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화 (1/349)

제1화

1화. 기적

솨아아.

굵직한 빗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넓은 광야를 두드리는 빗줄기들이 한 곳만큼은 접근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한 사람이라고 해야겠지.

파앙.

파공음과 함께 빗줄기를 가르며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여성.

“달아난다!”

“놓치지 마라!”

그녀의 뒤로 갖가지 무장을 한 이들이 쫓으려 했으나.

“그만 되었다.”

서늘한 인상의 중년인의 제지에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이들 대부분이 콧대 높은 중국의 랭커들임을 고려해 보면 믿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쫓아 봐야 쓸데없는 피만 볼 뿐이다. 의식이 먼저야.”

중국의 유일한 길드인 대륙성의 마스터.

창왕 종리추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바닥을 뒹구는 머리통 하나를 바라봤다.

“김시혁…….”

이내.

종리추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소국 놈치고 제법 대단했으나 그뿐. 감히 망국의 영웅 따위가 감히 넘볼 자리는 아닌 게지.”

그는 김시혁의 머리통에서 시선을 돌려.

보조계 길드원들이 준비해 둔 간이 제단을 향했다.

“나 종리추야말로 신에 걸맞은 인물 아니겠는가? 크하핫!”

대소를 터뜨리는 종리추.

그에 호응하듯 길드원들이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는 예를 표했다.

그래.

흡사 과거, 제국의 황제를 알현하던 신하들처럼 말이다.

종리추는 양팔을 활짝 펼치며 빗물을 쏟아 내는 하늘을 바라봤다.

“보셨소? 나 종리추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켰소!”

쿠르릉.

다 듣고 있다는 듯.

하늘에 번뜩이는 검붉은 벼락에 종리추의 얼굴엔 환희가 떠올랐다.

그러곤.

뚝.

쏟아지던 빗물이 거짓말처럼 멈춘다.

그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멈춰’ 버린 것이다.

스으으.

아까 도주했던 여성의 주변이 그랬듯이.

시야를 빼곡히 채우던 빗줄기가 커튼처럼 갈라진다.

콰즉. 까드득!

그 사이로는 검붉은 벼락들이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형체를 이루어 갔다.

눈알이었다.

시야를 가득 채울 만큼 아주 큼직한 눈알.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동공이 종리추를 향했다.

-그래. 해냈구나, 종리추.

스산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목소리.

듣기만 해도 심장이 내려앉는 눈알의 목소리는 실제로도 그러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커, 커헉!”

털썩.

제단과 가장 멀리 위치한 이들.

속된 말로 저렙인 길드원들부터 하나둘씩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것이다.

하나 종리추의 눈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젠 당신이 지킬 차례요.”

환희로 가득했던 그의 얼굴은 어느새 광기마저 비쳤다.

“나 종리추를 지구의 성좌, 이른바 창신으로 승천시켜 주시오!”

-좋다.

검붉은 눈이 잘게 진동한다.

눈알 주변으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오며 종리추를 휘감았고.

그의 앞으로 일련의 문구들이 떠올랐다.

[성좌 ???가 NO. 274 지구의 성좌 탄생을 요청합니다.]

[상황 분석 중…….]

“드디어!”

종리추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린다.

그럴 수밖에.

이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가?

하나.

[해당 대상은 자격이 없습니다.]

[탐색 확장 중…….]

“뭣?”

종리추의 표정이 굳어지는 건 그야말로 찰나.

그의 몸을 휘감던 암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내.

[성좌의 자격 보유자 사망 확인.]

[더 이상 NO. 274 지구에서 아레나를 진행할 이유가 없습니다.]

[NO. 274 지구의 아레나를 완전히 종료합니다.]

[갤럭시 아레나 종료에 따라 NO. 274 지구의 보호권을 철회합니다.]

잘려 버린 김시혁의 머리통 주변을 맴돌던 암운은 메시지창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파앗.

순간 하늘이 온갖 색으로 점철된 오로라로 반짝였다.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하늘을 가득 채우던 무지갯빛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이, 이게 대체…….”

종리추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건 부복해 있던 대륙성의 길드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고수준의 랭커인 만큼.

