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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98화 (198/224)

198화

용활검 흐룬티 (3)

테오가 광룡제를 처음 보고 받은 느낌은 아주 간단했다.

-다른 사람 같다.

말로만 듣던 것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미치광이. 학살자. 살육자. 검에 미친 괴물. 인간성을 버린 작자. 탐욕에 미친 놈…….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들었던 모습 중에 어느 것도 저 얼굴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저것이 단순한 가면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광룡제의 중심에는 광기와 마기가 넘실댔으니까.

휘휘휘휘……!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났습니다.]

[관리자가 방화벽의 등급을 더 올리기 위해…….]

“지금은 손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라서. 아신처럼 난동을 부리지는 않을 테니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겠나?”

광룡제가 메시지 쪽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러자 메시지에 잔뜩 노이즈가 끼면서 뚝 하고 사라졌다.

치이이익!

‘광룡제의 눈에도 이게 보인다고?’

힐다도 보지 못했었는데?

그동안 메시지와 시스템의 존재를 알아차렸던 것은 아신 뿐이었기에 테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걸 보고 있는 게 신기한 모양이군.”

광룡제는 테오의 시선을 읽었던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나도 제대로 보고 있는 건 아니란다. 느껴지는 것일 뿐이지. ‘이건’ 원래 선택자 중에서도 특별한 선택을 받은 자만이 볼 수 있는 것이거든. 난 망신의 힘을 일부 빌려서 감지하는 것뿐이고.”

메시지가 만신전의 힘으로 구성된 만큼, 외신들도 그걸 감지할 수 있다는 걸까.

“여하튼 어떻게든 너와는 이야기를 한번 나누고 싶었는데……. 이렇게라도 자리가 만들어져서 다행이다 싶어.”

‘역시. 기만은 아냐. 그렇다면 이 모습이 원래 이 사람의 진짜 모습…….’

[영성]까지 밝혀 봐도 광룡제에게 ‘억지로’ 지금 모습을 연기하는 듯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저렇게 광기를 뿌려대면 자신도 모르게 언행과 성격도 덩달아 포악해질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테오는 광룡제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광룡제의 관련인들은 저렇지 않았으니까.

에드, 그라나다, 트로이반의 여러 봉공들, 그리고 토르켈까지.

하나 같이 날카로웠고, 어딘가에 홀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었나?

“당신은.”

“혹시 진짜 ‘내’가 아니라 검의 구슬에 남아있는 사념이라 그런 거냐고 묻고 싶은 거겠지?”

이번에도 생각을 읽히고 말았다.

“원래 그동안 네게 영감을 주었던 사념은 분명히 내가 과거에 쓰던 검에 맺힌 또 다른 나의 잔재 흔적이 맞단다.”

광룡제는 싱긋 웃으면서 양손의 검지를 나란히 꼽았다.

“하지만 네가 흡수한 광기가 있지 않니? 그 덕분에 현실의 나와 이렇게 연결되면서.”

툭.

두 검지가 기울어지면서 끝이 서로 부딪쳤다.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이지. 네가 보고 있는 나는 바로 현실 속 나의 또 다른 의지라고 봐도 된다.”

그러다 광룡제는 쓰게 웃었다.

“물론, 이런 만남은 네게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알아. 지금까지 나는 너를 강제로 납치하려던 것에 가까웠고, 너는 내게 강한 적의를 갖고 있을 테지. 아마 지금도 내가 보이는 모습이 기만이라 여기고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테오는 가만히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니 나와 이렇게 만나는 것이 정 불편하다면 조용히 떠나마. 하지만 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달라, 그 말은 하고 싶단다.”

“듣겠습니다.”

미룰 이유는 없었다.

“저도 당신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테오는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얼굴로 광룡제를 바라봤다.

* * *

[세계가 복구되기 시작합니다.]

[저장된 다른 장소 베이스 데이터를 불러들입니다.]

파아아아……!

