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무괴(武怪) 뉴위츠 (4)
어둠의 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종족 두 가지를 말하라면 누구나 뱀파이어와 웨어울프를 말할 것이다.
인간에서 비롯된 인외(人外)의 종족이고, 또한 인간 사회에 빌붙어 살아가는 존재들이지만.
그만큼 장구한 세월을 살며 뛰어난 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 이들.
혈귀제와 투랑제는 그런 인외의 왕이었다.
그렇다 보니 두 사람은 사실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웨어울프? 자기 얼굴이 혐오스럽게 생겼다고 평상시에는 인간의 거죽을 두르고 살질 않나, 보름달만 뜨면 정신이 나가서 광란을 부리질 않나. 거기다 머릿속에는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본능밖에 남지 않은……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짐승들일 뿐이지.
혈귀제는 웨어울프의 본능과 더러움을 비웃었다.
-뱀파이어에게 좋은 구석이 있겠냐고? 헛소리를 하는군. 낯짝은 병자처럼 희멀건 해서는 대낮에도 돌아다니지 못하는 반편이들 따위가. 거기다 싸움도 못 해서 매번 도망치기 일쑤이지 않은가? 병신들이지.
투랑제는 뱀파이어의 약점과 약한 전투력에 조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혈귀제와 투랑제는 이번 작전 투입에도 큰 이견(異見)을 보였다.
-페링턴 시를 약탈하라고? 관리도 아닌 약탈? 지금 그딴 저급한 일을 우리더러 도맡아 하라는 거냐? 거부하지!
1사도의 부탁에 혈귀제는 크게 발끈했다.
그는 인간을 동등한 시선으로 보진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귀족이라 설정했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자신의 사치와 향락을 떠받쳐줘야만 하는 노예들.
혹은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는 가축.
혹은 맛도 좋고 품질도 좋도록 평상시에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 하는 애완동물 같은 존재였다.
반려동물이 아니다.
애완(愛玩).
애정하면서도 완구품처럼 언제든 가볍게 즐기다가 버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약탈’이라는 행위는 제대로 통솔도 되지 않은 채로 짐승처럼 막무가내로 날뛰는 야만인들 따위나 할 법한 짓거리로 비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웨어울프 같은.
그러니 귀족인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하라는 명령은 귀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페링턴 시를 손에 넣어 영지로 키우라거나, 목장으로 관리해보라는 식이라면 한 번 검토라도 해볼 법하건만.
하지만 뒤이은 1사도의 말이 혈귀제의 정신을 번뜩 뜨이게 만들었으니.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신께 바칠 공물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는데.
-……공물?
도도하고 깐깐한 성정의 혈귀제가 유일하게 사족을 못 쓰는 것이 있다면 딱 하나.
바로 <이름 없는 군주>였다.
-몰랐나? 최근에 신께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존재가 바로…….
테오 라그나르.
그가 신의 환심을 받고 있다니?
그는 감히 신의 앞길을 막는 라그나르의 후손이 아닌가.
거기다 얼마 전에는 봉신에 이어 부활제까지 망친 주범이었고.
그런데 그런 놈을 대체 왜……?
-긴 역사 동안 그놈만큼 신의 앞길을 막았던 존재도 거의 없지 않았나. 그러니 궁금증이 생기신 게지.
혈귀제의 마음 한편에 새로운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질투.
혈귀제는 <이름 없는 군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분은 왕이었다.
그렇다면 귀족인 자신은 그분이 빛날수록 자신도 더 아름답게 반짝이지 않겠나?
끝없는 어둠. 절망. 공포만을 가져다주는 신의 애정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그런다면 자신의 격도 그만큼 올라가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분의 총애가 다른 곳으로 향한다면 자신의 가치는 하락한다.
왕의 애정을 잃어버린 귀족은 곧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므로.
그래서 혈귀족은 테오 라그나르를 잡기 위한 작전에 참여하겠노라고 선언했다.
단, 그 혼자만은 아니었다.
-고고한 척 한다고 방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날파리?
투랑제가 투입되었던 것이다.
녀석은 욕심만 남은 짐승답게 약탈이라는 말에 눈이 반쯤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오히려 자신의 몫을 뱀파이어들에게 빼앗길까 봐 경계하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였으니.
