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87화 (187/224)

187화

광룡제의 후예 (2)

확실히 토르켈의 말에 틀린 구석은 없었다.

라그나르의 체계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광룡제가 트로이반을 설립했다면, 라그나르가 자랑하던 4대 부대도 고스란히 탄생했겠지.

새로운 백갑용기대와 흑색철기대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친형제는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저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진짜 형제들이라 할 수 있으니.”

토르켈의 잔혹한 웃음이 점차 커졌다.

“동생아, 오늘 너희들의 죽음을 계기로 진짜 라그나르가 어디인지를 전 세계에 톡톡히 알려주마.”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작정했던 것인가.

확실히 백갑용기대의 전멸이라면 제국과 세계가 받게 될 충격도 아주 클 게 분명했다.

애당초 이 무대는 함정이었던 모양이었다.

백갑용기대를 없애고, 트로이반의 기세를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함정.

“라그나르가 콩가루 집안이라는 것을 아주 만방에 대고 광고하려는 거냐?”

“애당초 이 집안에 명예라는 것이 남아있기나 했나?”

토르켈은 비웃음과 함께 높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달려오던 새로운 흑색철기대가 일제히 창을 45도 각도 위로 올렸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백갑용기대도 마력탄을 꺼내기 시작했으니.

손을 힘차게 내린 순간, 투창과 공습이 시작되었다.

“전원 방어 준비-!”

테오는 마력을 가득 담아 사자후를 터뜨리면서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거세게 위로 휘둘렀다.

화아아악!

칼날에 맺힌 오러가 허공으로 튀어오르면서 하늘 높이 퍼져나갔다.

임시로 만든 오러 실드.

면적이 너무 넓어 큰 위력은 없을지 몰라도, 조금이나마 파괴력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을 터였다.

“아, 정말 흑설 놈들 일 안 하낭! 미치겠넹! 이딴 건 듣지도 못 했다궁!”

“1번조와 조장들은 전부 영역기(領域技)를 발동해-!”

“일반 대원들은 자기 보호에 집중해라-!”

아모레와 1번조도 토르켈을 구조하기 위해 몇 번씩이나 접근을 시도하던 흑색철기대의 방해를 멈추고, 일제히 테오에 손을 보탰다.

순식간에 오러 실드가 몇 겹이나 더해지고, 비교적 실력이 떨어지는 대원들은 스스로 오러 실드를 몸에 감았다.

그 순간을 틈타 토르켈과 흑색철기대는 일제히 외곽으로 도주를 시도했고.

곧이어 더욱 거센 폭격이 시작되었다.

콰아앙! 콰앙! 콰앙!

콰르르릉! 콰르르르-

우르르릉……!

테오와 백갑용기대가 있는 곳에 쉴 새 없이 공세가 더해지면서 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퍼졌다.

지반이 내려앉고, 불길이 몇 번씩 치솟았다.

검은 매연이 꾸역꾸역 토해지면서 순식간에 제단을 비롯한 의식 장소가 쑥대밭이 되었다.

하지만 트로이반의 흑색철기대와 백갑용기대는 폭격을 멈추지 않았다.

라그나르의 백갑용기대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흔적 자체를 지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콰콰콰콰콰!

여진이 계속 이어졌다.

“드디어…… 이 손에 들어왔군.”

토르켈은 어느새 만개한 검은 꽃에 다다르며 창을 휘둘렀다.

성마교의 일만 교도와 흑색철기대의 전사자들이 흘린 피를 흡수하며 자란 꽃은 흑진주처럼 반짝거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싹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꽃은 아주 허망하게 유리처럼 박살 나 흩어졌다.

대신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토르켈의 눈동자만큼이나 새카맣게 빛나는 흑구슬이었다.

우웅! 우우웅!

토르켈은 손을 뻗어 흑구슬을 쥐었다.

순간, 막대한 광기와 마기가 손바닥을 비집고 들어왔다.

