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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00화 (100/224)

100화

섬야차 (5)

트로이반과의 전쟁 분위기로 인해 윈터러가 들끓을 무렵.

윈터러에 한 가지 소문이 퍼졌다.

-테오 라그나르가 가주님으로부터 반검을 하사받았다.

단순히 이전처럼 일검대련을 벌였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반검 하사.

반검묘에서 검을 한 자루 물려받게 되었다는 의미였으니.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카일이 테오를 아낀다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실전검사 이상의 정예들은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가주님은 5대 후보를 정말 6대 후보로 만들 생각이신가?

현재 5대 후보로 꼽히는 계승권자들이 모두 한창 명성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에 따로 반검묘로 호출되어 카일과 대면했다는 건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

테오 역시 그랬다고 하니 당연히 이목이 쏠릴 수밖에.

하물며 지금은 전운이 무르익고 있는 준전시 상황.

당연히 테오의 이름값이 더 무겁게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형과 누나들이 처음 내가 나타났을 때 받았던 느낌이 딱 이랬으려나?”

토르켈 라그나르가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

흑색철기대.

명성만 따진다면 백갑용기대와 견줄 만하다는 지상의 무적 부대장이 바로 그였지만,

5대 후보 중 막내이면서도 입지만큼은 다른 후보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쌓아가는 중이라는 그였지만,

이번에 듣게 된 소문만큼은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날…… 앞에 두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하지만 토르켈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난데없이 아래에서 들린 목소리.

피투성이가 되어 지친 얼굴로 서 있는 중년인이 있었다.

“아, 이런 손님이 있었지. 너무 지루해서 깜빡 잊었어. 미안하게 되었어, 아저씨.”

노골적인 조롱.

중년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항의하진 못했다.

상대는 그런 수준을 넘어섰으니까.

실제로 중년인은 토르켈과 싸우는 내내 작은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상태였다.

엄청난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대체……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이유라도 말해다오……! 지난 수백 년간 라그나르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왔던 우리를 어째서 이런단 말이냐……!”

중년인. 바커스 가문의 가주, 에반 바커스는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한 시간 전에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흑색철기대로 인해 바커스 가문은 순식간에 결딴이 나고 말았다.

“세레스 상단 쪽의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했나 보지?”

“세레스……?”

여기서 사돈댁의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지?

에반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소식이 느리군. 세레스가 트로이반과 결탁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 너희 바커스는 이를 징죄하러 온 라그나르의 집행관을 감히 죽이려 들었고.”

토르켈은 그런 에반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에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무, 무, 무언가 오해가 생긴 게 분명하오! 우리는 세레스 상단과 아무런 연관이 없……!”

“아무 연관이 없다면서 왜 칼을 들이민 거지?”

“그건……!”

“아, 더 이상 길게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군.”

토르켈은 뭐라고 말하려던 에반의 말허리를 도중에 끊으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타고 있던 철갑마가 거칠게 투레질했다.

푸르륵!

“어차피 본가에서는 바커스에 대한 처분을 모두 결론지은 상태이니.”

에반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바커스의 충심을 높이 사서 멸문에는 처하지 않으나, 이번 일의 책임을 가주 에반 바커스와 주요 간부들에게 묻고자 하니. 죄인들은 모두 순순히 오라를 받아 윈터러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며, 당분간 임시 가주로 나반 바커스를 앉힌다.”

“……!”

“결정하라, 에반 바커스. 처분을 받아들일 테냐, 아니면 거부할 테냐?”

에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한 얼굴이었지만, 반역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만으로도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생아 놈이 결국 가문의 오랜 역사를 문 닫게 만들려 하는구나……! 진즉에 목을 쳤어야 했는데.’

에반은 지난 자신의 실수에 통감하며 무겁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죄인들의 오러홀을 모두 폐쇄하고, 윈터러로 압송하라.”

