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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52화 (52/224)

52화

카일 라그나르 (2)

“꺄하하! 내 딸! 내 귀염둥이 막내딸! 어디 갔니! 분명히 여기 있다고 들었는데!”

동백궁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마장 키르손의 방문 때문이었다.

당연히 시녀들의 수다도 덩달아 많아졌다.

-어머, 마장 님. 또 오셨나 보네. 요즘 들어 자주 보이신다.

-그러게.

-세실리아 님이 마장 님의 수양딸이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봐.

-그러게, 그러게. 어쩐지, 세실리아 님의 안목이 남다르다 싶더라니.

-어머, 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웬 거짓말이야? 너무 깐깐하시다면서 호박씨 갈 때는 언제구.

-나만 깠니?

-물론, 나도 같이 깠었지. 호호호!

키르손은 수군대는 시녀와 집사들 사이를 힘차게 통과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 딸아! 내 딸아, 어디 갔니!”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키르손은 결국 동백궁의 방문이라는 방문은 모두 힘차게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여기 있니?”

쾅!

“없네. 그럼 여기?”

쾅!

“그럼 여긴가?”

콰아앙!

애꿎은 방문들을 십여 번 정도 괴롭힌 뒤에야,

쾅!

“여기 있었구나!”

키르손은 드디어 애타게(?) 찾아 헤맸던 막내딸 세실리아를 찾을 수 있었다.

마침 세실리아는 의상 디자이너들과 함께 한창 테오를 위한 연미복을 구상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짜증이 역력했다.

3차 시험은 하루면 충분하니 시험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작업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방해받고 말았으니.

“……다들 잠시 자리 좀 비켜주세요.”

디자이너들이 눈치를 보며 자리를 싹 비우고,

세실리아가 곧 쌍심지를 켜며 키르손을 노려봤다.

“이게 대체 무슨 무례인 거죠, 어머니? 궁에서는 부디 체통을 지켜달라고 당부를 드렸을 텐데요!”

키르손은 살짝 찔끔했지만, 곧 함박웃음을 지었다.

활짝 열린 콧구멍에서는 열기라도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체통이라니! 이런 상황에서 체통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이상하지! 이 어미가 떼부자가 되게 생겼는데!”

“어머니는 원래 부자잖아요?”

“그냥 부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러네. 떼부자란 말이다, 떼부자! 꺄하하하!”

세실리아는 반쯤 광기에 젖어 웃어대는 키르손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테오가 유명세를 타고 난 이후.

키르손은 툭하면 이런 식으로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많았다.

테오의 광고 효과가 상상 이상이라나?

덕분에 바스크 공방의 주문 대기가 이미 내년 말까지 꽉 찬 상태라고 들었다.

그런데도 계속 예약 주문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고.

그러니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자본주의의 노예 엘프가 환장할 수밖에.

하지만 세실리아는 그런 키르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들을 팔아 돈을 번 것 같은 찝찝한 기분도 기분이지만,

테오가 혹여 개화식을 치르는 동안 크게 다친 곳이 없는지 노심초사했기 때문이었다.

‘아드님이 장미궁에만 계실 때에는 그렇게 채근하기만 했었는데, 정작 밖에서 맹활약을 하고 계시니 더 답답해지는 꼴이라니……. 저는 아무래도 어미로서의 자격이 없나 봅니다, 아드님.’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자신은 테오에게 그리 좋은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

늘 제대로 하지 못하느냐며 타박하기만 했었으니까.

-멀어져만 가는 남편의 애정을 갈구하기 위한 도구.

어떨 때는 그렇게 여기기도 했다.

테오가 만약 두각을 드러낸다면, 장미궁을 들르는 카일의 발걸음도 다시 바빠질 거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테오는 그런 세실리아의 바람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고,

그래서 두 모자의 거리는 자꾸 멀어지기만 했다.

그러다 서먹하기만 하던 관계가 다시 진전되기 시작한 것은 테오의 용기 덕분이었다.

테오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세실리아의 마음이 활짝 열리고,

테오도 거기에 맞춰서 발걸음을 맞췄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테오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테오가 주변에서 쏟아질 견제와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기에도 바빴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테오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고 나니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아들에게 참 모진 짓을 했었구나, 하고.

테오도 아직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일 텐데.

아직 어머니의 품이 더 중요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훌쩍 자라게 둔 것이 못내 미안했다.

‘이제 곧 3차 개화식도 진행될 텐데, 괜찮을까?’

아버지와의 만남이 그렇게 살갑지는 못할 텐데.

그것도 못내 걱정이었다.

“꺄하하하!”

“…….”

