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무괴(武怪) 뉴위츠 (2)
뉴위츠.
무괴(武怪)라는 별호로 유명한 그가 라그나르에 합류하는 시점은 테오가 스무 살에 가까울 무렵이었다.
그는 이미 당시에 무학자(武學者)로서 명성이 아주 뛰어난 편이었고, 그의 안목이 필요했던 라그나르에서는 좋은 조건으로 원로원에 입성시켰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뒤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뉴위츠는 ‘괴(怪)’라는 단어를 얻은 만큼 아주 괴팍한 성격을 자랑했다.
틀에 얽매이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고, 말 표현을 둘러대는 법이 없이 무척 직설적이었다.
그 덕분에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할 정도로 엄청나게 가까워지지만, 한번 핀트가 어긋나면 원수 관계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이렇다 보니 보수적이고 경직된 라그나르의 분위기와는 애당초 맞질 않았다.
뉴위츠는 주로 라그나르의 검술 체계에 대해 많이 거론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만큼 그 깊이가 남다른 것은 좋으나, 그만큼 군더더기가 많으니 좀 더 체계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입장.
반면에 원로들은 기존 검술만으로도 세계에서 제일 가는 성세를 구가하고 있는 판국에 굳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검증되지 않은 검술 체계 개혁을 이룰 필요가 있냐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둘의 충돌은 서서히 가문 내의 의견 충돌로까지 이어졌으니.
주로 젊은 사람들이 뉴위츠를 따르고, 간부진들은 원로들의 의견을 좇았다.
‘내가 스승님께 합류했던 것도 바로 그 시점이었고.’
그러다 시간이 흘러서 뉴위츠와 원로원의 분쟁은 개혁파 대 보수파로의 분란으로 커지기도 했다.
오죽하면 열 받은 원로 몇 명이 뉴위츠에게 칼부림을 부리려다가 감옥에 갇혔을까.
‘문제는 당시에 아버지께선 어느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으셨다는 거지만.’
카일은 의도적으로 내분을 이용해 권력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원로들이 너무 머리가 커졌다 싶으면 뉴위츠의 편을 들어주고, 뉴위츠가 너무 급발진한다 싶으면 원로들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그러던 중에 분쟁이 거의 내전에 가까워졌던 시기가 바로 <용의 심장> 때였다.
원로들은 감히 검술 체계를 넘어 무술 체계 자체를 바꾸려는 뉴위츠의 행위를 시조 시구르드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혹자는 그가 트로이반이나 성마교에서 보낸 세작이 아니냐는 모욕까지 공공연연하게 공식 석상에서 떠벌리고 다녔으니.
당연히 감정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그들은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리고 예상하기 쉽겠지만,
그 내분의 승자는 원로원이었다.
-뉴위츠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으나, 검증되지 않은 호흡법을 도입하여 아까운 인재들을 함부로 희생시킬 수는 없다.
카일은 여기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일평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개혁파는 완전히 박살 났다.
가솔들은 가주의 눈치를 보며 뉴위츠의 곁을 하나둘씩 떠났고, 결국 뉴위츠는 혼자가 되고 말았다.
당연히 뉴위츠는 크게 반발했지만, 이마저도 묵살 되었으니.
결국 뉴위츠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라그나르를 떠났고, 그 옆에는 테오만이 남게 되었다.
용의 심장은 그렇게 테오에게 전승되었다.
그리고 회귀가 벌어진 지금.
테오는 동부가 어느 정도 진정된다 싶으면 뉴위츠를 수소문하여 따로 모셔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뉴위츠의 개혁 정신은 비단 용의 심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를 중용하여 내치(內治)를 맡긴다면 동부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테오는 그 실적을 토대로 여러 체계를 윈터러에 도입해 그만의 라그나르를 새롭게 일굴 예정이었다.
다만, 지금은 성마교와의 전쟁이 극심해질 게 분명해 뉴위츠를 따로 찾지 않았던 것인데.
설마 이곳에 이미 뉴위츠가 와 있을 줄이야.
