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60화 (160/224)

160화

영묘의 묘지기 (5)

테오가 가진 용혈은 로드브로크에게서 기원한다.

당연히 로드브로크가 더 많은 힘을 되찾으면 되찾을수록 용혈의 성능도 강화될 수밖에 없는바.

우드득, 우드드득-

테오는 신체 곳곳이 변화하는 기분 좋은 느낌에 웃으면서 마도서를 뽑았다.

-맹세의 서.

“내용은 강령술과 관련된 내용인가?”

-악마의 가짜 왕국.

“이건 하위 악마들이 만들어낸 현혹과 환각에 대한 내용들이고.”

-현자의 극치.

“이건 마법과 점성술을 섞은 천계 마법에 대한 이론서인가?”

확실히 황실이 보관하고 있던 마도서답게 내용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 투성이였다.

그중 몇 가지는 테오도 들어봤거나, 흥미가 돋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테오는 과감하게 그런 것들을 도로 내려놓았다.

‘선택과 집중. 내게 검술을 보완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닌 것들은 오히려 짐덩이일 뿐이야.’

테오가 마법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어디까지나 전투에 있어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지, 마법사로서 재능을 개화시키기 위한 게 아니었다.

마도여제가 넘겨준 시간 마법 체계도 마찬가지.

테오는 시간의 굴레에 대한 개념을 익히고 있었지만, 달리 이것을 어떻게 검술에 녹일 수 있을지도 같이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시간 마법은 분명히 그의 성장에 폭발적인 도움이 될 것이므로.

‘그러니 시간 마법을 이해할 수 있는 마도서로 찾아야 해.’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오지 않아 다른 방을 찾아야 하나 싶었다.

파스스……!

-오오, 이게 뭐야? <알마델의 비전학>?

-이거 봐! 우리 때도 실전됐던 수인족 놈들의 강체술과 관련된 분석 자료도 있어!

-삼보번천의 이해? 검왕의 비전이 왜 여기 있어?

용아병단의 유령들은 슬그머니 영묘검에서 빠져나와서는 도서관을 샅샅이 수색했다.

-야! 내가 뭐 찾았는지 봐봐! 와씨! 죽인다!

몇몇은 아예 무기고에 들어가서 괴성을 질러대기도 했다.

-이봐, 테오! 테오! 여기 있는 것들 좀 봐도 되지?

특히 과거에도 접하기 어려웠던 상급 비전을 맞은 유령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네, 보시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함부로 훼손하거나 밖으로 가져가는 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으잉? 밖에 가져가는 게 안 돼?

“예. 마도여제의 말로는 대부분 보안마법이 걸려 있어서 금고 안에서는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한데, 외부 유출은 바로 황실에 들킬 수 있다더군요.”

-제길! 밖에서도 느긋하게 살펴보려고 했는데!

-이거이거 아무래도 내용을 싹 다 암기 해야겠구만.

-페이지만 장장 600페이지인데, 이걸 언제 다 외우고 앉아있냐. 하아!

-멍청한 너는 어렵지만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유명했던 나는 가능하지. 켈켈켈!

-나도 안 써서 그렇지, 한번 쓰기 시작하면 대단하거든?

또 철없는 유령들이 멱살잡이를 시작했지만, 대부분은 곧바로 자리에 죽치고 앉아 저마다 뽑은 도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이 얻은 지식과 깨달음은 곧 테오의 것이 된다.

테오는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묘한 표정을 짓다가, 어느새 마지막 마도서에 다다랐다.

-벨페고르.

“나태의 악마라.”

아몬과 마찬가지로 용과는 대척 관계에 놓인 악마.

그중에서도 대공 급으로 테오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7대 죄악 중 하나가 시간의 마법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 마도서는 유달리 강한 푸른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저 못된 천국의 놈들은 말한다. 나태라 함은 게으름이니, 성실하고 근면해야 할 인간이 가장 멀리 두어야만 하는 죄악이라고. 하지만 나태는 달리 여유요, 여가일지니. 한 번뿐인 생을 즐기지 않고 빡빡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그것이 기계의 부품과 뭐가 다를 것인가?

