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토템의 비밀 (4)
썬더 콜링.
테오는 샌드웜을 한 방에 잡았던 마법을 첫 번째 마법으로 선택했다.
부지불식간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은 어떻게 먼저 눈치채고 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첫 번째는 무조건 빠르고 강렬하게, 혼이 달아나도록. 그런 다음에는 도망치지 못하게 주변을 포위하고…….’
테오는 이미 마법 연계 순서까지 전부 결정해둔 상태였다.
왼손에 아티팩트를 들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해츨링 싱크로로 아티팩트와 동조가 이뤄진 순간, 여러 사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번개는 강해…….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벼락.
-불벼락…….
그곳에 아티팩트 제작자로 보이는 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아티팩트 안쪽에 한땀한땀 새겨지는 마법진.
이미 한 번 썬더 콜링을 불러봐서 그런지, 마법진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어설프게나마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조금만 더 살펴볼 수 있으면 진짜 마법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뜻밖의 사실에 조금 놀라면서,
테오는 천천히 눈을 떴다.
동시에 다른 한 손을 총 모양으로 악시온 일당이 있는 방향에다 겨누었다.
“쏟아져라.”
타앙.
방아쇠를 당긴 듯한 동작과 함께,
콰르르릉!
하늘에서부터 벼락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 * *
날벼락은 순식간이었다.
콰아아앙!
“아아악!”
“이, 이게 뭐야!”
“기습이다, 기습!”
움푹 파인 크레이터.
비산하는 먼지구름.
피해를 입은 응시생들이 비명을 지르고, 몇몇은 대비책을 세워보려 했지만.
콰르르릉-
쿠르르!
연달아 쏟아지는 벼락은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결국 응시생들은 혼비백산한 나머지 사방으로 흩어지려 했다.
모르간과 펠릭스도 사색이 되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곳곳에 탄내가 가득하고, 불똥 때문에 사방이 불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테오 놈이든 웰링턴 놈이든 무슨 냄새를 맡은 것 모양인데.”
“안 되겠다. 이곳부터 탈출해서 반격을 노려야겠……!”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벼락이 정확하게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 탓이었다.
“컥!”
콰아아앙!
특히 마력을 실은 검을 휘둘러 벼락을 막아보려 하던 모르간은 그대로 직격타를 맞아 튕겨나고 말았다.
“검! 이 멍청이 새끼들아! 검부터 손에서 놔! 어서!”
모르간보다 한 박자 늦게 검을 쥔 탓에 피해를 모면할 수 있었던 펠릭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현재 상태로 쇠붙이가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응시생들은 너도 나도 들고 있던 검이며 갑옷들까지 무장들을 죄다 허겁지겁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매화궁이며 원로원 파벌의 응시생들은 물론, 교룡회까지.
“이 병신들이……! 그걸 놓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악시온이 그런 녀석들을 어떻게든 통솔해보려 했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놈들의 귀에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벼락이며 얼음 화살, 불덩이 등이 연달아 쏟아지고 있었으니.
악시온은 그것이 자신들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한 습격자들의 노림수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화르르륵!
“아, 안 돼!”
“길이 막혔어!”
“제, 제기랄, 어디로 가야……!”
아니나 다를까.
화마는 어느새 주변 일대에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도주자들의 길목을 차단했다.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뚫고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다들 발만 동동 굴리며 안절부절 못 하던 그때였다.
쿠르르르……!
땅이 잘게 울렸다.
뭐지?
펠릭스와 응시생들은 반사적으로 발밑을 내려다보았고, 순간 지면에서부터 뜨거운 열풍이 불어 닥쳤다.
그리고-
폭발했다.
“……!”
“……!”
“……!”
콰콰콰쾅!
마치 화산이라도 분출한 것처럼 불기둥이 치솟으면서 갖가지 폭발 마법들이 뒤따랐다.
<열풍의 폭포>, <연쇄폭발>, <불바다>, <불벼락>, <불의 마귀> 등등.
테오가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아티팩트들이…… 일제히 한꺼번에 격발된 것이다.
그것도 해츨링 싱크로를 통해 위력이 현저히 강화된 상태로!
아아아악!
곳곳에서 절규와 비명이 난무했지만, 워낙에 폭발 소리가 큰 탓에 전부 파묻히고 말았다.
더군다나 장소 역시 도망치기가 너무 상황.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는 벼락이,
지상에서는 불길이.
