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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40화 (40/224)

40화

수호룡의 둥지 (5)

얼음 가루가 풀풀 날리는 가운데, 레이는 당장 몸을 날릴 기세로 검을 꽉 쥐면서 일어섰다.

곧 입구 쪽에서 얼음 가루를 헤집으면서 한 명이 나타났다.

그 순간.

“너……?”

레이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만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고.

아!

작은 신음과 함께 걸음걸이가 비틀거린다 싶더니,

털썩-

곧 옆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 * *

‘……많이 지친 것 같은데.’

테오는 자신의 품에 폭 안겨 단내를 풀풀 풍기는 레이를 보면서 가볍게 혀를 찼다.

그녀가 쓰러지는 걸 보고 빠르게 몸을 날려 받았던 것이다.

하아…… 하아……!

딱 보기에도 레이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안색은 창백하고, 상처는 빙결로 억지로 틀어막혀 자칫 괴사할 우려가 있었다.

‘거기다 중독된 상태.’

창백한 피부 위로 붉은 반점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마물을 상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마물독(魔物毒)의 증상.

아무래도 레이를 상대하던 놈들 중에 칼에 미리 마물독을 발라놓은 자가 있었던 것 같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긴 했다.

아무리 열 명 가까이가 덤볐다고 해도, 레이가 일개 수련검사 따위들에게 당할 리 없었으니.

‘다행히 독효가 그리 강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대로 오래 두면 위험할 거야. 어떻게 해독해야 하지?’

테오는 레이를 돕고 싶었다.

레이가 어째서 열 명이나 되는 무리들과 부딪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그동안 자신이 지켜봤던 레이는 사회성이 부족해 속을 알기 어려워도,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것.

아마 그녀의 부상도, 자신을 노리려던 이들을 막으려다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테오는 레이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테오가 기억하는 해독법은 반드시 약초가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만년설로 뒤덮인 겨울 산맥에서는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아몬은 영적 파장을 확장해 사물의 본질을 깨운다.

그 순간, 테오는 로드브로크가 던졌던 말을 언뜻 떠올렸다.

마도서 아몬.

그것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테오는 인벤토리를 열어 마도서를 꺼냈다.

촤라락-

표지와 책장이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 울려 퍼지면서 화자를 중심에 두게 만든다. 시전자를 마법 세계의 중심에 두는 셈이다…….”

테오의 눈도 동시에 바쁘게 움직였다.

시각에 영성을 맺히게 하니, 빠른 속독과 이해가 가능했다.

마도서는 보통 그 자체로 마법인 경우가 많았다. 움직이는 마법 장치인 셈.

당연히 아몬도 그럴 거라 생각했고,

파아아아-

예상대로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아몬도 점점 빛무리에 휩싸였다.

아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주 간단했다.

-사람의 영혼은 일종의 파장을 가지고 있다.

-아몬은 이 파장을 영혼의 ‘목소리’라고 부른다.

-이 목소리는 원하는 사물에 잠재된 본질, 즉 ‘염(念)’을 깨운다.

-본질이 깨어난 사물은 영혼과 동조(同調)를 이루어 시전자의 일부가 된다.

-영혼과 사물 간에 연결을 이루어지게 되니, 이를 가리켜 <염동(念動)>이라 한다.

띠링!

[‘마도서-아몬’에 수록된 마법적 이치를 일부 깨달아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아직 <격>이 부족해 하락한 등급의 스킬이 나타납니다.]

+

[해츨링 싱크로]

· 등급: C

· 숙련도: 1%

· 효과: 염동력을 사용하여 사물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사물의 사념을 읽을 수 있게 된다.

+

‘염동력……!’

테오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레이의 검 쪽으로 손을 뻗었다.

우웅! 우우웅!

검이 이리저리 들썩이다가 천천히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이 순간, 테오는 레이의 검과 자신의 의식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 같은 기분.

그리고.

그 실을 통해 레이의 검에 잠재되어 있던 사념이 단편적으로 하나둘씩 전달되었다.

-교룡회, 매화궁……. 교룡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매화궁 사람들이 어째서 테오를 노리려고 교룡회와 작당하고 있는 거지?

