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48화 (48/224)

48화

압도적 격차 (3)

테오는 아주 잠깐 동안 고민했다.

그가 얻은 구결 수는 모두 여덟.

웰링턴이 얻은 수와 똑같았다.

마지막에 마검치호를 잡으면서 구결을 하나 더 얻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대로도 추가 점수로 수석 자리를 재탈환할 수 있다지만.

정작 그의 관심사는 수석 자리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구결 하나가 부족한 뇌광 속호법을 ‘완성’할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2차 시험이 모두 종료된다면 마지막 남은 구결을 완성할 방법은 영영 없어지게 된다.

뇌광 속호법을 익힌 고수를 찾아 따로 가르침을 받거나, 뛰어난 공적을 세워 보상으로 구결을 얻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을뿐더러,

개화식이 끝나면 앞으로 본격적으로 대권 경쟁에 뛰어들 그로서 뼈아픈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오에게는 압도적인 성적이 필요했다.

천재들이 가득하다는 이번 기수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이.

‘이미 차기 대권은 다섯 명의 후보들이 너무 단단하게 입지를 구축하고 있어. 그 안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려면…… 모든 부분에서 월등해야만 해.’

그러니 압도적인 성적은 물론, ‘완성’된 속호법은 테오에게 아주 큰 명성을 가져다 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완성이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단지 하나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속호법이 지닌 깊이는 그 같은 초짜가 섣불리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으니.

그래도 다행히 테오에게는 부족분을 채울 만한 수단이 있었다.

[‘스킬: 해츨링 싱크로’로 예전에 보았던 사념들을 복기합니다.]

테오는 의식을 집중했다.

그동안 엿봤던 뇌광 속호법의 사념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회용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 파자 형태로 구결을 새겨 넣던 검사.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며 천둥 번개가 치기를 기다리던 고수.

숲속에서 목검으로 내려치기만을 수만 번씩 반복하던 수련승.

불벼락을 쏟아내는 용을 보며 환희에 젖던 용기사.

.

.

여덟 개의 서로 다른 내용을 담은 단편적 사념들이 교차하고,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의 열망이 테오에게 전달되었다.

아직 깨달음이 부족한 테오로서는 그중에서 ‘이해’할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구결과 구결 사이에 존재하는 미싱 링크를 추론할 수 있는 단서는 조금씩 얻을 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썬더 콜링’과 같은 여러 아티팩트들에서 봤던 사념들이었다.

‘벼락의 구성 요소는 빛과 열. 이 두 가지는 무조건 팽창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절대 통제할 수가 없다. 벼락도 마찬가지. 우레라는 속성도 여기에 대입해서 본다면……!’

테오는 순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등에 매달고 있던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풀어 손에 쥐었다.

“음?”

심판관은 테오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이상 행동을 보이자 왜 그러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테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단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훨씬 더 높고도 더 가파른, 그 어딘가…….

‘이런!’

「시험관들은 모든 응시생들을 주변으로 물리고, 사주 경계를 서도록 하라! 절대 테오 라그나르의 상념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무엇이 테오를 자극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검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란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심판관의 지시에 따라 시험관들이 응시생들을 재빨리 물리고,

심판관은 테오의 옆에 서서 주변에다 검막을 두껍게 둘러쳤다.

주변의 소음이 일체 차단된 무음(無音)의 공간 속에서.

테오는 부족한 구결을 메우기 위한 작업을 바쁘게 진행해나갔다.

‘완전한 구결을 채울 수 없다면 그 내부를 비슷한 것으로 채우자. 결여를…… 더 완성도 높은 다른 무언가로 승화시키는 발판으로 마련할 수 있다면.’

파직, 파지직!

테오를 중심으로 불던 마력풍을 따라 샛노란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도 거칠게 뛰었다.

신경세포를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전달 물질은 전기 신호로 이뤄진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뇌기(雷氣)로 이어지게 되니.

마력에 우레 속성이 부여되면 부여될수록 그만큼 신체 기능도 그만큼 강화되는 것이다.

-신체 기능의 강화.

여기서 테오는 용의 심장을 떠올릴 수 있었다.

원래 용의 심장도 혈류 속에 마력을 불어넣어 육체를 강화하여 통제하지 않던가.

비슷한 특징을 가진 두 가지를 서로 연결시킬 수 있다면?

‘단순히 육체 강화뿐 아니라 외부로 발현되는 뇌기 통제까지 한 번에 이뤄낼 수 있다.’

