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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01화 (101/224)

101화

6번째 후보 (1)

수선궁주.

‘빙룡’이란 별호로 더 유명한 니엘 라그나르 톤은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층 테라스에 서 있었다.

동양에서 유행한다는 쥘부채로 얼굴을 살짝 가린 얼굴에서는 노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네 친구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구나. 다른 9룡들도 참석한 자리인데 어린 후배가 이렇게 늦어서야. 버릇이 없는 것만큼은 분명하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율리우스와 매화궁주가 그들답지 않게 너무 빨리 온 것이지만.

니엘은 전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테오를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엄마.”

옆에 멀뚱하게 서 있던 레이가 가만히 니엘을 바라봤다.

여전히 감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은 맹하게 보이기도, 무표정하게 보이기도 했다.

“곧 공식 석상이 된다. 표현에 유의하려무나.”

“궁주님.”

“왜?”

“내 친구야. 무시하지 마.”

“…….”

니엘은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덕분에 나타난 얼굴은 전형적인 딸바보 엄마였다.

탁!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너는 얄밉지도 않니! 네 자리를 가져간 아인데!”

“내 자리 아니었어.”

“네 자리가 아니긴! 그동안 네가 고생한 게 얼만데……!”

니엘은 그동안 레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구음절맥을 타고 나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아이가 아닌가.

그것을 극복하는 내내 겪었던 고통은 옆에 보고 있던 자신도 같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드디어 빛을 보나 싶었는데.

개화식에서 갑자기 나타난 놈팡이가 응당 레이가 가져야 할 자리를 홀라당 가져가 버렸다.

그동안 별다른 두각도 드러내지 못한 서자가.

“어디 그뿐이니? 며칠 전에는 카일이 그 아이를 따로 반검묘로 불렀다더구나. 자신이 수집한 검 중 하나를 하사한 거야. 엄연히 네가 있는데도……!”

하지만 니엘의 마음을 가장 크게 다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반검 하사.

윈터러를 들썩이게 만든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아직 레이는 3차 개화식을 제외하면 카일로부터 제대로 된 일검대련도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응. 맞아. 나 엄청나게 고생했어.”

“그럼……!”

“하지만 테오는 그보다 더 열심히 했어.”

“뭐?”

“나 알아. 테오가 얼마나 수련광인지.”

“…….”

“그러니까 나 테오 안 미워. 오히려 존경해. 대단해, 테오는.”

레이는 개화식에서 테오와 함께 하는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검에서 생각이 떠나질 않던 테오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러니까 테오 미워하지 마. 그럼 나도 엄마 미워할 거야.”

“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진짜야.”

니엘은 다시 울컥하고 말았지만, 레이의 덤덤한 눈빛을 보고 있으려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짙게 한숨만 내쉴 뿐.

자신을 몹시도 닮은 딸은 고집을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에휴! 그래. 알았다, 알았어.”

촤륵!

니엘은 다시 쥘부채를 활짝 펼치면서 입가를 가렸다.

“하지만 네 친구라고 해서 나에게까지 무조건 아껴달라고 강요하지는 말려무나. 난 나대로 테오, 그 아이를 평가할 생각이니까.”

레이의 입가에도 그제야 웃음꽃이 폈다.

“응. 그거면 충분해. 엄마도 테오 보면 맘에 들어 할걸.”

“……하여간 못된 지지배.”

니엘은 입술을 쀼루퉁하게 내밀었다.

‘언제는 엄마밖에 없다고 엄마, 엄마, 노래만 부르더니. 이제는 테오, 테오, 테오 노래만 불러대니 원.’

사실 니엘은 테오가 밉기만 한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말 고마웠다.

타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던 레이에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고마운 아이였으니.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니엘이 부모의 마음을 활활 불태우던 중이었다.

“이제야 오는구나.”

갑자기 연회장이 어수선해지며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

레이의 얼굴에도 살짝 웃음기가 감도는 가운데,

“얼씨구?”

니엘은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테오의 모습을 보면서 꽤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 * *

‘여전히 불편해.’