문제는 저 철없는 분이 딸의 이런 싱숭생숭한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거였다.

‘……일단 쫓아내고 생각하자.’

세실리아는 쌍심지를 잔뜩 켠 채로 키르손을 노려봤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예전에 집사들이 스치듯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근에 도련님의 검술 스승을 찾는 문의가 많다고 합니다.

-아드님께 검술 스승이 계셨었다고? 이런 난 그것도 모르고……! 그분이 누구시지?

-제4 연무장을 관리하는 이블린 네레빌이라고 해서 과거에 백갑용기대장의…….

여전히 얄밉지만 실력만큼은 북방 제일이라는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왜 그러느냐?”

“혹시 의수, 만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 * *

“으으윽……!”

테오와 에리카의 대련이 모두 끝난 뒤.

에리카는 근육통으로 욱신거리는 통증 때문에 인상을 찡그렸다.

신나게 싸웠을 때는 몰랐는데, 전신 곳곳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랑케를 힘으로 이기는 라그나르라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된단 말이냐.

「흐흐! 거봐, 쉽지 않지?」

그때, 홀커스가 이죽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에리카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좀 닥쳐줄래? 힘들어 죽겠거든?」

「그러게 말했잖아. 누나도 안 될 거라고. 말 안 듣더니 꼴 좋구만. 푸헤헤헤헤!」

「이 새끼가?」

저대로 저 속을 긁었다간 정말 얻어맞는다. 그런 생각에 홀커스는 잽싸게 웃음소리를 죽였다.

하지만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씰룩씰룩-

‘저 새끼를 죽여? 말아?’

에리카는 당장에라도 깐족대는 남동생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그냥 한숨을 내쉬면서 포기했다.

지금은 일어나는 것도 버겁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홀커스는 너무 기분 좋았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

‘푸헤헤헤헤! 이 방법 아주 자주 써먹어야겠는데!’

사실 에리카가 테오에게 달려든 건 홀커스의 계략(?)이었다.

아무리 누나가 대단하다고 해도 녀석은 못 이길 거라며 미리 속을 살살 긁어뒀던 것이다.

당연히 호승심 강한 에리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거였다.

‘그래도 저 인간 같지 않던 누나가 패배하다니. 정말 같은 인간인 거 맞지?’

에리카와 다르게 테오는 숨소리만 살짝 흐트러졌을 뿐, 체력은 거뜬해 보였다.

‘얼굴 돼, 싸움 잘해, 체력 좋아, 누나도 이겨, 대체 저놈은 못 하는 게 뭐가 있지?’

무엇보다,

테오가 에리카와 대련 중에 내뱉었던 말이 아직도 자꾸 그의 머릿속에 왱왱 울렸다.

-라그나르의 가주가 어떻게 랑케의 영부군이 될 수 있겠어? 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대가문인데.

-라그나르의 계승권자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꿈꿀 수 있다만?

‘개멋있단 말이지.’

비장하게 말하거나 악에 받쳐서 말하던 게 아니었다.

아주 덤덤하게 말했었다.

마치 자신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이.

그래서.

그래서 더 홀커스의 눈에 확 하고 와 닿았던 건지도 몰랐다.

이전에도 테오가 멋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그때와 또 달랐다.

단순히 잘생기거나 옷차림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하는 말투며 행동까지 전부 대권을 꿈꾸는 잠룡(潛龍)의 모습으로 비쳤다.

남자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그런 호기(豪氣)로 가득한 모습.

두근두근!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 한번 더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치 테오의 각오에 동화라도 된 것처럼.

‘누나도…… 매번 가주가 될 거라고 했었지. 랑케에 모자라지 않는. 오히려 랑케를 라그나르보다 훨씬 더 위에 놓을, 그런 가주가.’

어렸을 때는 어떻게 봉신 가문이 대가문을 뛰어넘느냐고, 누나가 헛소리한다고 일축했지만.

이제 와서 보고 나니 알 것 같았다.

누나가 얼마나 원대한 꿈을 꾸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테오 또한 그에 못지않은 멋진 꿈을 꾸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나의 꿈은 뭐지?

단순히 멋있어지는 것?

아니면 단순히 강해지는 것?

‘모르겠어……. 아직은.’

홀커스의 머릿속이 여러 생각들로 복잡하게 어우러졌다.

-꿈을 찾고 싶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을 것 같고 멋있는 것만 찾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지금은 보다 더 큰 뭔가에 자신을 던지고 싶었다.

테오나 에리카처럼.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더 가빠졌다.

‘두 사람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보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으려나?’

홀커스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안절부절하지 못 할 무렵,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시선이 있었다.

‘테오 공자가 또 하나 꼬셨군.’