지금 지구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걸 느낀 것이다.

아마 시스템이 말한 보호권 철회와 어떤 관련이 있을 터.

이들의 당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이런. 종리추, 너에게 자격이 없다는구나.

작금의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뻔했으니까.

“네놈! 감히 나를 속인…….”

종리추는 곧장 핏대를 세우며 화를 냈으나.

-종리추. 나는 너를 속인 적이 없다.

“커헉!”

어느새 눈알에서 날아든 벼락 줄기가 종리추의 어깨를 강타했다.

종리추뿐만이 아니었다.

“사, 살려…….”

“끄아아!”

주변에 있던 대륙성의 길드원들.

그들 모두가 눈알에서 뻗어 나온 벼락 줄기에 관통당한 것이다.

그나마 김시혁과 함께 최강을 다투던 종리추였기에, 어깨를 관통당한 것에 그친 거였다.

-너의 염원대로 나는 너의 승천을 요구했다. 그저…….

종리추는 어깨를 관통한 검붉은 벼락 줄기.

아니.

핏줄과도 같은 무언가를 잘라 내며 거리를 벌렸다.

-너에게 자격이 없었을 뿐.

“개소리! 네놈이 그러지 않았나! 김시혁을 죽이면 내가 성좌로 승천……을?”

씹어 먹을 듯 내뱉던 종리추의 말이 멈춘다.

그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걸까?

-그래.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지.

검붉은 눈알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자격 보유자인 김시혁이 죽으면 네가 지구의 성좌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마치 비웃는 것처럼 말이다.

-아아! 이 순간은 항상 즐겁군. 늘 새로워.

“네노오옴!!”

-너의 세계는 잘 먹어 주겠다, 종리추.

* * *

쾅.

“야, 누님 왔다.”

거칠게 열리는 문.

허름한 판잣집답게 열린 문은 거의 부서질 지경이었지만.

여성은 신경도 쓰지 않고 터덜터덜 들어와 내부를 살폈다.

온갖 서적과 플라스크, 그리고 혈관처럼 이어져 있는 파이프들까지.

그러나 여성이 찾는 집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 뭘 또 만들고 있는 거야?”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능숙하게 좁은 집 안을 가로질렀다.

집주인이 있을 곳이야 뻔했으니까.

몇 걸음 가지도 않았다.

낡은 방문을 열자, 심상치 않은 마력 파동과 함께 한 남자가 보였다.

“야! 또 뭐 만드냐?”

“왔어?”

빈민국의 기아를 떠올릴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몸.

그녀는 비쩍 마른 남자의 앞에 그려진 복잡한 문양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김시문, 넌 세상이 엿되는데도 이런 걸 붙잡고 있냐? 이게 재밌어?”

“연금술사가 연성을 하는데 재미있고 없고가 어딨어.”

더 그릴 공간도 없어 보이는데.

김시문은 연신 바닥의 연성진을 채워나갔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여성은 김시문의 옆으로 작은 가방을 툭 던졌다.

“자, 받아라.”

“이게 뭐야?”

“선물.”

“선물이라고?”

“그래. 영광으로 알아. 내가 남자한테 선물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렇게 말한 여성은 낡은 소파로 몸을 던졌다.

가방을 열어 본 시문의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된 거야?”

“보면 모르냐? 네 예상대로 종리추, 그 개X끼가 네 동생 뒤통수 씨게 쳤지.”

“그런데도 시혁이는 이걸 안 썼고?”

“나도 쓸 줄 알았어. 근데 길드원들 다 죽고 나니까 내 쪽으로 던지더라고?”

“그랬냐.”

시문은 복잡한 눈으로 가방 속을 내려다봤다.

그걸 힐끔한 여성은 물었다.

“그…… 뭐라 안 하냐?”

“뭘?”

“네 동생 안 돕고 그거만 딸랑 들고 온 거.”

그 말에 피식 웃은 시문은 다시 연성진을 그려 나갔다.

“안 해.”

“진짜로? 내가 도왔으면 종리추 그 새끼를 죽였을지도 모르는데?”

