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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69화 (69/224)

69화

백갑용기대 (4)

흠칫!

슬로우는 테오를 노리려다 말고 등골에 오한이 돋았다.

자신만만하게 웃는 모습에서 뭔가 불안감을 느꼈다.

콰르르릉-

하지만 이미 월백검은 용의 발톱을 그려내고 있었고,

그리핀의 분노를 담은 빛살은 슬로우를 지나…… 천장에 작렬했다.

‘천장?’

나를 노리려던 게 아니었다고?

슬로우는 위로 번쩍 고개를 들었다.

막강한 충격파와 함께 천장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쩌거걱-

그리고,

무너졌다.

와르르!

“……!”

졸지에 두더지처럼 천장 낙석에 묻힌 슬로우를 보면서 테오는 웃었다.

‘마력 수발이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밀도도 말도 안 될 정도로 깊어져서 출력도 대단하고.’

영마독을 삼키면서 이뤄진 벌모세수는 확실히 신체에 아주 큰 변화를 주었다.

이전 출력이 1이었다면 지금은 1.5는 된다고 해야 할까?

훈련할 때는 몰랐는데 실전에 써먹고 보니 확실하게 체감되었다.

이 정도면 3성, 아니, 4성 검사를 상대로도 충분히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검사’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는 실전검사 이상인 것이다.

물론, 그 정도로 만족할 만한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찌리리, 너!”

에리카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셀퍼드와 아린을 긴장케 한 검사를 테오가 쓰러뜨렸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물러나. 아직 안 끝났어.”

테오가 그녀를 제지 시켰다.

에리카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낙석 더미가 폭발했다.

콰아앙!

“이 빌어먹을 새끼가아아!”

슬로우는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옷자락은 온통 찢기고, 머리 위에는 먼지가 폭삭 내려앉아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다행히 튼튼한 육체가 있어서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일개 수련검사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다치게 만들었다.

동료들이 알면 평생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죽여버릴……!”

하지만 그런 슬로우의 다짐은 얼마 가지 못했다.

머리 위, 정면, 좌, 우.

그 빌어먹을 검은 뇌전을 뿌리는 네 마리의 뇌룡이 어느새 나타나 발톱을 휘두르고 있었다.

“흡!”

슬로우는 이를 악물면서 워해머를 거칠게 휘둘렀다.

고대 혈통으로 강화된 근력만으로 뽑아내는 그만의 비전.

<거인의 철퇴 – 망나니>

퍼퍼퍼퍽!

워해머가 거칠게 호선을 그리면서 단숨에 세 마리 뇌룡의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하지만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든 한 마리가 그의 왼쪽 어깨를 할퀴고 지나가고,

파앗-

“네 상대가 우리라는 건 잊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느새 셀퍼드가 냉소를 흘리면서 슬로우에게 접근하면서 검격 다발을 뿌리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아린이 움직였다.

앞과 뒤.

양면에서 쏟아지는 검기 세례!

<연수 합격 – 검기 그물망>

날카롭다.

슬로우는 두 공격을 모두 한꺼번에 막아내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래서 마력 중 상당수를 한꺼번에 외부로 방출했다.

마력으로 만든 투명 보호막이 생성되어 검기를 빗겨냈다.

콰앙!

쐐애액-

슬로우는 바로 그 빈틈을 노렸다.

워해머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서 대기를 찢어발겼다.

“뒈져랏!”

그의 무술은 별다른 특징이란 게 없었다.

오로지 무지막지한 힘만을 앞세워 적을 단번에 격살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비슷한 실력자들은 물론, 상위 실력자들도 모조리 곤죽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차차차창!

그러나 셀퍼드와 아린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수많은 전장과 사선을 넘나들었던 검사들.

이런 경험은 무수히 많았다.

워해머와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옆으로 흘리고, 오로지 빈틈만 교묘하게 노렸다.

무기의 무게 때문에 워해머가 움직이고 나면 항상 허점이 크게 노출됐던 것이다.

셀퍼드가 정면에서 슬로우를 마주하면 아린이 사각지대를 노리고, 그런 아린을 쫓아 슬로우가 움직이면 셀퍼드가 쏜살같이 뒤로 움직여 허점을 노렸다.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이어지는 연수 합격.

차차차창!

쉬쉬쉬쉭-

“이 치사한 새끼들아! 제대로 덤비라고!”

