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임시 5번조장 (4)
-강습 20여 분 전.
율리우스는 저 멀리 트로이반의 군영이 보이기 시작하자 대원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며칠 전, 흑설이 우연히 한 가지 첩보를 입수했다. 성마교가 모시는 마신은 언제부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활동이 중지되고, 저들이 부랴부랴 그걸 해결하기 위한 의식을 준비 중이라는 첩보가.」
이미 테오는 영묘에서 겪은 사건들에 대해서 전부 상부에 보고를 한 상태였다.
<이름 없는 군주>의 임시 봉인 사실까지 전부.
하지만 상부에서는 그런 공적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가뜩이나 성마교에 단단히 찍힌 테오가 더 위험에 처할까 봐 내린 결론이었다.
「성마교의 부활식이 벌어지는 장소는 군영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야산이다. 그곳에서 비밀리에 제단을 쌓고 인신공양을 준비하고 있지. 아마도 그건…… 너희들이 그동안 봤던 어느 광경과 비교해도 참혹할 거다.」
율리우스의 목소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하지만 테오는 이상하게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맛봤다.
율리우스에게 짙은 살의가 깔려 있었다.
‘대장님과 성마교 사이에 어떤 악연이 있었나?’
테오의 눈이 살짝 커지는 동안, 전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절대 거기에 충동적으로 끌리지 않게 유의하도록. 특히 조장들은 각 조원들을 확실하게 챙기도록 하고. 작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율리우스의 설명은 아주 간단했다.
1. 백갑용기대는 강습을 시도, 부활식을 직접 막는다.
2. 성마교의 세력과 충돌하는 사이, 지상에 대기 중이던 흑색철기대가 곧바로 정면에서 침투하여 적을 완전히 분쇄한다.
3. 적의 지원이 있을 것을 대비해 트로이반의 본대는 라그나르 본대에서 직접 견제한다.
「이번 작전에는 가주 그라나다의 암살 시도도 있으므로, 흑룡과 빙룡, 검룡, 환룡까지 모두 참전할 예정이다.」
9룡 중 무려 다섯이나 개입하게 된 작전.
그만큼 부활식을 막는데 라그나르가 크게 신경 쓰고 있단 뜻이었다.
‘아니면 그만큼 토르켈이나 그 배후가 라그나르에 위협적이라고 느끼고 있던가.’
계승권자로서, 그리고 흑색철기대의 대장으로서 토르켈이 가지고 있는 입지는 아주 대단했다.
그런 그가 세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대내외적으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혼란 중에 전사’한 것으로 이 사실을 묻으려는 것이다.
9룡들이 개입하는 대규모 작전이라면 더욱더 신빙성이 있겠지.
‘그리고 영웅의 죽음으로 포장해서 사기를 끌어올릴 테고.’
흑룡은 이미 몇 수나 앞을 내다보고 이번 계획을 짠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일에는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알겠나?」
율리우스의 엄숙한 명령이 귓가에 내리꽂혔고,
「존명.」
2번조장 이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후후! 이렇게 다들 한데 모인 것도 오랜만인데, 당연히 실수하면 안 되지. 걱정 마십시오. 제가 전부 쓸어낼 테니.」
3번조장 고리토는 실실 웃으며 맡기라는 듯 가슴을 두들겼고,
「절대 실수 없게 처리하겠습니다.」
4번조장 하나타는 따스한 말투로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여간 우리 대장, 걱정도 많다니까. 뭔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담. 얘네들 벌써 내일모레면 마흔이야, 마흔!」
1번조장 아모레는 장난스럽게 ‘호호호!’하고 웃었다.
그 외에 다른 대원들도 한두 마디씩 덧붙였다.
문제 없다는 듯.
저마다 보이는 다양한 반응들이 백갑용기대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와…… 평균 연령 올려 치는 거 보소. 그게 누구 때문에 그렇게 확 올라가는 거더라?」
「뭥? 꼬우면 덤비던강.」
「그 혀 짧은 소리 좀 그만 내면 안 돼요? 내일모레면 일흔이나 되는 양반이…….」
「야, 안 닥쳐?」
쑥덕쑥덕, 수군수군.
