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05화 (105/224)

105화

6번째 후보 (5)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그러니 내가 나서는 게 맞……!”

이블린이 깜짝 놀라 앞으로 나섰지만, 율리우스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

“잠시만 기다려.”

“대장!”

“테오도 괜히 저런 말을 꺼낸 게 아닐 거다. 다 듣고 난 뒤에 우리 의견을 꺼내도 안 늦어.”

“…….”

결국 이블린은 뒤로 주춤 한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꽈악.

주먹을 쥔 오른쪽 팔등 위로 핏줄이 잔뜩 돋았다.

“테오, 이건 이제 네가 설계한 프레임에 따라, 마룡 대 원룡이 아니라 백갑용기대 대 원로원의 싸움이 되었다. 부대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나서야 하는 자리에서 패배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용납할 수도 없고.”

테오를 볼 때면 언제나 훈훈한 미소가 감돌던 율리우스였지만.

지금만큼은 두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러니 만약에 네 욕심에 그냥 꺼낸 말이라면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어떤 생각인지 똑바로 설명해라. 저쪽에서는 분명히 원로들이 나올 텐데 네가 무슨 수로 꺾겠다는 거냐?”

‘원로’라는 것은 라그나르에 오랫동안 몸을 담근 검사들 중에서도 젊은 시절에 화려한 업적을 세운 이들에게 주어지는 칭호.

당연히 최소한 상급검사나 용문검사에 달하는 수준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갓 개화식을 통과한 테오가 꺾겠다고?

당장 실전검사 급에서 상위권이라 해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뇨. 첫 번째 자리에는 분명히 원로가 아니라, 그 제자쯤 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율리우스를 보면서.

테오는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 * *

“골치 아프게 되었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갑자기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아이의 생일잔치에서 흥이나 돋우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원로들은 서로 혀를 차고 말았다.

이번 기회에 기세등등한 율리우스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원로원의 위상을 높일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꾸중’을 하는 상황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로 전락하고 만 데다가, 수선궁의 위상만 높여주는 꼴이 되었으니.

원로원만 우습게 되어버렸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대련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울프강의 오른팔이 뽑히고, 율리우스가 다른 원로들의 팔도 뽑아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걸 듣고도 가만히 있다면, 라그나르의 정서상 조롱밖에 받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머릿수라는 유리한 지점도 잃어버린 상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한낱 세 치 혀로 상황을 이딴 식으로 만들었단 말이지? 역시 중앙기무국장의 말대로 능구렁이를 족히 수십 마리는 품은 아이로다.’

까드득!

울프강은 언젠가 에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이를 갈았다.

이제는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이번 일은 모두 나로 인해 빚어진 일이니 내가 마지막에 서도록 하겠다. 분명히 저쪽도 마룡이 나올 테고.”

울프강이 꺼낸 말에 원로들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안도에 찬 기색을 보였다.

그들로서는 율리우스와 정면 승부에서 그를 꺾을 자신이 없었으니.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대련에 누가 나서냐는 건데……. 생각 있는 사람 있나?”

“저쪽은 분명히 상급검사나 용문검사가 나올 게 분명한데.”

“아직 다른 대원들은 보이지 않아.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겠군.”

“그럼 첫 번째는 이블린이라는 저 팔 병신밖에 나설 사람이 없지 않나?”

“제가 나서 보이겠습니다.”

“아뇨. 제가 나서겠습니다.”

“제게 원로원의 영광을 빛낼 기회를, 원로원장 님의 복수를 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제는 서로 나서겠다고 외쳐댄다.

백갑용기대를 찍어누른 원로로 명성을 날릴 수 있는 좋은 기회.

울프강은 그런 원로들이 내심 역겨우면서도, 이참에 원로원의 주도권을 단단히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첫 번째는……!”

하지만 울프강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백갑용기대 측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놈이 왜?’

부릅떠진 울프강의 눈처럼 군중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직의 명예를 건 대련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게. 아무리 요즘 명성이 자자하다지만, 이제 갓 실전검사가 된 꼬마 나부랭이가 이런 곳에 나와?

-버리는 패인가?