테오는 꽉 끼는 옷을 이리저리 매만지면서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연회장에 들어섰다.

“보세요, 아드님. 모두가 아드님의 늠름한 자태에 홀린 채로 바라보고 있답니다. 후후.”

테오의 에스코트를 받아 같이 입장하던 세실리아가 부채로 살짝 입가를 가리면서 웃었다.

공작의 깃털을 모아 만든 부채라던가.

역시나 그녀가 이번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출시한 제품.

테오가 입고 있는 예복도, 세실리아의 드레스며 장신구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동경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견제나 탐색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군요. 아, 저기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드님을 노려보고 있어요. 아드님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참으로 아둔하고 생각이 짧은 사람인 게 분명한 것이에요.”

남들은 들을 수 없도록.

세실리아는 테오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을 이어 나갔다.

“앞으로 아드님께선 저 시선들을 모두 단 하나로 바꿔야 한답니다.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하나뿐인 시선이라.

테오는 카일이 가솔들에게 받는 시선을 떠올렸다.

경외(敬畏).

앞으로 내가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서 가져올 수 있을까?

가야 할 길이 먼 것은 분명했다.

“테오, 왔구나.”

“테오!”

“오랜만에 보게 되었소. 그동안 잘 지내시었소?”

그때, 테오에게 세 사람이 다가왔다.

모두 테오만큼은 아니어도 한창 꾸민 아이들.

“아드님, 이분들은?”

“제 친구들입니다, 어머니. 이쪽은 랑케의 에리카와 홀커스, 이쪽은 나르시오의 웰링턴입니다.”

레이의 생일 파티라서 그런지, 이번 개화식의 동기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미 먼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지, 다들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이전에 소개해 준다고 하셨던 친구분들이 바로 이분들이시군요. 반가워요. 동백궁의 세실리아라고 해요.”

웰링턴이 가장 먼저 우아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런! 저는 테오 공자에게 숨겨둔 어여쁜 누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셨군요. 결례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웰링턴이라고 합니다. 웰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어머? 오호호! 나르시오 소가주 님의 언변이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이런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 아픕니다.”

“으음? 왜 그러죠?”

“전 진심으로 드린 말씀인데 뜻을 곡해하시니…….”

“어머나. 오호호호!”

세실리아는 정말 기쁜 듯 기분 좋게 웃어댔다.

테오도 옆에서 헛웃음을 흘릴 정도였다.

여우가 따로 없다 싶었다.

그때, 홀커스가 갑자기 바짝 긴장한 얼굴로 뻣뻣하게 스케치북 하나와 사인펜을 불쑥 내밀었다.

세실리아가 이건 또 뭔가 싶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패, 팬입니다! 싸인 하나만 해주세요!”

“팬……?”

뜻밖의 말에 세실리아의 두 눈이 더 커졌다.

테오와 웰링턴의 시선도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에리카만 중간에서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쉴 뿐.

“예! 녹화 수정으로 나온 세실리아 님의 연극이란 연극은 전부 섭렵했습니다! 특히 ‘돌아온 탕아’에서 탕자의 품에 안긴 상태로 흘린 마지막 눈물씬은 몇 번이나 돌려볼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그 외에도 ‘재능 뱉은 마법사’나 ‘세 번 사는 랭커’도 감명 깊게 봤고, 또……!”

“어머. 그거 전부 20년도 더 넘은 건데, 부끄러워라.”

말과 다르게 세실리아는 어느새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스케치북과 사인펜을 받고 있었다.

“홀커스 랑케라고 했죠?”

“예!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드님과 계속 친하게 지내주세요.”

세실리아는 스케치북에다 싸인 뒤에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세요’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홀커스는 그것을 받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얼굴이 되었다.

「……대체 그런 건 언제 본 거야?」

「응? 내가 말 안 했었나? 나 원래 고전 명작 같은 거 좋아하잖아. 그중에서도 세실리아 님 팬이었다구. 세실 풍이라고 들어봤어?」

「모르겠는데……?」

「으이그. 하여간 검에 좀 그만 미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보고, 어? 문화 예술도 좀 즐기고, 어? 하여간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차서는.」

에리카는 한순간 저 덩치만 큰 동생의 대갈통을 한 대 후려치고 싶다는 충동이 마구 들었다.

