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11화 (111/224)

111화

부유군도 (1)

“딸. 정말 가야겠어?”

“응. 나도 이제 잘하고 싶어.”

‘잘’ 하고 싶다…… 라.

수선궁주 니엘은 여행용 가방에다 짐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딸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더 이상 궁에 갇혀 있지 않고 밖으로 나서고 싶단 뜻이겠지.

그리고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난번 테오의 활약이 자극이 되었던 게 분명했다.

전장에 나서겠다는 딸을, 자진해서 위험한 곳으로 가겠다는 딸을, 마음 같아서는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다.

몸이 좋지 않아 한평생 끼고 살았던 아이가 아닌가.

이제야 겨우 폐관수련을 끝내고 옆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나 싶었는데.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지.

딸은 딸만의 인생이 있고, 꿈이 있었다.

그걸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이 아이만큼은 꿈을 접어야만 했던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그래도 마지막 남은 미련만큼은 어쩔 수 없는지, 조금 쀼루퉁한 어투로 물었다.

“작전 참여 허가서는 받았고?”

“응. 여기.”

레이는 율리우스의 인장이 찍힌 서류를 당당하게 보였다.

“칼은?”

“챙겼어.”

“너 비룡도 없잖아.”

“열차 끊었어.”

“여행비는? 경비 그거 얼마 안 나온다?”

“용돈 받은 거 쓰면 돼.”

레이는 여행용 가방의 지퍼를 닫으면서 니엘을 바라봤다.

“나. 애 아냐. 계속 그러면 안 올 거야.”

“……그래그래. 알았다. 무사히 다녀오렴. 가거든 밤마다 꼭 연락하고.”

“…….”

레이는 가방을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부유군도 자치령.

테오 일행이 있는 곳이었다.

* * *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

[시나리오 퀘스트 #4]

당신의 반려자이자 수호룡인 로드브로크의 부탁을 들어 친밀도를 올리십시오.

· 난이도: A+

· 보상: 친밀도 +100, 용혈 재능 각성

· 실패시: 사망

+

‘<용혈>이라는 재능을 각성할 수 있다고?’

테오는 지금까지 받은 보상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보상안. 눈이 번뜩 뜨였다.

그러는 사이.

로드브로크의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당근 흔들고 있나?』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까?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아아. 흔들고 있는 것 같군.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할 땐 시각 공유까지 안 되는 게 아쉽단 말이야.』

노이즈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피식-

‘여전하시군요.’

『사람이, 아니, 용이 갑자기 달라지면 죽을 징조라 하지 않나? 아직은 죽고 싶은 생각은 없다만.』

로드브로크의 웃음기가 잔뜩 묻어났다.

“테…… 란트?”

그때, 옆에 있던 셀퍼드가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물었다.

테오는 슬쩍 손을 들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신호를 보여준 다음,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갑자기 왜 연결이 된 겁니까? 혹시?’

『용혈이 강화되어 그런 거냐고 묻는 거라면, 일단 아니라고 대답해주지. 지금 그대와 소통이 가능해진 건 사실 그대가 해왕의 영역에 들어가면서 생긴 우연이니.』

해왕?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내게는 먼 친척뻘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용종이다. 오랫동안 바닷속에 살아 그런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더군.』

‘고대룡이 이 근처에 있단 말씀이십니까?’

테오로서도 놀랄 이야기였다.

전생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아니,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 봐야겠지.

『말하지 않았나. 있‘었’다고. 과거형이야.』

‘그럼?’

『그 역시 <이름 없는 군주>의 마수를 거둬내느라 많은 힘을 소진하고 말았고, 그런 그의 뒤를 노린 용살자들에 의해 검 한 자루에 처박혀 해저에 봉인되었었지.』

테오의 머릿속으로 몇 가지 정보 파편들이 나열되었다.

블랙 스컬의 등장.

트로이반과 해운연맹의 관계.

용살검.

부유군도에 갑작스럽게 닥친 이상 현상.

해수종의 난동.

해왕의 영역.

로드브로크와의 소통 연결.

하나 같이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뿐이었지만,

어쩐지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지금 이 근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이상 현상들이 그 해왕이라는 존재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까?’

『역시. 그대는 아주 명석하군. 너무 쉽게 알아내어서 이쪽이 오히려 흥이 팍 식을 정도야.』

로드브로크의 웃음과 다르게 테오는 웃을 수 없었다.

‘먼 과거에 용살자의 검에 봉인되었던 해왕이 갑자기 봉인이 풀려 난동을 피우는 것이라면 모두 이해가 되니까요.’

테오의 추측은 이랬다.

아주 먼 과거.

해왕이란 고대룡이 있어 <이름 없는 군주>와 다투다가 모든 힘을 잃고 말았다.

그러던 때에 용살자라는 영광을 얻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습격을 받아 해저에 가라앉고 말았고, 이때부터 봉인된 용체에서는 마력풍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면서 부유군도라는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용살검에 대한 소문을 들은 트로이반이 어떻게 용살검을 회수하면서 해왕이 조금씩 봉인에서 깨어나 지금의 혼란이 만들어졌다면…….

