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백갑용기대 (1)
“흑설에서는 지금 올린 보고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
“교차 검증은 모두 끝났고, 대략 89%의 확률로 진실일 것으로 추측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로군.”
율리우스는 수하의 보고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에 갑자기 핫라인을 통해 전달된 비상 보고서가 탁상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율리우스보다 더 오랫동안 백갑용기대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하던 5번조장 트라이너 이스벤이 임무에 같이 나선 15인의 수하들과 함께 전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흑설에 재확인을 요청했지만, 결국 비통 어린 대답만 들어야 했다.
근 3년 안에 있었던 수많은 격전 중 가장 뼈아픈 피해였다.
“지시하신 대로 1조원 상급검사 이블린 네레빌을 임시 5번조장에 임명하고, 신입 3명을 그 아래에 배속하였습니다. 또한, 임시 교육이 끝난 뒤 사흘 뒤에 있을 임무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새파란 햇병아리를 임무에 투입해야 할 정도라니…… 우리도 막장이나 다름없단 말이지.”
수하는 율리우스의 한숨에 하고 싶은 대답이 많았지만, 하지 않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답답한 마음은 그보다 율리우스가 가장 클 테니까.
사실 이것은 백갑용기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였다.
‘빌어먹을 기무국과 원로원만 아니었어도……!’
백갑용기대는 공군이었다.
지형지물에 큰 영향을 받는 다른 부대들과는 작전 수행의 범위가 넓다는 뜻.
그렇기 때문에 백갑용기대는 항상 끝없이 쏟아지는 임무 요청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1번조는 특수 임무를,
2번조는 마해의 동향을 살피는 수색을,
3번조는 대장벽 보호와 주변부 탐색을,
4번조는 윈터러의 보호와 북방 6설가의 감시를,
5번조는 북방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 사고들의 개입 및 원조 요청에 대한 대응 임무를 도맡아 처리했다.
임무만큼이나 맡은 영역도 너무나 넓은 것이다.
마해에서부터 대장벽, 그리고 북방 전역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구역을 감시하기에 500인도 안 되는 인력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매번 인력 충원을 요청해도, 중앙기무국과 원로원에서는 난색을 보이기 바빴다.
저들 딴에는 인재 부족을 명분으로 든다지만,
실상은 정치적 견제가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백갑용기대는 항상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5번조의 조장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복수를 위해 다른 조까지 총동원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신입 인력을 충원하여 반격에 나서니.
다른 부대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곳곳에서 부대 기강이 무너질 징조라고 떠들고 다녔을 것이다.
“잘 알겠지만, 신입들에게는 당장 큰일을 맡길 수 없으니 이번 임무에서 수색이나 원호 정도로 끝내도록 해. 이런 식으로라도 실전을 한 번 거치고 나면 깨닫는 게 많아질 테니.”
“알겠습니다.”
수하가 고개를 숙이면서 떠난 뒤.
율리우스는 의자를 반대로 돌려 창밖을 보았다.
푸른 하늘이 오늘따라 유달리 무심하게 보였다.
“확률 89%……. 그래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11%나 된다는 건가. 다쳐도 좋으니 부디 살아만 있으시오, 영감.”
율리우스는 매번 옆에서 꼬장꼬장하게 잔소리를 늘어놓던 트라이너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문득 갑자기 테오에게 생각이 미쳤다.
언제나 깜짝 놀랄 만한 기적을 보여주었던 동백궁의 공자님이 이번에도 어떤 기적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율리우스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나도 참 막막했던 모양이군.’
아무리 테오라고 해도 기대할 수 있는 범주가 있을 텐데.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소원이었다.
이제야 갓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수련검사에게 뭘 바라는 건지.
그래도.
그래도…… 만약에 어떤 기적이 발생한다면?
딸칵!
율리우스는 굳게 잠겨 있던 탁상의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담겨 있던 책자를 하나 꺼냈다.
매화궁주가 공동 전인을 운운하면서 건넸던 비전서.
‘이것이 그 기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탁상에 올려둔 종을 살짝 흔들었다.
딸랑-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이블린을 불러주게.”
* * *
-본격적인 임무가 시작되는 사흘 뒤까지, 지정 사수들은 모든 부사수들에게 기초 교육을 끝내놓도록.
이블린이 임무 예고와 함께 던진 명령은 5번조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무리 벼락에 콩 볶아 먹는다지만, 이번 지시는 너무 터무니없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
반발이 있어도 거둬지지 않은 명령은 반드시 따라야만 했다.
