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신설, 6번조 (3)
테오는 푸른빛을 손끝으로 만져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로디, 이건 아무리 봐도.’
『몸이 허약해서 그런가. 잘 모르겠구나. 보약이라도 달여 먹어야 하나.』
로드브로크답지 않게 약한 척이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설마 늑골 뽑아달라고 한 것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현기증도 나는 것 같고. 그렇군! 아직 심장 수복이 덜 끝나서 빈혈이 있는 거야. 이런이런. 그대가 부탁한 걸 들어주고 싶은데, 늑골을 뽑으면 또 피를 많이 흘릴 것 같단 말이지?』
‘그런다고 안 봐 드립니다.’
『빈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느냐! 과다출혈이 심하면 용도 죽는다!』
‘그럼 제 피라도 수혈해드리겠습니다. 마침 용인으로 각성하면 제 피에도 용의 인자가 담기는 것 같더라구요?’
『모오오오옷된 노오옴.』
‘잘 알겠으니까 이것만 확인해주세요. 맞죠?’
『그래. <유물>을 사용한 흔적인 게 맞다.』
로드브로크는 결국 잔뜩 토라진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이 현장이 주는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용활검에 이어서 또 봉인이 풀린 유물의 출현……. 그런데 그걸 가드너 쪽이 사용하고 있다는 건 킨드레드도 관련이 있다는 것일 테고.’
항룡전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던 테오였지만.
아무래도 킨드레드를 만나봐야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보다 먼저 사라진 셀퍼드와 아린 일행부터 구출해야겠지만.
“가드너가 하려는 짓은 아주 간단하다네.”
브라켄이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킨카르논의 옹립(擁立).”
“쿠데타라도 획책한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저를 암살하거나 제압해서 강제로 끌어내리려고?”
테오의 손발이라 할 수 있는 백갑용기대를 억압하고, 항룡전에서 우승한 기세를 몰아간다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할지도 모른다.
그 뒷일은 모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테오의 생각처럼 브라켄도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카일 님이 직접 지명한 소가주를 강제로 끌어 내린다고? 그런 참신한 방법이 어디 있으려고.”
“그럼 무엇입니까?”
“나도 정확한 건 모른다네. 다만, 킨카르논 님이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할 거라는 말이 있더군.”
“자격?”
“그렇다네. 권좌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라나?”
자격.
테오는 짐작 가는 바가 크게 없었다.
어떤 큰 공적이라도 세워서 권좌 경쟁을 다시 이끌어보겠다는 뜻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이 푸른빛과 관련이 있나?’
만약 그 ‘자격’이라는 것이 태고룡의 유물을 사용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광룡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킨카르논도 유물을 강제로 해방하는 법을 터득했을지 모르는 것이니.
“가드너 가문의 혈랑검사들이 어디로 달아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혹시 어느 방향으로……!”
테오가 검사장에게 질문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순시검사들이 갈라지면서 황색 복장을 한 율법검사들이 나타났다.
“율법청에서 나왔습니다.”
“가드너의 검사들이 기습을 받았다는 제보를 받고 왔습니다. 조사에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은 테오가 있어서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백갑용기대 대원들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도록 주변을 교묘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저쪽에서 먼저 선수를 쳤구나!’
셀퍼드 일행과 가드너의 검사들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폭발과 함께 가드너의 검사들만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사라졌다는 것은 테오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
그러니 아무래도 율법청에 따로 신고를 해서 그들의 발목을 붙잡으려는 것 같은데.
‘왜지?’
테오는 순간 녀석들의 생각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신고를 해봤자, 백갑용기대는 간단한 조사 후에 그냥 풀려나게 되어 있었다.
누명을 씌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
그런데도 이런 짓을 했다?
이유가 뭘까?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서?’
당장 떠오르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뭔가 숨길 게 있는 거야!’
그건 아마도 유물과 관련된 것.
즉, 셀퍼드 일행이 갑자기 실종된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곳에는 보고 있는 눈이 많습니다. 같이 율법청으로 가시겠습니까?”