「원래 세실리아 님이야말로 20년 전까지 최고의 트렌드 세터였다, 이 말씀이야. 입는 옷은 죄다 품절이고, 무대에 하고 나온 장신구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니까? 당시에 남편들이 그거 구해서 아내들한테 갖다 바친다고 여기저기 쏘아 다니던 이야기들은 눈물 없인 듣지 못하……!」

「잡소리 좀 그만하고.」

「뭐, 하여간 최고셨다가 갑자기 은퇴하셨다, 이 정도만 알면 돼. 나도 테오의 어머니이신 걸 알게 된 것도 얼마 안 됐고.」

하여간 트렌드니 유명하다느니 싶은 건 죄다 줄줄이 꿰고 있는 녀석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하고 다니는 짓은 영……. 저런 걸 보고 인싸가 되길 바라는 아싸, 아니, 찐따라고 하는 것 같던데. 맞나?’

에리카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세실리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에리카 랑케입니다.”

그렇게 테오 모자와 친구들의 인사가 바쁘게 오고 가는 동안,

연회장에 있던 다른 시선들이 그쪽으로 쏠렸다.

-세실리아 부인…… 아니, 이제는 동백궁주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저분이 저렇게 아름다웠었나?

-그러게나 말일세. 매번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서 말 걸기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뭐랄까, 신수가 훤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들 일이 잘 풀리니 부인의 얼굴도 화색이 도는군.

-가주님이 왜 당시에 잔뜩 반했었는지 알겠어.

-그러게. 누가 저 얼굴을 보고 마흔이 넘었다고 생각하겠나?

-가주님만 아니어도 한번 작업이라도 걸…….

-이 남자들이 진짜,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아, 아아앗! 자, 잘못했소! 부인! 부인! 아아아악!

세실리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남자들은 각자 부인이나 연인에게 귓불이 붙잡힌 채로 질질 끌려나갔고,

-저 드레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어디서 나신 거지?

-그러게. 슬쩍 물어볼까?

-나 알아 알아. 전에 동백궁주가 부티크 샵을 열려고 부동산 알아보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거든? 아마 거기 물건인 것 같은데?

-어머, 정말?

-저 장신구도 너무 예쁜 거 같은데. 같이 구할 수 있을까?

젊은 영애들은 세실리아가 입고 있는 드레스며 장신구에 시선이 팔렸으며,

-멋지…… 군.

-기품이 남달라. 타고난 그릇이 다른 건가.

-옷이라도 어디서 구할 수 없나?

-검도 되게 좋은 거 쓴다던데.

영식들은 테오의 옷차림뿐 아니라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검에도 눈길이 팔려있었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테오와 세실리아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매파.

-듣기로 테오 공자에게는 혼약자가 없다고 했어. 사귀는 사람도 없는 걸로 알고 있고.

-그러니 지금 물어두면 크게 돌아올 거야!

이미 카일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부터가 테오의 장래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뜻.

더군다나 항간에는 테오가 매화궁주의 양자로 입적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어 배경도 더 이상 꿀릴 게 없었다.

혼기가 어느 정도 찬 딸을 데리고 온 귀족들은 어떻게든 테오와 자리를 마련하려 하고,

매파들은 호시탐탐 세실리아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기회가 안 보이는 데다가, 율리우스와 매화궁주도 언제든 테오에게 들러붙을 기회를 엿보고 있어 다들 섣불리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이거…….

-언제 가지……?

때아니게 벌어진 눈치 게임.

그러던 그때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가 불쑥 테오 일행에게 끼어들었다.

“헤이.”

-저, 저저……!

-저건 또 뭐 하는 놈이야!

나른한 얼굴에 퇴폐미가 가득한 눈동자를 가진 남자.

나반 바커스였다.

“이야기 좀 하지? 주. 군?”

그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테오 쪽으로 향하고,

‘주, 주군이라고?’

홀커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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