“주변에 대륙성의 랭커들이 빼곡할 텐데 그럴 리가. 그러니까 시혁이도 이걸 넘긴 거겠지.”

“……저렙 주제에 상황 보는 눈은 있다니까.”

시문은 가방을 갈무리하며 천장을 바라봤다.

꽤나 큰 틈새 덕에 어둑한 밤하늘이 보였지만, 억수 같은 빗물이 안으로 들이닥치진 못했다.

당연했다.

비록 판잣집이긴 해도.

김시문의 연금술이 곳곳에 묻어 있었으니까.

“말숙아.”

“아이 X발! 내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지?”

“사람을 이름으로 안 부르면 어떻게 부르냐?”

“세상이 부르는 이름 있잖아. 천, 마.”

“풉.”

터져 나오는 시문의 웃음.

“어쭈? 웃어?”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즉 머리통을 박살 내 놓았겠지만.

아쉽게도 천마 고말숙에게 김시문이란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망할 새끼.”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빼 문 그녀는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어쨌건 이걸로 너한테 진 빚은 다 갚은 거다.”

“빚?”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

이내 시문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아. 너 그걸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어?”

“그거라니! 어떻게 보면 내 복수 때문에 네 동생이…….”

“그건 아냐.”

딱 잘라 버리는 시문.

“네 복수는 정당했고, 그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했어. 네 복수와 대륙성은 별개의 문제고.”

“……하여간에, 너도 참 대단한 녀석이야.”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나는 고말숙.

그러나 시문의 답이 마음에 든 것일까.

그녀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응? 오자마자 어디 가?”

“발악하러. 튈 때 봤는데 종리추 그 새끼, 아주 어메이징한 걸 소환했더라고.”

그 검붉은 거대 눈동자는 거칠 것 없던 하이랭커.

천마인 그녀조차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말숙이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 무시무시한 건가 보네.”

“엉. 너도 아까 시스템이 알리는 거 봤지? 보호권이니 뭐니 철회됐다는 거.”

“응. 갑작스럽게 떠서 놀랐어.”

시문은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시스템은 성좌의 자격 보유자가 사망했다고 했지.’

필시 그 자격의 보유자는 동생인 시혁이 놈이었을 터다.

김시문은 검성 김시혁의 상태창을 아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일단 제대로 엿된 거 같아.”

고말숙은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그 알림 이후로 주변 잡몹들만 두 배 가까이 세졌더라. 아웃브레이크도 갑자기 몇 개나 더 생기는 걸 봤고.”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래. 아마 여기도 안전하진 않겠지. 너 이번에야말로 뒤질걸?”

담배를 문 고말숙의 입가가 삐딱하니 올라갔다.

시문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넌 도망을 안 가냐?”

“튀는 건 이 고말숙이 스타일이 아니라서. 뭐, 이제 더 살 이유도 없고.”

어느새 다 타 버린 꽁초를 튕긴 그녀는 휘적휘적 입구로 걸어 나갔다.

“너, 그거 버리지 말고 꼭 마셔라. 그 잘난 검성이 지 목숨까지 버리고 양보한 거잖냐.”

“미안한데 원래 내 거였다.”

“아, 그러셔? 그런데 왜 지금껏 네 동생 놈이 들고 있었을까?”

그렇게 대꾸한 고말숙은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내.

“…….”

끼익.

작은 읊조림과 함께 낡은 문을 닫고 나서는 고말숙.

밖에서 내리는 장대비를 생각해 보면 들리기 힘든 소리였지만.

제 영역에 있는 시문에게는 선명하게 들렸다.

‘……그동안 고마웠다.’

라고.

시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참 나.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바뀐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네.”

세계 3대 미친년.

천마 고말숙답지 않은 말이었다.

미소를 털어 낸 시문은 다시 연성진을 그려 나갔다.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고말숙이 오기 전부터 이미 95% 이상 완성된 상태였으니까.

“이제 연성에 쓰일 에너지원만 있으면 되는데…… 어쩜 이렇게 딱 맞춰 왔는지.”

김시문은 고말숙이 넘긴 가방을 열었다.

찰랑.