자유롭게 순환하던 마력이 금세 폭발할 것처럼 덜컹거렸다.

혈관이 부풀어 올라 팔뚝 전체가 시퍼렇게 변했다.

끔찍한 고통이 이어졌지만, 토르켈은 웃었다.

이 구슬이야말로 조부님께서 그토록 오랫동안 얻기를 갈망하시던 보물이었으니.

‘망신의 구슬……. 그 존재의 염(念)이 담겼으니, 조부님께서 흡수하신다면 충분히 교주의 자리까지 노리실 수 있겠지.’

갑작스러운 <이름 없는 군주>의 봉인은 성마교에 있어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정작 광룡제와 트로이반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현재 광룡제의 성마교 내 직급은 5사도.

사도(使徒)라는 직위가 가진 상징성이 대단한 만큼 숫자가 서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가장 마지막에 성마교에 가담한 광룡제의 입지가 약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망신의 구슬은 그런 입지를 단번에 뒤집어줄 터였다.

아직도 억지로 뒤집어쓰고 있어야만 하는 인간의 탈을 완전히 벗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신(神).

저 하늘 너머에 존재한다는 지고의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열쇠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랬다.

광룡제는 승천(昇天)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토르켈은 신이 된 광룡제의 사도가 되어 성마교의 남은 파벌들을 제거하거나 통합하고, 트로이반과 라그나르를 합병하여 세계를 지배하게 되겠지.

이것이야말로 그들 조손이 만든 계획이었으니.

토르켈은 벌써부터 이 세계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듯한 희열에 사로잡혔다.

콰직!

토르켈은 주먹에 힘을 바짝 주었다.

망신의 구슬이 부서지면서 새어나온 마기와 광기가 이제 손바닥 뿐만 아니라, 전신의 모공을 모두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츠츠츠-

그리고 그럴수록 토르켈의 두 눈은 점점 더 까맣게 물들었다.

* * *

콰앙! 콰앙! 콰아앙!

테오는 정신없는 폭발 지옥 속에서도 두 눈에 [영성]을 쏟아부어 토르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저 멀리. 흑색철기대의 보호를 받은 채 구슬을 흡수하려는 토르켈의 모습이 보였다.

저걸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동시에 시야와 감각이 바짝 좁아지며 구슬에 집중되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마음 한편에 충동적인 본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저걸 갖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흠칫!

‘……뭐지?’

테오는 화들짝 놀라 자신의 내면을 돌아봤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든 거지?

-저걸, 저걸 너무나 갖고 싶다.

그때, 다시 들린 속삭임.

-가지자.

그것은 마치 악마가 속삭이는 것처럼 아주 달콤했다.

-가지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고.

이상하게 구슬은 테오의 눈에 너무 익숙했다.

분명히 처음 보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냐. 본 적이 있어. 어디였지? 대체?’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동안, 테오는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린 뒤에야 구슬이 왜 익숙하게 느껴졌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주셨던 검의 구슬!’

카일은 자신의 처소에서 과거에 쓰러뜨렸던 숙적의 검 중 하나를 우그러뜨려 테오에게 건네준 적이 있었으니.

그동안 테오는 검의 원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 속에 담긴 염(念) 덕분에 검술에 있어 수많은 영감을 받곤 했다.

그렇기에 원주인이 살아생전에 뛰어난 검의 고수가 아니었을까 하고 예상했었는데.

그런데 지금 토르켈의 손에 들린 것과 너무 닮았으니.

‘그 검…… 광룡제의 검이었구나.’

그제야 테오는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일이 그에게 주려 했던 안배를.

‘언젠가 내게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을 아시고…… 미리 준비를 하신 거였어.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맞설 수 있도록.’

화아악!

구슬 쪽으로 좁아졌던 테오의 시야가 다시 넓어졌다.

‘아니. 가져올 수 있도록!’

내면에서 발생하던 충동은 바로 검의 구슬이 바라는 소망이었으니.

