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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33화 (133/224)

133화

16세 (3)

지금은 유명무실한 존재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황실이지만.

그들은 한때 ‘에다’라는 세계 제일의 국가를 세웠던 집단.

당연히 그 구성원들의 면면은 하나 같이 대단했고, 라그나르에 못지않은 축복받은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미래 예지.

다가올 미래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능이 혈통 인자에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세대가 계속 이어지면서 피는 묽어졌고, 볼 수 있는 미래도 짧아지거나 엇나가기 시작했으니.

오늘날에는 이마저도 엿보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 만에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보는 황족이 탄생했지.’

이제 아홉 살쯤 될 여자아이.

하지만 그녀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선대 황제의 14촌이 사창가에서 낳은 사생아라는 것.’

황실에서는 같은 구성원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방계 중의 방계.

거기다 천한 핏줄이기도 하니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친부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본인조차도 사창가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빈민이어서 갑자기 방문한 트로이반에 의해 처음으로 신분을 자각했다지?’

더러운 피를 낳았다며 황실에서 해코지할까 봐 친모가 그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트로이반이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하면서 자신들의 보호 아래에 두기 시작했고,

그 능력을 오로지 자신들을 위해 써먹었다.

‘그 뒤에는 트로이반의 멸망과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황실의 붕괴와 함께 억지로 황좌에 오 르게 되는 사람…….’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이었다.

능력이나 자질과는 별개로, 한평생 야망가들의 권력 놀이를 위한 인형으로만 살다가 갔으니까.

‘그런데 카산드라의 행방에 대해서 라그나르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단 말이지?’

트로이반과의 전쟁이 실제 역사보다 수년 빨리 앞당겨져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라그나르의 정보망에 포착되었다는 것.

테오 역시 복귀하고 나면 카산드라를 찾기 위한 작전을 흑설에 의뢰할 예정이었으므로,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위치가 어디입니까?”

테오의 질문에 셀퍼드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프리아모스.”

순간, 테오의 눈이 빛났다.

트로이반의 영역에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 * *

“이제 가는 건가?”

“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우리가 해야지. 고향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떠나는 테오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비토리오와 크림힐트 기사단이 항구까지 찾아왔다.

“합작회사와 관련된 내용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따로 연락하겠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테오 일행은 짧은 인사와 함께 선박에 몸을 싣고, 대륙에 도착해서는 마도열차에 올라탔다.

트로이반의 영역으로 가는 길이다 보니 최대한 정체를 숨기기 위한 선택이었다.

“오늘 입은 옷, 어머니가 주신 옷이네?”

셀퍼드는 테오의 옷차림을 보고 쌍따봉을 날렸다.

테오는 계면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어울…… 립니까?”

“그럼. 아주 태가 사는구만. 같은 백색인데도 백갑용기대 정복처럼 보이지도 않고. 딱 깔끔하게 입은 부잣집 도련님 같아. 크! 부럽다. 나도 저런 엄마 있었으면.”

테오의 콧잔등이 붉어졌다.

“처음 보는 거네?”

“세실리아 부인과 매화궁주께서 같이 주신 옷이야. 하이 테오도어의 이번 최고 신상이란다.”

“오! 확실히 두 분의 센스라면.”

아린은 테오를 위아래로 몇 번씩이나 훑어보다가 음흉하게 웃었다.

“후배님, 나도 좀 어떻게 안 되니? 지인 할인 같은 거?”

“나중에 한번 따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예스!”

아린이 주먹을 불끈 쥐는 동안, 테오는 소맷자락을 꾹꾹 잡아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레이가 또랑또랑한 눈으로 빤히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아무 말이 없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렇게 빤히 보일 수가 있나.

피식.

테오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알았어. 너도 같이 말씀드려볼게.”

그런데,

도리도리-

“응? 그럼?”

“…….”

“……?”

“…….”

“아! 당연히 수선궁주 님 것도 같이 말씀드리지. 모녀가 커플 세트로 맞춰도 예쁠 것 같은데?”

레이는 그제야 붙잡고 있던 소맷자락을 풀어주었다.

입가엔 미소가 활짝 걸려 있었다.

끼유우! 끼유!

이 분위기에 끼고 싶은지 그림자도 마구 흔들렸다.

‘너도?’

끼유!

‘넌 안 돼.’

끼유유! 끼유! 끼유우우?

왜 자기는 안 되냐고 펄쩍 뛴다.

‘너 덩치가 얼마나 커진 지는 알고나 하는 소리야?’

케에에엑!

‘그래도 친구 사이에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케엑! 케에엑!

‘좋아. 당분간 너 하는 거 봐서.’

케에에에에엑!

테오는 불만 섞인 움브라의 항의에 웃고 말았다.

케에엑!

그럴수록 움브라의 심통은 더 커졌지만.

테오가 결국 알겠다고 대답하려던 그때였다.

“거기! 뭐 하는 짓이야! 어서 안 내려!”

“제발! 제발 저희도 좀 태워주십시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살기 힘듭니다!”

“어서 썩 안 꺼져!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일행이 타 있는 1등석 칸 창문 너머.

역사에 정차해있던 마도열차에 올라타려는 빈민들과 이를 제지하려는 승무원들 사이에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퍽퍽!