우레 속성의 부족한 부분은 용의 심장이 안에서 채우고,

용의 심장이 원래 미치지 못하는 외부 영역은 우레 속성이 채운다.

안과 밖.

용의 심장과 우레 속성.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전혀 새로운 <뇌광 속호법>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동양의 용은 호풍환우를 부리면서 벼락을 떨어뜨린다는 말이 있었지.’

테오는 그렇게 자신이 새롭게 개량한 속호법에 다른 이름을 붙였다.

-뇌룡(雷龍) 속호법.

이러한 발상의 착안은 곧 신체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쿵쿵쿵쿵쿵!

심장 소리는 이제 심판관과 시험관도 들릴 정도로 거세졌다.

지면이 미약하게 진동할 정도.

그리고 동시에,

둥둥둥둥둥!

마치 북채로 북을 거세게 두들기듯이 고동 소리가 퍼져나가면서 테오의 발밑으로 잔잔한 파문이 일어났다.

샛노란 뇌기를 잔뜩 머금은 파문의 향연.

그것은 곧 파동이 되고, 해일처럼 일어나 사방팔방으로 번져나갔다.

파지지지직!

허공에 떠올랐던 뇌기도 거세지면서 크고 작은 벼락이 위아래로 쉴 새 없이 튀어 올랐다.

“허……!”

심판관은 그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테오가 풍기는 마력풍만 보더라도, 이미 다른 응시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만점(滿點).

당장 눈을 뜬다면 그만한 점수도 줄 수 있었다.

구결을 몇 개 수집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것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가 중요한 거였지.

하지만.

테오는 그것도 모자란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테오가 눈을 떴다.

번쩍!

눈가에 맺힌 강렬한 뇌광(雷光)이 심판관도 움찔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스스스-

중심으로 전자기장이 발생하면서 품에서부터 무언가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네 자루의 데스비트.

염동력과 자기력이 합쳐지면서 통제력이 더욱더 발전한 것이다.

‘우레 속성을 이만큼 다룬 것도 대단한데, 염력은 대체 어느새 익힌 거지? 대체 또 뭘 하려고?’

심판관은 테오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잔뜩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었다.

씨익!

한순간, 테오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리고.

파아앗-

서로 다른 방향을 겨누던 네 자루의 데스비트가 허공을 질주했다.

그중 세 자루의 목표는 바로 앞서 속호법을 선보였던 세 사람이었다.

에리카, 레이, 웰링턴.

“이 자식이?”

“흡!”

“허……!”

세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에리카는 테오가 자신을 시험한다는 생각에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검을 세차게 아래로 내리쳤다.

불꽃 속성이 더해진 참격.

콰아앙!

단검과 검이 충돌하면서 나는 소리는 쇳소리가 아닌 폭음이었으니.

데스비트에 실린 뇌기가 불꽃과 반발하면서 위로 크게 튀어 올랐다.

파지지지직-

바로 그 순간, 샛노란 뇌기가 한데 뒤섞인다 싶더니 갑자기 새로운 형상을 갖췄다.

용.

뇌기가 잔뜩 뭉쳐져 만들어진 환상 속의 짐승이 에리카의 정수리를 향해 발톱을 내리찍었다.

용의 발톱이었다.

“……!”

미처 뇌기를 활용한 새로운 공격을 예측하지 못했던 에리카의 눈가에 경악이 스치고-

콰르르릉!

곧 충격파와 함께 엄청난 크기의 먼지 구름이 일어나 에리카를 그 속에 묻어버렸다.

“뇌룡!”

심판관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속성을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공격은 엄청난 제어력을 필요로 한다.

확장(擴張)의 단계인 것이다.

이것만 봐도 웰링턴이 선보인 기술보다 훨씬 우위라 할 수 있었다.

레이나 웰링턴 쪽도 에리카와 다를 건 없었다.

레이가 일으킨 눈보라는 뇌룡의 발톱이 갈기갈기 찢겼고, 웰링턴이 퍼뜨린 물줄기는 오히려 뇌룡이 거슬러 올라갈 길목만 만들어주고 말았다.

2차 개화식의 최고 점수를 받았던 세 사람이 한꺼번에 밀려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실력 격차.

테오는 이 한 수로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이 장소의 지배자가 누구인지를.

응시생도, 시험관도 모두 충격에 빠져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잠깐, 그럼 남은 하나는?’

그러다 심판관은 테오가 허공에 띄운 단검 수가 총 네 개였단 사실을 떠올렸고,

콰르릉-

곧 엄청난 파공성과 함께 눈앞까지 다다른 마지막 단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를 한 번 시험해보겠다? 이 늙은이가 과연 너희들을 심판 내릴 자격이 있는지 묻는 것이로구나! 좋다!”

