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41화 (141/224)

141화

영묘의 영령들 (1)

테오는 르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이 혼란 중에 카산드라를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말은 똑바로 해야 하지 않겠니, 동생아? 너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이 아이를 우리에게 인계하는 것으로 끝났을 텐데?”

“조금 전 제가 받은 임무가 바뀌었습니다. 카산드라를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하라고 말입니다.”

“아, 그런 거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알아서 보호해줄 테니까.”

“누님이 이번 임무의 책임자이셨습니까?”

르제는 말없이 웃었다.

테오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역시 아니시군요.”

“난 계승권자야. 비상 상황에서는 적절한 판단과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지.”

“그 적절한 판단이라는 것이 다른 형제들로부터 카산드라를 숨기는 것입니까?”

“그것도 판단의 예가 될 수 있겠지. 이 아이가 윈터러의 영감들 눈에 띄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뻔하잖아?”

역시.

테오는 이를 악다물었다.

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의도를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카산드라의 예언 능력은 사용 여부에 따라서 앞으로 있을 판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예언에만 기댈 게 아니라 정말 확실하게 권좌를 틀어쥘 수 있겠지.

거기다 만약 르제가 카산드라의 신분까지 알고 있다면?

‘그땐 최악이야. 어떻게든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려 할 테니까.’

테오는 르제가 가진 권력욕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눈이 먼다는 것까지도.

토르켈에 패배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

“카산드라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안 하시는 겁니까?”

“아마추어처럼 왜 자꾸 질척거려? 잘 알잖아. 이 아이는 내 보호 아래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해. 뭐 필요하다면.”

르제의 눈매가 곡선을 그렸다.

“너와는 관계가 각별한 것 같으니 한 번씩 만나게 해줄 수 있을지도?”

너 역시 카산드라의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냐. 그렇다면 나와 함께 하자.

즉, 아래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아마 저렇게 평생 꼭꼭 숨겨서 밖으로 절대 얼굴을 내비치지 않게 할 것이다.

결국 테오는 결정을 내렸다.

“네. 잘 알겠습니다.”

“오, 어떻게 하게?”

“역시 누님께는 카산드라를 맡기지 못하겠습니다.”

“뭐?”

테오가 인벤토리에서 애기르의 투구를 꺼내 얼굴에 착용했다.

철컥!

“누님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비상시에는 계승권자의 권한에 따라 적절한 판단과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고.”

스르륵-

투구에서부터 백금의 철갑이 내려오면서 단숨에 테오의 전신을 뒤덮었다.

한때, 부유군도를 빛냈던 용사 크림힐트가 대륙 한가운데에서 재림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럼 저 역시 계승권자의 자격으로 제 판단대로 움직이겠습니다.”

테오는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꺼내 이너 오러를 발동시켰다.

촤르르륵-

뜨거운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검면을 따라 용의 비늘이 잔뜩 돋아났다.

콰앙!

쐐애애액-

“아이 하나 때문에 내분을 일으키겠다고? 그것도 이 누나에게 덤비면서? 듣던 것과 다르게 공과 사도 구분하지 못하는 머저리였구나, 너?”

르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림 리퍼로 바닥을 세게 긁었다.

사신조의 검사들이 나서려 했지만, 손짓으로 물러나라 지시했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어.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말이야.”

화르륵!

대낫의 날을 따라 검은 불꽃이 거칠게 일렁거렸다.

연옥로(煉獄爐).

르제에게 ‘흑사신’이라는 별호를 가져다준 비전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어. 내 휘하에 둘 수 없다면 싹이 더 보이기 전에 짓밟아 버리는 게 나아.’

르제는 테오를 단숨에 제압할 생각이었다.

이상한 갑옷을 두르고 검까지 꺼내니 제법 위협적인 기세를 풍기고는 있다만, 그래도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십 명이나 되는, 아니, 방계까지 합치면 수백 명이나 되는 라그나르 혈족들을 물리치고 5대 후보에 꼽힌 자.

이미 차대 9룡에 꼽히기도 했다.

저딴 햇병아리에게 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림 리퍼에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확인할 수 있겠지.’

