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용아병단 (1)
-묘지기를 조심해야한다고?
-네.
-……역시 이곳의 위치를 트로이반에 흘린 게 오드 님이셨구나.
-역시 짐작하고 계셨군요.
-조금은.
카산드라는 테오가 일행을 구하러 가기 전에 짧게 경고했다.
오드를 조심해야 한다고.
-원래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검보라는 것은 완전히 실전된 건 아니었어요. 비전의 기본기만 남긴 했지만, 그 역시 온전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일부라도 남아 전승되었었죠.
-그럼 그 전승자들이 설마?
-예. 맞아요.
테오는 카산드라가 어쩐지 안타까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전부 엿보며 사람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이들만이 보일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들이 바로 영묘의 ‘묘지기’랍니다.
* * *
-대장에게 제자가 있긴 했었지.
-맞아. 아주 작은 아이였었어.
-하지만 그렇다 보니 제대로 비전을 잇지 못하였고…….
-묘지기라는 모습으로 저렇게 남았지. 불쌍한 아이야.
유령들은 쓸쓸한 눈으로 오드를 바라봤다.
그들이라고 묘지기에 얽힌 사연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서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물리적으로 오드와 선대 전승자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맞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택자가 아니면 안 되었으므로.
“부정은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오드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사실을 들켰다는 듯이.
다른 멤버들이 황급히 테오를 바라봤다.
“테오, 우리는 도저히 네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알아듣게 설명해줘. 검보는 뭐고, 전승은 뭐야? 오드 님이 단순한 묘지기가 아니라는 거냐?”
셀퍼드는 오드가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지 확인하면서 힐끗 테오를 훔쳐봤다.
쿠쿠쿠쿠……!
테오는 요란하게 흔들리는 천장을 보면서 빠르게 입을 뗐다.
새로운 적이 여기까지 도착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 영묘에 묻힌 분들은 모두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대장벽 너머의 마물들을 막아내셨습니다.”
“그래. 그건 알아. 그런데?”
“그럼 그분들께 영원히 찾지 못한 군주가 있단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군주……?”
“예. 당대 라그나르의 가주셨던 분이십니다. 이 자리에는 없는 300번째 영묘의 주인이시죠.”
“300번째 영묘…….”
“하지만 그분이 보유하셨다던 절대 비전은 안타깝게 유실되고 말았습니다. 트로이반은 바로 그 비전을 쫓고 있습니다.”
테오는 트로이반이 카산드라를 필요로 하는 이유와 영묘를 차지하려는 하는 목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선택자가 아닌 일반 검사로서는 하나 같이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사건들이었다.
“잠깐, 잠깐만! 그럼 지금 네 말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 검보를 얻기 위해서 트로이반이 저 지랄병을 하고 있단 거잖아? 그럼 오드 님은? 등룡 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오드 님은 이제 라그나르에서도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 영묘를 홀로 지키시는 의인이시라고.”
“예. 맞습니다. 의인이시죠. 수십 대를 이어서 오로지 이 영묘만을 지키는 분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문제는 묘지기들에게는 영묘를 지키는 것 외에 다른 역할도 있다는 겁니다. 검보의 복구.”
오드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테오는 그녀를 계속 예의주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묘지기는 당시 희생되었던 가주님의 후예들입니다. 실전된 유파를 복원할 책임과 의무가 있으시지요.”
“…….”
“그리고 트로이반은 그런 사실을 눈치채고 묘지기이신 오드 님에게 미리 접근을 한 것이고요. 아닙니까?”
오드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핏대가 잔뜩 선 손등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아? 트로이반과 이미 결탁하신 거였으면 진짜 영묘 위치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까?”
확실히 트로이반이 이곳을 찾은 건 테오 일행이 한참 숨을 돌리고 난 뒤였다.
만약 함정으로 삼을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들이쳤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야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오드 님도 트로이반이 의심스러웠던 것은 아닐까요?”
“아.”