부유군도의 숨겨진 칼인 블랙 스컬이 용살검을 회수하기 위해 세레스 상단을 기습한 이유도,

전생에 해운연맹이 트로이반과 손을 잡게 된 이유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용살검을 돌려받기 위해서 어떻게든 그들이 채운 목줄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오랜 봉인은 해왕에게 악영향만 끼친 듯하다. 오로지 광기만 느껴질 뿐, 제정신은 찾아볼 수도 없으니. 아마 이대로 기지개를 모두 마치고 나면…… 그 주변이 쑥대밭이 되지 않을까 싶다만?』

부유군도라는 자치령이 통째로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기지개’에 불과하다고?

허!

테오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제가 어떻게 하시길 바라십니까?’

『드래곤 하트. 대체품을 찾아준다고 약속했었지?』

‘해왕의 것을 원하십니까?’

『이미 광기에 물든 심장 따위야 도리어 독만 될 뿐이지. 속성도 너무 다르고.』

로드브로크의 웃음이 짙어졌다.

『하지만 ‘정화’된 일부라면 그럭저럭 쓸모가 있을 것 같다만.』

‘저와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이유가 해왕의 마력 덕분인 것 같으니,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그대가 다른 라그나르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나?』

‘무엇입니까?’

『말귀를 아주 잘 알아먹는다는 점이지. 하하하!』

테오도 그제야 로드브로크의 웃음에 따라 웃을 수 있었다.

‘그럼 우선 해왕에게 접근할 방법부터 찾아야겠군요.’

『쉽진 않을 것이다. 그의 마력은 전성기 시절의 나도 무시하지 못했었거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든 찾겠습니다. 마침 떠오르는 것도 있구요.’

『좋군, 아주.』

테오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해운 3가.

부유군도의 오랜 터줏대감인 그들이 해왕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을까?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안토니우의 환심을 더 깊게 사야겠어. 스피놀라의 중추에 접근하려면.’

트로이반에게 엿을 먹이고, 해운연맹도 확실히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보다 로드브로크, 마침 논의를 나눠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왜 그러나? 이런 소통은 나도 꽤 힘이 드는 작업이라 그리 길게 잇지 못해.』

확실히 자신의 마력이 아니다 보니 만능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름 없는 군주>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 놈을 따르는 추종 세력이 궐기하려 한다는 것도.』

로드브로크의 목소리가 깊게 착 가라앉았다.

『그동안 그대가 보고 들은 것들은 모두 반려인 나도 같이 보고 듣고 있었으니.』

* * *

로드브로크와의 소통은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조만간 다시 연락하마.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길게 잡담도 나눌 수 있을 거다.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하여간 일방적이시군.’

다행히 몇 달 전이나 지금이나 신변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사건에 <이름 없는 군주>가 개입된 걸 알고 있다고 하시니 다행이었어.’

한평생 녀석을 견제하면서 살아왔던 존재이니 당연히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제부터 그럴싸한 계획을 짜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잘만 한다면 블랙 스컬도 같이 엮을 수 있을 텐데.

테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예 난간으로 나가 바다에 시선을 던졌다.

둥……!

둥……!

여전히 해저를 따라 흐르는 미약한 마력 파동을 쫓으면서 해왕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는 술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날 때까지 테오는 틈만 나면 계속 바다를 살피면서 마력 파동을 분석했다.

덕분에 용의 마력이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얼추 훔쳐 배우고 있을 때쯤.

-바다가 그렇게 신기하시나? 저러다 눈알이라도 빠지시겠군.

-파하핫! 그러게, 말이야. 어디 밑에다 바구니라도 가져다 놔야 하는 거 아냐?

테오에게 들으라는 듯이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는 자들이 있었다.

테오는 말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로 다른 특색과 복장을 한 채로 시시덕대는 다섯 명의 남녀.

안토니우가 데려온 호위 병력들.

듣자 하니 비싼 값에 초빙한 상급 용병들이라나?

‘개 머리 수인에 건슬링거, 자유 기사도 있고. 저쪽은 마법사인가?’

확실히 순수한 무(武)에 대한 숭상 기질이 강한 북방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들이었다.

‘저 중에 블랙 스컬이 있을까?’

추측대로라면 분명히 숨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용병들은 아슬아슬한 선에서 테오 일행의 심기만 긁어댈 뿐, 선을 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럼 이쪽에서 넘는 수밖에.’

테오가 두 눈을 가늘게 좁힐 무렵이었다.

타닥-

한쪽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시작한다.’

쾅!

갑자기 폭발 소리가 나면서 개 머리 수인이 거칠게 튕겨 나가 벽에 처박히고 있었다.

그 앞에서 셀퍼드가 팔짱을 낀 채로 코웃음을 쳤다.

“고작 이따위 실력이면서 상급 용병이라고? 베노타, 베노타, 그러더니 뭐 별거 없네?”

“이 새…… 컥!”