폐허가 된 숲 위로 새파란 광채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자 까맣게 죽은 바닥은 녹빛으로 물들었고, 깨진 유리창 같았던 하늘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따스한 봄바람까지.

마치 세계가 바뀐 것 같았다.

‘유리 영역이다.’

테오는 이것이 광룡제가 가진 심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침음을 흘렸다.

보통 검사의 유리 영역은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파괴력에 치중하지 않나?

그나마 매화궁주의 유리 영역이 매화가 잔뜩 편 정원을 연상케 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흩날리는 꽃잎들 하나하나가 오러를 담고 있어 위험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앉거라.”

광룡제 앞에는 어느새 작은 탁상과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거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와 앙증맞은 곰 캐릭터가 그려진 다과 세트까지.

“……원래 이런 취미이셨습니까?”

라그나르의 옛 가주 치고는 참 귀여운 안목이었다.

광룡제도 부끄러웠던지 헛기침을 했다.

콧잔등이 붉었다.

“험험! 오래 전에 죽은 네 할머니의 취향이었단다.”

“…….”

“진짜란다?”

“…….”

“……뭐, 나도 그게 싫지는 않았으니 이런 걸 해둔 거지만.”

“앉겠습니다.”

테오는 광룡제의 맞은편에 의자를 꺼내 앉았다.

주전자를 살펴보려는데, 광룡제가 여전히 앉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왜 그러십니까?”

“너는 역시.”

“……?”

“카일과 닮지 않았구나.”

테오는 조금 기분이 묘했다.

-너는 젊은 시절의 카일과 무척이나 닮았단다.

언젠가 매화궁주가 했던 말과 달랐으므로.

심지어 율리우스나 흑룡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광룡제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무뚝뚝하기만 한 카일 녀석과 다르게 웃을 줄도 알고, 적당히 장난도 칠 줄 아는 여유가 있어. 꼭 라그나르 같지 않다고 해야 할까?”

테오는 빤히 광룡제를 쳐다봤다.

“아, 물론 그 말이 네가 라그나르를 이을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니란다.”

“오해하지 않습니다. 저도 라그나르의 원래 가풍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요.”

“그래?”

광룡제는 왠지 모르게 반색하면서 부리나케 맞은편에 앉았다.

또르르!

귀여운 곰 캐릭터가 그려진 찻잔에 차가 가득 찼다.

따스한 김과 함께 실려 오는 차향이 너무 그윽했다.

“네. 차별을 조장하고 사람을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그런 가풍이 싫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주가 되면 그런 분위기부터 바꿀 겁니다.”

“반발이 적잖을 텐데?”

“그럴 때는 라그나르의 법칙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재미있구나. 개혁은 하되, 필요할 땐 힘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라그나르야.”

광룡제는 테오의 생각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다과상에 놓여 있던 과자를 하나 입에 물었다.

또각.

“이것 참 아쉽구나.”

“무엇이요?”

“토르켈. 그 아이도 너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 너희 두 사람이 처음부터 적으로 부딪치지 말고, 서로 속시원하게 가슴에 담긴 생각을 꺼낼 기회가 있었다면 그렇게 골육상잔의 비극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말이다.”

테오는 토르켈의 얼굴을 떠올렸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있던 그 녀석이 자신과?

“아뇨. 그래도 서로 싸웠을 겁니다.”

“음? 어째서?”

“서로가 바라는 자리는 딱 하나뿐이니까요.”

“…….”

“저도 그도, 서로 양보할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광룡제는 잠시간 말없이 빤히 테오를 쳐다봤다.

테오도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도 광룡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궁금했으므로.

“……조금 전부터 느꼈지만, 이걸로 확실히 알겠구나. 너는 카일을 전혀 닮지 않았어.”

“그럼요?”

“오히려 날 닮았지.”

또각.

광룡제가 들고 있던 쿠키가 한 번 더 부러졌다.

“그리고 아마 카일도 그걸 알았을 거다. 내 검을 네게 넘겨준 것도 바로 그 때문일 테지.”

이건 또 전혀 생각하지 못한 추측이었다.