“만약 검보를 복원할 수 있다는 너희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증거를 가져와라, 그 전에는 영묘를 열어줄 수 없다는 식으로 협상 단계였다면…….”
“그만.”
“그래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증거를 확인하고자 우리들을 이곳으로 데려왔고, 트로이반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한 뒤에야 트로이반에 연락을 넣은 것이라면.”
“그만!”
“말이 되죠.”
“그만 하래도!!”
결국 오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 네 말이 사실이다! 트로이반이 검보를 복원해서 공유하자고 제안하였고, 나는 너희가 검보를 복원할 수단을 마련한다면 자신들도 복원이 가능하다는 그들의 주장을 확인하고자 너희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뭐, 그게 잘못되었나?”
분노로 자글자글 타오르는 시선이 테오를 직시했다.
“봐라! 결국 저들이 말했던 대로 너는 이미 검보를 복원했잖아! 당연히 나에게 주어졌어야 할! 내가 평생을 추구했던 것을 네가 가져갔다고!!”
“저에게 따로 언질이라도 주셨다면 공유해드렸을 겁니다.”
“공유? 방계의 후손인 네가?”
오드는 한쪽 입술을 크게 비틀었다.
조소였다.
“똑바로 들어. 라그나르의 적통은 너희들이 아니라 바로 나야. 나, 오드 라그나르라고! 너희들은 그저 우리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서 냉큼 안방에 들어앉은 도둑들일 뿐이고!”
오드를 비롯한 묘지기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짜’ 라그나르의 적통이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를 이어 영묘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언젠가 검보를 복원하고 나면 찬탈당한 권좌를 되찾으리라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오랜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안타까울 뿐이지.
-애당초 검보의 주인 자리는 누군가에게 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진대…….
-흥! 안타까울 게 뭐가 있어! 강자존의 법칙이야말로 라그나르의 정체성인데. 권좌가 진짜 자기네들 것이라고 여겼다면 알아서 찾아왔어야지! 어딜 기대긴 기대어?
몇몇 유령들은 오드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지만, 대다수의 유령들은 못마땅한 눈치였다.
유령들이 오드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
그들은 이미 대를 이은 묘지기의 비뚤어진 애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전에 검보를 전수할 때 테오에게 전승자들의 존재를 명확히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드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방계의 후손이자 도둑놈 주제에 그걸 적선하듯이 넘겨줘? 감히……! 누굴 가르쳐 든단 거냐?”
“그래서 트로이반에 기울이신 겁니까?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게 더 부끄럽지는 않으시고요?”
“호호호! 네가 끝까지 잘못 알고 있구나. 누가 대체 트로이반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들에게 마음이 기울었다는 거지?”
그 순간, 테오는 오히려 자신의 짐작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설마 트로이반이 검보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
“그래. 내가 직접 알려주었다.”
“……!”
“내가 트로이반을 여기로 끌어들이고, 판을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검보를 복원하는 데 저만한 말도 없으니까.”
순간, 테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 뭐?
-저 미친 것이!
-외지인을 라그나르의 일에 끼어들게 했다고?
유령들도 그제야 사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몇몇은 노호성을 터뜨리면서 검을 뽑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분노와 위협은 오드에게 닿지 못했다.
“‘라그나르의 일은 라그나르 안에서만 해결한다’는 규칙을 어기고 외지인을 끌어들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테오는 물론, 셀퍼드와 레이까지 분노에 젖은 시선으로 오드를 노려봤다.
라그나르가 아무리 권좌 경쟁으로 내분이 일상처럼 벌어진다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만약 그 선을 넘는 순간, 아무리 계승권자라고 해도 라그나르의 응징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라그나르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규칙을 어겨? 누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트로이반을 끌어들였다고 당신이 직접 당신의 입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했지.”
“그런데 무슨 헛소리를!”
“그러니까 그게 왜 규칙을 깬 것이 되냐고.”
테오는 다시 한번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그 말씀은 트로이반이 남이 아니라는……?”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아이야.”