콰아앙!

땅바닥에 널브러졌던 용병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시 셀퍼드의 발길질을 얻어맞고 피를 토하고 말았다.

입고 있던 갑옷이 빠그라질 정도로 강한 발길질.

다른 용병들이 병장기를 뽑으며 녀석을 도우려 했지만,

스릉-

“가만히 있지? 뒈지고 싶지 않으면?”

아린이 어느새 검을 뽑아 놈들에게 겨누고 있었다.

칼끝에서 예기가 날카롭게 감돌았다.

그러면서 휘몰아치는 살기.

“거, 검기!”

“이런 실력자가 여긴 왜……?”

순간, 몇몇 용병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들을 건드렸는지 짐작한 모양이었다.

“내가 원래 함부로 눈깔 치켜뜨는 새끼들 눈깔 뽑아다가 목걸이 만드는 취미가 있거든? 어때? 너도 그렇게 해줄까?”

“내, 내가 뭘 했다고……!”

“말했잖아. 눈깔 치켜뜨는 게 재수 없다고.”

“그, 그냥 마주쳤을 뿐이잖아……!”

“그냥이라니. 내 기분이 나빴다니까?”

“히이익!”

녀석은 사색이 되어 바지에 벌써 실례까지 하고 있었다.

「막내야, 이거 정말 이렇게 하는 거 정말 맞지? 이놈들이 좀 깝죽대긴 했지만, 그렇다고 잘못 때렸다간 바로 꼴까닥 할 거 같은데?」

사이코패스처럼 웃는 셀퍼드의 전음은 영 귀찮아죽겠다는 투였다.

사실 이번 일은 테오가 셀퍼드와 아린에게 지난밤에 따로 부탁한 계획 중 일부였다.

“퍼드. 그만해.”

퍼드. 셀퍼드의 예명.

“하지만 도련님, 이 새끼들이 자꾸 뒤에서 호박씨나 까지 않습니까? 이참에 아주 참교육을 제대로 해줘야……!”

“그만하라고 했다.”

“하아! 눼이눼이, 너 이 새끼, 진짜 도련님 때문에 무사한 줄 알아라. 알겠냐?”

“예, 옙!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녀석은 테오와 셀퍼드의 말이 바뀔까 싶어 동료들과 함께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다른 용병들은 저마다 가만히 눈동자만 데구르르 굴렸다.

그동안 자신들이 테오 일행의 눈 밖에 날 짓을 뭘 저질렀는지 빠르게 복기하고 있었다.

“하여간 우리 도련님은 마음만 너무 넓으시다니까. 평소에 우리도 이렇게 잘 챙겨주시면 오죽 좋아? 맨날 뒤치다꺼리하랴, 말도 없이 저지른 일에 장단 맞춰드리랴,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구만.”

「……저한테 뭐 쌓이신 게 있는 건 아니시죠?」

「그을쎄?」

셀퍼드는 장난기 섞인 대답을 하면서 다시 연기에 몰입했다.

여전히 난간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테오의 옆에 서서 남들 다 들으라는 식으로 크게 말했다.

“그보다 진짜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제는 정말 슬슬 말씀해주셔도 되잖아요?”

단순한 검사 수행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

이제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전부 안토니우는 물론, 용병들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다.

이제 슬슬 미끼를 던질 차례.

“뭘 그렇게 동네방네 떠들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퍼드. 목소리 낮춰.”

“아, 답답해서 그럽니다, 답답해서! 도대체 바닷속에 산다는 고대 용왕이란 게 대체 뭡니까? 그게 뭔데 대체 이런 오지에서 고생을 하시냐구요.”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답답하게 또 선문답이시네.”

“싫으면 이번 여정에서 빠져도 좋아.”

“이런 바다 위에서요? 그리고 가주님께 된통 혼날 일 있습니까? 저 이번에 폐관 수련 명령받으면 최소 3년입니다?”

“그럼 조용히 따라오던가.”

“끄응. 미치고 팔짝 뛰겠네, 진짜.”

셀퍼드는 정말 골치가 아프다는 시늉을 그럴싸하게 해주었다.

테오도 깜빡 속을 정도로.

‘이쯤 되면 미끼는 확실하게 물었을 테고.’

해왕을 의미하는 존재를 슬쩍 흘렸다.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이제 찌만 감으면 되는데.’

테오가 그렇게 생각하던 바로 그때였다.

쿠우웅!

갑자기 배가 요란하게 들썩였다.

-해, 해수종이다!

-마물이 나타났다! 화포! 화포부터 감아, 얼른!

-제기랄! 시 서펜트가 왜……!

-그동안 너무 조용하다 했지! 선원들은 각자 정해진 위치로! 빨리 움직여, 이 굼벵이 새끼들아!

위에에엥!

그리고 울리는 사이렌 소리.

마물의 등장을 알리는 경고음이었다.

‘됐다.’

테오의 눈에 담긴 해수면 아래로, 용의 마력을 닮은 마력을 품은 괴생명체들이 떼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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