은은한 무지갯빛을 머금은 백색의 액체가 작은 유리병 속에서 출렁인다.

그것을 더 유심히 바라보자, 시문의 시야엔 익숙한 창이 떠올랐다.

[엘릭서]

등급 - ?

연금술의 신화적인 산물.

신에게도 효력을 보인다는 만능약.

시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이라 부를 수 있는 엘릭서.

동생 김시혁과 천마 고말숙이 가져다준 온갖 재료들과 더불어.

각성 이후 모든 시간을 갈아 넣은 집합체였다.

‘이마저도 에메랄드 태블릿을 얻지 못했다면 꿈도 못 꿨겠지만…….’

씁쓸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시문은 입을 열었다.

“상태창.”

칭호 :

계통 : 마법계

레벨 : 1

소속 : 대한민국

힘 : 1

민첩 : 1

체력 : 3

마력 : 0

보유 특성 – 마력불능

업적 포인트 - 5,000

절망.

딱 이 한 단어로 모든 설명이 가능한 상태창.

솔직히 이런 상태창을 지니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게 기적이었다.

본래라면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자마자 죽었어야 할 수준이었으니까.

‘운이 좋았지.’

조국이 멸망했음에도 세계 최강을 논하던 플레이어 김시혁.

그 잘난 동생 놈의 도움과 개인적인 운.

그리고 고말숙 같은 지인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특히나 마력불능은 단순히 마력 사용만 불능이 아니라, 이렇게 육체마저도 갉아먹었다.

그나마 남은 것이 독기여서일까?

정신만은 무너지지 않았고, 이렇게 연금술의 끝이라는 엘릭서까지 만들게 되었으나…….

“이젠 다 부질없지.”

기본 능력치는 1레벨의 반도 못 미치는 상태.

물론 엘릭서라는 기적의 영약이 스탯 증진에도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결국 1레벨이다.

‘애써 엘릭서를 먹고 마력불능을 치료해 봐야 결국 개죽음뿐이겠지.’

지나가던 잡몹이 후 불면 그대로 바스러질 수준이란 말이다.

“새끼, 그냥 먹고 너라도 더 살지 그랬냐.”

쓰게 웃은 김시문.

뭐, 이걸 넘긴 동생 놈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걸 여기까지 가져온 말숙이의 마음도.

어차피 정규 아레나 이후 박살 난 세상이니.

죽기 전에 자신의 염원이라도 이루어 주고 싶은 거겠지.

“거참, 이제 와서 이런 게 무슨 소용이라고…… 아니, 아예 소용없는 건 아니겠네.”

시문은 엘릭서의 마개를 뽑았다.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코 속으로 스며든다.

그것만으로도 몸의 전신에 활력이 돋았으나, 시문은 그것을 복용하지 않았다.

“너희들 덕분에 인생의 목표였던 두 가지를 다 이루고 간다.”

마력불능의 마법계인 자신이 유일하게 다룰 수 있었던 힘인 연금술.

덕분에 정말 죽을 듯이 연금술에 달려들었고.

에메랄드 태블릿에 기록된 신화적인 두 개의 산물 중 하나.

엘릭서마저 연성해 냈다.

그러니 이제 남은 산물은 하나뿐이었다.

“예전 연구실도 아니고, 이런 환경에서 성공할지는 모르겠다만.”

쪼르륵.

그 대단하신 성좌에게도 효과를 보인다는 엘릭서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정확히는 연성진 중앙에 위치한 에메랄드 태블릿이었다.

‘엘릭서를 연성할 때 반파됐으니. 이번 연성으론 아예 박살이 나겠지?’

몸을 치료해 줄 유일한 열쇠라며 금이야 옥이야 다루었던 에메랄드 태블릿.

그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부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하나 멸망을 앞두고 있다는 마음 때문일까?

미련은커녕 마음이 한결 홀가분했다.

“읏차.”

엘릭서를 다 부은 시문은 연성진의 외곽으로 나가 양손을 짚었다.

빌어먹을 마력불능 덕분에 마력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연금술의 근본은 등가교환.

마법계라는 계통과 어떤 식으로든 등가교환만 만족시켜 주면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했으니까.