테오는 계면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자신도 조장을 맡은 만큼 뭐라고 말은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확실히 시끄럽기로는 우리에 못지 않은데?
-백갑용기대라잖아. 우리가 전멸한 뒤에 만들어진 후신(後身). 그러니 그 전통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 음홧홧홧!
-그래도 우리 때는 으이, 상관의 말이라면 으이, 아주 기가 막히게 따랐는데, 으이?
-지랄한다. 대장 몰래 공금 횡령해서 낮술 처먹다가 걸려서 뒈지게 털리던 새끼가…….
-야, 그때 너도 같이 있었거든?
영묘검도 시끄럽게 울리는 통에 도통 정신이 없었다.
「야, 5번조장! 너는 그렇게 생각 안 하지? 대원들 배려하지, 조장들 챙겨주지, 세상 천지에 나 같은 누나가 어디 있어, 응?」
「그런 걸 두고 아줌마의 오지랖이라고 하는 겁니다만.」
「아, 너희들은 좀 닥치고 있으라고! 나 지금 5번조장한테 묻는 중이거든?」
테오는 쓰게 웃었다.
대체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그때, 로드브로크가 나섰다.
『하하하! 답답한 반려로고. 다른 때는 잘도 주둥아리를 털더니 이럴 땐 영 약하니, 원.』
‘……그래도 방법이 없잖습니까?’
『내가 비책을 알려줄 테니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테오는 로드브로크가 말한 그대로 말을 옮겼다.
「나이가 중요한가요? 액면가가 중요하지. 처음에 1번조장 님 뵀을 때 제 친구인 줄 알고 결례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다른 조장들이 모두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다 아모레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들었징? 오호호호! 그래!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 거지! 다들 늙어빠져서는!」
「……저거 저거, 어린놈이 벌써 줄 서네.」
「혀 드리블 보소. 아주 예술인데.」
율리우스는 조장들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입대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조장 자리를 꿰차서 혹시 겉돌지나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테오는 자기 자리를 잘 잡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작전 직전에 이런 분위기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험험!
다행히 대원들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작전보다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너희들의 안위다. 위험하다 싶으면 지체 말고 빠져. 뒤는 내가 책임질 테니. 알겠나?」
「옛, 썰!」
「존명!」
「존명!」
조장과 대원들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들이 발산하는 전의(戰意)가 다시 날카롭게 벼려지며 하나로 뒤섞였다.
「그럼 가자.」
율리우스의 명령과 함께,
케에에엑!
강하가 시작되었다.
* * *
백갑용기대의 강습은 아주 간단했다.
비룡들이 먼저 다리에 묶어둔 폭탄 상자를 해제한다.
그리고 정신없는 순간을 틈타 대원들이 강습을 시도한다- 였다.
쾅! 콰콰쾅!
콰르르릉!
우르르-
제단 위로 수십 수백 개의 마력 폭탄이 쏟아졌다.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제단이 붕괴하고, 불길이 솟구쳤다.
일만 명의 제물을 희생해서 만들어진 검은 꽃봉오리도 큰 타격을 입었다.
“적습이다아!”
“의식을 망치려 한다!”
“물! 어서 물부터 가져와! 꽃이 불탄다고!”
성마교의 혈사제들이 혼비백산해서 돌아다니는 광경은 백갑용기대 대원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 재미있는데?”
“광신도 놈들은 뚜까패야 제맛이지. 으흐흐!”
평상시에는 교구장이나 주교의 명령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더니.
그만큼 이번 의식이 저들에게 중요하다 싶었다.
덕분에 대원들은 아주 수월하게 강하에 성공했고, 빠른 속도로 혈사제들을 처치했다.
특히 2번조와 3번조의 활약이 가장 눈부셨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난전(亂戰).
혈사제들이 전열을 갖추지 못하게끔 중간 허리허리를 끊어놓는 것이었다.
퍼억!
쿠르륵-
“대체 뭣들을 하는 거냐! 꽃부터! 꽃부터 보호하지 않고! 이쪽…… 크아악!”
“유크란 교구의 사제들은 제단 보호를! 바콘 교구의 사제들은 이단들을 막……! 컥!”