어찌 보면 심판관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라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심판관은 크게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웰링턴의 실력이 뛰어나 심판관의 흥을 돋우게 했듯이, 이번에도 마침 어린 후배와 손을 섞어보고 싶던 차였으니까.

호기 어린 후배의 도전은 언제든 신이 나는 법이었다.

파라락-

차아아앙!

심판관이 손날을 거칠게 튕겨 올렸다.

압도적인 마력 차에 데스비트는 뇌룡은 형성되기도 전에 힘을 잃고 허공에 튀어 올랐고,

파아앗-

수증기 때문에 잠시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테오가 나타나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그의 기척을 읽고 있었던 심판관은 어렵지 않게 맞대응했다.

<수류 속호법 – 수압단면(水壓斷面>

콰앙!

손날과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부딪치면서 뇌기가 사방팔방으로 튀는 가운데,

테오가 그러한 뇌기를 다시 전자기장으로 잡아당기면서 검으로 호선을 그렸다.

“우레 속성은 여섯 속성 중에서 가장 위력이 강하지만, 그만큼 마력 소모도 아주 지나치지.”

칼날을 따라 잔뜩 응집된 샛노란 뇌기가 하늘로 치솟는 빛의 기둥을 만들었다.

쿠르르릉-

그리고 이어지는 3연격.

세 개의 섬광이 허공에 더해지면서 심판관을 밀어붙였다.

용의 세 발톱이었다.

아니, 지금은 뇌룡의 세 발톱이라고 해야 할까?

쾅! 쾅! 콰아앙-

심판관은 침착하게 테오의 거친 공세에 맞섰다.

첫 번째 공격은 손날로 쳐서 옆으로 흘렸다.

찌릿찌릿한 통증이 손가락을 욱신거리게 만들자, 심판관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제법이군.’

두 번째 공세가 닿기 직전.

심판관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하늘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직까지 머리 위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던 데스비트가 그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고,

“시, 심판관 님이 검을 손에 쥐었다……?”

“드, 등룡(登龍)께서 거, 거, 검을 쥐셨다아!”

응시생보다 시험관들이 더 경악하는 가운데,

심판관이 데스비트를 그대로 아래로 내리쳤다.

퍼어어엉!

테오의 공세가 처음으로 막혔다.

울컥!

핏물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괴력]을 이용해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거세게 전진했다.

마지막 세 번째 발톱을 휘두르기 위해서였다.

쐐애애액-

“전력을 다하려는 후배의 열의에 보답하는 것도 선배 검사로서 응당 보여야 할 올바른 자세지.”

심판관이 여유롭게 웃으면서 손에 쥔 단검으로 어떤 형상을 그렸다.

그것을 본 순간, 테오는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매화궁주가 그랬던 것처럼.

심판관…… 9룡 중 한 명인 등룡도 자신이 평생을 들여서 쌓은 심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을.

「다른 9룡들이 모두 그러하듯, 나 역시 가주의 검을 쫓아 만든 한 폭의 그림이 있다. 나는 이걸 가리켜 <폭포 수채화>라고 한다.」

한껏 느려진 시간 속.

테오는 수채화처럼 흐려진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나무와 산이 수북하게 그려진 풍경화.

그 중앙에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가 테오의 마음속을 뻥 뚫리게 만들었다.

촤아아아!

「가주도, 매화궁주도, 백갑용기대장도, 모두 너에게 이걸 보여주려고 애썼다던데. 나에게서도 뭘 얻어 갈 지가 궁금하구나.」

그런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폭포수가 그대로 테오를 감싸던 뇌룡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리고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테오가 심판관이 던져준 짙은 여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심판관이 다시 뒷짐을 쥐면서 좌중을 향해 외쳤다.

“테오 라그나르, 합격! 천 점 만점은 물론, 속호법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하였으므로 가산점 500점을 부여한다!”

“……!”

“……!”

“……!”

시험관도 응시생들도 모두 두 눈을 부릅뜨는 가운데,

점수판이 마지막으로 조정되었다.

<최종 순위>

1위. 테오 라그나르(3,021점)

2위. 웰링턴 나르시오(1,689점)

3위. 에리카 랑케(1,326점)

4위. 레이 라그나르(1,102점)

.

3천 점!

말도 안 되는 성적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자네, 혹시 내 제자가 될 생각 없나?」

짧은 제안도 함께.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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