파측.

연성진 위로 작은 스파크가 튄다.

이내 그것은 거센 폭풍우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뇌전으로 승화했고.

번쩍!

방 안 전체를 점멸시켰다.

이윽고.

하얀빛이 천천히 사그라들며, 빼곡하던 연성진 대신 낡은 방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했구나.”

연성의 성공 여부를 알리는 연성진의 소멸과.

[신화적인 산물을 연성하였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0을 획득합니다.]

[해당 카테고리의 소실로 비활성화됩니다.]

익숙한 메시지의 등장은 엘릭서를 만들었을 때와 다름없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연금술의 신화적인 산물 두 가지 모두를 제작하였습니다.]

[칭호 ‘연금술의 선구자’를 획득합니다.]

[첫 칭호를 얻었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을 획득합니다.]

[해당 카테고리의 소실로 비활성화됩니다.]

“호오? 이젠 칭호까지 주네.”

피식 웃은 시문은 연성진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빛바랜 조각들이 발에 밟힌다.

아마 연성에 쓰인 에메랄드 태블릿의 파편일 터였다.

그 속에서.

시문은 무채색의 굴곡 하나 없이 둥근 돌을 주웠다.

“이거구나.”

엘릭서와 함께 연금술로 창조해 낼 수 있는 신화적인 산물.

[현자의 돌]

귀속 여부 :

등급 : ?

연금술의 신화적인 산물.

등가교환만 성립하면 무엇이든 연성이 가능하다.

“완벽하게 성공했네.”

두 번 만들 자신은 없는 귀한 엘릭서를 에너지원으로 썼다.

고로 당연한 결과였지만.

“입은 쓰네.”

분명 신화적인 산물을 만들어 냈음에도.

엘릭서를 만들어 냈을 때의 그 환희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엘릭서와 달리.

에메랄드 태블릿에 어떤 정보도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다.

그래.

그래서일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달랜 시문은 다시 한번 현자의 돌의 정보를 살폈다.

“귀속템이라…….”

귀속 절차야 어려울 게 없지.

시문은 곧장 작은 단검을 꺼냈다.

그러곤 손가락 끝을 가볍게 베어 피 한 방울을 현자의 돌 위로 떨어뜨렸다.

또옥.

맑은 물에 붉은 물감을 풀어 낸 것처럼.

무채색의 현자의 돌은 시문의 피로 물들며, 귀속 여부에 김시문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이내.

스륵.

“엇?!”

시문의 손바닥으로 녹아드는 현자의 돌.

둥근 돌이 팔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드는 이물감은 굉장히 기이했다.

그렇게 흡수된 현자의 돌은 정확히 시문의 가슴 한가운데에 위치했고.

두근.

살아 있는 심장처럼 박동하며, 얇은 무언가가 전신으로 뻗기 시작했다.

“윽!”

털썩.

무릎이 절로 꿇린다.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일종의 혈관처럼.

전신으로 뻗어 나가는 현자의 돌에 몸의 움직임이 어색해진 것이다.

그때.

콰아앙!!

강렬한 폭음이 귓가를 때렸다.

그와 함께 데구루루 굴러오는 무언가.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방금까지 멀쩡히 이야기를 나누던 천마.

고말숙의 머리통이었으니까.

‘참…… 퍽이나 너답다.’

분노나 경악보단 헛웃음이 먼저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덩그러니 남겨진 머리통엔 호쾌한 미소가 걸려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의 머리통을 뒤따라.

-호오라?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철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힘겹게 고개를 들자.

-현자의 돌이라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숨통을 조여오는 어마어마한 압박감과 함께.

어느새 뻥 뚫린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검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종리추가 불러냈다는 그 검붉은 눈동자였다.

심상치 않은 존재감으로 보아, 필시 성좌이거나 그에 필적하는 존재겠지.

-역시 성좌 탄생의 가능성을 지닌 세상이라 이건가? 이거 상상치도 못한 수확이군.

‘뭐?’

어느새 머리까지 뻗어 온 현자의 돌 덕분에 말도 나오지 않았으나.

놈을 바라보던 시문의 눈동자는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이어.

