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53화 (53/224)

53화

카일 라그나르 (3)

‘또 온다!’

쉬쉬쉬쉭-

테오는 비탈길을 뛰어오르는 내내 무형의 칼날을 여러 개 만나야만 했다.

하늘을 가득 뒤덮는 화살은 물론,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노리고 달려드는 비수까지.

전부 카일의 패기가 만들어낸 힘들이었다.

단순히 패기를 극복하는 수준이 아니라, 위협도 꺾어야만 했다.

‘미친 난이도……!’

따다다당!

테오는 드레이크의 날붙이에다 마력을 가득 실어 휘둘렀다.

거친 호선에 걸린 무형의 칼날이 모조리 튕겨 나는 가운데,

타닥!

테오는 드디어 원하던 목적지, 산장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그의 몰골은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안광만큼은 뇌기를 품은 듯 화려하게 명멸했으니.

‘아버지……!’

테오는 카일을 만나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을 모두 입안으로 삭히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호르르!

그 순간, 산장의 지붕에 앉아있던 검은 종달새가 테오를 발견하고는 가볍게 지저귀었다.

끼이이익-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산장 문이 활짝 열렸다.

어서 오라는 듯이.

꼴깍-

테오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천천히 산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쿵!

그러자 다시 정문이 거칠게 닫히고,

화아악-

어둡던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순간, 테오는 자기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산장에는 무수히 많은 검들이 바닥에 꽂혀있었다.

저마다 모양도 쓰임새도 다르지만, 하나하나가 전부 보검이라 할 만한 것들.

다만, 거기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어느 한 군데가 모두 부러져 있다는 것.

그 전부가 울어대고 있었다.

마치 원념을 토해내듯이.

웅웅-

우우우웅!

“이게 전부 무엇인지 아느냐?”

카일은 그러한 검의 무덤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뒷짐을 쥔 채로.

“가주님께서 그동안 직접 꺾으신 검사들의 검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일에게는 한 가지 취미가 있었다.

자신이 이긴 적수들의 검을 수집하여 트로피처럼 전시하는 것.

덕분에 여기 산장은 윈터러의 사람들에게 다른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반검묘.

반동강 난 검들의 무덤이란 뜻이었다.

“맞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꺾은 적들, 이 자리를 위협하던 고수들, 이 자리를 갖고 싶어 하던 도전자들……. 라그나르의 가주란 자리는 이토록 고독한 자리다. 늘 위협을 받고 도전을 받는…… 한 시도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자리이지.”

카일이 테오 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너 역시 이 자리를 노린다고 들었다. 맞느냐?”

“예. 맞습니다.”

순간, 카일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두 눈이 테오를 직시했다.

마치 적을 앞둔 용의 눈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지 마라. 이 검들이 주는 원념을 보고도 똑같이 그런 말이 나오느냐?”

테오는 검의 무덤을 다시 훑었다.

해츨링 싱크로를 갖고 있기에 그의 눈에는 이 검들이 품고 있는 원념이 더욱더 선명하게 보였다.

-죽여…… 죽여 버릴……!

-카일! 카이이이일!

-나를 이 꼴로 만든 너를…….

-언젠가 나는 그 자리를 가질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바늘처럼 피부를 쿡쿡 쑤시는 악기(惡氣)와 악의(惡意).

이 자리에 오래 있다간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몰랐다.

어떤 면에서는 카일의 패기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가주가 되고자 한다면 앞으로 이와 같은 악기를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그 업보도 계속 짊어져야 할 테고.

하지만.

“그래도 제 각오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테오의 각오는 절대 하루 이틀의 고민으로 탄생한 게 아니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테오는 한 걸음을 내딛으며 그렇게 말했고, 굳어있던 카일의 입가에도 다시 미소가 걸렸다.

“좋다. 아들의 꿈이 그러하다면 아비로서 당연히 들어줘야지.”

카일이 뒷짐을 풀면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바닥에 꽂혀있던 검 중 하나가 덜그럭 소리를 내다가 튀어 올라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터억!

“나는 지금부터 너를 아들이 아닌 도전자로 대할 것이다.”

고오오오-

다시 한 번 더 드래곤 피어가 강렬해졌다.

마치 카일의 등 뒤로 거대한 용이 두 눈을 뜨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꼴깍.

테오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기수식을 취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있을 일검대련은 이전에 카일이 보여주었던 일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할 것이다.

도전자로서 대우해주겠다고 하였으니, 그 검은 다른 응시생들이 겪게 될 것과도 완전히 다를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

테오는 그런 생각에 긴장감을 바짝 세웠다.

“‘그녀’의 가르침이 어땠는지 어디 한 번 보자꾸나.”

그녀?

누굴 말하는 거지?

혹시…… 로드브로크?

‘내가 둥지를 다녀온 걸 눈치채셨나? 대체 어떻게?’

콰아아아-

하지만 테오는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카일이 쥐고 있던 반검이 격렬하게 떨리며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응집되고 있던 탓이었다.

테오로서는 전혀 가늠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경지의 광검(光劍).

카일의 마력이 실린 것이다.

일검이 번쩍였다.

빛살이 테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네가 정말 이 자리를 제대로 거머쥐고자 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을 네가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음을 내게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여전히 선문답 같은 질문들이었지만, 테오는 거기에 뭐라고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저것은 재앙이었다.

태풍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 같은 것.

절대 일개 인간이 어떻게 거스를 수 있는 게 아닌 것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진심으로!

-이대로는 정말 위험하다.

