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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20화 (120/224)

120화

용살(龍殺)의 신비 (5)

‘뭐지?’

귀살대의 대장은 고개를 위로 번쩍 들었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스산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멈추시오!”

귀살대 대장은 갑자기 반대편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어구 아티팩트로 무장한 채 성큼성큼 다가오는 움베르토와 스피놀라 패밀리가 보였다.

“이게 누구십니까, 움베르토 님이 아니십니까? 거상에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버선발로 달려오셨나 봅니다. 역시 해운연맹과 부유군도를 사랑하는 해운 3가의 가주다우신 모습이십니다.”

그때, 귀살대 사이에서 간사한 눈빛을 지닌 사내가 앞으로 나서면서 웃었다.

피렌. 그리말 가문의 총지배인으로, 가주 주세페에 이은 2인자로 분류되는 자.

말투만 봐서는 움베르토에게 감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비꼬는 어조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움베르토도 살짝 불쾌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리말도 이 위급상황을 진압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한 것으로 보이네만. 어째서 ‘같은 목적’으로 온 식구를 핍박하려 드는가?”

피렌은 웃고 말았다.

움베르토가 노리려는 술수가 무엇인지 눈치챈 것이다.

“내 아들, 안토니우와 친구들은 모종의 무리가 크림힐트 거상을 노린다는 첩보를 우연히 입수하고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네. 나는 혹시 있을지 모를 외부의 간섭에 대비해 지원군을 모아 후발 주자로 이제 막 참여한 것이고.”

혼란을 틈타 외부 세력이 기승을 부리려는 것을 막는다는 게 스피놀라의 명분인 모양이었다.

‘이번 상황을 전부 안토니우와 같이 있는 저 외부인들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인 모양인데…… 하여간 뱀 같은 노인네. 그사이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어.’

문제는 그 명분을 ‘외부인 방지’에 두었다는 점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귀살대도 같이 엮어버리겠단 뜻이 아닌가.

피렌이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는 동안, 움베르토는 내친김에 안토니우를 인질로 삼고 있던 셀퍼드를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 아들을 인질로 삼는다고 해서 자랑스러운 선조님의 신비를 함부로 넘기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처처척!

스피놀라 패밀리의 장정들이 일제히 셀퍼드 일행에게 뭔가를 겨누었다.

핸드건.

서남부 지역의 유명 군수업체가 마탑과 손을 잡아 탄생시켰다는 소형 마총(魔銃).

화력만 따진다면 웬만한 대포에 버금간다는 아티팩트의 안쪽 실린더가 돌아가면서 언제든 난사를 갈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네 아비란 작자가 너를 포기한 모양인데?”

셀퍼드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안토니우에게 말했다.

‘아, 아버지!’

안토니우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리말의 등장도 등장이지만, 움베르토가 자신을 버렸단 사실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야망을 위해서는 충분히 아들도 내칠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피부에 와 닿게 되니 도무지 진정하기 힘들었다.

“아린! 설빙검! 이쪽으로 와.”

“레이.”

“뭐?”

“이름 있어. 별호 그만 불러.”

셀퍼드는 조용히 옆을 차지하며 검을 고쳐 쥐는 레이를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게 중요하단 건가.

특이한 성격이란 말은 들었지만, 아무래도 듣던 것 이상인 모양이었다.

“그래. 설빙검 아가씨. 얼음 장벽 쌓을 수 있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레이는 오히려 더 길어진 호칭에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갑게 대꾸했다.

“2분.”

“우리가 마력을 보조해주면?”

“5분. 그 이상은 안 돼.”

“최대한 버텨야 5분이라…….”

셀퍼드는 슬쩍 거상을 돌아봤다.

모양이 변한 것이 보였다.

신비가 여전히 작동 중이라는 뜻. 테오도 저 안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안에 테오가 신비를 마쳤으면 좋겠는데.”

셀퍼드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움베르토가 소리쳤다.

“발포하……!”

“그렇게는 안 되죠. 귀살대장, 부탁합니다.”

“이제 진짜 전쟁이로군.”

귀살대가 튀어 나가면서 스피놀라 패밀리 앞을 가로막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몰라서 물으시는 건 아니실 테죠? 안토니우와 블랙 스컬의 혐의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닙니다.”