결국 에반을 비롯한 바커스의 주요 간부들은 모두 죄인 신분이 되어 질질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이얀.”

“예. 대장.”

부대장 아이얀 소소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테오 라그나르, 꽤 맘에 들었었다고 했었지?”

“누차 말씀드렸잖습니까? 대장님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할 성격이라고. 그 녀석, 아주 물건입니다. 이번에 못 데려온 게 너무 아쉽다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더 기대되는군.”

피식!

토르켈은 가볍게 웃으면서 위로 젖혔던 투구 가리개를 다시 아래로 내렸다.

“자, 그럼 모두 돌아가자!”

흑색철기대의 말발굽이 힘차게 지면을 두들겼다.

두두두두-

* * *

테오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역시 우리 아드님! 이 어미의 기대를 한시도 어긋나지 않는군요! 아름답다 못해 너무 황홀할 정도예요! 웬만한 영애들은 아드님의 미모 앞에 빛도 바라지 못하겠어요!”

세실리아의 호들갑이 테오로서는 더 불편하게 다가왔다.

‘정말이지……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왜 이렇게 안 되는 건지.’

테오가 입고 있는 건 예복이었다.

바닷물에 담갔다가 뺀 것처럼 맑은 군청색으로 빛나는 예복.

전체적으로 화려한 디자인과 실크 재질로 되어 있어 테오의 얼굴을 화사하게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테오가 자리를 비운 동안 세실리아가 그를 위해 만들었다는 옷들.

‘이게 몇 번째 옷이더라……?’

너무 많이 입어서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드님이 구하신 이 귀걸이와 반지가 참으로 유용한 것 같단 말이죠. 디자인도 그렇게 투박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세련미를 갖고 있어서 웬만한 예복에는 다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아티팩트라고 하셨었지요?”

세실리아는 테오가 끼고 있던 반지와 귀걸이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모두 세레스 상단에서 가져온 유물들.

테오는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이 녀석들이라도 완전히 잠잠해져서 다행이야.’

카일이 건넨 검의 구슬을 흡수한 뒤.

테오는 요 며칠 동안 집 밖으로 일절 나가지 않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드문드문 떠오르는 사념들을 정리하고, 유물들의 기능을 꼼꼼하게 살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테오는 확 달라진 몸 상태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오러에 대한 실마리를 얻은 게 가장 컸어.’

테오의 입가에 만족에 찬 미소가 슬쩍 걸리는 동안,

“그래도 이 소맷자락 부분의 디테일이 조금 아쉽군요. 박음질을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게 해야 할 것 같고, 이 라인은 좀 더 이런 식으로 떨어지게 해서…….”

세실리아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옆에 있던 시녀가 뭔가를 자꾸 빠르게 기록해나갔다.

‘언제 끝나려나.’

테오는 그렇게 몇 번을 더 갈아입기를 반복하다가, 마지막 차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드디어……!’

이제 쉴 수 있다.

그런 희망을 품고 상의를 걸치려던 그때였다.

쾅!

갑자기 드레스룸의 문이 열렸다.

집사장이었다.

“그,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지?”

테오와 세실리아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집사장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트로이반이 항의서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라그나르는 에드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 트로이반에게 72시간의 시간을 유예해주었고, 트로이반은 이것을 거부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

“……전쟁이군.”

테오의 혼잣말에 드레스룸에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왔다.

* * *

“아니, 전쟁이라며? 다들 이럴 정신이 있기나 한가?”

율리우스는 황망한 얼굴로 주변을 보며 투덜거렸다.

♬ ♪♩♪♪

수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교향악단의 연주가 흘러나오고,

여러 남녀가 음악에 맞춰 같이 춤을 추거나 정원 곳곳에 배치된 탁자에 모여 웃음꽃을 피웠다.

매화궁주가 옆에서 웃었다.

“그러니 더욱더 여유를 보여야죠. 너희들이 뭘 꾸미고 있던 간에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 메시지를 윈터러의 주민들에게 보일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들이 있는 곳은 수선궁이었다.