-야, 말이나 되냐? 계승권 여섯 번째 후보라고도 불리는 사람인데, 명예를 떨어뜨리겠어?

-그럼 정말 자신이 있는 거라고?

-허……!

그 순간, 울프강은 깨달았다.

‘당했다!’

자신은. 그리고 원로원은. 수선궁과 여기 있는 군중들까지 모두. 저놈이 자신의 명성을 화려하게 날리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콰아아앙!

테오가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이,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거세게 바닥으로 내리치면서 일갈을 터뜨렸다.

“백갑용기대의 실전검사이자 라그나르의 계승권자, ‘섬야차’ 테오 라그나르. 첫 번째 대련자로 나서고자 한다. 나와 맞설 자가 누구인가-?”

[‘스킬: 레서 드레이크 피어’가 발동되어 용살기가 휘몰아칩니다.]

고오오-

테오를 중심으로 확 하고 번진 마력풍이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모든 군중은 깨달을 수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테오의 소문은 그동안 오히려 부족한 감이 있었다는 것을.

카일이 직접 검의 구슬을 내려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갓 실전검사가 됐다고 하지 않았어?

-엄청난 성장세……!

-가주께서 눈여겨보시는 이유가 있었군. 소문이 모자랄 정도야.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점은 따로 있었으니.

-백갑용기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계승권자로서의 명예도 앞세웠다고?

-여섯 번째 후보라는 자리를, ‘6대 후보’라는 단어를 이참에 확고히 하겠다는 건가!

이미 사람들의 모든 관심사는 모두 테오에게 쏠리고 있었다.

울프강도 테오의 이러한 노림수를 알았기에 자신들이 외통수에 내몰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계승권자라지만 실전검사 따위를 상대하라고?”

“험험! 대의를 위해 본인은 이번 첫 번째 대련 참가를 포기하겠소. 다른 원로들께서 임하시구려.”

“흠흠흠! 나도 양보하겠소.”

“나도.”

“험험험! 나 역시…….”

원로쯤 되는 사람이 실전검사 나부랭이를 이기겠다고 나서는 것부터가 꼴사나운 일.

결국 원로들은 저마다 물러서면서 힐끔힐끔 울프강을 바라봤다.

울프강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화를 냈다간 그의 꼴도 우스워지게 된다.

결국 그의 시선은 저절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원로는 아니되, 원로원 소속의 중년 검사가 서 있었다.

오랫동안 울프강을 옆에서 모셔 왔던 시종 출신이었다.

“베타. 네가 지금 계급이 뭐였지?”

“……실전검사입니다.”

“그래. 그럼 네가 나서면 되겠구나.”

“알…… 겠습니다.”

베타 역시 일개 꼬맹이를 상대하라는 사실에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주변 원로들의 시선을 보고 있자니 못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계급만 실전검사일 뿐이지, 실력은 상급검사에 준하는 수준은 되었으니까.

“이번 대련에서 살수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울프강이 던진 말에 베타는 인상을 굳혔다.

“죽이란 말씀이십니까?”

“죽이진 않더라도 오른팔 하나는 잘라 와야 할 것이다. 뒷감당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예. 명심하겠습니다.”

베타는 고개를 깊게 숙이고, 천천히 대련장으로 나섰다.

‘살기는…… 제법이군. 여섯 번째 후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베타는 살갗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용살기에 살짝 긴장하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지었다.

후보가 될지 모르는 인재를 자신의 손으로 꺾을 수 있단 사실이 주는 희열을 만끽하는 것이다.

스르릉-

“원로원 소속 숙위(宿衛)검사인 베타 테트리스라고 한다. 과거에 ‘광풍검’이라는 별호를 얻은 적이 있다. 섬야차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니 좋은 승부를 나눴으면 좋겠군.”

가벼운 인사와 함께,

차아앙!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가볍게 부딪치는 것을 시작으로 대련이 시작되었다.

먼저 움직인 쪽은 베타였다.

파아아앗-

‘가주님께 검을 하사받았다지? 그럼 그 정도부터 확인해야겠……!’

베타는 생각하다 말고 도중에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콰르르르릉-

번쩍!

