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82화 (182/224)

182화

임시 5번조장 (2)

테오도 드래고니안의 전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고대룡의 육체적 형질을 조금씩 깨달은 일반 용종과 다르게, 나가와 함께 유일하게 고대룡의 지능적 형질을 깨우친 종족.

그렇기에 마법을 구사할 줄 알며 때로는 신비로운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현재 인간 세계에 남아있는 용인의 전설은 대부분 그들의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드래고니안은 집단 생활을 하는 나가와 다르게 개인주의 성향이 아주 강했으니.

그렇다 보니 후손을 보기가 힘들어 오늘날에는 대부분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하지만 저 여인은.’

『그래. 딱히 용종의 외형이 보이지 않지. 인간에 가까워.』

로드브로크가 히죽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니 더 대단한 것이다. 외형을 감출 만큼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단 뜻이니까.』

테오의 눈이 순간 빛났다.

『쯧쯧. 눈빛이 딱 변한 걸 보니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테오의 인재 욕심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로드브로크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혹여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지……?”

‘검고 푸른 새’는 테오가 잠시간 말이 없자 조금 주눅 든 모습이 되었다.

테오는 간단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드…….”

「래고니안을 여기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그제야 ‘검고 푸른 새’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그 순간.

화아악!

갑자기 ‘검고 푸른 새’의 몸이 빛무리에 잠긴다 싶더니 이질적인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쿠드득-

왼쪽 관자놀이를 뚫고 직각 모양의 뿔이 삐져나오고, 상의가 부풀어 오른다 싶더니 날개가 돋아나왔다.

“시바라 쿰!”

“당골! 당골! 미르 요르나 호마벰!”

“다나나!”

원주민들이 어쩔 줄 몰라 웅성대는 동안, 빛무리가 금세 가시면서 ‘검고 푸른 새’의 변한 외형이 드러났다.

뿔과 날개, 꼬리와 송곳니까지. 인간과 용의 형상을 절묘하게 반반씩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 부드럽던 분위기도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운 뭔가가 풍겼다.

『드래곤 피어도 어느 정도 깨달은 듯하고. 확실하군. 이 아이, 순수혈통이다. 우리 때에도 이만한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신기하군.』

테오는 그게 뭔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말하기 좋아하는 로드브로크가 다 설명해줄 테니까.

『하위 용종에게 있어 혈통이라는 건 ‘얼마나 고대룡의 피에 가까우냐’이다.』

‘피?’

『그래. 원래 용종이라는 종족 체계 자체가 우리네들이 세계를 수호하는 와중에 나온 부산물에 가까우니. 우리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능력 또한 깊은 법이지.』

로드브로크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검고 푸른 새’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내가 그동안 봤던 순수혈통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아주 깊은 피를 갖고 있는 듯하다. 이 정도면 아예 1세대라고 봐도 될 것 같은데. 누구지?』

1세대라면 어떤 고대룡에게서 바로 직접 잉태된 존재란 뜻일까?

그렇다면 나이도 최소 천 년은 넘게 먹었다는 건데…….

‘그만한 사람이 아직 살아있었다고?’

이쯤 되니 테오도 ‘검고 푸른 새’가 신기하게 여겨졌다.

‘검고 푸른 새’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는 원주민들을 달래면서 테오에게 말했다.

“제가 드래고니안이라는 사실이 비밀이긴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니라 괜찮답니다. 그래도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아직 이 땅에 드래고니안이, 그것도 순수한 피를 간직한 분이 남아계실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검고 푸른 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가 드래고니안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도 대단하신데, 그런 것까지 알아내실 줄이야.”

“아, 혹시 숨기고 계셨던 것이라면 말조심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옛날의 일에 불과한 것을요. 호호호. 역시 백탑의 문을 여신 분은 다르시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테오는 ‘검고 푸른 새’와 마주 보며 웃었다.

『저 뻔뻔한 낯짝 좀 보게나.』

‘그럼 직접 모습을 드러내면 되시는 것 아닙니까?’

『귀찮으니라. 저런 것들의 인사까지 일일이 받으려면 얼마나 신경 쓰일 게 많은데.』

하여간 제멋대로시라니까.

