 두 고블린이 환호를 지르며 감시탑을 내려간다.
“킥, 경계 싫다. 지루하다.”
“멍청한 소리! 여기가 났다. 지금 대장, 킥! 기분 안 좋다.”
“맞다. 바보들. 혼나겠다. 키킥.”
교대한 고블린들은 저 멀리 진지로 복귀하는 동족들을 보며 비웃음을 걸쳤다.
이내 몸을 돌려, 각자의 위치로 자리를 잡으려던 그때.
휘이이.
“킥?”
갑작스런 산들바람에 두 고블린은 고개를 갸웃했고.
우드득.
순식간에 목을 휘감아 온 무언가에 그대로 즉사했다.
“읏차.”
분명 빠른 속도로 낙하하며 두 고블린의 목을 꺾었을 텐데.
기습자인 시문의 발바닥에선 어떤 소음도 일어나지 않았다.
“후.”
시문은 양팔에 고블린 머리통을 낀 채, 제 다리를 내려다봤다.
[블랙팬서의 신체조직]
완성도 : 12%
연성된 블랙팬서의 신체조직.
블랙팬서의 신체 능력을 재현할 수 있다.
두 다리 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정보창.
플래티넘 랭크부터나 등장한다는 종족.
수인족 중에서도 은밀하기로 소문난 블랙팬서의 신체조직이었다.
오우거보다 상위 종족이라 그런지 완성도 자체는 3%나 떨어졌지만.
워낙 종이 우수하다 보니 완성도가 부족해도 신체 능력은 상당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아니던가.
‘설마 그 예민한 고블린이 아예 눈치조차 못 챌 줄은 몰랐어.’
흔히 고블린하면 누구나 때려 팰 수 있는 종족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많이 쳐 줘야 10~13살 정도에 불과한 키.
빼빼 말라 근육이 드러나는 체구는, 실제로 일반인도 무기만 든다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정규 아레나가 시작된 전생에서도 모두 확인된 사실 아니던가?
하지만 고블린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혈독이 곁들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특히 소리 하나는 기똥차게 듣던 놈들인데.’
엘프처럼 기다란 귀 때문일까.
뛰어난 청력을 지닌 고블린들은 상상 이상으로 예민해, 어지간한 기습은 통하지도 않았다.
물론.
‘블랙팬서의 은밀함에 비빌 수준은 아니었나보군.’
오우거마저 뛰어넘는 종의 차이를 고작 고블린이 어찌할 순 없는 노릇이겠지.
시문은 양팔에 낀 두 고블린의 사체를 조심히 놓았다.
“확실히 다중 인체 연성은 아직 빡세네.”
현재 시문은 다리에 [블랙팬서의 신체조직]만 연성해 둔 것이 아니었다.
양팔을 들어 올리자, 그 위로 [오우거의 신체조직]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시문은 그곳에 표기된 ‘완성도 : 7%’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완성도를 7%까지 줄였는데도 유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러자 명랑한 목소리가 가슴에서 울렸다.
-오빠, 다중 인체 연성을 성공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놀람은 없는 거야?
현자의 돌이었다.
“아레나 참가하기 전부터 연습했잖아.”
-인체 연성은 연습 안 했잖아.
“뭐 그거나 이거나. 어차피 오른손으로 쓰던 걸 왼손으로 쓰는 차이밖에 없잖아.”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으쓱하는 시문.
-…….
그에 현자의 돌은 침묵에 빠졌다.
정확히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이 오빠 진짜 미친 거 아냐?’
얼이 빠진 거였다.
‘아무리 나랑 옵시디언 태블릿의 영향이 있다 해도, 결국 연성을 돕는 수단에 불과한데…….’
아무리 연성에 절대적인 이점을 주는 현자의 돌이라 해도 결국 도구.
그것을 쥐고 연성하는 사용자의 능력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 오빠,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어.’
다중 연성은 다중 영창과 같은 맥락이다.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고, 왼손으로 세모를 그리듯.
처음 시도해 보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습 없이는 쉽게 다루기 힘든 것이 다중 영창이었고, 평생 해내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당연히 다중 인체 연성도 마찬가지.
‘야, 옵타. 너 아무래도 주인을 제대로 만난 거 같다.’
현자의 돌은 자신과 하나가 된 옵시디언 태블릿에게 한마디 읊고는 말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렇게 움직일 거야? 기습 위주로?
“아니. 벌써 연성력의 반이나 털어서 그건 불가능해.”
시문은 팔과 다리의 인체 연성을 해제하곤 고블린들의 시체를 하나씩 세웠다.
이어.
따악.
푸욱.
감시탑의 바닥을 연성해 고블린들의 시체를 꼬챙이 꽂듯 세웠다.
멀리서 본다면 가만히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리라.
“김민형 씨, 이제 오면 됩니다.”
감시탑의 정리를 끝낸 시문이 밖으로 손짓하자.
“헙!”
박제된 두 고블린에 기겁한 김민형이 입을 틀어막으며 들어왔다.
“소, 소음도 없이 처리하셨군요.”