원래대로라면 당신께서 머무시던 은거지에서 무학을 연구하기 바쁘실 양반이 대체 어떤 경위로 여기까지 오시게 된 것일까?
‘스승님…….’
테오는 당장이라도 뉴위츠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삭였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얼굴이지만, 현재 이곳에 있는 뉴위츠는 자신이 처음이다.
그와의 추억은 모두 자신의 가슴에만 남아있을 뿐.
여기 있는 뉴위츠는 자신의 스승 뉴위츠와 다른 인물이라고 봐야만 했다.
‘어쩔 수 없지.’
그래서 테오는 억지로 반가운 마음을 죽였다.
다행히 테오는 전생에 정보부와 참모부 생활을 하면서 연기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다.
덤으로 뉴위츠는 괴팍한 성격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에 덜 민감한 편이었고.
“누추하다니요. 이제는 엄연히 이곳도 라그나르의 보살핌을 받는 영토일진대.”
테오는 되도록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검례를 갖췄다.
“무학자 뉴위츠 폴벤 님을 뵙습니다. 북방 라그나르의 두 번째 검인 테오 라그나르입니다.”
순간, 뉴위츠의 눈가에 기이한 강채가 어렸다.
“나를 아나?”
“평상시 무학(武學)에 관심이 많아 뉴위츠 님의 저서를 여럿 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11년 전에 쓰신 논문 <동방 무학에서의 단전 호흡 유래>와 6년 전에 폴비스 저널에 기고하신 <뇌문 개방에 따른 영격과 검학 수준 발전의 상관관계>를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흐, 흐음! 험험험! 북방의 거친 기질을 닮은 검사치고는 아주 올바른 검술 태도를 갖고 있구만.”
뉴위츠는 살짝 붉어진 콧잔등을 옆으로 치우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괜찮게 점수를 딴 것 같은데.’
테오는 조금 전 자신이 던진 말로 스승에게 아주 좋은 첫인상을 심어줬다는 확신을 얻었다.
뉴위츠는 무학자답게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약한 편이었다.
하물며 테오가 거론한 두 개의 저널은 뉴위츠의 오랜 팬이 아니면 알기 힘들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
하지만 그만큼 뉴위츠가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들이기도 해서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살 수 있었다.
“뉴위츠 님께서 어째서 이곳에 계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여긴 내 고향이다만. 이건 몰랐나 보지?”
그러나 누가 무괴가 아니랄까 봐.
뉴위츠는 테오를 골릴 생각으로 괜히 이죽거렸지만.
“그렇습니까? 견문이 짧아 죄송합니다.”
그런 그의 성격을 너무 잘 아는 테오는 너무 간단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는 뉴위츠의 고향이 정확하게 어딘지 알고 있었으니까.
뉴위츠는 남부 지방의 사람이었다.
뉴위츠는 곧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살을 좁히면서 말했다.
“아무튼 여길 찾은 이유는 이제 이 도시가 라그나르의 영역이기 때문이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러니 다들 안심하시고 저를 따라 올라오시면 됩니다.”
뉴위츠는 잠시간 말없이 테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실안(眞實眼)이다.’
뉴위츠는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대신에 그것을 뛰어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최소한 상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자를 따라 올라가자.”
뉴위츠가 시민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은 라그나르입니다. 동부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맞습니다! 이들은 제 남동생도 죽인 작자들이에요!”
“아니지. 반대로 생각하게. 이미 전쟁은 끝났어. 이들은 동부를 단순 점령지인 것을 넘어 이제는 지배지(支配地)로 본다는 뜻일세. 이미 지금으로도 피해가 커서 유화 정책을 펼쳐 자네들의 환심을 사도 모자랄 판국에 민심을 더 역행한다고?”
뉴위츠가 따스하게 웃었다.
“라그나르가 아무리 안하무인에 오만방종한 작자들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머리에 생각이 없지는 않을 거야.”
“…….”
“…….”
“…….”
“그리고 무엇보다.”