테오는 쓰게 웃었다.

『지금 모독적인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점점 뻔뻔해지는 것까지 시구르드를 닮아가는군.』

테오는 의도적으로 로드브로크가 혀 차는 소리를 무시했다.

“다만, 제 견문이 짧아 어느 분의 축복을 받으셨는지까지는 읽지 못했습니다. 혹시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검고 푸른 새’의 두 눈이 호선을 그렸다.

“어렵지 않지요. 아마 문지기님께도 가까운 분이실 겁니다.”

테오는 짐작 가는 바가 없어 두 눈만 끔뻑였고, 로드브로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그나르의 수호룡이신 로드브로크 님이시랍니다.”

“예……?”

『엥?』

테오는 황급히 로드브로크의 영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드브로크의 두 동공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애가 있으셨습니까?’

『미쳤느냐! 한평생 망신 놈과 싸우느라 남자 손도 한 번 제대로 못 잡아본 처녀에게 감히 망발을!』

‘그럼 저분은 뭡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길길이 날뛰는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그럼 대체 뭐지?

‘검고 푸른 새’가 가볍게 웃었다.

“역시 놀라시는군요.”

“예. 뭐, 아무래도…….”

“편하게 당골이라고 불러주시면 된답니다.”

‘검고 푸른 새’는 당골이 이들 말로 ‘신녀’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당골 님과 관련된 전승이 가문에 전래된 게 없다 보니.”

“그럴 수밖에요. 저는 만신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

“로드브로크 님이 겨울산맥으로 돌아가시기 이전. 그분이 세계에 흘린 ‘흔적’ 중 하나를 만신전에서 개입하여 빚어낸 형상이 바로 저랍니다. 만신전으로 이어지는 백탑을 지키게끔 하기 위해서요.”

테오는 그제야 얼추 이해가 되었다.

‘만신전의 바깥은 당골이, 안쪽은 케르토수쿠스가 지키도록 만든 거야. 만신전의 입구를.’

『……가면 갈수록 마음에 안 드는군. 만신전 놈들.』

자기도 모르게 피조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만신전의 일방적인 행동 때문일까.

어쩐지 시구르드를 직접 만났을 때부터 로드브로크는 만신전에 깊은 ‘미움’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백탑을 지키는 임무는 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그 때문에 이들의 도움을 빌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백탑의 원주민들을 만든 게 당골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절 찾아오신 이유는.”

“오랜 기다림 끝에 진짜 문지기님이 찾아오셨으니까요. 제 오랜 사명도 끝난 셈이니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당골이 우아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만약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문지기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문지기님이 이끄시는 용의 군단에 한 팔 보탬이 되어드릴 것이며.”

원주민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테오에게 내밀었다.

붉은 비단 보자기로 덮여있는 것.

당골이 보자기를 아래로 끌었다.

순간, 테오의 눈이 커졌다.

“이것 또한 드리겠습니다.”

보자기에 감싸져 있던 것은 반지였다.

아무런 특색도 없는 작은 반지.

하지만 푸른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파아아-

태고룡의 유물이었다.

* * *

어느새 임무 개시 시각인 새벽 4시가 되었다.

테오는 5번조의 호위를 받으면서 소집 장소에 도착했다.

백여 마리도 넘는 백룡이 편대를 이루며 하늘을 빼곡히 채우는 광경은 그 자체로도 장관이나 다름없었다.

“…….”

“…….”

“…….”

지상에는 밤하늘만큼이나 새카만 갑주로 무장한 흑색철기대가 진열해 있었다.

다수의 부상병이 빠져 평소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세는 더 날카로웠다.

위쪽을 쳐다보는 백여 개의 흑색 투구 아래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말하는 방법이라도 잃어버린 것처럼.

하지만 백갑용기대 역시 별다른 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임무 수행일 뿐.

다른 대화는 필요 없었다.

“가자.”

토르켈의 명령과 함께,

두두두두-!

케에엑!

진격이 시작되었다.

* * *

케에에엑!

