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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99화 (99/224)

99화

섬야차 (4)

“아버지께서 날 부르셨다고?”

현실로 돌아온 뒤, 테오는 유물들의 여러 기능들을 확인하다 말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보통 아버지가 직접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혹시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나?’

가뜩이나 에드의 사태로 인해 가문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그 최전선에 있었던 자신에게 의견을 물으시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금방 찾아뵙겠다고 전해드려 줘.”

가주전의 소식을 전달하러 온 검사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사라졌다.

‘역시 청검근위단……. 아버지의 그림자다워.’

항상 카일의 곁을 지켜서 그렇지, 그 실력은 백갑용기대나 흑색철기대와 견줄 만하다던 존재들의 실력은 테오도 놀랄 정도였다.

테오는 곧장 반검묘가 있는 산장으로 이동할 채비를 갖췄다.

* * *

-무겁다.

테오가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3차 개화식을 치렀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반동강 난 검들이 마치 자신을 노려보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

테오는 순간 카일이 자신을 재시험하기라도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냐. 그런 게. 이건…… 내가 그때보다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거야.’

하지만 테오는 곧 카일이 그때보다 오히려 기세를 흘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반검묘라는 지형 자체가 만들어내는 악념이 워낙에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당장 마물들이 꼬이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

만약 마기를 단련하는 자가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영소(靈所)도 따로 없을 터였다.

테오는 자신이 개화식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단 사실이 내심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절로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아버지쯤 되시면 얼마나 많은 악념을 느끼실 수 있는 걸까? 게다가 그걸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즐기기까지 하고 계시니…… 저 경지에 오른 뒤에도 계속 쉬지 않고 수련하고 계시는 거구나.’

끝없는 단련.

위를 향하는 향상심.

만족을 모르는 갈망.

아마 이 모든 것이 아마도 오랫동안 카일이 절대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일 테지.

그래서 더 위대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저 자리에 닿고 싶다는 열망이 다시금 가슴 속에서 피어났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구나. 보통 천재라고 불리는 것들은 스스로에게 취해서 서서히 노력을 게을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카일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홀린 듯이 서 있는 테오를 보는 눈길에는 재미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묻어났다.

테오는 뭐라고 대답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곧 자신의 ‘진짜’ 속내를 털어놓았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애당초 <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운>이라.”

피식!

카일이 가볍게 웃었다.

“남들이 듣는다면 욕을 하고도 남을 말이로군. 그들에게는 네가 재수 없게 겸양을 떠는 것으로 보일 텐데 말이다.”

“남들이 어떻게 여기든 상관없습니다.”

“그것도 좋은 마음가짐이다.”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가 <운>이라고 말한 이유.

회귀를 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것.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사실 특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가지고 싶어도 절대 가지지 못할 특권.

테오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잘 활용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태만에 빠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절실하게 매달렸다.

카일은 이를 두고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도 시험이셨군.’

테오는 여기서 자신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반검묘에 드레이크의 날붙이와 월백검을 꽂았을 것이란 걸 직감했다.

아무래도 카일의 불신과 시험은 한동안 계속 이어질 모양이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조금 불안감이 들었다.

“아무리 많은 특권과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수두룩하지. 아니,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편하게 지내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오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카일이 뒷짐을 풀고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그 역시 너의 재능이라면 재능일 터. 그러니 너는 스스로가 이룬 것에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테오는 카일의 그 말 한마디가 불안을 사라지게 만든 마술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너무 기뻤다.

덜그럭, 덜그럭!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카일의 주변에 있던 검 한 자루가 거칠게 떨리더니 허공에 둥실 떠올라 카일의 손에 붙잡혔다.

일검이라도 시험하시려는 걸까?

테오가 그런 생각에 드레이크의 날붙이 쪽으로 손을 가져가려는데,

콰드드득!

갑자기 카일의 손에 붙잡힌 검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

테오는 이게 뭔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

그사이 검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끝내 커다란 쇠구슬이 되었다.

악념이 풀풀 날리는 쇠구슬.

“먹어라.”

카일은 그것을 테오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말씀이십니까?”

“너무 뜬금없어서 당황했나 보지?”

“아, 아닙니다.”

카일의 가벼운 웃음에 테오는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게 당연하다. 사실 나도 오랫동안 고민했다. 너에게 뭔가를 주긴 줘야 할 텐데 뭐가 좋을까 싶었거든. 이미 웬만한 건 다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카일의 시선이 빠르게 테오를 위아래로 훑었다.

월백검을 비롯한 유물들이 일제히 잘게 떨렸다.

‘이 녀석들, 전부 긴장하고 있어.’

용살자의 업을 감지하기라도 한 걸까?

“그러니 그저 그런 것을 줘봤자 위로 오르고자 하는 너에게 별 도움도 안 되겠지. 그래서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을 주고자 한다. 이것은 ‘업(業)’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절대자의 업이 담긴 그릇.”

테오는 카일의 시선이 자신의 영혼을 낱낱이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너는 타고난 근력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힘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능동적으로 다룰 줄 안다는 뜻이다. 폭발적인 속도를 내어 상대를 압도하지. 그리고 폐활량을 부단히 늘려서 더 빠른 속도를, 더 오랫동안 길게 가져가려는 파괴적인 검술을 추구하고 있구나.”

카일은 이미 테오가 추구하는 검술의 형태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 덕분에 네 안에는 여러 가지가 담길 수 있다. 마룡도, 검룡도 담겼지. 조만간 흑룡도 담길 테고…… 그 외에도 아주 많은 것들이 담겼구나. 심지어 조금이지만 마법도 보이는 듯하고.”