슬로우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구조대를 죄다 죽여 버리고 동료들에게 합류했어야 하는데.

정작 여기서 강제로 발목이 묶여버린 것이다.

게다가 공격이 제대로 먹히면 모를까, 피해는 이쪽만 누적되고 있었다.

자꾸 늘어나는 자잘한 상처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벌써 현기증이 도질 정도였다.

“전투에 치사하고 말고가 어디 있냐?”

셀퍼드는 가볍게 콧방귀만 꼈다.

슬로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명예를 아는 전사라면 당당히 정면 승부를 치러야……!”

“그따위 명예, 너나 많이 찾아.”

“너희! 북방의 용이라는 너희는 자긍심이라는 것도 없는 거냐!”

“어. 없어. 이기면 장땡이야.”

“그딴 천박한……!”

“정면 승부하고 싶으면 뭐라도 내놓던가.”

“뭐?”

“우리한테는 아무 이득도 없는데 굳이 네가 하자는 대로 할 이유가 없잖아?”

“뭔 개 같은 소리를……!”

“아무 대가 없이 시키는 대로 하라니. 공짜 너무 좋아하네.”

셀퍼드는 슬로우의 스킨헤드를 슬쩍 위아래로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대머리가 된 거구나?”

“이 새끼가 진짜 뒈지려고!”

슬로우는 계속 셀퍼드의 말을 듣고 있다가 화병이 나서 먼저 뒈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자신의 콤플렉스를 콕콕 찔러대고 있으니.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역전의 기회를 찾고자 애썼다.

그 순간, 그의 눈에 자신이 빠져나온 천장 잔해가 보였고,

‘지형을 이용한다……!’

슬로우는 번뜩 떠오른 무언가가 있어 워해머를 높이 들어 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콰아아앙!

우르르-

순간, 먼지 구름이 확 하고 일어나 슬로우를 감췄다.

화악!

원래 그가 있던 자리로 셀퍼드의 검이 할퀴고 지나갔다.

하지만 거기에 슬로우는 없었다.

“이런!”

대신에 주저앉은 바닥과 아래층이 휑하게 드러난 구멍이 보였다.

셀퍼드는 아차 싶었다.

슬로우가 뭘 노리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아린! 피해!”

“……!”

아린이 뒤늦게 몸을 반대로 돌렸을 때는 슬로우가 두더지처럼 이미 바닥을 뚫고 위로 튀어 오르면서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한 놈부터 해치우면 좀 편해지겠지!”

워해머가 아린의 검을 부러뜨리고, 머리마저 날려버리려는 그 순간.

「대머리 깎아라.」

“……?”

갑자기 생뚱맞은 전음이 귓가에 꽂혔다.

「아, 없어서 못 깎나?」

“……!”

슬로우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동안 멈칫거렸다.

셀퍼드와 비슷하지만 다른 목소리.

바로 그 틈을 타서 둔탁한 뭔가가 슬로우와 충돌했다.

콰아아앙!

컥.

슬로우는 헛바람을 들이키면서 튕겨나 반대쪽 벽면에 충돌했다.

파스스-

“대머리는 정력가라던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가 봐?”

슬로우를 날려버린 건 테오였다.

워해머가 아린을 노리기 직전에 달려들어 숄더 어택을 날린 것이다.

‘그냥 따라해 본 셀퍼드의 도발도 생각보다 잘 먹혔고.’

“너……?”

아린은 테오의 저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어떻게 슬로우를 날릴 정도로 대단한 힘이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 겁니다.”

“……?”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저놈, 제가 먼저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

“그러니까.”

테오는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높이 들었다.

“제 싸움 방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쿵쿵쿵쿵-!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용의 심장과 단전이 마력 공명을 일으키면서 발생한 고동 소리가 실내를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의 개시를 알리는 전고 소리 같았다.

‘저놈을 이용하면 발뭉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테오의 감각이 다시 날을 벼렸다.

「에리카, 홀커스. 선배님들과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너희들은 인질들을 데리고 나가!」

에리카 남매가 흠칫거리는 건 느껴졌지만, 두 사람을 설득할 시간 따윈 없었다.

‘온다!’

콰앙!

테오의 앞쪽 지면이 무너지면서 슬로우가 나타났다.

이마에 상처가 났던지 얼굴이 피범벅이 된 그는 다른 어느 때보다 포효하고 있었다.

“그래. 네가 있었지, 애송이! 너부터 부숴버려야 내 속이 시원해질 것 같구나!”