움브라가 길게 괴성을 지르면서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5번조는 전체 대열 중에서 가장 후미에 위치했다.

덕분에 테오는 뒤에서 백갑용기대의 다른 대원은 물론, 흑색철기대의 움직임까지 모두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유물이 이런 곳에 또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테오는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 유물은 바로 봉인이 열리진 않는군요.

-예. 그 유물의 가디언은 바로 저니까요.

-그럼?

-예. 제 부탁이 바로 그 유물을 얻기 위한 시험입니다.

-뭡니까, 부탁이?

-그건…….

당골이 내건 시험 조건은 아주 간단했다.

+

[시나리오 퀘스트 #8]

백탑을 수호하던 라쿠나쿰 족에게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십시오.

· 난이도: A+

· 보상: 태고룡의 유물

· 실패시: 사망

+

당골의 설명은 아주 간단했다.

백탑의 일족은 현재 오랫동안 추구하던 일족의 비원을 성취했다는 자긍심에 잔뜩 고무된 상태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 원로 세대 중 몇몇은 앞으로 젊은 세대가 가지게 될 일말의 불안감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나중에는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 테니까. 당골은 새로운 희망과 사명감을 제시하고 싶은 거야.’

어떻게 보면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퀘스트였다.

일족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사명감을 쥐어주라니.

어떻게 보면 생각지 못한 짐덩이를 안게 된 것일 수도 있었지만.

‘차라리 잘 된 셈이었어.’

하지만 테오는 별다른 걱정이 들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는 크림힐트 기사단도 있지 않던가.

그가 부르면 언제든 찾아와 단단한 기반이 되어줄 사람들.

너무 쉽게 그 기반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재들이 추가된 셈이었다.

그래서 테오는 당골에게 부유군도로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크림힐트 기사단을 찾아가십시오. 제가 보냈다고 하면 바로 머물 곳을 마련해줄 겁니다. 고향을 등지시는 걸 거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황이 여기보단 나을 겁니다.

원주민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흑색철기대는 곧 곤욕을 치르게 될 예정이었다.

그 뒤에 그들이 화풀이로 어떤 해코지를 벌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부족 중에서 자원자를 받아 기사단과 같이 훈련을 해두십시오. 머지않은 시일 내에 제가 다시 부르겠습니다.

테오는 장기적으로 크림힐트 기사단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었다.

‘용기사가 단순히 와이번 라이더만 있으리란 법은 없지.’

공군이 있다면 육군이나 해군이 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상에서는 드레이크 라이더가, 해상에서는 서펀트 라이더가 있어서 부유군도를 지킨다면?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법 부대도 운용이 가능했다.

페어리 드래곤과 드래고니안. 그들을 지키고 도울 수 있는 기사들이 있다면 더 큰 전력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테오가 백갑용기대를 손에 넣어 크림힐트 기사단과 합칠 수 있다면.

그때는 전무후무한 용기사단. 아니, 용기사의 군단이 탄생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세력 양성을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는 일.

그런 뜻에서 외부에서 감시가 힘든 부유군도는 아주 좋은 은신처가 되어줄 수 있었다.

-당신이 보고 있는 라그나르의 미래는 여태껏 라그나르의 것과는 많이 다르군요. 좋습니다.

덕분에 테오는 드래고니안의 인정을 받아 이 유물의 소유권도 확실하게 얻을 수 있었으니.

[축하합니다! 라쿠나쿰 족에게 새로운 사명감을 쥐어주는 데 성공하여 시나리오 퀘스트 #8을 무사히 완수했습니다.]

[평가: AAA+]

[보상으로 태고룡의 유물인 ‘드래고니안의 눈물’의 소유권을 얻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가디언에게 설명받으십시오.]

[평가에 따른 추가 보상으로 마법적 재능이 상승하였습니다.]

-드래고니안의 눈물은 소모성 아티팩트라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소모성이라면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사용 횟수는 단 3회에 불과해요. 하지만 단언컨대, 그 3회 동안에 그 어느 누구도 테오 라그나르 님을 죽이지 못해요. 설사 만신전의 신이라고 해도.

-……!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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