사시사철 눈보라가 치는 게 겨울 산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뜨겁기만 한 열풍의 향연.
아비규환(阿鼻叫喚).
그 단어가 딱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탁!
테오가 혼란한 잔해 더미 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의 정면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서 있는 악시온이 있었다.
폭발과 폭격 속에서 겨우 빠져나왔던지, 한쪽 팔과 다리가 기형적으로 틀어져 있었다.
“너…… 너!”
부들부들!
악시온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얼굴도 반쯤 화상으로 일그러져 흉측했다.
“날 노리려 했으면 너도 노려질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지.”
테오는 덤덤하게 악시온의 분노를 흘렸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하고 있는 꼴부터 제대로 확인하고 말하지?”
“……!”
장미궁의 병신 따위가 날 우롱해?
악시온이 악에 받친 얼굴로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촤아아악!
그보다 먼저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목덜미를 세게 훑고 지나갔다.
푸우우우-
하늘 위로 피분수가 높이 치솟았다.
“역시 북부 4준. 피하는 것도 수준급인데?”
테오는 한껏 비웃음을 던졌다.
녀석이 정면에서 자신의 검을 받아칠 것처럼 굴다가 황급히 뒤로 내뺐으니까.
아마 정면에서 부딪치려니 안 되겠다 싶은 걸 직감적으로 느꼈겠지. 감각 하나는 타고난 놈이니.
그 때문에 어깨 부위에 옅은 상처밖에 남지 않았지만.
악시온은 장미궁의 병신이 가한 공격을 ‘피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빨개진 상태였다.
‘끝났군.’
테오는 악시온이 더 이상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서둘러 처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재차 걸음을 옮기려는데,
파앗!
갑자기 그들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던 먼지구름이 흐트러지면서 여섯 명의 응시생들이 튀어나왔다.
“테오 라그나르으으으!”
“감히 우리를 이딴 꼴로 만들어?”
“뒈져라아아!”
“죽여버리겠다아아앗!”
크고 작은 부상들을 입은 교룡회의 응시생들.
악시온이라도 구하러 온 모양이었다.
[‘스킬: 해츨링 싱크로’를 발동합니다.]
테오는 염동력을 전개했다.
대상은 발끝에 굴러다니는 여러 자갈 및 바위 조각들.
뾰족하고 날카로운 흉기들이 소용돌이를 크게 그리다가 암기처럼 튀어나갔다.
“큭……!”
“커헉!”
따당!
응시생들은 설마 자갈이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나머지 제대로 막지 못하고 쓰러져야만 했고,
어떻게 막았다 치더라도 곧이어 날아온 테오의 검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촤아악!
거기다 뒤늦게 전장에 난입한 레이의 등장까지.
결국 교룡회, 원로원, 매화궁 파벌의 연합은 순식간에 전투 불능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새 도망쳤나?’
테오는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달아난 악시온의 자리를 보면서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수하들을 전부 희생양으로 바치고 자신의 안위만 살피다니.
애당초 교룡회는 오래 가지 못할 곳이었던 것 같았다.
타닥-
테오는 <종달새의 날갯짓>을 전개해 악시온의 뒤를 쫓았다.
이미 부상이 심한 녀석이니 얼마 달아나지도 못했을 터였다.
* * *
‘테오 라그나르으으! 죽여버린다! 어떻게든 죽여버리겠어어어!’
현장을 벗어나면서. 악시온은 몇 번이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일이 이렇게 꼬여버리게 된 것은.
분명히 모든 준비는 완벽했을 텐데.
하지만 한 번 꼬여버리기 시작한 상황은 눈덩이처럼 커져 손을 쓸 수도 없게 만들어버렸다.
“펠릭스, 모르간……! 그래. 그 멍청한 새끼들 때문이야. 그것들이 일만 좀 더 제대로 했었어도……!”
아니, 그들만이 아니었다.
교룡회, 오리엔을 비롯한 머저리들도 그의 발목을 물고 늘어졌다.
결국.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멍청하게 제 몫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불상사였다.
‘시험장만. 시험장만 벗어나면 전부 다 바로 잡아야겠어. 교룡회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고, 테오 라그나르는……! 암살자를 구하든 뭐든 어떻게 해서든 죽여버린다.’
에드의 당부?
아직 회수하지 못한 태초룡의 유물?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더 우선인데.