뉴위츠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아이들부터 구해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
그 말에 적막이 더 길어졌다.
시민들은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다가 곧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거나 주먹을 꽉 쥐기도 했다.
“뉴위츠 님의 의견이 그러하시다면 그러신 거겠죠. 알겠습니다. 따라서 올라가겠습니다.”
때마침 천장에 난 구멍을 따라 동아줄이 내려왔다.
시민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그걸 붙잡았다.
* * *
“설득하는 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테오와 일행들, 그리고 뉴위츠는 시민들이 모두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동아줄을 붙잡았다.
“흥. 나는 어디까지나 저들에게 유리하다 싶은 것만 이야기했을 뿐. 너희들이 만약 조금이라도 해코지할 기색을 보였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예. 그러실 분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최대한 몸가짐을 조심하려 했던 것이구요.”
“내가 없었으면 강압적으로 굴 수도 있었다는 말이냐?”
“설마 그렇겠습니까? 다만, 뉴위츠 님께서 계셔서 구조가 순조로울 수 있었단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테오가 핀잔을 던지는 족족 아무렇지 않게 받아버리는 모습에 뉴위츠는 조금 뿔따구가 난 모양이었다.
“흥……!”
“그보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정말 여긴 어쩌다 계셨는지요?”
“아둔한 거냐? 까마귀 고기라도 먹었어?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원래 내 고향이 이곳이라고!”
“아, 제가 잠시 깜빡했나 봅니다. 같은 질문으로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뉴위츠 님의 고향은 남부 소모론 시였던 것 같은데 착각했습니다.”
“……험험! 소모론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일 뿐이다. 하여간 말 한 마디를 꺼내더라도 조심하여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혹시 이 참사를 저지른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여쭐 수 있겠습니까?”
“라그나르라면서! 도시와 마을에 남은 흔적을 봤을 것 아니냐!”
“죄송합니다. 다만, 좀 더 확인을 거치기 위해서입니다.”
뉴위츠는 말하는 족족 ‘죄송합니다’ 라는 대답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만 죄송할 뿐이지, 어째 테오가 유도하는 대로 대화 주제가 끌려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웃긴 건 이런 만담 같은 상황이 또 싫은 건 아니라는 건데.
조금 전에 자신의 논문과 에세이를 전부 다 봤다고 하는 기특한 소리를 해서 그런가?
‘이건 마치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날 조련하고 있는 것 같은……?’
별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중요한 질문이긴 했으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습격자…… 아니, 성마교라고 그냥 말하자. 이미 너희도 범인을 예상하긴 했을 것 아니냐?”
“예. 다만, 저희도 심증만 있을 뿐입니다. 애당초 성마교는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기로 유명하니까요. 그런데 그걸 바로 알아보시니…… 뉴위츠 님의 안목을 소문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입니다.”
거기다 아부까지.
어쩜 이렇게 자신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은지.
뉴위츠는 순간 입꼬리가 씰룩거릴 뻔했지만, 질문이 가진 무게를 알기 때문에 진지한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성마교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그놈들의 목적은 북방전쟁이 패배한 데 있어서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고, 우리는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으니까. 다만, 아직 이 도시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을 거란 확신은 갖고 있다.”
“아이들…… 을 구해야 한다는 말씀이 그럼?”
뉴위츠는 말없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까드득!
이에 테오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성마교 같은 사이비에 입교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물며 몇 번씩이나 탄압을 받으며 소멸 위기에 내몰렸던 성마교는 성세를 넓히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선택했다.
정체를 위장해서 빈민이나 과부, 노약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슬쩍 접근하여 환심을 사거나.
혹은.
‘납치를 하거나.’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사르고, 거기 있는 아이들을 납치하여 세뇌를 거는 것이다.
그리하면 아주 탁월한 인간 병기가 생기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것일 테지.
아주 큰 도시를 약탈한 만큼 이번에 소모된 병력을 보충하기 좋았을 거라 여겼을 테고.
그런데 그놈들이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쫓아야지.’
테오의 두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