사념은 레이가 다치게 된 계기를 비춰주고 있었다.

검은색 옷. 교룡회 소속의 다섯 응시생이 붉은색 복장을 한 네 명의 응시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매화궁주 소속임을 알리는 매화꽃 문양이 가슴팍에 그려져 있었다.

진중한 얼굴로 뭔가 대화를 나누는데, 누가 봐도 뭔가 작당 모의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수상한 느낌이 많이 들어서.

-제기랄, 설빙검이 갑자기 여기에 왜 나타난 거야!

-그러니까 입조심 하자니까…….

-안 되겠다. 치자. 이 소식이 궁주님 귀에 들어가서는 안 돼.

-차라리 잘 됐군. 섬호뿐 아니라 설빙검도 같이 치워버리면 이번 시험은 우리가 우세하지 않겠어?

교룡회와 매화궁의 응시생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다가, 레이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레이의 실력이 워낙에 뛰어난 까닭에 아홉 명 중 절반 이상에게 큰 부상을 입힐 수 있었지만,

문제는 교룡회 놈 중 하나가 칼에 발라놓은 마물독에 중독되면서 승패가 단번에 뒤집히고 말았다.

실력과는 별개로, 실전 경험이 부족해서 생긴 실수였다.

결국 레이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도주를 시도했다.

-쫓아! 잡으라고!

놈들이 바싹 뒤쫓았지만, 레이를 잡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레이가 향한 곳이 바로 이 동굴이었다.

개화식이 시작되었을 무렵에 우연히 발견하였던 곳.

외부의 눈에 잘 띄지 않아 휴식 장소로 점찍어뒀던 장소이기도 했다.

“이렇게 된 거였구나.”

모든 사념을 읽고 난 뒤, 테오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번 2차 개화식에는 그를 잡기 위한 대대적인 음모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매화궁주가 나를 해치라고 궁 소속의 응시생들을 움직였을 리는 없으니…… 명령을 어기고 날 담그려는 거군.’

하긴, 저들로서는 여태 제자를 들이지 않던 매화궁주가 테오를 아끼는 꼴이 아니꼬웠을 테지.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궁주의 눈을 속이고 적과 손을 잡고 움직일 생각을 할 줄이야.

나중에 들켰을 때에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는 걸까?

‘매화궁주가 자신의 사람들을 지극히 아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아닐 텐데.’

어쩌면 살인멸구를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이드 일당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하튼.

아마도 이제 곧 저들은 레이의 뒤를 쫓아 이 동굴 인근까지 올 것이다.

이들에 대한 대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테오가 잠깐 고민하던 그때였다.

화아아아-

‘이건?’

이 순간에도 마치 연속 촬영된 사진처럼 사념이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앞선 시간대로.

어느 동굴 내부.

입구가 꽉 막힌 곳에서 어린 레이가 야광석의 은은한 조명을 벗 삼아 수련을 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고.

손에 물집이 생기고 발에 상처가 날 때까지.

훈련은 도무지 끝나지 않았다.

레이가 그려내는 다양한 형태의 투로가 테오의 눈에 들어왔다.

<빙백신검>.

‘빙룡(氷龍)’으로 유명한 그녀의 스승에게 사사한 검술이었다.

어린 시절, 구음절맥이라는 저주받은 체질을 극복할 수 있게 한 위대한 비전.

어린 레이는 빙백신검을 한 번만 그리는 게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백 번을 넘어 백 일, 이백 일…… 1년, 2년…….

폐관 수련하는 내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검은 항상 그런 그녀의 곁에 같이 붙어 있었다.

눈이 올 때나 비가 올 때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외로워할 때, 구음절맥이 주는 고통으로 아파할 때에도. 언제나.

레이가 수련하는 것 또한 빙백신검만이 아니었다.

빙백신장, 빙백신보, 빙백신권, 빙백신창 등. 냉기를 활용한 무술을 모두 꾸준히 단련했고, 심지어 이 모든 것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호흡법까지 착실하게 훈련했다.

덕분에 테오는 뜻하지 않게 <빙백무류>라고 부르는 레이의 모든 절기들을 엿보는 기연을 맞았다.