어떻게든 혼란을 수습하려던 교구장이나 주교 같은 중·하급 간부들을 ‘사냥’하는 것은 4번조의 임무였다.
조장 하나타는 원래 율리우스와 아모레를 제외하면 백갑용기대에서 가장 검술 실력이 뛰어난 검사.
당연히 조원들도 검술에 특화되어 합격술에 아주 능숙했다.
채채채챙!
‘역시 <혈광 조화>는 찾아볼 수도 없구나.’
하나타는 피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주교의 목에서 검을 뽑으며 눈을 반짝였다.
강하 전에 율리우스가 슬쩍 흘렸던 말이 맞았다.
-저들의 신이 봉인되었다는 건 <은총>도 봉인되었다는 뜻이다. 혈광 조화를 못 부리는 혈사제는 혈사제라고 할 수도 없지. 추기경은 내가 맡고 있을 테니 그 안에 최대한 많이 처치해놔.
성마교의 혈사제가 무서운 것은 그들이 자랑하는 무한한 마력에 숨어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절대 두려워할 이유 따윈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가장 분통을 터뜨린 건 바로 추기경 벡터였다.
“이놈들이…… 감히 신성한 의식을 방해해……?”
벡터의 얼굴은 이리저리 튀어나온 핏대들로 울긋불긋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에드 쪽으로 시선을 홱 하고 돌렸다.
“트로이반은! 대체 트로이반은 뭘 하고 있던 것이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라그나르가 이런 작전을 펼치는데 그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뭘 하고 있었느냐는 질책.
하지만 에드는 웃었다.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웃음.
“글쎄.”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보다 지금은 이걸 막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소만.”
벡터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려다가 갑자기 머리를 덮쳐오는 공격에 황급히 몸을 틀었다.
콰아앙!
쿠르르릉-
그가 원래 있던 자리로 검은 검기가 훑고 지나가면서 거친 먼지 구름을 일으켰다.
“아쉽군. 단번에 보내줄 수 있었는데 말이지.”
벡터의 시선이 황급히 그쪽으로 돌렸다가 인상을 굳혔다.
율리우스가 한쪽 어깨에 검을 얹은 채로 이쪽을 보며 차갑게 웃고 있었다.
“마룡……!”
그동안 가주 카일과 함께 성마교를 숱하게 괴롭혀왔던 적장의 이름.
벡터도 그와 몇 번이고 충돌을 벌인 전적이 있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 그 옆에 계신 항룡께서도 아주 오랜만인 듯하고.”
“그렇군. 오랜만이오. 마룡.”
에드는 바람에 펄럭이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면서 똑같이 웃었다.
그리고,
파앗!
갑자기 에드의 신형이 움푹 꺼진다 싶더니 중간 지점쯤에서 나타나 역시나 몸을 움직였던 율리우스와 충돌했다.
콰아아앙!
콰르릉-
두 사람이 꺼낸 검의 격돌과 함께 오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장장 수십 미터에 달하는 범위의 지반이 내려앉고, 그 위로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뒤엉키면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드디어 잡았군. 쥐새끼.”
“쥐새끼라니.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은데.”
“남의 집에 슬금슬금 기어들어 와서 창고에 있던 식량이나 갉아먹으면. 그게 쥐새끼가 아니고 뭐지?”
“흠, 하긴 그도 그렇군. 하지만 틀린 부분이 딱 하나 있어.”
에드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비릿하게 지은 웃음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나는 윈터러를 갉아먹으려던 게 아니야. 되찾으려 했던 거지. 왜냐하면.”
파아아아-
에드가 든 검 위로 검기가 잔뜩 올라오며 주변 공간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잿빛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의 유리 공간, <대재해(大災害)>가 발동하려 하고 있었다.
“윈터러의 원주인은 바로 우리였으니까.”
“헛소리-!”
율리우스도 유리 공간, <종말의 땅>을 전개했다.
두 명의 초인이 빚어내는 영역 다툼이 시작되었다.
쿠르르르……!
* * *
바로 그때,
두두두두-!
어느새 제단 근처까지 흑색철기대가 도착하며 작전대로 성마교를 정면에서부터 분쇄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리고.
테오가 움직였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