“최대한 비슷한 검을 제련하여 나를 친다는 건가…… 역시 내 아들이지만 참 대단한 아이야.”

‘이 사람도 결국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단순한 도구로만 여기는 냉혈한이라고만 여기고 있어.’

테오는 그제야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달그락.

찻잔을 조용히 내리고, 입을 뗐다.

“절 보고 싶으셨다고 하셨지요? 그 전에 여쭙고 싶습니다. 어째서 성마교에 투신하신 겁니까?”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 회귀 능력을 되찾으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그렇단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혹은 권좌에 처음 앉았을 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모든 걸 바로잡고 싶단다. 두 번 다시는 이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딱 하나뿐이었다.

후회(後悔).

“너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니? 골육상잔, 약육강식, 강자존, 갈등, 내분, 전란…… 전부 뒤집고 평화롭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란다. 그런다면.”

광룡제는 도중에 말을 끊고 자신의 찻잔을 바라봤다.

해맑게 웃고 있는 곰인형의 얼굴.

반대로 광룡제의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슬펐다.

그 순간, 테오는 광룡제가 바로잡고 싶다는 게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오래 전에 죽은 네 할머니의 취향이었단다.

‘그러고 보니 광룡제의 내분 중에 이를 말리려던 안주인이 암살당했다던 소문이 사실이었나?’

테오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다가 덤덤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름 없는 군주>는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가려 합니다. 전혀 이치가 맞지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이용한다. 이 또한 라그나르의 가르침이지.”

“……그래서 라그나르를 더 혼란으로 몰아넣으시려는 겁니까?”

“되감기만 하면 된단다. 그런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테오는 광룡제와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은은하게 담긴 광기까지도.

‘능력만 되찾으면 회귀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거야.’

“다시 시작했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럼 또 다시 시작해야지.”

“그 뒤에도 실패한다면?”

“선택자가 받은 축복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그리고 어긋난 것을 바로 잡을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할 수 있다는 거란다.”

“당연히 그 세상에서 제 자유의사 따윈 없겠군요.”

“하지만 네가 그리려고 한다는 [바뀐] 라그나르가 있겠지.”

이거였군.

테오는 토르켈이 왜 광룡제를 추종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현재의 라그나르를 증오했던 그라면 모든 걸 바로 잡겠다고 나선 광룡제가 구세주처럼 보였겠지.

그리고 트로이반의 가솔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류가 되지 못한 지류(支流)들.

광룡제가 능력을 되찾으면 지류인 그들이 본류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역사적으로도.

광활한 북부와 동부를 모두 다스리는 거대 가문의 주인이라니.

야심을 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꿔볼 만한 그림이지 않은가?

테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은 세상이 찾아올 때까지 무조건 당신만 믿어라……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번엔 광룡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너는 그냥 편하게만 있으면 되는 것인데도?”

“어차피 당신이 바꾼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결국 그때 가면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길 겁니다.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거구요. 그러니 제 삶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드르륵.

테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솔직히 당신이 바꿀 세상이 옳을 거라고 확신하지도 못하겠고 말입니다.”

“……카일과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광룡제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딘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는 얼굴.

입가엔 씁쓸함이 어렸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결국 너는 선택자임에도 앞으로 계속 나갈 생각만 하고, 나는 되감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애당초 서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반대인데 설득은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이걸로 설득은 서로 파탄난 셈이었다.

테오는 바닥에다 거꾸로 꽂아놨던 용활검과 용살검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광룡제의 광기가 언제 칼날처럼 자신의 목에 틀어박힐지 모르므로.

“걱정할 건 없단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해칠 순 있어도, 할아버지는 어떻게 손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을까?”

뭐?

전혀 생각지 못한 말.

테오의 눈이 커지는데.

드드드득!

갑자기 광룡제 뒤편으로 공간이 활짝 열리면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타났다.

절대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문’이 출현합니다.]

“저곳으로 나가려무나. 네 아비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 할애비의 안부도 잘 전해주고.”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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