-약탈 따윈 네놈이나 실컷 하여라.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뿐이니. 테오 라그나르, 그 시건방진 놈의 머리통은 내가 가져가겠다.
-후후후! 5사도가 깨나 그놈에게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것 같던데. 모가지를 잘라서야 괜찮을까?
-그딴 놈 따위 알게 무엇이냐. 사도가 왜 사도로 있는지를 잊은 건 아니겠지?
-잊을 리가.
사도의 순번은 어디까지나 성마교에 합류한 순서에 지나지 않을 뿐.
여기에 힘의 격차나 계급의 유무 따윈 없었다.
그들은 각자가 성마교의 주인이었고, 일정한 영역과 세력을 이끄는 명령권자였다.
<이름 없는 군주>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매, 처음으로 간택하셨다는 1사도조차 그들에게 뭔가를 지시할 때는 ‘부탁’을 하지 명령을 내리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
그러니 광룡제가 자신의 손자 놈을 아낀다고 한들 눈치를 볼 필요 따윈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저 머리통을 곱게 잘라 5사도 앞에 가져다 놓으면 재미난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애당초 광룡제의 합류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겼던 혈귀제로서는 녀석의 꿍꿍이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면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을 테고.
그래서 성마교는 각각 투랑제와 혈귀제의 파벌로 나뉘어 임무를 개시했다.
예상했던 대로 투랑제와 웨어울프 족은 오로지 약탈과 살육 밖에 몰랐다.
어찌나 그리도 잔혹하면서도 불결하기만 한 건지.
혈귀제는 저런 녀석과 엮이기가 싫어 뒤로 빠져 있었다.
대신에 오매불망 기다렸다.
오로지 테오가 나타나기만을.
이곳은 카일 라그나르에 이어 성마교의 일 순위 척결대상이 된 테오 라그나르를 잡기 위한 거대한 함정.
덫에 걸려든 짐승은 다른 어느 때보다 포악하게 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죽음의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한 발버둥에 불과할 뿐.
지금 테오가 보이는 반응도 다르지 않다- 고 혈귀제는 생각했다.
“테오 라그나르 님이 용의 인자를 깨웠다는 소문은 이미 교내에도 아주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시조 시구르드에 이어 천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발현되지 않다가 이제야 겨우 깨어난 형질이라면 대답이 딱 하나밖에 더 나오겠습니까?”
혈귀제는 고대 귀족의 우아한 손길로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바로 로드브로크 님께서 돌아오셨다는 뜻일진저. 그렇다면 저희도 거기에 맞게끔 대우를 해드리는 것이 객을 맞는 주인으로서 응당 당연한 자세일 테지요.”
『주인?』
“그렇습니다. 이곳은 애당초 저희가 가축을 기르던 목장. 당신들은 이제 거기에 새롭게 추가될 대상이고 말입니다.”
혈귀제가 입가가 길게 쭉 찢었다.
송곳니가 유달리 하얗게 반짝이는 가운데,
“아, 쫑알쫑알 시끄러워 죽겠네! 언제까지 지껄여대기만 할 거냐, 혈귀제!! 찢어 죽일 거면 그냥 죽여!”
투랑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혈귀제가 인상을 찡그렸다.
“기다림의 미학도 모르는 짐승 같으니. 그래. 너 같은 야만인이 예와 의를 어찌 알까? 좋다. 네 마음대로 하여라.”
“크하하하핫! 고대룡을 찢는 감촉! 그 느낌을 또 맛볼 수 있겠구나! 그리웠다구, 젠장!!”
쿵쿵쿵쿵!
투랑제는 거칠게 웃으면서 와락 달려들었다.
뛸 때마다 지반이 거칠게 떨렸으니.
그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반신(半神).
인정하기 싫지만, 이미 녀석은 필멸자의 육체를 조금씩 벗어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로드브로크는 탐탁지 않은 듯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숨결을 거칠게 내뱉었다.
화아아악!
불길이 불지옥의 화마와 뒤섞이면서 더 크게 해일을 일으켰지만, 투랑제의 광소는 도무지 끝나질 않았다.
“캬캬캬캬캬! 그래. 이거지. 이거고 말고!”
거칠게 휘두르는 손톱을 따라 불길이 갈라지면서 로드브로크에게 이어지는 길이 활짝 열리고,
콰아아앙!