-내게 주어진 삶은 유한하다. 그렇다면 그 자원을 빡빡하게 사용하는 것도, 즐기면서 사는 것도 나의 자유의지에 기반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시간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 이것을 나의 의지와 통제 하에 두는 것. 그것이 바로 <나태>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데.’

생명에게 주어진 수명적 한계를 조절한다?

재미난 발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간을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시간 마법과 연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애당초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고, 결국 관찰자의 인지와 주관이 가장 중요하니까. 오히려 ‘나’를 주체로 한 생체 시계를 중심에 두고 시간의 영역 범위를 확장해나가는 방식이라면…….’

아직은 추상적인 단계에 불과하지만, 테오는 시간 마법 체계를 해석하는 그럴싸한 관점이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로디와 깊게 논의해봐야겠어.’

테오는 벨페고르를 계속 읽어내려갔다.

[시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발견했습니다.]

[퀘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달성률: 15%]

.

[주체의 관점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킬: 해츨링 싱크로’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현재 달성률: 21%]

.

[현재 달성률: 32%]

.

.

탁!

시간이 흐르길 한참.

테오는 독서를 끝내고 마도서를 완전히 덮었다.

머릿속이 여러 정보와 생각들의 혼재로 뒤죽박죽이었지만, 어떤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현재 달성률: 64%]

‘시간은 빛과도 관계가 있다. 빛의 속도는 시간과 다르게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측정하는 단위가 될 수 있고, 이러한 빛은 광자를 품은 우레 속성에 대입할 수도 있어.’

[현재 달성률: 69%]

우레 속성의 발전을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도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테오의 두 눈이 가늘게 접혔다.

‘마지막 뒷장 몇 페이지가 없어.’

테오는 마도서의 마지막 8페이지가 강제로 찢겨나간 흔적을 발견했다.

닳은 흔적이 없는 걸 봐서는 뜯긴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꼭 얼굴이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휴지가 부족해서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한 사람 같구나.」

“……그런 표현은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테오는 어느새 문가에 서 있는 로드브로크를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영약은 어떠셨습니까?”

「앞으로 이런 곳이 네 곳은 더 있다고 했었지?」

“예. 일단은요.”

「소화에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전성기 시절의 6할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테오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럼?”

「그래. 그쯤 되면 심장 복구도 완료되는 거지. 고맙구나.」

테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로드브로크의 부활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고대룡의 인자가 개발되면서 감각도 이전보다 더 예민해져 있었다.

「그보다 손에 쥐고 있는 건 마도서인 것 같은데? 그것도 아주 고난도의. 불쾌한 향이 아주 여기까지 풀풀 날려.」

“한번 보시겠습니까?”

로드브로크가 가볍게 앞으로 손을 뻗자, 마도서가 둥실 허공에 떠올라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벨페고르라. 아주 골치 아픈 놈이지. 아몬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벨페고르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조금은.」

로드브로크는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벨페고르도 사실 아몬과 비슷한 케이스이다. 한때 만신전에 들었을 정도로 격이 높은 신이었지만, 개인주의적인 성격과 게으른 성향 때문에 악마로 떨어졌었지. 뭐, 본인은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았지만. 원래 이름은 바알-페올(בַעַל-פְּעוֹר)이다.」

“격하되었어도 재주는 대단하겠군요.”

「그래. 하지만 외부로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탓에 가진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 우리 용들과도 딱히 악감정은 없는 편이었고.」

로드브로크는 찢어진 마지막 페이지를 살피고 미간을 좁혔다.

「여하간 그만한 존재의 이름을 담은 마도서이니 담고 있는 내용은 제법 흥미롭다만…… 훼손되어 있군?」

“네. 이미 누가 손을 댄 것 같습니다. 혹시 뒷내용이 뭔지 아실 것 같으십니까?”