그러다 악시온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가 하나 보였다.
저곳에는 시험장과 외부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있었다.
중앙기무국 측의 시험관들이 있는 장소이기도 한 곳.
에드의 지령을 듣기 위한 접선 장소이기도 했다.
저기에만 도착한다면 더 이상 위험은 없으리라.
‘거의 다 왔……!’
하지만 악시온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껏 도망친 장소가 여긴가?”
“……네가 어떻게?”
무덤덤한 목소리.
하지만 악시온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허리를 쭈뼛 세우면서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산바람에 긴 머리를 흩날리는 놈.
테오였다.
“네가 갈 곳이라고 해봤자, 뭐 거기서 거기지. 엄마 품에서 못 떠나는 캥거루. 그게 딱 너잖아?”
악시온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으드득!
“그래. 네가 언제까지 날 우롱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악시온은 방한복 안쪽 주머니에 미리 쟁여뒀던 토템들을 모두 꺼내 부쉈다.
쿠르르르-
지진이 일어나면서 테오와 악시온 주변으로 여러 종류의 마수와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원래는 널 함정에다 가둬두려고 쓰려 했던 놈들이지만…… 그래. 거기서 쓰나 여기서 쓰나 별반 차이 없겠지.”
꾸어어-
마물 중에는 보라색 마종을 가진 5급 마물도 있었다.
3미터 크기의 소머리 괴물.
미노타우르스였다.
“여기서 날 구해줄 사람들은 가까이 있지만, 넌 어떨까? 장미궁의 병신아, 너를 그딴 꼴로 낳은 네 어미를 원망해라.”
혹시나 하고 마지막에 챙겼던 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게 되었다.
악시온은 테오의 죽음을 확신했다.
자신이야 난리가 벌어지면 곧 근방에 있는 시험관들이 나타나 구해줄 테니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너야말로 여기까지 내몰리니 생각이란 게 없어졌나 보구나, 악시온?”
테오는 자신을 에워싼 마물들을 보면서도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대신에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바닥에다 꽂고, 대신에 허리춤에 있는 월백검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뭐?”
“너희들을 공격했던 일회용 아티팩트…… 내가 그동안 어떻게 그걸 쓰지 않고 모을 수 있었는지 생각 안 해봤나?”
“……!”
한순간, 악시온의 머릿속으로 최악의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찰칵-
월백검이 검집에서 분리되는 소리와 함께.
번- 쩍!
우측 하단에서 좌측 상단으로.
월백검이 사선을 그렸다.
크아앙.
테오는 해츨링 싱크로로 월백검의 사념을 깨웠다.
그 안에 깊숙하게 잠재되어 있던 그리핀의 본성이 저절로 깨어났다.
허기. 갈증. 식탐. 흉포.
만족을 모르고 항상 먹을 것을 갈망하는 짐승이 포효를 내질렀다.
월백검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거칠게 떨렸다.
이게 바로 테오가 그동안 일회용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않고, 여러 소환 마물들을 사냥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 어떤 마물이 되더라도 결국 그리핀 앞에서는 한입 거리에 불과했으므로.
한때 흑룡의 곁에서 테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었던 그리핀은 이제 테오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뇌광 속호법.
그동안 다섯 조각이나 모은 덕분에 테오는 아주 미약하게나마 뇌전 속성을 검에 실을 수 있었다.
뇌전은 강렬하고, 빠르고, 포악하다.
그리핀의 흉포함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리고, 용의 세 발톱.
매화궁주의 매화만발과 레이의 빙백무류.
두 개의 상반된 특성이 뒤섞이면서 강화시킨 빛살이 있었다.
촤악-
사선을 그린 첫 번째 발톱이 마물들의 다수를 쓸어버리고,
수직으로 떨어진 두 번째 발톱이 미노타우르스의 정수리를 노렸다.
쿠어어어!
미노타우르스는 손에 들고 있던 방망이로 겨우 빛살을 튕겨냈지만, 결국 한쪽 팔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횡단으로 그어진 세 번째 발톱이 미노타우르스의 머리통을 무참하게 쓸어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뒤쪽에 황망한 얼굴로 서 있던 악시온을 노렸다.
“유, 유물을 벌써 깨웠다고……?”
외숙부도 손에 얻지 못한 그것을?
하지만 악시온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시야를 환하게 밝히는 빛의 파도.
공포에 질린 녀석의 동공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