갑자기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샛노란 뇌전에 휩싸인다 싶더니,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빛살을 쏟아냈다.

지면에서부터 창공으로. 노란 기둥이 나타나 베타를 거칠게 부딪쳤다.

“컥!”

베타는 빛살을 어떻게 튕겨낼 새도 없이 볼썽사납게 튕겨 나 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강하다!’

베타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는 자신이 어떻게 함부로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강하다는 사실을.

같은 계급이라고 하더라도, 라그나르의 재능을 깨우친 자는 훨씬 그보다 강한 이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라는 것을!

콰콰콰쾅-

우르르르!

베타를 쫓아 테오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궤적을 그려낼 때마다 희뿌연 증기가 흔들리고, 샛노란 뇌전이 바닥에 꽂혔다.

쾅! 쾅! 쾅! 쾅!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화포가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거세게 흔들렸다.

지나간 자리로 시커멓게 탄 발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용의 일곱 발톱>

이제는 7연격으로 늘어난 궤적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베타는 공세를 일일이 튕겨내면서도, 정말 화포를 정면에서 부딪치는 듯한 충격에 몸이 몇 번이나 울리는 끔찍한 고통을 맛봐야 했다.

그러다 자세가 크게 휘청이면서 빈틈이 훤히 노출되고 말았고,

테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을 그대로 발로 걷어찼다.

콰아아앙!

베타는 다시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신 곳곳에 내상으로 인한 피멍이 가득했고, 화상 자국이나 그을음이 너무 많았다.

입가에선 울혈마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떻게……?”

겨우 일어선 그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테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소문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테오가 보인 무력 수준은 도무지 일반 실전검사가 보일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 짧은 시간 동안 기연을 얻지 않으면 불가능할……!

‘기연!’

베타는 테오가 카일로부터 검을 하사받은 뒤, 요 며칠 동안 동백궁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는 오랜 바깥 임무로 피로를 풀었다고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라 사실은 카일로부터 받은 기연을 소화하고 있었던 거라면?

물론, 아무리 기연이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빠른 급성장이 가능할까 싶기는 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런 성장세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가주!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요……!”

울프강은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울분을 터뜨렸으니.

반검묘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눈길에는 대체 어떤 괴물을 만들고 있냐는 항의가 잔뜩 담겨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허.”

율리우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테오의 계획대로 모두 착착 들어맞는 상황에 감탄 아닌 감탄을 터뜨렸고,

“역시 내 친구라지만 괴물이란 말이지. 저런 괴물을 대체 어떻게 따라잡으라는 건지.”

웰링턴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며,

“누나, 나 어떡하냐?”

“몰라, 인마. 네 길은 네가 알아서 찾아.”

“아오, 씨. 너무 세졌는데.”

에리카 남매는 진땀을,

“아드님…….”

세실리아는 양손을 끌어모아 테오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리고,

“파하하하!”

흑룡은 파안대소를, 매화궁주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들의 눈에 너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동안 가르쳐준 가르침들이 테오의 검술에 완연하게 녹아있었다.

“너와 율리우스가 왜 그토록 테오에게 안절부절못하고 매달리고만 있는지, 이제야 확실하게 알겠다.”

특히 흑룡은 그답지 않게 이제 아예 대놓고 노골적인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으니.

테오의 저러한 변화가 모두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눈치챈 까닭이었다.

‘검의 구슬…… 형님이 주신 그 검의 악념에서 무언가를 얻은 거야. 광기를 억누르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걸 용케 해내고 있단 말이지?’

카일이 내린 검의 원주인이 누군지 잘 아는 그로서는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우려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순간, 흑룡은 확신했다.

테오는 다른 회귀자들과 달랐다.

다른 선택자들과는 전혀 다른.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었다.

‘진짜’ 선택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섯 번째 후보.

그 자리는 정말 테오를 위한 것이었다.

쿵쿵쿵쿵쿵……!

테오에게서 퍼져나온 심장 박동이, 고동 소리가, 마력풍이 파문을 그리면서 사방으로 힘차게 뻗어 나왔다.

쾅쾅쾅쾅쾅!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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