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43화 (143/224)

143화

영묘의 영령들 (3)

“뭐? 놈들을 놓쳤다고? 발리스타까지 배치하지 않았었나!”

“그것이 백금의 갑옷을 입은 자의 저항이 워낙에 격렬하여……!”

“이 못난 놈들이!!”

청악대장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성마교뿐만 아니라 옛 교룡회의 세력들까지 모두 끌어와 갖춘 포위망이었다.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도 못하고 목표물을 놓쳤다니 화가 날 수밖에.

‘아크트 님께서 아신다면 그땐 내 목이 달아난다……!’

아크트는 아홉 봉공 중에서도 가장 성격이 차갑기로 유명했다.

적백용병단을 거리낌 없이 지웠듯이, 청악대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후후. 아무래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신 모양이군.”

그때, 청악대장 옆으로 한 노인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순간, 청악대원들이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성마교의 법복에 까만 관까지 쓴 주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사도→추기경→대주교→주교→교구장→혈사제’ 순으로 총 여섯 계급으로 이뤄진 품계 중 중품에 해당하는 만큼 풍기는 위세도 적지 않았다.

칼리 주교.

이번 기습에서 성마교의 부대를 지휘하는 책임자였다.

‘하필.’

청악대장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녀석에게 언짢은 투로 대꾸해봤자 약점만 잡힐 뿐이었다.

“만약 예언자, 그 아이와 사라진 라그나르 놈들이 ‘진짜’ 영묘로 가게 된다면. 그때는 책임을 어떻게 질 생각이신지?”

“…….”

아크트와 청악대가 카산드라의 신병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히 예언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라그나르가 숨긴 299인의 결사대가 묻힌 ‘진짜 영묘’를 찾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곳에 오랫동안 ‘그분’께서 갖기를 갈망하시던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옛 선택자의 검보(劍報).’

이제는 전설로만 남은 이의 유물이 바로 그곳에 남아 있었다.

아는 사람은 이제 라그나르에도 거의 없는 또 다른 전설.

튤립 화예조합장 오드의 진짜 임무는 바로 그것을 지키는 묘지기였다.

“잊지 마시오. 그곳은 우리 성마교도 똑같이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을. 예언자, 그 아이가 있어야만 우리도 우리들의 신께서 남긴 흔적을 쫓을 수 있소. 성역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장소, 이 말이오!”

덧붙여서 <이름 없는 군주>의 진격을 막은 결사대 299인은 성마교에 있어 원수이면서도, 신께서 다시 일어나시는 데 있어 큰 힌트가 되어줄 단서가 되기도 했다.

성마교가 감히 불경스럽게도 무신자 집단인 트로이반과 손을 잡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청악대장은 이를 꽉 깨물면서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콰르릉! 콰릉!

그의 시선이 닿은 곳.

두 개의 서로 다른 빛살이 반구 형태로 뒤엉키면서 천재지변을 일으키고 있었다.

등룡과 아크트, 두 초인이 서로 유리 공간을 활짝 열어 충돌을 벌이는 중이었다.

저 공간이 닫히면 승부도 종결 나겠지.

그러니 그전에 어떻게든 숨은 놈들을 찾아내야만 했다.

“‘알파’에게 전해.”

결국 청악대장은 수하를 돌아보며 숨겨둔 마지막 패를 꺼내야만 했다.

웬만해서는 개봉하지 않으려 했던.

적의 심장부에 있던 비수를.

“정체를 들켜도 좋으니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 지으라고.”

* * *

[축하합니다! 시간을 엿보는 예언자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데 성공하여 시나리오 퀘스트 #4를 무사히 완수하였습니다.]

[평가: S]

[보상으로 <시간의 비밀>에 대한 단서가 곧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으로 로드브로크와의 채널링이 강화됩니다.]

테오는 순간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곳이 안전하다고?

거기다 더 테오 눈에 띈 것은 추가 보상으로 주어진 ‘로드브로크와의 채널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후후. 레비아탄의 심장을 소화하고 있는 동안에 재미난 곳에 와 있었군.』

‘이제 소통이 가능하신 겁니까, 로드브로크?’

『소통은 네가 용혈을 각성한 이후로 언제나 가능했다. 소화에 집중하고 싶어서 잠시 차단해뒀던 것일 뿐. 그보다.』

로드브로크가 의뭉스럽게 웃었다.

『아직도 정없게 로드브로크가 뭔가, 로드브로크가. 명색이 반려라는 녀석이 정 없이.』

‘……뭐라고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로디. 이 얼마나 깜찍한 이름이더냐?』

꼭 어디 아동용 인형에나 붙일 법한 애칭이었다.