종리추가 소환했다는 고말숙의 말을 시작으로 일련의 생각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고.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전부 저놈 때문이구나.’

갤럭시 아레나의 보호권이 철회된 것도.

종리추가 그토록 동생 김시혁을 죽이려 든 것도.

성좌 탄생을 논하는 저 거대 파충류 눈알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시문의 시선이 여전히 웃고 있는 고말숙의 머리통을 향했다.

‘망할…….’

빠득.

이가 갈렸다.

1레벨의 수준조차 되지 않는 몸으로도 절로 화가 치밀었다.

‘마력불능만 없었어도!’

이 강대한 존재를 이길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동생과 친구를 죽인 놈에게 주먹 한번 휘두를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때.

[동기화 완료. 현자의 돌이 완벽히 자리합니다.]

[스탯 마력과 체력이 고유 스탯인 연성력으로 변환됩니다.]

[업적 ‘고유 스탯 획득’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을 획득합니다.]

[해당 카테고리의 소실로 비활성화됩니다.]

‘고유 스탯?’

놀랄 틈도 없었다.

굳었던 몸이 다시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동시에.

우웅.

가슴 정중앙에선 맑은 이명이 울렸다.

인간의 언어는 아니었으나, 김시문은 현자의 돌의 말을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교감으로 인한 의사 전달이라고 해야겠지.

‘원하는 모든 걸…… 연성하라고?’

연성으로 태어난 존재라서 그런 것일까?

현자의 돌의 뜻은 뜬금없었지만,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

‘저 개자식에게 한 방 먹이는 것.’

동시에.

‘마력불능 따위가 없는 삶을 살아 보는 것.’

그런 연성물이 있을까?

라는 물음은 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들을 떠올리자마자.

우우우웅!

가슴을 울리던 이명은 더없이 무서울 정도로 그 크기를 키웠고.

[소유자가 보유한 카테고리에서 적합한 대상을 탐색 중…….]

[탐색 불가. 연성력을 소모해 독자적으로 탐색 영역을 확장합니다.]

“크악!”

오우거의 손으로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머리와 가슴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하나 고통은 찰나였다.

[탐색 완료. 가장 적합한 대상은 XXXX의 서입니다.]

[등가교환에 연성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소유자의 현 상태에 따라 현자의 돌의 자체 연성력을 사용.]

[독자적인 연성을 시작합니다.]

강렬했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시문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검붉은 눈동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따악.

손가락을 튕김으로써.

파츠츠츠측!

어마어마한 백색의 빛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고.

순식간에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것은 책.

아니.

우주를 담아낸 비석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창조한 적 없는 신물의 탄생에 원 주인인 XXXX의 감긴 눈꺼풀이 꿈틀거립니다.]

[그의 관심이 플레이어 김시문을 향합니다.]

-이, 이럴 수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말도 안 된다! 어찌 인간이 우둔한 아버지의 신물을!

[처음으로 성좌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을 획득합니다.]

[갤럭시 아레나에 등록되지 않은 성좌, XXXX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성좌조차 해내지 못한 업적에 갤럭시 아레나가 찬사를 보냅니다.]

[업적 포인트 1,000,000을 획득합니다.]

[해당 카테고리의 소실로 비활성화됩니다.]

[칭호 ‘저편의 시선을 받는 자’를 획득합니다.]

[해당 카테고리의 소실로 비활성화됩…….]

인간의 감각 중 청각이 가장 마지막에 소실된다고 하던가?

검붉은 파충류 눈동자의 경악과 함께 메시지창이 범람했지만.

시문은 메시지창을 확인할 수 없었다.

연성이 끝난 시점부터 시각을 비롯한 감각들이 전부 날아가 버린 탓이었다.

-아, 안 됩니다! 아버지! 이곳은 저의…….

연신 눈알 놈의 경악이 들려왔으나, 이젠 그마저도 끊어져 버리고.

‘뭐가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마치 영혼마저 짓뭉개듯.

전신을 엄습하는 피로감에.

‘일단 놈에게 한 방 먹인 건 확실하네.’

시문은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의식의 끈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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