타인의 수련을 구경하는 것은 당장 칼부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주 큰 중죄.

하지만 테오는 빙백무류가 주는 아름다움에 취한 나머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릿속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화궁주의 매화만발을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야.’

매화만발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한다면, 빙백무류는 차갑고 살벌한 ‘한’이 느껴졌다.

정반대되는 모양새.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덕분에 테오는 또 한 번 검술에 있어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일 수 있었으니.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검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다 사념이 다시 앞으로 되감기면서 아주 어린 시절의 레이가 나타났다.

어린 레이는 집이 답답하다면서 가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곧 후회하고 말았다.

눈보라가 너무 거센 나머지 길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왜 이렇게 낯이 익지?’

테오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어딘지 모르게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한 소년이 나타났다.

두꺼운 목도리와 벙어리장갑, 비니와 코트로 똘똘 무장해서 눈사람처럼 보이는 소년.

하지만 목도리 위로 나타난 얼굴이 여자아이처럼 아주 예뻤다.

‘아.’

테오도 아는 얼굴이었다.

-안 추워? 이거라도 두를래?

소년이 추워 보이는 소녀를 위해 목도리를 풀어주었다.

-이렇게 얇게 입고 나오면 감기 걸려. 큰일 난다구. 그러니까 집에 다시 들어가자. 알겠지?

소녀의 시선은 소년에게서 한참 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그리고 모든 사념 재생이 종료되었다.

“…….”

제자리에서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엿본 듯한 기분.

‘레이가 그때 그 아이였구나.’

테오도 여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기억.

그에게는 그냥 단순한 배려에 불과했던 것이, 레이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어째서 레이가 한동안 자신의 근처에서 떨어지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은혜를 갚으려던 것이다.

이번에 교룡회나 매화궁의 응시생들과 다퉜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고.

“이러면 도움은 내가 받은 셈인데.”

테오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보았다.

지금 본 이 사념을 바탕으로 레이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테오가 느끼기로, 이 스킬은 분명히 사기였다.

사념을 읽는다는 게, 사물에 담긴 기억을 읽는다는 뜻인 줄 몰랐으니.

이게 계속 가능하다면, 앞으로 고수들의 무기만 골라서 스킬을 발동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다면 무수히 많은 비전 검술들을 섭렵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걸 뒤집어서 본다면, 그 약점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화아아악!

테오는 뇌문에 영성이 깃들게 만들면서 사고력을 빠르게 틔웠다.

그리고 한참 동안 고민했다.

빙백무류의 허점을 찾기 위해서.

휘휘휘휘……!

이대로 있다가 뇌가 타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그때.

무언가 번쩍 하고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영감이었다.

테오는 재빨리 레이의 어깨 위에다 손을 얹으면서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뭐라도 시도를 해봐야 했다.

허와 실.

빙백무류가 가진 단점과 장점이 번갈아 보였다.

단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장점은 낱낱이 해체되어 머리 한편에 차곡차곡 쌓였다.

레이를 바라보는 테오의 두 눈이 광망으로 번뜩였다.

* * *

“여긴……?”

레이는 몸이 가벼운 느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분명히 기절하기 전까지만 해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을 텐데?

의아한 생각이 들어 옆구리에 난 상처를 살펴보는데,

‘상처가…… 없어.’

상처가 말끔하게 봉합되어 있었다.

다른 상처도 마찬가지.

전부 거짓말처럼 아물어 있어 최소 몇 달은 지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레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위로 들던 그때였다.

휘휘휘-

마침 동굴 밖에서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누가 여기 나타난 걸까.

레이가 긴장한 마음에 바닥에 떨어진 검을 쥐어 천천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검술 훈련을 하고 있는 테오의 모습을.

‘기절하기 전에 봤던 거, 꿈이 아녔어.’

그런데 그가 그려내는 검로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었다.

빙백신검.

하지만 테오의 검로는 빙백신검을 닮았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다 빠르고, 보다 화려하며, 보다 날카로운 검.

마치 용 한 마리가 크게 용틀임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레이의 눈에는,

눈사람 같던 그 예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모든 편견과 오해를 벗어던지고 멋지게 장성한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여서,

레이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서 테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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