테오는 검은 벼락으로 어느새 검게 물든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거칠게 휘두르고 있었다.

용의 세 발톱.

그중 첫 번째 발톱이었다.

까아아앙!

슬로우는 워해머가 처음으로 가로막히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체구로……?’

자신을 직접 밀어냈을 때도 그랬지만, 테오가 발휘하는 괴력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심지어 이번에는 테오도 주춤거리기만 할 뿐, 뒤로 밀리는 기색도 없었다.

힘이 거의 대등하다는 뜻.

문제는 그의 경악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니.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그려내는 그 다음 속도가 훨씬 빨랐던 것이다.

쐐애애액-

두 번째 발톱이 목덜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차아앙!

슬로우는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콰직!

문제는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워해머에 균열이 살짝 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이어서 세 번째 발톱이 번뜩였다.

<용의 세 발톱 – 파열>

<풍뢰신 – 미풍>

목표는 심장.

슬로우는 워해머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두 개의 무기가 십자로 교차하면서 엄청난 충격파가 일었다.

테오와 슬로우, 둘 모두 주춤 밀려났다.

그리고,

후두둑-

부서진 워해머의 파편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

테오는 경악에 빠진 슬로우의 얼굴 위를 월백검의 빛살로 덧칠했다.

네 번째 발톱이었다.

콰르르릉!

검은 벼락이 작렬했다.

천둥소리가 마치 그리핀의 포효를 보듯 쩌렁쩌렁하게 실내를 가득 울렸다.

촤아악-

피분수가 허공을 가득 채우고,

파앗!

셀퍼드와 아린이 추가 타격을 입혔다.

십여 개의 검기가 벼락처럼 슬로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콰콰콰콰-

천장이 다시 한 번 더 무너지면서 슬로우를 파묻어버렸다.

푸스스-

낙석 더미 바깥으로 튀어나온 팔 하나가 부르르 떨리다가 축 가라앉았다.

붉은 피 웅덩이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하아…… 하아…… 뒈지는 줄…… 알았네……!”

셀퍼드는 거칠게 단내를 토해냈다.

슬로우는 확실히 상대하기가 버거운 작자였다.

“고맙다, 신입. 덕분에 살았어.”

하지만 이번 공적의 가장 큰 활약상을 펼친 건 테오였다.

“아닙니다.”

“빼기는. 야, 이럴 때는 좀 으스대도 되거든? 너 정말 라그나르 맞냐?”

“라그나르 맞아.”

아린이 가볍게 웃으면서 옆에 다가왔다.

“이 녀석이 했던 말 못 들었어? 자기 싸움 방해하지 마라던 거.”

“크! 맞아맞아. 패기 하나는 쩔었지.”

테오는 계속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두 선배 때문에 계면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나저나 인질들은? 아까 전부터 보이지 않던데.”

“에리카와 홀커스에게 성곽으로 데리고 가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 잘했어. 아무리 우리 최우선 목적이 적의 말살이었다고 해도, 인질 구출도 빠져서는 안 되는 거니까. 오히려 거기까지 신경 쓴 네가 우리보다 낫다.”

셀퍼드는 진심으로 테오가 마음에 들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일 잘하는 부사수. 얼마나 예쁜가?

테오는 말없이 웃으면서 폐허가 된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다행히 임무는 거의 성공한 것 같지만…… 너무 쉽지 않나?’

물론, 슬로우를 상대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까닥했다간 테오도 죽을 뻔했으니.

하지만 블랙 스컬의 전력 자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약했다.

정말 이들만으로 트라이너를 비롯한 열댓 명의 대원들을 죽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때, 부서진 워해머의 파편이 테오의 눈에 들어왔다.

‘이걸 보면 알 수 있겠지.’

테오는 워해머의 파편을 집어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해츨링 싱크로’를 발동하여 해당 물품에 어린 사념을 읽습니다.]

테오가 슬로우를 처음 마주했을 때 쾌재를 외쳤던 게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간부급의 사념을 읽을 수 있다면 발뭉의 행적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므로.

덧붙여, 블랙 스컬에 대한 여러 의문도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요새 곳곳을 같이 돌아다녔을 테니까. 내가 직접 다 뒤지고 다닐 필요도 없어.’

그런데,

‘……없다.’

아무리 사념을 샅샅이 뒤져봐도.

요새 안에 발뭉이 보이지 않았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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