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드래곤 블러드 (2)
30분 전.
노일은 경비대와 함께 스피놀라 대저택을 방문하고 있었다.
경비대만으로는 스피놀라 패밀리를 모두 처치하기가 힘들다는 주세페의 의견 때문이었다.
-아마 패밀리를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본인은 비밀 통로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움베르토는 본인의 목숨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작자라서 말입니다.
노일도 더 이상 이번 일을 질질 끌 생각이 없었으므로, 곧바로 대저택으로 들이쳐서 도주를 시도하던 움베르토의 머리를 쳤다.
그리고 환호하면서 달려온 주세페도 보란 듯이 처치했다.
-저는 대체 왜……!
-쓸모가 다했으니까.
-이런 개같은!
-억울해하지 마라. 애당초 일이 끝난 뒤에 우리의 뒤통수를 먼저 칠 준비를 하고 있던 건 너였잖은가? 그저 생각 없는 버러지로만 살면 되었을 것을, 왜 굳이 되지도 않는 머리를 쓰려하는 건지. 쯧!
애당초 그리말은 주세페도 알게 모르게 트로이반이 대부분 손에 넣은 상태.
그 많던 금화며 돈들이 전부 트로이반에 넘어갔을 것이므로, 이곳에는 쭉정이만 남겨도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돌려서 지금.
노일은 움베르토와 주세페의 머리를 들고 중앙 신전에 나타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귀살대의 복귀가 너무 늦은 탓이었다.
「그래도 전화위복이라면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겠군.」
테오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버티고 섰다.
용살검과 월백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바짝 실렸다.
「설마 크림힐트의 신비를 가져간 자가 용살검을 탈취한 놈이었다니. 그게 설마 현 시대의 <선택자>였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저벅-
노일이 천천히 테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테오!’
셀퍼드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아린과 레이도 어떻게든 테오를 지키기 위해서 움직이고 싶었지만, 이 빌어먹을 압박감은 좀처럼 그들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노일은 어느새 테오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동안 에드가 멍청하게 빼앗긴 유물들도 모두 가지고 있을 테니, 말끔하게 회수하기만 하면 이보다 깔끔한 결말도 없겠지. 덧붙여…… 선택자의 육신도 가져갈 수도 있고.」
노일은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눈빛이 죽지 않는 테오를 보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기상이야말로 선택자가 가질 수 있는 자세가 아니겠는가.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렇기에.
트로이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녀석의 싹을 여기서 꺾을 필요가 있었다.
「나와 가자.」
스륵-
노일이 손을 뻗어 테오의 얼굴을 덮어갔다.
손가락 틈 사이로 진홍색으로 변한 테오의 눈이 노일을 여전히 직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웃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가면 속 노일의 눈동자가 구겨질 무렵.
쿠쿠쿠쿠!
갑자기 중앙 신전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균형을 잡기 힘들 정도로 큰 지진.
동시에 사위를 짓누르던 압박감도 거짓말처럼 부서졌다.
“테오!”
보이지 않는 사슬에서 해방된 일행들이 일제히 테오 쪽으로 몸을 날렸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다 이긴 게임이라고 생각해서 너무 안일하게 군 것 아닌가? 애당초 여기는 내 영역인데.”
「설마!」
노일은 뭔가에 문득 생각이 미치고 재빨리 손끝에 맺힌 오러를 터뜨리려고 했다.
콰르릉!
그가 알기로, 테오는 이미 크림힐트의 신비를 얻고 해왕의 봉인까지 마친 상태.
그리고 부유군도의 부유 성질은 해왕이 내뿜은 마력풍의 상승기류에 근거하고 있었다.
-만약 해왕이 재봉인 된 것이 아니라, 해왕이 그 힘이나 자격을 테오에게 계승시킨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일반 상식으로 용사 크림힐트와 해왕 레비아탄은 절대 섞일 수 없는 원수 관계이지만.
테오는 ‘용의 후예’를 자처하는 라그나르의 직계이며, 용왕의 반려라 불리는 선택자.
그렇다면 그 원수 관계를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의 추론은 실제와는 조금 다른 추론이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한 통찰.
그래서 노일은 테오가 허튼짓하지 못하도록 막고자 했지만, 이미 테오는 해저에 있는 새로운 해왕과 채널링이 연결된 상태였다.
“폰투스!!”
끼우우우우-!
테오의 부름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신전 밖에서 엄청난 크기의 포효가 들렸다.
동시에 신전이 한쪽으로 기울고, 바닥이 삽시간에 갈라졌다.
테오를 중심으로 막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면서 노일의 손을 튕겨냈다.
쩌저저적!