오드의 조소가 더 짙어졌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권좌에 가까워지고도, 검보를 물려받고도, 선택자가 되고도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고오오오-
오드를 중심으로 막강한 풍압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격진이 시작되었다.
당장에라도 동굴을 무너뜨릴 것처럼.
테오는 용혈을 각성하고도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너는 검보에 어울릴 재목이 아니구나. 그것을 도로 가져가야겠다.”
풍압이 와류를 그리다가 오드의 머리 위에서 구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일식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모양새였다.
<흑빙만옥월>
검게 물든 구체.
마치 태양보다는 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열기도 전혀 없어서 오히려 차가움만이 감돌았다.
흑염을 발현하지 못하기에 나타난 현상.
그동안 비전이 일부만 전해진 채 발전됐다는 증거였다.
파지지직!
테오도 이에 질새라 마력을 잔뜩 끌어올리면서 뇌구를 형성했다.
이제 올 버프의 남은 시간은 4분 남짓.
그 안에 오드를 제압하고, 거의 여기까지 접근한 청악대를 막아야만 했다.
「셀퍼드, 아린을 데리고 레이와 같이 중심지까지 가십시오. 거기 천장을 살펴보시면 외부로 향하는 통로가 있을 겁니다. 카산드라가 도와줄 테니 움직이십시오.」
「너는?」
「바로 쫓아가겠습니다.」
셀퍼드는 테오에게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미 일행의 리더는 테오였다.
파앗-
결국 지시받은 대로 아린을 업고, 레이와 함께 심처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드는 딱히 그들을 잡으려 시도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테오에게서 검보만을 회수할 생각이었으니까.
“내 선조들은 도저히 ‘태양’을 복원할 수 없었기에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달’을 만들었다. 모든 걸 태울 수 있는 불길이 없었기에 그걸 대신해서 차가움을 담았지.”
오드가 기수식을 취하면서 구체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 모습이 사념 속의 대장과 많이 닮았되, 달랐다.
“중시조님께 닿기 위해 노력했던 나와 선조들의 노력. 과연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바로 그때 공동으로 청악대가 들어섰다.
동시에 오드가 검을 수펑으로 휘둘렀다.
스걱!
‘달’을 따라 섬광이 그어지면서 위아래가 분리되었다.
<월식>
쪼개진 두 개의 반달이 부서지면서 눈보라와 얼음 우박을 사방으로 흩날렸다.
콰콰콰콰-
테오는 그 앞에서 차갑게 웃었다.
“감당? 내가 굳이?”
“뭐?”
오드가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테오는 이미 <여의주태양>의 일식을 전개한 뒤였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간에 당신이 배반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그런 배반자의 검을 내가 이해할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지.”
스걱-
뇌구가 부서지면서 튀어오른 낙뢰가 지면과 벽면을 두들겼다.
‘벽?’
오드는 낙뢰가 최소한으로 테오만 방어하고 있을 뿐, 자신을 노리지 않고 애꿎은 다른 곳들만 때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설마!’
하지만 테오의 의도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으니.
콰콰쾅!
그동안 누적된 충격으로 내구도가 닳을 대로 닳았던 동굴이 그대로 무너졌다.
낙뢰가 때린 곳도 전부 테오가 [영성]이 깃든 눈으로 미리 체크해둔 장소들이었다.
와르르-
결국 오드나 청악대가 어떻게 손을 쓰기도 전에 그들은 모두 낙석에 파묻혀 생매장되고 말았다.
-이놈이 우리 무덤을 진짜 무덤으로 만들어버리네!
「영묘는 조만간에 다시 복구해드리겠습니다.」
-훨씬 더 좋게 만들어줘야 한다?
-나는 관짝 좀 바꿔줘! 맨날 보는 거 똑같이 보려니까 지겨워죽겠어!
-난 벽화! 벽화 추가해야 한다!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테오는 유령들과 가볍게 농담을 하면서 움브라에 올라탄 채 유유히 영묘를 탈출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