“백갑용기대의 2번조장 이트 볼세만이다. 구조 신호탄이 터지고, 오히려 대원이 실종된 곳은 우린데 왜 혐의를 우리에게 물린다는 거지?”
“저희는 신고받은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가드너 측에서 신고가 왔고, 소가주 디에고가 크게 부상 입은 채로 도망쳤다는 목격담도 확인되었습니다. 진상 조사를 위한 것일 뿐, 백갑용기대에 혐의를 물리고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원들을 찾아야 한다.”
“실종되셨다는 대원들에 대한 행방이나, 그 증거는 있으십니까?”
“그건…… 아직 조사중이다.”
“없단 말씀이시군요. 그럼 같이 율법청까지 가주셔야겠습니다. 현장에 대한 조사는 저희 측에서 따로 진행하겠으니 무언가 발견되는 것이 있으면 즉각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이트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다가 테오를 곁눈질했다.
여기서 셀퍼드 일행을 찾겠다고 강제적으로 움직였다간 율법청과 충돌이 벌어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서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지만, 율법청은 율법청대로 절차에 맞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윈터러에서 율법청의 말은 너무 지엄했다.
결국 테오가 나섰다.
저벅!
단순한 발걸음.
하지만.
[‘스킬: 드레이크 피어’가 발동되어 주변에 파장을 퍼뜨립니다.]
테오가 은근슬쩍 발동한 스킬 덕분에 주변은 온통 그의 색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율법검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테오의 기백은 물론, 소가주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가 그들을 긴장케 만들었다.
물론, 예의만 차릴 뿐 결정을 번복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가주가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소가주일 뿐. 율법청에 제재를 가할 권한은 없었으니까.
그만큼 율법청은 독립적인 기관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검사라는 사실을 자긍심으로 삼고 있었다.
“조사에 응하도록 하지.”
“테오!”
“소가주!”
대원들이 다급히 테오를 돌아봤지만, 테오는 가볍게 손을 드는 것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대신에 우리가 모두 율법청으로 넘어갈 필요는 없겠지?”
“그건…….”
“예. 그렇습니다.”
율법검사 중 말단으로 보이는 자가 난색을 표하려 하자, 재빨리 상사가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도 빨리 수색을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서. 그리고 백갑용기대에서도 가드너를 상대로 따로 고발하겠다.”
“그건 소가주로서입니까, 아니면.”
“백갑용기대 6번조장의 자격으로 하는 고발이다. 셀퍼드 가드너와 아린 네거티브를 비롯한 5인의 상사이고. 그럼 자격은 충분히 될 텐데?”
수하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 직계 상사가 가진 권한 중 하나였다.
테오는 은근슬쩍 그들을 6번조로 배속시키는 것으로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율법검사들은 테오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라그나르의 법규에 대해서 상세히 꾀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디에고 가드너는 오래전부터 셀퍼드 가드너를 학대했던 가해자 중 한 명이다. 셀퍼드 가드너가 가드너 가문을 빠져나와 백갑용기대에 입대하고 난 뒤에도 외가를 빌미로 자주 협박을 일삼았고, 셀퍼드 가드너는 그 때문에 항상 괴로워했었다. 이번에도 그와 관련한 공갈과 협박이 있었을지 모르지.”
“증…… 거가 있으십니까?”
“흑설에 자료를 요청하면 넘겨줄 것이다. 이미 몇 번의 교차 검증을 끝내고 확인한 사실이다.”
“……!”
율법검사들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쉽게 넘길 만한 사안이 아니었으므로.
아무리 가드너 출신이라고 해도, 셀퍼드의 소속은 엄연히 라그나르. 기수가문의 사람이 라그나르의 사람을 협박했다는 사실은 대가문에 대한 엄연한 모욕이었다.
중죄로 다뤄질 수도 있는 사안.
‘이게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가드너가 감히 소가주님의 권위에 도전한 게 되어버려!’
‘자칫 배후에 있는 킨카르논 님까지 휘말릴 수도……!’