로드브로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악마의 마법은 원래 <개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네 용들이 추구하는 <진리>나 <법칙>과는 성향이 많이 달라. 그러니 설명은 해줄 수 있어도, 부족분을 내가 짚을 수는 없다. 애당초 세계에는 없는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다만.」

“다만?”

「본디 <개념>이라는 것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언어가 일부가 유실되어 완전한 의미를 마무리 짓지 못하면 힘을 잃고 말지.」

테오는 로드브로크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 벨페고르 놈의 이름을 가진 이 마도서 역시 마도서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려면…….」

“페이지에 훼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로군요?”

「그래. 하지만 이것은 <개념>의 의미를 규정하는 마지막 부분이 통째로 뜯겨 있어. 그런데도 마도서로서의 기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구나.」

악마의 이름을 가진 마도서는 단어의 개념을 정의하는 코드의 일종.

당연히 그중 일부가 훼손되거나, 글자 하나가 바뀌기만 해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벨페고르의 마도서가 여전히 멀쩡하다는 의미는 단 하나.

“누군가가 개념에다 함부로 손을 댄 것이로군요.”

「마지막 여덟 페이지만으로도 어떤 <개념>이 만들어진다는 뜻이겠지. 기존의 개념에서 새로운 개념을 분리해낸 거다. 아주 정교하다 못해 치밀한 작업인데…… 인간 중에 이런 걸 해낼 사람이 있나?」

로드브로크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금고에 있는 물건은 함부로 외부로 가져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필요한 부분만 분리해서 나간 것 같아요.”

「금고의 주인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이 속에 있었다는 거로군.」

“그게 뭘까요?”

「말했지만,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해.」

로드브로크의 입꼬리가 말려올라갔다.

「벨페고르의 진짜 정수는 아마 그곳에 있을 거라는 것.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건 반쪽짜리에 불과해.」

확실히 마도서는 내용을 전부 다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푸른빛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띠링!

[당신은 퀘스트를 완수할 마지막 단서를 간발의 차이로 아쉽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마도서의 마지막 부분을 회수하여 퀘스트를 완수하세요.]

[회수 실패시, 퀘스트 실패로 판정됩니다.]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고?’

테오는 재빨리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해츨링 싱크로’를 발동하여 마도서에 남아있는 사념을 불러들입니다.]

화아악!

반전된 시야 속.

야광등의 조명 아래에서 벨페고르의 마도서를 탐독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다윗의 별? 저들이 어떻게 여기로 들어온 거지?’

마탑의 최정예들을 황실 비밀금고에서 마주칠 줄이야.

더군다나 그중 리더로 보이는 자는 테오에게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테오 하이도어에서 봤던 미남자.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누군지는 떠오르지 않았던…….

‘상아왕! 제기랄! 왜 그놈을 떠올리지 못했던 거지?’

전생에 테오의 또래이면서도 절대자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대전란이라는 격변기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3군8준 출신의 인재들.

웰링턴도 그중 한 명이었고, 나자리우 몬테도 여기에 해당했다.

마탑의 하나뿐인 후계자로서 역대 최연소로 10성의 대마법사 경지에 올랐으며,

수많은 마법 체계들을 섭렵하면서 마탑을 상아탑으로 바꾼 위인.

그렇기에 얻은 별호도 바로 <상아왕>이었다.

다만, 테오가 나자리우를 보고도 곧바로 상아왕을 떠올리지 못한 건, 상아왕이 평상시 로브를 눌러쓰고 다녀 세간에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설마 당대 마탑주의 손자가 라그나르의 영역 한복판에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째서 나자리우가 직접 움직이면서까지 벨페고르 마도서의 마지막 부분을 뜯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녀석들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 기회에 마탑의 큰 빚을 씌울 인질을 잡을 수도 있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물론,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테오가 아니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