“말하지 않았나! 우리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정말 그런 것이었는지는 자세한 조사 뒤에 충분히 밝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셀퍼드 일행을 죽이려는 스피놀라와 그들을 어떻게든 살려서 확보하려는 그리말.

둘의 대립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움베르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며 노호성을 터뜨렸다.

“저들을 어떻게든 살리려 하는 너희 그리말의 목적이 더 수상하구나! 그렇지! 너희들도 한 패였던 거였어! 오랫동안 외부인과 결탁하더니 기어코 부유군도를 팔아치우려는 속셈이로구나!”

“그렇게 뻔뻔하게 말씀하시고도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오히려 스피놀라가 켕기는 게 있어서 사실을 묻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닥쳐라, 이놈들! 내 오늘 밤 너희들을 전부 찢어 죽이고, 그리말에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스피놀라 패밀리의 총구가 일제히 귀살대 쪽으로 향했다.

귀살대도 일제히 오러를 격발했다.

타당! 타다당!

퍼퍼퍼펑-

마탄이 쏟아지고, 귀살대에서 번뜩인 오러가 사방을 휩쓸었다.

-아아아악!

-내 팔! 내 파아아알!

-집중 사격! 놈들이 한데 모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두에 있는 놈들부터 조져!

-거리 확보가 안 됩니다! 놈들이 자꾸 전열 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어서 사격이 힘듭니다!

악다구니가 총성에 묻혀 사라졌다.

“개판이네, 진짜.”

“……그러게.”

끄덕끄덕!

셀퍼드의 감상에 아린과 레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유탄에 휩쓸리지 않도록 빙벽을 높이 세우는 한편, 거상 쪽을 수시로 확인했다.

여차하면 그를 데리고 대피할 수 있도록.

그러던 그때,

드드드득!

‘저건?’

그동안 바닥에 넙죽 엎드리고 있던 악룡의 거상이 천천히 머리를 위로 들었다.

셀퍼드가 어떻게 말할 새도 없이, 악룡의 거상이 단번에 귀살대와 스피놀라 패밀리가 뒤엉키고 있던 난장판으로 들이닥쳤다.

콰아아앙!

그 커다랗고 단단한 몸뚱이로 박치기를 하니, 바깥쪽에 있던 이들은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이 피떡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이, 이게 뭐야?

-크림힐트의 발에 깔려 있던 악룡이잖아! 이게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혼란은 귀살대와 스피놀라 패밀리를 가릴 것 없이 삽시간에 커졌다.

설마 지난 수백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왔던 거상이 직접 움직일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귀살대는 전원 전열을 정비하고, 1조는 거상 제압을, 2조는 안토니우를 데리고 있는 놈들의 신병을 확보해라!”

귀살대장은 오랜 전투 경험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착실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는 직감적으로 악룡의 거상이 움직이는 불가사의가 신비의 발동 때문에 벌어진 것이란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크림힐트의 신비를 어떻게 개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필시 저 외부인들과 어떤 연관이 있을 터. 라그나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니 확보만 한다면 우리의 승리가 될 것이다.’

애당초 귀살대의 진짜 목적이 크림힐트의 신비를 확보하는 것에 있었으니 이건 기회가 되는 셈이었다.

“스피놀라! 스피놀라 패밀리는 저들을 모두 죽이고, 악룡을 확보한다!”

대립은 이제 난전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아수라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악룡의 거상은 계속된 공격에도 큰 상처 없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꼬리로 지반을 내리치면서 계속 양측에 피해를 누적시켰다.

콰릉! 콰르릉!

그만큼 굉음과 불빛도 자꾸만 커져서 부유군도 전체에서 이쪽을 관측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그중에서 악룡의 거상이 날뛰는 모습이 가장 크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거상이 무너지고 있어……!

-악룡이 다시 날뛴다! 전설 속 악룡이 우리 부유군도를 다시 바닷속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날뛰기 시작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크림힐트시여. 위대한 선조시여. 영령들이시여. 이 가녀린 후손들을 보살피옵소서.

주민들의 동요와 혼란도 눈덩이처럼 커질 무렵.

-와아!