테오는 그런 위기감에 용의 심장과 단전, 마력 공명을 최대로 끌어올리면서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위로 올려 젖혔다.

쿵쿵쿵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뇌기가 번쩍번쩍 튀어 올랐다.

파지지지직!

그리고 이 순간.

테오는 그동안 엿보았던 초고수들의 심상을 몇 번씩 복기하고 있었다.

해츨링 싱크로가 미친 듯이 발동했다.

뇌가 점차 뜨거워졌다.

떠올렸다.

매화궁주의 부드러운 꽃잎을.

상기했다.

율리우스의 날카로운 일격을.

되짚었다.

심판관의 쏟아지는 검세(劍勢)를.

뇌룡이 테오를 중심으로 나타나 크게 똬리를 틀면서 발톱을 거칠게 휘둘렀다.

크허허허헝!

마치 그 모습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용의 울음소리 같았다.

하지만,

촤아아악!

카일의 빛살은 용의 발톱과 머리를 무참하게 모조리 자르면서 테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드레이크의 날붙이와 테오마저 갈랐다.

스걱-

아주 짧은 절삭음.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어둠이 시야를 덮으면서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죽…… 었나?’

테오는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죽음을 맞았을 때도 이랬다.

눈 없는 화살에 맞아 죽고 난 뒤. 어둠이 찾아왔고,

알 수 없는 공간을 한참 떠돌다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회귀가 이뤄졌다.

하지만 회귀란 어디까지나 정체 모를 첫 번째 유물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다.

또 그걸 바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정말 죽었다고 봐야 하리라.

.

.

아주 잠깐 적막이 흐르고,

‘웃기지 마.’

테오는 없는 이를 악물었다.

‘지랄 말라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다짐하지 않았던가.

이번 생은 절대 굽히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이번에도 굽히지 않을 것이다.

테오는 왼손을 허리춤에 가져갔다.

분명히 육신은 없었지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월백검이 있었다.

우웅, 우우웅!

* * *

카일은 무심한 얼굴로 테오를 바라봤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것으로 생각하기 힘든 눈빛.

테오는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든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석고상이라도 된 것처럼.

눈동자에는 초점이 사라지고 없었다.

실혼인(失魂人).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

카일은 보통 저런 상태를 그렇게 불렀다.

사실 카일이 벤 것은 테오의 육체가 아니었다.

그 속에 깃든 영혼.

테오의 정신을 심검(心劍)으로 베어버린 것이다.

신의 경지를 바라본다는 그만한 존재가 휘두른 심검인 만큼 9룡급 고수의 정신력이 아니면 절대 극복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카일은 테오가 극복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자신이 직접 하사한 일검과 ‘그녀’의 가르침, 그리고 그가 얻은 여러 기연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테오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진짜 권좌를 틀어쥐려면 이 정도 난관쯤은 극복할 수 있어야 했다.

후발 주자인 그가 마주할 진짜 계승권자들은 어마어마할 테니.

호르르!

하지만 카일의 어깨 위에 앉은 검은 종달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군. 그럼 이 아이의 몫도 여기까지인가 보지.”

카일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몸을 돌리려는데,

크허허헝!

강렬한 기파와 함께 테오의 눈에 다시 전광이 맺혔다.

다시 돌아서는 카일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걸렸다.

짐승의 포효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그곳에 뿌연 매연을 풀풀 날리며 테오가 서 있었다.

오른손에는 드레이크의 날붙이, 왼손에는 월백검을 든 채로.

우웅! 우우우웅!

두 자루의 검이 절대 질 수 없다며 울부짖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만하면 자격은 충분히 보이지 않았습니까?”

테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카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절대 굴하지 않겠다는 그 눈빛이,

카일은 마음에 들었다.

“좋다. 합격.”

그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어졌다.

* * *

‘……아버지는 대체 내게서 뭘 확인하고 싶으셨던 걸까?’

테오는 산장을 나오면서 깊은 고민에 잠겼다.

대체 아버지가 알고 계시는 게 뭔지, 심검까지 사용하신 의도가 뭔지를 너무 묻고 싶었지만.

-다음.

카일은 다음 사람만 호명할 뿐, 이렇다 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마치 아직 그만한 ‘질문’을 할 자격이 너에게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결국 테오는 의문만 잔뜩 안은 채로 산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래도,

‘아버지께 인정은 받았다.’

별다른 말씀이 없으시다는 것.

권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 표시나 다름없었다.

[축하합니다! 용살자의 인정을 받아 튜토리얼 퀘스트 #17을 무사히 성공하였습니다.]

[평가: A+]

[보상으로 1코인을 얻었습니다.]

[평가에 따른 추가 보상으로 소유 아이템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됩니다.]

[이제부터 A등급 이하의 정신 공격에는 면역력을 발휘합니다.]

우우우웅!

우우웅-

카일의 심검을 극복하면서 사념이 더 단단해진 드레이크의 날붙이와 월백검이 길게 울음을 토해내는 가운데.

테오의 입가에 맺힌 미소도 훨씬 짙어졌다.

이로써 모든 개화식이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권좌 경쟁에 뛰어들 때였다.

* * *

그날 저녁.

3차로 이어지는 모든 개화식이 끝나고,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개화식 최종 결과>

전체 수석: 테오 라그나르

-1차: 수석, 2차: 수석, 3차: 수석

-심판관 보고: 해당인은 기술, 재능, 역량, 투지 등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뛰어난 점수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이번에 2차 시험에서 세운 신기록은 라그나르의 천년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될…….

새롭게 두각을 드러낸 계승권자의 등장.

파란의 시작이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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