쿠르르릉-
섬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서, 섬이……!
-신전이 부서진다!
-섬이 추락한다아아아!
-크림힐트 님께서 노하셨다!
귀살대의 핍박에 다쳤던 군중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신기한 점은 같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 있던 위치는 멀쩡한 데 반해, 중앙 신전만 지대가 무너져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두 마력풍의 상승기류를 조작한 폰투스의 의지 결과였다.
물결이 치는 드넓은 바다 위.
테오가 해수면으로 곤두박질치고, 일행들이 어떻게든 테오를 붙잡기 위해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그림자가 꿈틀거리면서 움브라가 튀어나왔다.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진 듯한 엄청난 몸집.
가뜩이나 일반 와이번보다 1.5배가량 덩치가 큰 녀석이 더 커지니 고대룡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했다.
케에에엑!
움브라는 거칠게 날갯짓하면서 테오를 등에 태우곤 허공에 떠오르며 셀퍼드와 아린, 레이와 마르티를 차례로 실었다.
확실히 커진 몸집 덕분인지 그들을 모두 태우고도 한참 자리가 남을 정도였다.
“움브라, 잘했어.”
케에에엑!
테오가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는 움브라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동안, 일행들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휘익!
대기 중이던 셀퍼드와 아린의 파트너들이 차례로 나타나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신전 기사와 블랙 스컬 멤버들을 구출했다.
“아아!”
마르티는 감격에 젖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직 이런 걸로 감동하지 마.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셀퍼드의 말에 마르티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노일이 있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잘도 이딴 짓을 저지르는구나, 테오 라그나르. 이런다고 해서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저 아래.
노일이 쏟아지는 낙석과 신전 잔해를 박차면서 중력을 빠르게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귀살대장이나 대원들이 해수면에 처박히거나, 낙석에 깔려 죽는 것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르티는 그 모습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쐐애애액-
“미친놈이로군.”
셀퍼드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테오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손끝에 모든 의념을 집중했다.
이 순간, 그는 폰투스와 깊은 동조(同調)를 이루고 있었다.
「그대는 이 폰투스의 주인이다. 해왕의 인정을 받았고, 용사의 후계자이다. 용에서 기원한 이 마력풍쯤이야 그대가 다룰 자격은 충분하다.」
화아악!
머릿속이 다시 한번 더 뜨겁게 타올랐다.
백열.
쿵쿵쿵쿵쿵!
용의 심장이 거칠게 떨리면서 용혈이 마구잡이로 혈관을 누비고 다녔다.
테오의 유전자 속에 잠든 고대룡의 인자가 깨어나고 있었다.
톡. 톡.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몸은 피로했지만, 정신은 아직 버틸만 했다.
마력도 조금 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은 그가 당장 부릴 수 있는 마력풍이 이렇게나 많았다.
그래서 테오는 이참에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마법.’
당장 그가 제대로 알고 있는 마법은 <썬더 콜링>과 <플레임 댄싱>, 단 두 개뿐.
마법적 지식도 사념으로 얼추 엿본 게 전부이기에 제대로 된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테오는 폰투스의 말을 믿었다.
고대룡은 마법을 탄생시킨 종족.
그러니 그것을 통제하는 것 또한 ‘본능’에 각인되어 있을 터였다.
‘<썬더 콜링>은 무차별적으로 낙뢰가 쏟아진다. 반면에 <플레임 댄싱>은 확산한다.’
그래서 테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두 마법을 합쳐보기로 마음먹었다.
‘열은 곧 에너지야. 에너지는 압축하면 파괴력이 더해지고, 해제하면 팽창해. 그러니 이것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다면.’
파직, 파지직!
노일의 주변으로 불씨가 하나둘씩 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력풍도 일종의 에너지이니 그 속에서 마찰열을 일으켜 불씨를 틔우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그 연결을 무분별하게 이어서 통제를 풀어버린다면.’
불씨는 어느새 붉은빛에서 노란빛으로 변하면서 도깨비불처럼 크게 피어올랐으니.
‘대규모 폭발이 이뤄진다!’
테오는 주먹을 확 하고 쥐었다.
그러자 도깨비불들이 삽시간에 확장되고, 뇌기로 변질하면서 상승기류 전체로 번져나갔다.
파지지지직!
그것은 마치 벼락으로 이뤄진 거대한 그물망 같았다.
-체인 라이트닝.
퍼퍼퍼펑-
쿠르릉! 쿠르르릉!
수많이 일어난 폭발이 노일을 뒤덮었다.
가뜩이나 낙석에서 쏟아진 먼지와 돌멩이들도 많아 분진 폭발까지 더해지면서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뿌연 안개가 시야를 차단했다.