웰링턴은 4연무장 새벽 훈련 멤버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사실에 실웃음을 흘렸다.

홀커스의 저런 반응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도 한때 딱 저랬으니까.

사람을 자신의 꿈으로 끌어들이는 마력.

그거야말로.

테오의 가장 큰 장기가 아닐까?

* * *

“으으으……. 여기서 계속 죽치고 앉아있을 수는 없지.”

에리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테오를 돌아봤다.

여전히 몸 곳곳이 삐거덕거렸지만, 자신은 마지막 3차 시험을 치르던 중이었다.

리타이어는 죽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헤이, 찌리리.”

“……혹시 날 말하는 거냐?”

테오는 왠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호칭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에리카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응. 너는 찌리리, 쟤는 샌님, 이 아가씨는 얼음땡.”

웰링턴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필 내가 왜 샌님이라는 거요?”

“너무 반듯하게 생겼잖아.”

“고작 그런 이유로……!”

“말투도 너무 아저씨 같고.”

“…….”

“너 정말 열다섯 맞지?”

웰링턴이 자신의 말투에 충격에 빠진 동안, 레이도 두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왜 얼음땡?”

“얼음 막 쏴대잖아.”

“…….”

“왜? 다른 이유 필요해?”

결국 자기 편하자고 저렇게 부른다는 의미였다.

‘그럼 나는 단순히 우레 속성이라서? 그래도 왜 하필 찌리리공 같은 별명을……?’

테오는 지구에서 봤던 어떤 만화 캐릭터를 떠올리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여간. 그래서?”

“저기 어떻게 올라갈 거야? 너네 아버지 뵙기 너무 어렵잖아.”

명색이 라그나르의 가주에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건 에리카가 유일할 것이다.

“가주님의 패기는 산장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 강해질 거야. 그러니 그걸 극복할 생각은 접는 게 좋아.”

“그럼?”

“마력의 파장을 맞춰야지.”

“파장?”

에리카가 그게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홀커스와 레이도 이해 못 한 얼굴.

하지만 웰링턴은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역위상의 파동으로 간섭을 일으켜 변위를 사라지게 하라는 거요?”

“예. 맞습니다.”

“흠! 하지만 말은 쉬워도…….”

“어렵지만 그래도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겁니다. 이번 3차는 마력의 제어와 조절이 주요 관건일 테니까요.”

“하긴 그도 그렇겠소.”

멀뚱히 서 있던 에리카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역위상? 파동? 간섭?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아듣게 좀 설명해.”

옆에 있던 홀커스와 레이가 끄덕끄덕 고개를 까닥였다.

웰링턴이 피식 웃으며 에리카를 돌아봤다.

그것도 모르냐는 투.

에리카는 어쩐지 웰링턴의 태도가 영 신경에 거슬렸지만 발끈하지 않고 설명을 묵묵히 들었다.

“마력은 일종의 파동이요. 진동의 성질을 갖고 있지. 당연히 가주님의 패기도 파동으로 이뤄져 있을 테니,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파동을 상쇄시킬 마력 파동을 우리가 역산해서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압박과 정반대되는 마력을 만들어서 뿜으면 된다는 거지?”

“뭐, 쉽게 말하면 그것과 비슷하오.”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짜샤! 너, 내가 샌님이라고 놀렸다고 일부러 어려운 말만 골라 쓴 거지?”

웰링턴은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거렸다.

에리카는 도끼눈을 떴지만, 곧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말마따나 말은 쉬워도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마력을 개방한지 한 달도 안 된 신출내기들이다.

아무리 속호법을 터득했다지만, 그만큼의 세밀한 컨트롤은 어려웠다.

하지만.

“너무 억지로 파동 상쇄에만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아무리 우리가 용을 써봤자 가주님의 패기는 막지 못해. 그건 설사 9룡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일 테니.”

테오가 덤덤하게 말을 내뱉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쿠쿵!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압박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균형이 살짝 흔들렸지만, 곧 바로 잡혔다.

9룡도 불가능한 일.

그 말에 다른 네 사람의 시선이 저절로 심판관 쪽으로 향했다.

심판관은 뒷짐을 쥔 채 웃고만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움직일 수 있을 정도만의 공간 확보. 그 정도면 지금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거야.”

저벅, 저벅-

테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면을 따라 미약하게 파문이 그려지는 게 보였다.

균형이 맞춰지고, 걸음 속도도 빨라졌다.

“그럼 먼저 간다.”

파아앗-

테오가 먼저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고,

“너희들도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3차 시험은 선착순대로 점수가 차등 지급되거든.”

심판관이 툭 하고 내뱉은 말에 네 사람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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