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81화 (181/224)

181화

임시 5번조장 (1)

‘토르켈의 암살.’

모든 대면이 끝난 뒤.

테오는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왜 전생에는 이런 비슷한 일이 없었던 거지? 아니면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걸까?’

전생에서 희대의 천재로서 이름을 날리던 토르켈은 권좌 경쟁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세간에 알려진 사인은 전사(戰死).

성마교와의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흑룡은 왜 토르켈을 암살해야 하는지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라그나르에 대한 집착으로는 가주보다도 훨씬 심각한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성마교와 내통을 했다든지.

혹은 또 다른 뭔가가 있다든지…….

‘이블린이 등룡 님을 쫓고 있다는 것도 머리 아픈데. 대체 가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테오는 조금 갑갑한 기분에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겉보기엔 그토록 위대해 보이던 가문이, 실상은 보이지 않는 여러 균열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으니.

과연 이걸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까.

봉합해서 더 큰 가문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만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회귀를 하게 된 자신이 짊어지게 된 운명의 무게였다.

* * *

5번조의 막사에 들어선 순간, 테오는 셀퍼드와 아린을 비롯한 조원들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

“축하드립니다, 조장님!”

“축하드려요!”

“캬! 최연소 실전검사가 됐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상급검사에 조장까지……! 얼마나 더 해 먹으시려고?”

펑! 퍼퍼펑!

눈앞에서 터지는 폭죽들까지.

테오는 난감한 얼굴을 한 채 검지로 볼을 긁적였다.

이런 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으니까.

커다란 식기 테이블에는 갖가지 음식과 술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언제 저런 것들을 준비한 건가 싶었다.

“짜라잔.”

심지어 이번 일의 주동자(?)로 짐작되는 셀퍼드는 아린과 함께 아예 케이크를 들고 오더니 테오의 머리 위에다 고깔모자까지 씌웠다.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왕관이지. 캬, 아주 잘 어울리는데?”

셀퍼드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척하고 내밀었다.

테오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누나누나누나!”

반면에 조원들과 뒤섞여 박수를 치고 있던 홀커스는 다급하게 에리카의 팔뚝을 잡아당겼다.

에리카가 신경질적으로 팔을 뿌리쳤다.

“아, 듣고 있으니까 이거 좀 놓고 말해 좀!”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뭘 어떡해?”

“테오 두 번째 검 자리! 뺏기게 생겼는데 어떡하면 좋냐고!”

“언제는 첫 번째 자리를 노린다면서?”

“그야 물 건너간 거 아니까 접었고. 두 번째 검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야 간단하지.”

“간단하다고? 뭔데?”

“레이부터 이기고 와.”

“젠장……!”

홀커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레이에게 기세 좋게 덤볐다가 영혼까지 실컷 털린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에리카는 팔짱을 낀 채로 가볍게 콧방귀를 뀌면서도 시선은 테오에게 떨어질 줄 몰랐다.

수도 없이 사선을 넘나든 덕분에 테오가 완성되었다던 레이의 말이 머릿속을 왱왱 울리고 있었다.

레이는 말없이 묵묵히 테오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자, 그럼 새로운 조장이 되신 테오 라그나르 님의 소감 인사 한 마디가 있겠습니다.”

셀퍼드는 투명 마이크를 테오에게 내밀었다.

테오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물었다.

“이게 다 뭡니까?”

“뭐긴. 축하 파티지. 이런 기쁜 일이 있을 때 파티가 빠지면 쓰나? 안 그러냐, 다들?”

“옳소! 옳소!”

“마음에 안 들던 깜둥이 새끼들도 다 털어버리고, 기분이 아주 좋지!”

“파하하! 맞아, 맞아. 마지막에 탑이 완전히 정복되었을 때 그놈들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크으……!”

“내 속이 다 뻥 뚫리더라니까?”

“그런데 그 많은 용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신기해 죽겠던데.”