하지만 테오는 고작 그걸로 노일을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지 않았다.
상대는 9룡에게 필적할지 모르는 괴물.
이딴 것에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애당초 그의 목표는 노일을 떨어뜨리는 것에 있었다.
테오는 꽉 쥔 주먹을 비틀었다.
그러자 여전히 손끝에 걸려있던 의념도 비틀리면서 마력풍을 뒤덮은 뇌기는 이제 서로 뭉치면서 서서히 용의 형상을 갖췄다.
그것은 테오가 데스비트로 부리는 뇌룡을 닮아있었으니.
마치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뇌룡이 강림한 것처럼 보였다.
마법적 황홀에 잠겨 있는 그가 용혈의 본능을 좇아서 조금 전에 탄생시킨 그만의 오리지널.
“히드라-”
네 개의 머리를 지닌 뇌룡이 일제히 포효를 질렀다.
“-볼트.”
엄청난 빛무리가 퍼져나오면서 상승기류 전체를 뒤덮었다.
부유군도 전체에 백야가 찾아왔다.
콰아아아앙!
쿠르르르…….
연이어 벌어지는 엄청난 폭발과 폭음의 연속.
과연 저 속에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풍이 불어닥쳤다.
높은 상공에 떠 있는 여러 부유섬 중 상당수가 흔들릴 정도.
하지만 테오는 그것으로도 그치지 않고, 폰투스를 통해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부유섬 중 하나를 그가 있는 방향에 떨어뜨려 아예 해수면에다 처박기까지 했다.
콰아아앙!
푸화아아-
수십 미터도 넘을 높이의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사방으로 엄청난 해일과 파도를 일으켰다.
하얀 거품과 푸른 물살이 혼잡하게 뒤섞였다.
그사이 움브라와 와이번들은 드높은 상공까지 날아오를 수 있었다.
휘이이-
셀퍼드와 아린 등은 세찬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진정시킬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을 본 터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저 정도 파괴력은 용문검사가 자기영역을 펼치지 않고서야, 보이기 힘든 정도니까.
“……이 괴물아, 저런 마법은 대체 언제 배운 거야? 크림힐트가 저런 것도 가르쳐주디?”
결국 셀퍼드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테오를 돌아봤고,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테오는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면서 어느새 움브라의 등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힘없이 웃었다.
이젠 마력까지 전부 바닥 나서 웃을 기력조차 없었다.
물론, 셀퍼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더 이상 깊게 묻지는 않았다.
라그나르의 후계자가 되고자 한다면 저 정도의 비밀 무기를 한두 개쯤은 마련하고 있을 것이므로.
‘어디 가서 말한다고 해서 믿을 것 같지도 않고.’
저 나이에 저만한 검술 경지를 쌓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그에 못지않게 마법도 단련했다고?
누가 믿겠나. 퍽이나.
셀퍼드는 알면 알수록 양파처럼 변하는 후배가 처음으로 괴물처럼 느껴졌다.
* * *
해저 깊은 곳.
콰직! 콰지지직!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던 섬이 거칠게 흔들린다 싶더니, 엄청난 균열과 함께 터져나갔다.
「감히……!」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노일의 몰골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심지어 목각 가면도 절반쯤 타버려 그 너머에 있던 얼굴이 일부 드러날 정도였다.
마치 괴물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처럼 흉측한 모습.
크고 작은 촉수들이 멋대로 꿈틀거리고, 덕지덕지 붙은 눈알들이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분노를 보였다.
하지만 흉흉한 기세만큼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았으니.
테오가 마력풍을 이용한 대규모 마법을 펼치고, 부유섬을 떨어뜨리기까지 했어도.
그는 목숨의 위협을 받기는커녕 사실 크게 다친 상태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괴물.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면서 반인반괴(半人半怪)의 길을 선택한 그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상 여부와는 별도로 자존심만큼은 그렇지 못했으니.
노일은 어떻게든 테오를 찢어 죽이고 말겠다는 분노로 가득했다.
그래서 물살을 박차고 해수면 밖으로 나서려던 그 순간.
「인두겁을 벗어던지고 망신의 길을 쫓기 시작한 존재야. 헛된 미망을 두고서 어디로 가려 하느냐?」
노일 앞으로 거친 물살이 뭉쳐든다 싶더니, 곧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노일의 흉측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기서 만나서는 안 될 자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가 물을 말을 그대가 대신 묻지 말지어다. 그래도 대답하기 싫거든.」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소년인지 모를 사람의 형상은 어딘지 모르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팔 한 짝은 내어놓고 가려무나.」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