그 때문에 세 신입에 대한 사수 지정이 빠르게 이뤄졌고,
테오는 자신의 사수를 따라 백룡의 둥지 한편에 위치한 연무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대체 뭘까? 아직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신입들을 투입시킬 만큼 급한 임무가.’
이블린은 보안을 근거로 임무 개시 전까지 임무에 관한 내용을 일절 공유해주지 않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테오는 전생의 지식만 계속 뒤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쯤에 발생한 큰 사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고민만 커졌다.
그나마 짚이는 것이라면 딱 하나.
‘세레스 상단의 북방 상행 인질극.’
세레스 상단은 반년 전에 교룡회 연회에서 테오와도 충돌한 적이 있던 곳으로,
사실상 에드 트로이반과 트로이반 가문의 암중 연결고리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래도 당장 겉보기에는 라그나르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북방의 대상단이었다.
그런 곳이 이 시기에 상행(商行)을 하다 말고 갑자기 ‘블랙 스컬’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도적단에 인질로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에 백갑용기대 5번조가 투입되어 인질들을 전원 구출하고, 도적단은 토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생계가 팍팍한 북방에서는 아주 흔하디흔하게 발생하는 사건 중 하나.
라그나르도, 백갑용기대도 여기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흑설에서 발견하게 되지. 이때 세레스 상단이 상행에서 옮기고 있던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용살검(龍殺劍)이었다는 사실을. 그 때문에 가문은 크게 홍역을 치러야만 했고.’
앞으로 몇 년 안에 에드 트로이반이 쿠데타를 시도하게 된다.
조카인 악시온 라그나르를 새로운 가주로 내세우면서 일으킨 쿠데타는 중앙기무국도 함께 하면서 모든 행정 체계를 마비시키고, 윈터러를 외부와 철저히 단절시키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일으켰던 것이다.
당시 윈터러에 상주 중이던 몇몇 원로와 장로들이 에드를 제압하기 위해 나섰지만, 모두 머리가 떨어지고 마니.
이는 에드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갖고 있던 무기가 라그나르에게 천적이기 때문이었다.
용살검 발뭉(Balmung).
머나먼 신화시대에 마룡을 처단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내력과 신비를 품은 마검으로,
에드는 이것을 가지고서 쿠데타를 성공 ‘직전’까지 몰아갈 수 있었다.
‘끝내 아버지와 흑룡에 의해 제압되긴 했지만…… 피해가 컸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만약 인질극 사태 때 흑설에서 용살검의 존재를 먼저 눈치챘었더라면 그러한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전생과 다르게 지금은 더 이상 악시온이 없어. 쿠데타를 일으킬 명분이 사라졌다는 건데…… 그 때문에 어떤 변화가 발생한 걸까?’
에드 트로이반은 계책과 음모를 꾸미는 데 있어 흑룡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음험했다.
그러니 장기말인 악시온이 없어진 이상, 기존의 계획을 다른 방향으로 바꿨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테오가 부국장 자리를 거절했을 때에 보였던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었고…….
‘정말 만약에 그 때문에 발생한 나비효과라면 어떻게 변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 해.’
에드 트로이반과는 두고두고 충돌할 수밖에 없을 테니, 움직임은 반드시 계속 파악해둬야만 했다.
어쩌면 때에 따라서 이쪽에서 먼저 뒤통수를 칠 필요가 있을지도 몰랐다.
“자, 그럼 이제부터 안장 설치와 고삐 채우기를 가르쳐주겠다.”
그때, 테오는 사수가 외치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시켰다고 해도, 이 와이번이라는 것들은 원래 구속되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비행하는 데 있어 체중이 너무 무거워지거든. 그 때문에 와이번과의 ‘파트너십’이라는 것은 바로 이 안장과 고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지.”
셀퍼드 가드너.
테오의 사수로 지정된 선임은 평소와 다르게 웃음기를 싹 지운 채로 설명에 몰두했다.
기초 교육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정작 실전에서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른 동료들까지 모두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럼 한 번 시도해보도록.”
테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장을 들고 움브라 앞에 섰다.
그러자 움브라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크르르……!
살짝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어째선지 테오는 움브라가 손에든 안장보다 자신에게 투덜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왜 그래? 혹시 어제 같이 있어 주지도 않고 먼저 가서 그래?”
케에엑!
움브라가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푸드덕거렸다.