다른 조원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테오가 보였던 신위를 떠올렸다.

이미 그때부터 그들은 테오가 조장이 되어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고 수긍한 상태였다.

“뭐해? 나 팔 빠져. 빨리 소감 한 마디 하지 않고.”

셀퍼드의 계속된 재촉에 테오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임시로 조장직을 맡게 된 테오 라그나르라고 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착 깔리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다들 눈빛 하나는 매섭구나. 역시.’

눈가엔 하나 같이 웃음기가 섞여 있지만, 표정만큼은 얼마나 진지한지.

테오는 이들이 어째서 백갑용기대인지를 확실하게 깨달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명령의 편의를 위해 존대는 오늘 자정까지만 하겠습니다. 조장직이 처음이라 다들 불안하실 수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께 많은 걸 요청하지도 않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신뢰.”

스물도 되지 않은 조장.

그 실력에 대해 의심을 할 법도 한데도, 눈빛에는 일말의 동요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절 신뢰해주신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손에 쥐여 드리겠습니다. 단, 명령에 불복하실 경우에는 즉결 처분으로 다스리겠습니다.”

셀퍼드는 어느새 좌중을 휘어잡는 테오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역시 이 아이는 소질이 있어.’

이제 명색이 상사가 된 분에게 아이를 운운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사실 셀퍼드는 이 친동생 같으면서도 존경심을 마구 부르는 후배 겸 상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뜻에서 이 분위기에는 너무 죄송하지만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파티를 내일 이 시간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다 던진 한마디에 셀퍼드와 다른 조원들이 모두 당황했다.

이렇게 준비를 다 마쳤는데 갑자기 왜?

흑색철기대와의 분쟁으로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겨우겨우 마련한 준비라 당혹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새벽 4시, 백갑용기대와 흑색철기대의 공동 작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목표는 트로이반의 군영 내에 설치된 성마교 제단을 제거하라는 상부의 명령입니다.”

순간, 조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몇몇은 놀란 얼굴이 되고, 또 몇몇은 황급히 테오를 쳐다봤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똑같았다.

눈빛이 굳었다는 것.

셀퍼드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조장, 흑색철기대는……!”

“예. 그들과 갈등을 빚은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죠. 하지만 명령에 변화는 없습니다.”

“흐음.”

“으으으음!”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저들에게 등을 맡겨도 될까 하는 갈등이 보였다.

“그리고.”

이때부터가 가장 중요하기에 테오는 전음으로 바꾸며 말을 이었다.

「이건 대외적인 백갑용기대의 명령. 저희 5조가 맡은 진짜 임무는 따로 있습니다. 혼란을 틈탄 흑색철기대장의 암살입니다.」

“……!”

“……!”

“……!”

충격에 빠진 조원들은 뒤늦게 표정을 수습하려 했지만,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니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다들 아무 문제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주십시오. 보안 유지를 위해 지금 이 시각부터 외부 활동도 전원 금지하겠습니다. 이상.」

막사 내부의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 * *

5번조는 바쁘게 움직였다.

임무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서너 시간 여.

그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려면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장비를 챙기고, 비룡을 배불리 밥 먹이는 등 해야 할 것이 많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케에에엑!

셀퍼드는 파트너 와이번의 주둥이에 물린 고삐 고정 장치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와이번이 소동을 피우지 않도록 옆에서 시선을 끌어주던 아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이번 작전.”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

“없지. 우리야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병정일 뿐이니까. 다만.”

셀퍼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 가문이 너무 어수선하다 싶어서.”

“어수선하다고?”

“넌 그렇게 안 느껴? 나만 느끼나?”

아린은 물끄러미 셀퍼드를 바라봤다.

셀퍼드는 유쾌한 성격과 다르게 서자라는 출신 때문에 사람 눈치를 빠르게 포착해내는 편이었다.

그래서 아직 부대에 전달되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도 분위기만으로 대강이나마 알아낼 때가 많았었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 아린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지 똑바로 설명해봐.”