-오반, 바깥은 위험하니까 어서 집 안으로 들어오렴!

-아빠! 저기 보세요! 크림힐트 님이 움직이고 계세요!

-무슨 말을…… 어? 저, 저건?

몇몇 사람들은 발견할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던 크림힐트의 거상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는 것을.

-크림힐트 님께서! 우리의 부름에 대답하셨다!

-선조와 영령들께서 크림힐트 님을 다시 우리에게 보내시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였다.

크림힐트의 재림.

악룡이 날뛰니 <용사>가 다시 후손들을 위해 이 땅에 나타난 것이다.

“크림힐트의 거상이 움직인다고?”

“대체 무슨……?”

한편, 혼란스러운 쪽은 귀살대와 스피놀라 패밀리였다.

신비를 빼앗거나 묻으려던 두 곳의 입장에서 악룡 외에 크림힐트까지 움직이는 것은 너무 두렵게 다가왔으니까.

곳곳에 균열이 퍼져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수십 미터의 거상이 발을 옮기는 모습은 경외감까지 부를 정도였다.

츠츠츠-

크림힐트의 거상이 기수식을 갖췄다.

분명히 먼저 부서지고 없던 검의 형상이 알 수 없는 빛무리와 함께 나타나 양손에 잡혔다.

그리고,

쐐애액-

콰직!

크림힐트의 거상은 힘차게 검을 뻗어 난동을 피우던 악룡의 턱을 정확하게 찔렀다.

검은 삽시간에 위쪽 두개골을 부수고 튀어나왔다.

악룡의 움직임도 순간 정지되었다.

“……!”

“……!”

“……!”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귀살대도, 스피놀라 패밀리도, 심지어 셀퍼드 일행도.

전설 속 한 장면이 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파스스-

악룡의 거상과 크림힐트의 거상이 같이 잘게 부서지면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가루는 돌개바람을 그리면서 한 지점으로 뭉쳤고, 이윽고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테오.

신비와 함께 사라졌던 그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빛무리를 한껏 휘감은 채로 나타난 모습은 성스러운 느낌까지 들 정도였으니.

“테오, 너!”

셀퍼드 일행이 다급히 그를 부르며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말할 새도 없었다.

테오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용살검을 귀살대와 스피놀라 패밀리 쪽으로 휘둘렀다.

지이이잉-

촤아악!

격동과 함께 뿌려진 참격이 그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바닥에 마치 용의 발톱이 긁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았다.

다만, 거기엔 평상시와 다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수없이 남아있는 기하학적 무늬.

“이건……!”

“<니벨룬>! 크림힐트의 니벨룬이 남았다!”

“크림힐트의 후계자가 나타났다!”

니벨룬.

크림힐트가 전설 속에서 악룡을 봉인할 당시에 용살검 발뭉과 함께 사용했다던 기술.

지금은 실전되어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것을 테오가 습득한 것이다.

당연히 부유군도의 주민인 스피놀라 패밀리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귀살대는 귀살대 나름대로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열풍과 빛무리가 가시면서 바깥에 대기 중이던 경비대가 안쪽으로 몰려와 그 흔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예. 보는 눈이 많으니 일단 다음은 기약하시지요. 그래도 다행히 저쪽은 스피놀라와 완전히 갈라섰으니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습니다.」

피렌과 귀살대장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빠르게 의견을 교환했고,

‘이런 젠장! 하필 이럴 때!’

가장 난처한 처지에 처하게 된 움베르토는 이를 악물었다.

부유군도를 위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으니 이제 더 이상 테오 일행을 핍박할 명분이 없어졌으므로.

“크림힐트 님의 안배를 이은 후계자로서, 그리고 발뭉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고한다-!”

테오는 소강상태가 된 이 상황을 이용해 마력을 실어 외쳤다.

크림힐트의 안배를 이은……. 발뭉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그의 외침은 이제 메아리가 되어 부유군도 전역에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크림힐트 님의 명을 받아, 부유군도를 다시 집어삼키려는 악룡을 물리치고자 하니-! 해운 3가와 자치령 의회는 나를 도와 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라-!”

부유군도의 모든 주민들에게 테오의 존재가 각인된 순간이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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