토르켈이 구슬을 흡수해서 광기의 양을 증폭시키려는 것처럼, 검의 구슬도 <이름 없는 군주>의 구슬을 삼켜 부족한 염을 보충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테오는 검의 구슬이 발산하는 염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대로 염에 휩쓸리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테오가 아닌 ‘광룡제가 되다 만’ 상태가 되고 만다.

카일은 테오가 그러지 않을 거란 믿음에서 저 구슬을 흡수하라는 지시를 내렸을지도 모르지만, 테오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테오는 생각을 뒤집었다.

‘케르토.’

『부르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케르토수쿠스의 웃음기 어린 답변이 머릿속을 울린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한 줄 떠올랐다.

[용의 군단이 출몰합니다.]

콰아아아!

지면이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트로이반의 흑색철기대가 있던 곳에서 다수의 데저트 웜이 튀어나와 아가리를 쩍 벌렸다.

“이런……!”

“군단을 물려!”

트로이반의 흑색철기대는 투창을 멈추고 다급하게 전열을 뒤로 물리려 했지만,

순식간에 약해진 지면에 철갑마들이 일제히 발이 빠지면서 움직임이 더뎌지고 말았다.

데저트 웜들은 순식간에 철갑마들을 씹어 삼켰다.

곳곳에서 말의 울음소리와 대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에에엑!

트로이반의 백갑용기대 쪽도 마찬가지.

상공에서 활강을 시도한 그리핀이 순식간에 와이번들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페어리 드래곤이 얼음 화살 마법을 시전해서 와이번들의 날개를 모조리 꿰뚫었다.

그 밖에 다른 용들도 쉴 새 없이 튀어나오면서 전황을 어지럽게 만들었으니.

“후우……! 살았다!”

“개새끼들, 우리를 갖고 놀았다 이거지? 이제는 우리 차례라고!”

계속 묵묵히 공격을 막기만 하던 백갑용기대도 다시 움직였다.

조별로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진 그들의 두 눈에는 이제 독기가 가득했다.

어떻게든 가문을 배신하고 모욕한 이들을 응징하겠다는 생각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콰콰콰콰-

그렇게 전장은 다시 난전으로 돌아가고,

테오는 토르켈이 있던 쪽으로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여의주태양.’

고오오오-

휘휘휘휘!

토르켈의 머리 위. 샛노란 뇌정구가 생성되면서 팽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뇌정구는 주변에 있는 에너지란 에너지는 몽땅 빨아들였다.

당연히 거기엔 토르켈이 흡수하려던 망신의 구슬에서 새어나온 광기와 마기도 같이 있었다.

“이게 무슨!”

테오가 여의주태양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토르켈도 미처 이것은 생각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이를 악물면서 어떻게든 망신의 기운을 최대한 많이 흡수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1을 겨우 흡수할 때쯤에 뇌정구는 10을 넘게 가져갔으니.

뇌정구는 금세 거대한 태양이 되어 하늘에 떠억 하니 박히고 말았다.

마기와 광기가 뒤섞여 검은 흑점도 곳곳에 보여 불길함만 더했다.

‘무거워.’

테오는 영혼과 육체를 압박하는 어마어마한 압력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망신의 구슬을 삼킨 뇌정구가 품고 있는 열력은 그만큼이나 대단했으니.

“라그나르와의 인연을 모두 끝내고 싶다고 했지? 그럼 정말 그렇게 해줄게.”

“아, 안……!”

토르켈이 불길한 마음에 다급히 창 쪽으로 손을 가져갔지만.

그보다 먼저 테오가 힘차게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휘둘렀다.

<일식>

서걱!

뇌정구 위로 선이 길쭉하게 그어졌다.

잘게 부서진 태양의 조각이 수십, 수백 개의 낙뢰가 되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콰르르르릉-!

그 거대한 해일 앞에 노출된 트로이반의 백갑용기대와 흑색철기대 대원들은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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