<연옥로 – 사신의 칼날>

르제는 검은 불길의 화력을 높이면서 단숨에 테오의 목덜미로 내리쳤다.

마치 공간이 절단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일격.

테오는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위로 쳐올리는 것으로 공격을 막아내고자 했다.

르제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연옥로의 불길은 단순한 불꽃 속성의 속호법이 아니었다.

한번 붙으면 상대의 생명을 완전히 불사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 지옥의 불길.

거기다 그녀의 파트너, 그림 리퍼의 신묘한 능력과 합쳐지면 그 위력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러도 제대로 두르지 못한 검으로 이걸 막으려는 것부터가 이미 만용에 불과할……!

“기능 정지.”

그러다 르제의 귓가로 파고든 테오의 혼잣말과 함께,

쩌엉!

갑자기 그림 리퍼를 휘감고 있던 검은 불길이 거짓말처럼 훅 꺼졌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림 리퍼에 불어넣고 있던 마력 순환이 도중에 차단되면서 반발력으로 마력회로 운영이 중단되었다.

마치 그림 리퍼가 그녀를 격렬하게 거부하는 듯한 느낌.

그 때문에 르제의 몸도 순간 빳빳하게 굳고 말았고,

‘어떻게 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방향을 도중에 꺾은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르제의 복부를 휘갈겼다.

콰아아아앙!

“이런!”

“르제 님!”

사신조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경악하면서 다급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가장 크게 경악한 건 르제였다.

꿈쩍도 하지 않는 그림 리퍼를 대신해 뒷주머니에 달아놨던 단검을 뽑아 가까스로 테오의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녀는 큰 충격파와 함께 뒤로 거칠게 튕겨 나는 중이었다.

“너! 대체 그림 리퍼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글쎄요.”

테오는 어느새 풍뢰신을 발동해 그녀와의 간격을 바짝 쫓고 있었다.

투구 아래 두 눈이 요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진짜’ 주인의 말을 듣는 중이라고 해두죠.”

“……!”

테오의 망막 아래에는 그와 관련된 메시지 창이 떠올라 있었다.

[‘태고룡의 유물: 그림 리퍼’에 대한 소유권을 발동했습니다.]

[그림 리퍼가 소유권자를 제외한 타인의 손길을 모두 거부합니다.]

이미 그림 리퍼의 주인은 르제가 아닌 테오였다.

물론,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르제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설마설마했던 일이 진짜 터지고 말았다.

그림 리퍼는 그녀에게 있어 단순히 ‘아끼는’ 무기 따위가 아니었다.

“네깟 놈이 뭔데!”

치열한 권좌 경쟁 때문에 억울하게 독살당하고 말았던.

“내 것에 함부로 손을 댔다는 거야!”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딸의 안전을 걱정하셨던 어머니의 유품.

-이 아이가 너를 계속 지켜줄 거란다, 르제. 그러니 울지 말렴.

하지만 테오는 르제의 절규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연거푸 휘둘렀다.

쉬쉬쉬쉭-

<니벨룬의 발톱 – 십섬낙뢰(十閃落雷)>

콰릉! 콰릉! 콰릉! 콰릉! 콰릉!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용섬을 뿌릴 때마다 낙뢰가 내리꽂히면서 르제의 손발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마력이 제대로 운용되면 모를까, 그림 리퍼의 마력 차단 때문에 침착하게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그림 리퍼를 손에서 놓아버리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안 돼!’

르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번이라도 놓게 되면 그림 리퍼와는 영영 이별일 것 같아서.

“르제 님,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르제 님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겠느냐, 테오 라그나르!”

사신조가 다급히 테오의 뒤쪽에 달라붙으면서 르제를 구출하고자 했지만,

“카산드라를 데려간다면서? 이렇게 자리 비워도 되나?”

“……!”

“……!”

테오의 비웃음에 뒤늦게 아차 싶어 뒤를 돌아보는데, 흔들린 진영 사이로 다른 누군가가 난입하고 있었다.

테오의 지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셀퍼드와 아린, 레이였다.

“아, 정말! 자꾸 이런 힘든 일만 시키지 말라고!”

“자, 잡아!”