권좌 경쟁을 둔 정치적인 사안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이전에 따로 흑룡에다 부탁한 것이 드디어 빛을 보는군.』
‘조원에 대한 조사는 철저하게 해놔야 하니까요.’
테오는 6번조 창설과 관련해서 자신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모두 흑설에 부탁해뒀었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 가치관, 야망, 필요한 것들을 알아야만 앞으로 그들을 이끌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셀퍼드에 대한 가정사도 있었다.
테오는 바로 그걸 파고 들어 판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판을 이만큼 키워버리면, 저쪽이 뭔가 꿍꿍이가 있어도 되레 발목이 붙잡힐 수밖에 없겠지. 아주 절묘한 수였어. 하하.』
‘괜한 사소한 신고로 시간을 붙잡힐 수 없으니까요. 차라리 판을 키워서 율법청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게 좋습니다. 저쪽도 뭔가를 꾸미려다가 발목이 붙잡힐 수 있을 테고요.’
“이트 님이 율법청에 대신 가주시겠습니까?”
“그러…… 지.”
이트도 테오가 어떤 노림수를 갖고 있다는 것을 금세 깨닫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자신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정치적 음모가 숨어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율법검사들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고리토 님과 하나타 님은 절 도와주십시오.”
“그럼?”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정말 저들이 유물을 사용했다면, 결국 테오의 손바닥 안이었다.
* * *
옛 중앙기무국의 터전은 현재 항룡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커다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옛 6대 후보들이었다.
-와아! 또 원샷 원킬로 끝내셨어. 저렇게 확 트여있는 데서 대체 어떻게 은신술을 펼치시는 거지?
-르제! 르제!
-누나! 날 가져요오오!
르제는 ‘흑사신’이라는 자신의 별호에 부족하지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대련장에 서자마자 은신술을 발동, 대련자가 그녀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동안 사각지대를 노려 기절을 시키거나 장외로 밀어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단 한 번뿐인 낫질에 승부가 끝날 때가 많았다.
당연히 관객들의 환호성은 엄청났다.
하지만,
-르제 님이 엄청 대단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킨카르논 님도 엄청나. 비교할 게 아닌 것 같은데?
-단순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저만한 위압감을 선사하시니…….
르제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한껏 만끽하면서도, 그 안에 섞인 몇 마디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려야만 했다.
‘열받네, 진짜.’
르제는 때마침 대기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던 킨카르논을 보았다.
아무리 뛰어넘으려 애써도 넘을 수 없었던 벽.
이제야 좀 비등비등해질까 싶었는데, 여전히 저 사람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은신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신과 다르게 킨카르논은 대련에서 별다른 기술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가 검을 휘둘렀다.
단순한 동작들의 연속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패기를 자랑했으니.
아직까지 남아있는 다른 도전자들도 킨카르논 쪽을 곁눈질하면서 경계했다.
압도(壓倒).
이미 이 항룡전은 킨카르논 대 다른 대련자들의 매치로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안시오, 저 여우는 아예 킨카르논 쪽에 달라붙을 것 같고.’
우아한 발걸음으로 킨카르논 쪽으로 걸어가는 안시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에는 패룡도 있었다.
이제 사제 관계를 더 이상 숨기지도 않는다는 뜻일까?
아마 안시오는 항복과 지지를 대가로 킨카르논에게 거래를 요청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르제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저쪽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고.’
르제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도전자 중에는 정체를 숨기는 사람도 있었다.
작은 체구에 얼굴에 익살스런 표정의 가면을 쓴 여인.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이미 그녀의 정체가 뭔지 알아챘지만, 정작 본인이 드러낼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여 아무도 거론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실력도 무척이나 뛰어나 킨카르논의 유일한 라이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까지 조심스럽게 나올 정도였으니.
그리고 저쪽은 테오의 파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바.
결국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항룡전은 테오 파벌과 킨카르논 파벌 간에 벌어지는 정치적 대리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유일하게 파벌이 없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외로운 싸움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밀릴 수는 없지.’
르제는 그림 리퍼를 꽉 움켜쥐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