“아니, 그렇잖아. 용문검사 승급시험을 준비 중이던 이블린 님이 갑자기 단독 임무에 나선 것도 그렇고, 그 자리를 테오가 바로 앉은 것도 그렇고. 거기다 이번 임무…… 까지.”

오랫동안 백갑용기대에 복무한 아린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토르켈을 향한 흑색철기대의 충성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들은 토르켈의 명령이라면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 놈들이었다.

암살 명령은 사실상 흑색철기대의 토벌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아마 이번 임무는 중요성이 중요성인 만큼 흑룡 님이 안건을 내고, 가주님이 승인하신 거겠지. 하지만 이게 정말 평상시 라그나르의 방식이라고 생각해?”

“예전 같았으면…… 그냥 잡아 끌어냈겠지.”

“바로 그거야. 모사가 들었어. 전혀 라그나르답지 못해.”

상부의 명령은 절대적이던 라그나르의 행정 체계에 변화가 생겼단 뜻.

아린도 그제야 상황의 위험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주님부터 9룡 님들까지, 전부 쫓기는 느낌이 들어.”

“…….”

“물론, 멸망전이라고 불릴 만큼 한쪽이 완전히 꺾여야 끝날 정도로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긴 한데……. 뭔가 여기서 끝이 아닐 것 같은데.”

“이 뒤에 뭐가 더 있다는 소리야?”

“글쎄?”

아린은 침묵에 잠겼다.

토르켈의 암살 외에 뭔가가 더 있다면 대체 뭐가 더 있다는 건지 짐작 가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뭘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러냐? 그냥 해보는 소리지. 아무튼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오늘 밤은 잠 자기 다 글렀으니까.”

셀퍼드가 크게 웃으면서 남은 준비 작업을 마친 뒤.

준비 시간이 아주 바쁘게 흘러가는 동안, 테오는 새로운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드디어 만났다. 문지기. 새로운.”

“영광이다. 부족의. 축복이다. 우리들의!!”

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먼지 투성이 몰골로 찾아온 이들은 바로 오랫동안 백탑을 지켰다던 원주민들이었다.

테오는 몸도 성치 않은 그들이 안타까워 치료가 끝난 뒤에 만나자고 하려 했지만.

그들이 내뿜는 열의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괜찮다. 우리 몸 부서져도. 하지만 문지기는 못 본다. 조상들도!”

로드브로크가 웃었다.

『도저히 온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놔둘 수도 없잖습니까.’

『후후. 저기 어디 있는 광신도 집단이라고 해도 믿겠어.』

‘그런 끔찍한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하지만 그래도 하나 같이 눈을 반짝이는 원주민들을 보고 있노라니 어떻게 만류하면 좋을까 싶던 그때였다.

갑자기 원주민들 앞으로 누군가가 나서며 양손을 뻗자 거짓말처럼 소란이 가라앉았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젊은 미녀였다.

다만, 옷차림이 다른 원주민들과는 색깔부터 확연히 달랐다.

『저 여인이 이들의 우두머리인가? 제법 친숙한 향이 나는데.』

‘친숙하다구요?’

『그래. 이 여자, 절대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것 같구나.』

테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동안, 여인은 알 수 없는 말로 원주민들을 달래고 테오를 돌아봤다.

“갑자기 이렇게 불쑥 찾아와 무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백탑 일족의 ‘당골’인 ‘검고 푸른 새’라고 합니다.”

다른 원주민들과 다르게 익숙한 듯 유려한 제국어.

『이 여자, 드래고니안이다.』

‘……!’

“이렇게 문지기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인의 흑요석 같은 두 눈에 테오가 폭 담겼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얼굴이 낯익었다.

‘로드브로크.’

『그래. 나도 보고 있다. 얼굴도, 기질도…… 너무 나와 똑같구나. 복사라도 한 것처럼.』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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