라그나르의 여러 궁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외양을 자랑한다는 곳.

그 정원에 많은 사람이 북적대고 있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채로.

“게다가 수선궁주가 얼마나 자기 딸을 아끼는지는 백갑용기대장께서도 잘 아시지 않나요? 원래 십 년을 넘게 사는 것도 힘들다던 아이가 지금까지 무럭무럭 잘 자란 거니, 다 같이 축복해주면 더욱 좋을 테고 말이죠.”

율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표정은 영 못마땅했다.

수선궁주 니엘 라그나르 톤의 외동딸, 레이 라그나르의 열다섯 번째 생일 파티.

율리우스와 매화궁주를 비롯한 9룡의 여러 사람이 참석할 정도로 파티 규모는 아주 컸다.

수선궁주만 해도 이미 9룡의 일원일 정도로 가지고 있는 무게가 아주 큰 데다가, 그녀가 이번 딸의 생일에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모일 수밖에.

율리우스는 한창 바람둥이로 이름을 날렸던(?) 젊은 시절에는 이런 자리를 즐기기도 많이 즐겼었지만.

나이를 먹고 난 뒤부터는 정작 이런 자리가 따분하기만 했다.

‘이블린도 안 올 것 같고.’

혼자 있기는 심심하니 시간 나면 참석하라고 말해뒀지만, 그 친구(?)의 성격상 이런 혼잡한 곳에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율리우스가 더더욱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화궁주는 웨이터가 가져다준 와인잔을 하나 들면서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어디 수선궁주의 딸에게 있을까요?”

“……끄응.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겁니다만.”

율리우스는 앓는 소리를 냈다.

이들의 관심사.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테오 라그나르.

최근 몇 번씩이나 윈터러를 들썩이게 만드는 주역.

“딴 놈들이 못 보게 어디다 가둬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휴! 하여간 테오가 오거든 옆에다 찰싹 붙여놔야지, 원.”

율리우스가 툴툴거리는데, 갑자기 매화궁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죠? 왜 남의 아들을 함부로 옆에다 붙인다는 건지. 테오는 제가 계속 데리고 있을 겁니다만.”

“……?”

“죄송하지만 백갑용기대장께서는 다음 기회를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이번에는 제가 먼저 찜해놔서 말이죠.”

율리우스는 순간 황당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찜……? 그거 테오와 먼저 이야기가 되었단 거요?”

“이상하군요. 모자 사이에 왜 선약이 필요한 거죠?”

“아니, 진짜 모자 관계도 아니잖……!”

율리우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고 말하려던 그때였다.

푸드득!

어디선가 힘찬 날갯짓 소리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들렸다.

율리우스는 등골이 오싹해져 고개를 위로 들었고,

곧 지상으로 가볍게 착지하는 흑룡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분에게는 모두 미안하게 되었소. 아무래도 조카는 내가 데려가야 할 것 같소. 이전에 준 증명패의 사용법에 대해서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가면 너머 작게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다.

율리우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런 식으로 써먹으려고 그딴 잔머리를 부린 게요?”

“백갑용기대장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

“아니, 형! 진짜 계속 이딴 식으로 나오기야?”

“이곳은 공식 석상이오. 백갑용기대장께서는 공사를 구분하여 주셨으면 하오만.”

“정보부장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역시 매화궁주. 뭘 잘 아시는군.”

어느새 같은 편을 먹은 흑룡과 매화궁주가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아오, 진짜……!”

진짜 뒤통수 마렵다.

율리우스가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부르르 떠는 동안,

“동백궁의 세실리아 부인과 테오 라그나르 입장이오-!”

참석자의 명단을 불러주던 집사의 외침에 세 사람의 시선이 전부 그쪽으로 움직였다.

동시에,

“…….”

“…….”

“…….”

기다렸다는 듯이 정원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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