“예. 아! 바닥의 피는 밟지 마세요. 착용 장비가 C급이시긴 해도 혹시 모르니까요.”
“옙.”
김민형은 조심스럽게, 여전히 경악이 담긴 눈초리로 시문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물었다.
“한데…… 정말 될까요?”
불안감이 가득 찬 김민형의 물음에 시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습하기 전에 대충 훑어봤는데, 놈들의 무장은 돌과 독침이 전부더군요.”
앞서 블랙팬서의 신체 능력을 연성한 시문은 이미 교두보의 정찰을 끝낸 상황이었다.
“그걸로는 민형 씨의 갑옷을 뚫을 수 없으니, 작전대로 하시면 됩니다.”
자신감 있는 시문의 목소리에 김민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죽 재질이긴 해도.
C등급 제작 갑옷은 고작 돌과 독침에 뚫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가시죠.”
“저…….”
달려 나가려던 김민형이 몸을 멈칫했다.
“근데 혼자서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김민형이 주춤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바로 시문이 짠 작전 때문이었다.
시문이 세운 작전은 간단했다.
김민형이 최대한 어그로를 끌어 고블린들을 불러모으면.
시문이 알아서 전부 처리하는 것.
“예. 괜찮습니다.”
“하, 하지만! 제가 고작 2레벨밖에 되지 않아도, 손이 하나 더 있는 게…….”
김민형의 얼굴엔 불안감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당연했다.
이미 튜토리얼에서 시문의 힘을 겪기는 했으나.
결국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낸 같은 처지의 플레이어 아닌가?
“어그로만 잘 끌어 주면 충분합니다. 민형 씨에게 어그로가 분산될수록 저도 안전해지니까요.”
“……알겠습니다. 혹여나 시간이 되시면 꼭 성삼에 방문해 주세요. 반드시 사례하겠습니다.”
“그러죠.”
가볍게 웃으며 답하는 시문.
당연히 성삼 길드에 갈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김민형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뛰쳐나갔다.
그러곤.
“우아아아아악!!!”
어둑한 저녁.
해가 거의 다 저물어 가는 다리 위로 우렁찬 함성이 울렸다.
홀로 함성을 지르며 질주하는 인간은 당연히 어마어마한 눈길을 끌었고.
댕댕댕!
“키킥!”
“인간! 인간이다!”
“인간이 쳐들어왔다!!”
시끄러운 종소리와 함께 고약한 말소리가 밀려들었다.
“저기다!”
“키킥! 혼자? 혼자다!”
“인간, 미쳤다! 쏴라!”
기다란 끈으로 만들어진 슬링과 새총에서 다듬어진 돌멩이가 날아들고.
기다란 대롱에선 작은 독침들이 쏟아진다.
물경 50에 달하는 고블린들이 사방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돌멩이와 독침들.
하나.
타다다닥.
C급 갑옷과 맞닿은 그것들은 그저 콩 볶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으아아아아!! 이것밖에 안 되냐! 머저리들아!”
김민형은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저 앞에 표시된 목표 지역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이어.
“키키킥! 막아라!”
“킥! 인간. 못 지나간다!”
조잡한 나무 갑옷을 입은 10여 마리의 고블린들이 죽창을 꼬나쥐고 김민형의 앞을 가로막는다.
“인간 갇혔다!”
“죽여라! 킥!”
뒤와 옆, 그리고 앞까지.
순식간에 60마리의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인 김민형.
B급 특성인 재빠른 몸놀림과 높은 민첩 덕분에 날래게 피하고는 있었지만.
타다다다닥!
‘으으으! 이젠 슬슬 힘든데…….’
김민형의 움직임은 점차 느려졌다.
당연했다.
결국 2레벨에 불과한 그가 무려 60마리의 고블린들의 공격 세례를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당초 그의 직업계통 자체가 방어보단 공격에 치중되어 있지 않는가?
결국.
빡.
“아악!”
갑옷이 미처 지켜 주지 못하는 목덜미에 돌멩이가 파고들었다.
그러나 김민형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 목 윗부분을 감싸고 회피하며 전방으로 돌진했다.
“키킥!”
“죽는다! 인간!”
그런 김민형 앞에 일자로 진형을 잡은 고블린들이 죽창을 치켜세운다.
B급 특성이 곁들어진 속도라면 그대로 꼬챙이가 될 상황.
그런데도 김민형은 성난 황소처럼 질주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더…… 더!’
곧 다가올 8톤 트럭의 파괴력.
그것을 몸소 경험해 본 김민형이었기에, 온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지금입니다아아아!!”
그 믿음에 화답하듯.
쿠르르릉!
하늘이 진동했다.
“키, 키킥?”
갑작스러운 천둥소리에 고개를 드는 고블린들.
그런 그들의 시야에, 허공을 가르는 작고 하얀 막대가 잡혔다.
이어.
“내리쳐라.”
맑은 목소리가 그 뒤를 따랐고.
“아스트라페.”
하얀 막대는 수십 줄기의 벼락이 되어.
콰자자자작!!
메마른 대지를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