두 존재가 정면에서 충돌했다.
『감히, 나를 무엇으로 보고-!!』
아직 심장 복구가 덜 끝났다고 해도 로드브로크는 원래 고대룡의 왕이었던 몸.
이딴 저급의 존재가 자신에게 이빨을 들이민다는 사실 자체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투랑제는 혈귀제만큼이나 로드브로크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천 년 전, 투랑제가 갖고 있던 또 다른 별명은 ‘용사냥꾼’이었다.
공공연연하게 커다란 용의 아가리를 손수 찢는 감촉이 좋고, 그 찢긴 목덜미에다 주둥이를 처박아 용의 핏물을 들이키고 살점을 씹어먹는 기분이 너무 즐겁다고 말하던 미친놈이었다.
일족이 죽는 광경을 로드브로크가 직접 목격한 적도 더러 있었으니, 그녀는 이 작자를 무슨 일이 있어도 찢어버리고 싶었다.
콰르르르릉!
수많은 마법 폭격이 이어지고, 투랑제가 그걸 찢고 또 찢으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개시되었다.
“왕들을 따르라-!”
“신의 가르침을 좇으라-!”
성마교의 혈사제들 틈바구니에 섞여 있던 웨어울프와 뱀파이어들도 일제히 정체를 드러내면서 혼전에 뛰어들었다.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게 진형 유지해!”
“아이들은 전부 뒤쪽으로!”
“박쥐가 위로 올라간다! 위! 위도 막아!!”
웨어울프는 타고난 사냥꾼이자 전사들.
타고난 신체 스펙만 따진다면 라그나르에 못지않기에 6번조를 밀어붙이는 역할을 떠맡았고,
뱀파이어들은 일제히 박쥐 떼로 변해서 진형을 크게 우회하거나 하늘로 올라 강습을 노리는 등 다양한 전술을 노리고자 했다.
킨카르논은 웨어울프들을, 르제와 안시오는 뱀파이어들을 막는 등 일사불란하게 대처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뒤로 도망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으니.
누가 보더라도 6번조가 여러모로 많이 불리한 전투였다.
콰콰콰콰-
* * *
‘강하다.’
테오는 혈귀제를 상대하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
상대는 사도였다.
위계만 따진다면 광룡제에 버금가는 존재.
당장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었지만, 반대로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따다다다당!
‘그래도 다행인 건…… 광룡제까지는 아니야.’
혈귀제에게 말한다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광룡제의 사념을 융화한 테오이기에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했다.
혈귀제가 광룡제에 필적할 정도는 아니었다.
‘영감’이 혈귀제의 투로를 편린이나마 예측할 수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그리고 예측이 가능하다는 건 얼마든지 대처도 가능하다는 뜻.
뇌가 타버릴 것처럼 어렵긴 해도 어느 정도 상대는 가능했다.
드레이크의 날붙이로 혈귀제를 압박하면서도 사각지대에 네 자루의 이기어검을 연달아 꽂아 넣고,
뇌기를 연달아 꽂으면서도 불바다의 화마로 혈귀제의 앞길을 가로막으면서 투로를 제한시켰다.
까강! 까강!
“당신의 그 검…… 그 눈……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아요. 꼭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단 말이죠.”
그게 누군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뻔할 테지.
“그러니 더 찢어버리고 싶은걸요. 어쩌죠?”
“그럴 수 있으면 해보던가.”
“핫핫핫! 아주 자신만만하군요! 좋아요, 어디 한번 해보죠! 사실 저도 당신 같은 하수와 계속 손을 섞고 싶진 않고 말이죠-”
창백했던 혈귀제의 피부 위로 붉은 혈색이 돌기 시작하면서 혈광(血光)이 다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푸스스-
<이름 없는 군주>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면서 녀석의 몸을 칭칭 감았다.
결전기(決戰技)를 발동하려는 것이다.
끼아아아아!
힐끗 웃는 녀석의 머리 위로 <이름 없는 군주>의 잔영이 나타나 차갑게 웃는 것 같았다.
귀곡성이 자욱하게 울려 퍼졌다.
-저건 막지 못한다.
테오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영감도 저건 막지 못한다고 비명을 질렀다.
저걸 막을 방법은 단 하나.
‘염라…….’
아직 개척하지 못한 여의주태양의 세 번째 초식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