그 덩치 크고 늠름한…… 로드브로크와는 어째 어울리지 않았지만.

『왜? 불만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그렇지?』

‘예! 그렇고 말구요! 어떻게 그렇게 찰떡같은 이름을 생각해내신 겁니까?’

『후후후! 이 동굴에 갇혀 있으면 딱히 할 게 없거든!』

테오는 로드브로크의 장단에 적당히 맞춰주면서 슬쩍 질문을 던졌다.

어쩐지 로드브로크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알다마다. 내 옛 반려와 그 동지들이 묻혀 있는 곳인데.』

‘아.’

테오는 그제야 이곳에 묻힌 관의 주인들이 <이름 없는 군주>에 맞선 자들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그중 한 명이 <선택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동지들의 넋이 저렇게 생생하게 있을 줄은 몰랐다만.』

로드브로크는 테오의 눈을 빌려 관짝에 앉아있거나 서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유령들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우리 보이는 거 맞네.

-헐. 헐!

-산 사람이다. 산 사람이랑 이야기 나눌 수 있다고! 만세! 이 지겨운 남자 새끼들 말고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 나눌 수 있다! 만세!

-야, 우리도 허구한 날 네 못생긴 면상 보는 거 지겹거든? 근데 쟤도 남잔데?

-그래도 그 옆엔 레이디가 두 분이나 계시는구만!

어찌나 말이 많은지, 정말 라그나르의 검사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엄숙했던 분위기가 너무 와장창 깨지는데.’

『……당시에 세계를 위해 희생한 저들의 고결한 정신에 감동해 흘렸던 눈물이 아까울 뿐이구나. 구르는 낙엽에도 깔깔 웃는 여자아이들도 아니고, 원.』

로드브로크가 투덜거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뭘 그리 멀뚱하게 서 있냐?”

오드가 뚱한 얼굴로 테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테오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

테오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오드의 뒤를 따랐다.

“네 동료들은 전부 저쪽에서 쉬고 있으니까 가봐.”

-오, 저쪽으로 가나 보다.

-우리 묘기지가 데려온 저 청년이 저 친구들 동료였어? 잘됐네. 심심했는데 가 보자.

-근데 진짜 우리랑 눈 마주쳤던 거 맞아? 지금은 이쪽 보지도 않잖아.

-그러니 확인해보자는 거지. 그래서 안 갈겨?

-당연히 가야지!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명심해. 이곳은 옛 영령들이 안식을 취하고 계시는 곳이다. 시끄럽게 해서 결례가 될 만한 짓은 하지 않도록 하고.”

-암. 우리가 영령이긴 하지. 아주 좋은 자세요, 묘지기.

-그런데 떠드는 게 좋지 않아? 너무 조용하면 재미없다고!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난 바깥 좀 살피고 올 테니까.”

웅성웅성.

수군수군.

테오는 점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셀퍼드 등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계속 모른 척하든가 해야겠네요, 원.’

『동감이노라.』

케에엑!

테오는 왜 이제 오냐고 달려드는 움브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셀퍼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고생은 네가 했지. 아주 날아다니던데?”

“아이템 덕분이었죠.”

“야야, 겸손도 너무 심하면 재수 없어. 그냥 라그나르처럼 굴어. 어울리지 않게 무슨.”

테오는 계면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하여간 이번에 올라가면 상급검사로 추대하는 안건, 한번 올려봐야겠다.”

테오의 눈이 빛났다.

승급.

언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었다.

“되겠습니까?”

“실력은 이제 확실하게 되니까. 필요한 건 공적인데…….”

라그나르의 계급 체계가 실력이 우선시된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수 조건일 뿐 다른 부가 조건도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특히 상급검사부터는 단독 작전 수행은 물론, 사실상 밑에 수하를 두는 부관 계급이기 때문에 절차가 만만치 않았다.

“뭐, 그것도 부유군도 자치령 건이나, 이번 구출 작전으로 어느 정도 점수가 채워지지 않을까? 자세한 건 보고를 해봐야 알겠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나도 후배가 잘되면 좋……!”

셀퍼드는 말을 잇다 말고 중간에 인상을 좁혔다.

“아닌가? 후배가 너무 잘나가면 배가 아파서 안 되나? 콧대가 너무 높아질 수 있으니 한번 사회의 쓴맛을 보게 해주는 게 맞나?”

테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장난스럽게 잘도 해대는 셀퍼드를 보면서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셀퍼드와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카산드라는 많이 지쳤나 보구나.’

그러다 아린의 무릎을 베개 삼아 곤히 잠든 카산드라를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좋지 않은 몸으로 며칠 내내 강행군하려니 피곤할 테지.

안타까운 마음에 카산드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던 때였다.