검술의 극의를 추구하는 검사에게 있어 마법이란 몹시 어려운 영역이지. 잘 다뤄야 할 게다.

카일은 그렇게 말하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이것을 먹어라. 이 업은 네 무의식중에 남아 네가 가진 것들이 하나로 뒤섞이려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길라잡이라 할 수 있지.”

“이 검의 주인이 누굽니까?”

“말해줄 수 없다. 그걸 말해주면 너무 쉬울 테니까. 오히려 고정관념에 갇혀 스스로 제약에 갇힐 수도 있다. 이게 누구의 업인지는 네가 천천히 밝히거라.”

“…….”

테오는 가만히 검의 구슬을 바라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절대자의 업.

그 속에는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광기가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카일의 말마따나 두고두고 테오에게 가야 할 지름길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한계점을 만들 수도 있을 광기였다.

이 절대자가 끝내 넘지 못한 벽을 넘을 방법은 제시하지 못할 테니.

그리고,

그 벽이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카일이란 벽.

‘이 업으로 빠르게 강해지되, 거기에 갇히지 말고 <발판>으로 삼으라는 뜻이시구나.’

발판이 될 수 있는 선물이라더니 이런 뜻이었나.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

“네 형과 누나들도 모두 이처럼 반검묘에서 업을 하나씩 받아 갔다.”

“……!”

“모두 그들이 추구하는 길에 어울릴, 발판으로 삼기에 아주 좋은 것들이었지.”

두근두근두근!

순간, 테오의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

카일이 말하는 ‘형과 누나’란, 단순히 피만 나눈 형제들을 의미하지 않았으니.

카일이 인정하는 자식이란 오로지 한 가지만 의미했다.

-계승권의 유력 후보들.

모두 카일이 자신의 뒤를 이을 만한 인재, 아니, ‘천재’라고 인정한 자식들.

소위 5대 후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그 말씀은……!”

“자격을 증명할 기회를 달라고 했었지?”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권좌를 노리겠냐는 질문에 테오가 했던 대답.

“주마. 그 기회.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기회가 될 것이다.”

테오는 떨리는 손길로 공손히 검의 구슬을 받았다.

“단, 각오해야 할 것이다. 너의 위로는 여전히 많은 형과 누나들이 있다. 이미 너보다 훨씬 먼저 태어나 자리를 잡고 기반을 마련한 아이들이지. 그들의 견제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테오의 두 눈에 영성이 깃들었다.

구슬의 표면을 따라 강렬한 사념이 파동을 이루면서 잔잔하게 퍼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무거웠다.

그 업의 무게가.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자리를 노리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내 직계가 아니어도 네 사촌 중에도, 선대의 원로와 장로 중에도 권좌에 앉고자 하는 이들이 있지. 심지어 라그나르를 떠난 방계들이나, 겉보기엔 라그나르와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자들도 있다. 네가 내쫓은 트로이반이 거기에 해당하겠지. 그리고…… 또 개중에는.”

카일의 설명이 도중에 멈췄다.

테오가 시선을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쇠구슬에 담긴 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업의 무게가 그곳에 있었다.

“나도 있다.”

“……!”

카일의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끝내는 나마저 넘어서야 할 것이다.”

쿵……! 쿵……! 쿵……! 쿵……!

테오의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로드브로크도 이기지 못한. 광룡제도 꺾지 못한. 그런 괴물을 이기라고, 괴물 본인이 말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노골적인 협박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네. 반드시 그러겠습니다.”

테오는 웃고 있었다.

카일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언젠가, 꼭, 아버지를 넘어 보이겠습니다.”

카일은 테오의 입가에 맺힌 미소에서 오로지 한 가지 감정만 느꼈다.

호승심.

‘호승…… 심이라!’

카일은 자신이 언제 받았을지 모를 감정 앞에서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좋다. 해보아라.”

카일은 검의 구슬을 덮고 있던 손길을 거두며 다시 뒷짐을 쥐었다.

테오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검의 구슬을 바로 입가에 가져갔다.

스르르-

구슬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대로 녹아 테오의 입가를 타고 식도로 넘어갔다.

“……!”

테오는 재빨리 제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휘휘휘휘-

파직, 파지지직!

그의 정수리 위로 희뿌연 수증기가 피어오르다가 곧 샛노란 뇌기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카일은 가만히 테오를 응시했다.

쿠쿠쿠쿠-

곧 테오를 중심으로 강렬한 파동이 뻗어나오고,

우웅! 우우웅!

반검묘를 이루는 여러 반검들이 일제히 공명(共鳴)했다.

새로운 주인을 찾은 친구를 응원하듯.

혹은 이를 질시하기라도 하듯.

푸드득!

그때, 테오를 보고 있던 카일의 왼쪽 어깨 위로 검은 종달새가 날아와 조용히 내려앉았다.

호르르!

“왜 하필 많고 많은 검 중에 그 검을 주었냐고?”

호르르르-

검은 종달새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카일은 전혀 문제없다는 투였다.

“그야 당연하지 않으냐. 너도 보았을 텐데?”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내가 후계자로 인정한다고 했을 때, 웃고 있었다.”

5대 후보라 불리는 아이들을 비롯해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이들까지, 카일이 ‘괜찮다’고 여긴 아이들은 모두 반응이 대개 비슷했다.

기뻐하거나, 혹은 감격하거나.

하지만 테오만이 다른 반응이었다.

호승심.

아버지를 꺾고자 하는 아들의 모습이 그렇게 기꺼울 수가 없었다.

“여러 자식 중에 저 아이만 혼자서 웃고 있었단 말이다.”

카일의 입가에도 테오의 것과 똑같은 웃음이 걸렸다.

미래에 숙적으로 다가올,

아들에 대한 호승심이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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