승무원들은 몽둥이를 세게 내리치면서 어떻게든 빈민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빈민의 수가 워낙에 몇 배로 많은 데다가 얼굴에는 절박함이 가득 묻어나서 도저히 문짝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으으! 이대론 안 되겠어! 기관사님께 어서 출발하시라고 말씀드려!”

“하지만 그랬다간 여기 매달린 사람들이!”

“지금 저 거렁뱅이들이 중요해? 이대론 열차가 빼앗기게 생겼는데!”

“아, 알겠습니다!”

몇 번의 소란 끝에 결국 마도열차는 증기를 내뿜으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뿌우우우-

“아, 안 돼애애!”

“제발! 제발 나도 좀 데려가라고!”

“아아아악!”

사람들이 매달리거나 말거나, 마도열차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바퀴를 굴리면서 역사에서 멀어졌다.

대부분이 위험천만하게 철길 위에 떨어졌지만, 몇몇은 겨우겨우 승선해서 승무원들에게 체포되거나 더러 아슬아슬하게 외벽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아린은 그 상황을 전부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셀퍼드는 침음을 삼켰고, 레이는 가만히 테오를 올려다봤다.

테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 흉작과 기근이 역대 최악이었다더니 생각보다 심각한가 봅니다.”

“나도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가뭄이 너무 극심한 나머지 각지에서 빈민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공업 도시들이야 싸게 부려 먹을 수 있는 일손들이 늘었다면서 좋아한다지만, 지방이나 시골은 이미 쑥대밭이 된 경우가 허다했다.

대전란이 극심했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드르륵-

“쉬시는데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소란은 금방 진정되었으니 두 번 다시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항의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시름에 잔뜩 젖은 승무원이 찾아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아린이 질문했다.

“빈민들인 것 같던데. 그들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할 예정이신가요?”

“모두 체포를 완료하였고, 다음 역에 있는 경비대에 넘길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승무원은 다시 한번 더 사과 인사를 한 뒤에야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흉작이 더 심하다던데……. 앞으로 이런 상황을 더 많이 볼 수도 있겠는걸.”

셀퍼드가 한숨을 내뱉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

테오는 물끄러미 자신의 옷을 만지작거렸다.

얼룩 한 점 없는 하얀 새 옷.

반면에 빈민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악취만 풀풀 날리던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두 가지가 계속 대비되었다.

“쓸데없는 짓 할 생각하지 마라.”

하지만 테오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셀퍼드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눈빛이 진지했다.

“너는 너고, 저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야. 저 많은 빈민들을 네가 거둬줄 게 아니면 괜히 나설 생각하지 마. 지금은 임무가 우선이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테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란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큰 줄기였다.

자신이 나선다고 한들 뭔가 바뀔 수 있는 게 없다는 뜻.

그러니 나서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니, 따지자면 역사의 큰 줄기를 되도록 안 건드리는 게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지만.

어쩐지 옷자락을 매만지는 손에서는 힘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 * *

-이번 역은 프리아모스 역입니다. 열차와 승강장 간의 거리가 있으니 내리실 때 유의하시기…….

테오 일행은 마도열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차가운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휑한 풍경이 그들을 맞았다.

“여기도 다르지 않네.”

프리아모스 역사 주변은 일행이 마도열차를 타고 오는 내내 봤던 바깥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퀭하게 마른 가지들.

아무것도 없는 밭.

버려진 가옥들.

그리고 역사 주변에 몰린 많은 빈민들.

“한 푼만 주십시오, 나리!”

“집에 배를 곯는 자식이 있습니다. 부디 선처를……!”

“여기 있으면 발만 묶이겠다. 서두르자.”

일행은 앞장서는 셀퍼드의 뒤를 쫓았다.

도시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휑했다.

연기 하나 나지 않는 곳.

“……목표물이 있는 마을은 도시 외곽 지역에 있는 작은 촌이라고 하니 거기로 가자.”

이쯤 되니 냉정함을 찾으려던 셀퍼드도 그러기가 힘들었던지 목소리가 무거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마을은.

“…….”

“…….”

“……어떡하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불길이 크게 휩쓸고 지나갔는지, 가뜩이나 황량했을 마을이 사람 하나 살지 않는 유령 마을이 되었던 것이다.

셀퍼드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래서는 목표물의 행방을 수소문해야 하는데…… 언제 트로이반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의 이목만 사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임무는 어디까지나 목표물을 ‘몰래’ 윈터러로 호송하는 것이었으므로.

더구나 이곳은 트로이반의 영역.

적진 한가운데였다.

자칫 정체를 들켜서는 위험할 수 있…….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테오가 마을을 살피다 말고 눈을 가만히 좁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최대한 흔적을 가리려 애썼습니다만, 아무래도 이 화재, 방화인 것 같습니다. 곳곳에 약탈한 흔적도 있구요.”

“뭐?”

테오는 새카맣게 탄 모래를 휘적거렸다.

다량으로 출혈이 있었던지 붉게 물든 땅바닥 위로 다급하게 찍힌 수십 개의 발자국들이 보였다.

“납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은…… 대략 1시간에서 3시간 사이.”

셀퍼드의 눈이 커졌다.

“트로이반이다! 아직 얼마 가지 못했을 거야. 쫓자.”

그 순간이었다.

띠링!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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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퀘스트 #5]

시간을 엿보는 예언자는 시간을 거스른 당신과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그녀를 확보하여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세요.

· 난이도: A+

· 보상: <시간의 비밀>의 단서

· 실패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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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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