콕콕.

-이봐, 총각.

옆에서 테오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손길이 있었다.

-우리 말 들리지?

“…….”

-음, 조금 전부터 계속 불렀는데 아무 대답도 없네.

-눈 마주친 건 우연이었던 거 아냐?

-아냐. 진짜였다고. 미치겠네.

-아, 혹시 우리를 모른 척 하고 있는 건가?

-우리를? 왜?

-그야 모르지?

-말로만 듣던 유령 공포증, 뭐 그런 건가? 잘생긴 청년이 좀 안 됐구만.

로드브로크도 알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결사대.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많은 식견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대 검술은 테오도 바라마지 않던 영역이었으므로.

하지만 이들의 성격이 문제였다.

의식을 가진 채로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이곳에 갇혀 있다 보니 저리된 모양인데.

한번 휩쓸리고 나면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았다.

『어떻게 하려고? 그냥 계속 모른 척하게?』

‘그러게요.’

테오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로드브로크.’

『로디.』

‘……죄송합니다. 예, 로디. 혹시 <시간의 비밀>이란 것에 대해서 아십니까?’

『음? 범위가 너무 두루뭉술한데? 선택자의 회귀와 관련된 정보를 말하는 것이냐?』

테오는 직감적으로 보상으로 주어진 <시간의 비밀>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량도 크게 차이나리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국의 황실이 대대로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아십니까?’

『<선지의 이능>. 그걸 말하나 보군. 왜? 그 이능을 가진 아이라도 만난 것이냐?』

테오는 시선을 잠든 카산드라 쪽으로 돌렸다.

『저 아이인가 보군. 거기다 맹인인가? 뛰어난 이능을 가지기에 아주 완벽한 조건을 갖췄구나.』

‘완벽한 조건이라 하시면.’

『고대부터 선천적으로 뛰어난 이능을 지닌 아이는, 특히 그 능력이 ‘신적’인 아이는 장애를 하나둘씩 갖기 마련이다. 원래 신이라는 족속부터가 어디 한두 군데쯤 망가져 있거든.』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애꾸눈을 가진 천신.

사랑을 할 수 없는 예술의 신.

이성을 잃어버린 투신…….

만신전에 깃든 신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하나씩 <결여>를 가지고 태어난다.

『앞을 보지 못하나 미래는 내다볼 수 있는 맹인. 모순이란 곧 기아스. 그 짐이 크면 클수록 능력은 더욱더 빛을 발한다.』

카산드라의 예언 능력이 아주 뛰어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도여제의 능력은 역대 황제 중에서도 최고라 불렸으므로.

‘그런데 예언이라는 게 사실상 가능한 겁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만약 미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운명 결정론을 말하는 것이구나. 그래서야 회귀가 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거겠지?』

‘예. 그렇습니다.’

테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로드브로크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사실 저 아이가 보는 미래라는 것은 진짜 미래가 아니다.』

‘그럼?’

『‘가능성’에 가깝다. 인과율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데이터?

『선지의 이능이라는 것은 너희들이 말하는 <예지>와는 조금 다르다. ‘없던’ 일이 되어버린 옛 우주의 데이터 잔재물을 되짚으며 힐끗 엿보는 표상이라 보면 될 것이다.』

하나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었지만.

하지만 회귀 전에 환생도 겪었던, ‘지구’의 기억이 일부 남아있던 테오는 어딘가 미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하시는 말씀은 설마……!’

『너희 인간은 보통 시간을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직선>으로 여길 테지? 하지만 아니다.』

로드브로크는 그런 테오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시간은 <원>이다. 순환하지. 무한하게. 마치 제 꼬리를 잡아먹기 위해 뱅글뱅글 도는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로드브로크의 목소리에 조금씩 힘이 실렸다.

『이 세계 또한 반려, 그대처럼 <회귀>를 무한하게 반복하는 것이다.』

‘……!’

[로드브로크에게 <시간의 비밀>에 대한 정보를 일부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시작합니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

[시나리오 퀘스트 #6]

조금 전에 얻은 <시간의 비밀>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카산드라가 지닌 이능을 더 깊게 탐구하여 <회귀의 비밀>에 대해 알아내세요.

· 난이도: S

· 보상: ■■회귀 능력

· 실패시: 사망

+

테오는 퀘스트를 보고도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 확실하게 알아내야 할 사실이 있었다.

‘로디, 만약 당신의 말대로 시간이 무한하게 순환하는 <원>이라면…… 그것을 원점으로 되감는 존재가 대체 누굽니까?’

『이미 눈치를 챈 것 같은데, 아니더냐?』

테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그 존재가 바로 <이름 없는 군주>입니까?’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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