겉보기엔 테오에게 달려들 것처럼 보여서 셀퍼드가 나서려 했지만, 테오는 괜찮다면서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맞구나. 그 때문에 삐진 거구나?”
케엑! 케에엑!
움브라가 더 크게 퍼덕거렸다.
그걸 몰라서 묻느냐고 따지는 것 같았다.
피식!
테오는 자기도 모르게 실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케에엑!
움브라가 다시 한 번 더 따졌다.
지금 웃음이 나오냐고.
“아, 미안미안. 푸흡!”
케에에엑!
테오는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인상은 이렇게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정작 따지는 내용은 너무 귀엽기만 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물론, 움브라는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지만.
한편으로, 움브라의 속상한 마음도 이해되었다.
한평생 가족도 친구도 없이 지내왔던 녀석이 이제야 겨우 친구가 생겼다 싶었는데 먼저 훌쩍 집으로 가버리고 말았으니.
또 버림받은 게 아닌가 싶어서 밤새 마음을 졸였을지도.
“미안해.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그냥 두고 가지 않을게.”
케에엑!
움브라는 괴성을 지르면서 고개를 옆으로 홱 하고 돌렸다.
누가 봐도 단단히 삐진 모습.
-미안하다면 다 끝나는 줄 아냐!
테오는 결국 움브라의 화를 달래기 위해 비장의 한 수(?)를 꺼내야만 했다.
“아, 이런 안 되겠네……. 우리 움브라한테 선물로 주려고 가져온 선물이 있는데, 아무래도 다시 가져가야겠는걸.”
테오는 영 어색한 연기 톤으로 몸을 돌려 뭔가를 뒤적거렸다.
움찔-
옆으로 돌아갔던 움브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주 비싼 진주 목걸이인데, 어.떡.한.다?”
제 딴에는 아닌 척 숨긴답시고 숨기고 있지만, 움브라의 동공은 데구르르 테오 쪽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테오의 손에는 세실리아에게서 받은 진주 목걸이가 들려있었다.
부르르!
순간, 움브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아. 대.장.님.의. 굴.라.도. 이.런.거 좋.아.한.다.던.데 거.기.다.가 줘.야.겠……!”
케에에엑!
순간, 움브라가 화들짝 놀라 크게 퍼덕였다.
안 돼! 멈춰!
테오가 히죽 웃으면서 돌아봤다.
“아니면 네가 가질래?”
케엑! 케에에엑!
움브라는 테오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 고개를 몇 번씩 끄덕였다.
테오는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 움브라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에다 진주 목걸이를 같이 걸어주었다.
곧 움브라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발톱으로 목걸이를 한참 동안 갖고 놀았다.
그사이 테오는 움브라의 어깨에 안장과 고삐를 채우는데 성공했으니.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셀퍼드는 그 모습을 보는 내내 얼이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파트너라고 해도 와이번에게 안장과 고삐를 채우는 데는 최소 보름 이상이 소요되는 편인데.
테오는 그걸 단 몇 시간 만에 해결하고 말았으니.
덕분에 셀퍼드는 한순간 진중한 모습에서 평상시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글쎄요. 그냥 되었습니다만.”
테오는 가만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 평소에 그런 말 많이 안 들어 봤냐?”
“무슨 말이요?”
“재수 없다는 말.”
테오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셀퍼드의 기초 교육은 계속 이어졌다.
테오는 백갑용기대만의 전술 전략을 비롯하여 지휘 체계, 조별 특징, 진영 이론, 비상시 매뉴얼까지 많은 것들을 빠른 속도로 흡수했다.
다행히 흑설에서 활동한 전생의 경험이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반면에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셀퍼드는 테오에게 딱 한 가지 감상을 받게 되었다.
‘이놈은 천재다! 그것도 오로지 백갑용기대를 위해서 태어난 천재라고! 두고두고 감싸고 돌아야겠어! 절대! 절대 남들한테 안 뺏겨야지! 넌 내 거다, 테오 라그나르으으으!’
재능 넘치는 부사수의 등장은 전부 사수의 근태와 실적 평가에 플러스 요소가 되니까.
가뜩이나 아린이나 다른 동기들이 테오를 두고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사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활활활!
셀퍼드의 두 눈이 불길로 타올랐다.
테오는 자기도 모르게 드는 오한에 등을 움찔거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사흘 뒤.
“간다.”
이블린의 명령에 따라 테오를 포함한 백갑용기대 5번조가 출정을 시작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