레이가 카산드라를 품에 안고, 셀퍼드와 아린이 각각 좌우를 맡으며 사신조의 접근을 밀어냈다.

아무리 사신조가 르제가 자랑하는 친위대라고 해도, 백갑용기대는 라그나르가 자랑하는 최정예.

쉽게 밀릴 리가 없었다.

더구나 사신조에게는 더 치명적인 부분이 따로 있었다.

테오에게 시간이 너무 붙잡혔다는 것.

-성마광세!

-성마광세!

멀지 않은 곳에서 아스라이 들리는 광신도들의 포효.

사신조가 일제히 고개를 위로 번쩍 들었다.

“어찌 이리도 헛된 욕심에 휘둘리는 마구니들이 가득하단 말인가-! 전부 붉은 피로 그 업을 씻어야 할지어다!”

카산드라의 쟁탈전에 새롭게 끼어드는 존재들이 있었다.

성마교.

교구장 급의 인사와 함께 수십 명의 무리가 일제히 난입하면서 사신조와 한바탕 어우러졌다.

아크트가 데리고 오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어온 지원군이 바로 이들이었다.

콰콰콰쾅!

“전원 제자리 고수! 저것들부터 막아라-!”

르제는 순간 고민했다.

저들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카산드라를 쫓을 것인가?

이대로 진영이 붕괴했다간 순식간에 적들의 틈바구니에 휩싸여 전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산드라의 존재 역시 향후 르제의 행보에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될 터였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사신조의 안전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을 고수해야 할 필요부터 있었다.

결국 사신조가 성마교의 접근을 막고, 그 틈을 타 셀퍼드 일행이 그림자에서 일어난 움브라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됐어!”

하늘은 백갑용기대의 영역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적들도 더 이상 쫓지 못할 거란 게 셀퍼드와 아린의 생각이었다.

* * *

“이걸 노리고 있었던 거냐……!”

르제는 하늘 위로 힘차게 날갯짓하는 움브라와 셀퍼드 일행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애당초 먼저 등룡 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멋대로 움직인 건 누님이었습니다.”

“저 아이는 앞으로 많은 혼란만 부를 거라고!”

“그렇다고 아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의 인생을 누님이 멋대로 휘두를 근거는 되지 못하지 않습니까?”

테오는 끝까지 태연했다.

까득!

르제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테오는 절대 누군가가 품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자신과도 평행선만 달릴 뿐이었다.

“그림 리퍼는 나중에 회수하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소중하게 잘 보관하여 주시길.”

테오는 차갑게 웃으면서 르제를 압박하다 말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르제가 뒤늦게 그를 쫓으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테오는 염력의 사슬로 움브라의 다리를 잡아 묶어 같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아악!”

르제가 신경질적으로 괴성을 질렀다.

사신조와 성마교, 청악대까지 전부 닭 쫓던 개처럼 하늘만 우두커니 바라봐야만 했다.

“후후, 일처리는 확실하게 잘했나 보군.”

등룡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걸리는 가운데, 아크트만큼은 별다른 반응 없이 가면 너머의 두 눈이 퀭하게 가라앉아 무슨 생각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으으.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적의 포위에, 계승권자 다툼에…… 진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줄 알았다고.”

셀퍼드와 아린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던지, 움브라의 바닥에 엉덩이를 철퍼덕 깔고 앉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테오는 여전히 움브라의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전음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다 같이 하는 임문데. 그래도 너는 우리 같은 새우들의 마음 같은 건 평생 모를 거다.”

「그런가요. 그런데 그 등, 좀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셀퍼드가 화들짝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아래.

장원 바깥으로 촘촘하게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트로이반이 아주 단단히 작정한 것 같습니다.」

트로이반을 상징하는 깃발과 더불어 여러 조직들의 깃발이 함께 나부끼고 있었다.

모두 테오에게도 익숙한 곳들이었다.

장미 가문.

일검회.

흑영검단.

방랑기사 연합…….

라그나르를 등지고 트로이반으로 전향했던 배신자 집단.

“씨발, X나게 많네.”

셀퍼드는 깊게 탄식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이쪽으로 쇠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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