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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39화 (39/224)

39화

수호룡의 둥지 (4)

콰앙!

다시 한 번 더 동굴이 크게 들썩거렸다.

철문은 멀쩡했다.

‘입구가 아냐. 밖이야.’

테오는 천장을 바라봤다.

‘절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어!’

누군가가 충돌한 게 분명했다.

분명히 자신을 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왔는데?

‘아니면 내가 사라져서 쫓아온 건가?’

이쪽은 가능성이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1차 개화식 때에 수석을 차지했었으니.

당연히 하이드 일당처럼 그를 노리는 녀석들도 많을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비웠어.’

이제 돌아가야 할 때였다.

“밖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보지? 개화식인가?”

“예. 맞습니다.”

“참 쓸데없는 짓거리지. 어린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뭐, 덕분에 나는 매년 심심하지 않은 구경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만.”

로드브로크가 피식 웃으면서 다시 대답을 재촉했다.

“그래서 결론은?”

“제 대답은 여전합니다. 로드브로크, 당신을 보상으로 선택하겠습니다.”

뚝!

로드브로크의 동작이 멈췄다.

잔뜩 굳은 얼굴.

[보상으로 ‘라그나르의 수호룡-로드브로크’를 선택했습니다.]

[‘칭호: 수호룡의 반려’가 생성되었습니다.]

[‘칭호: 시조의 후손’이 생성되었습니다.]

[로드브로크와 영적 연결이 이뤄집니다. 지금부터 로드브로크의 표층 심리를 일부 읽을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이제 더 이상 무를 수 없다는 뜻.

“……대체 무슨 생각이냐. 아둔한 건 아닐 테고. 이렇게 기회를 줬는데도!”

로드브로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니면 날 연민하기라도 하는 것이냐? 어리석은! 이름 없는 군주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는 선택자가 이딴 감정에 치우치는 결정을 해서 어떡할……!”

“방법이야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뭐?”

테오의 태연한 대답에 로드브로크는 자기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부서진 심장을 대체할 만한 것을 제가 어떻게든 찾아보겠습니다.”

“대체 무슨 수로?”

“태고룡의 유물은 태고룡의 영혼을 나눈 것이라 하셨지요? 같은 용이시니 그중에 답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유물을 찾기 위해 움직이다 보면 여러 보물이나 <신비>들을 찾을 수 있을 테니 그중에서도 대체품이 있거나, 근접할 만한 방법이 있을지 모릅니다.”

연민?

동정?

그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테오는 로드브로크의 눈동자에서 전생의 자신을 겹쳐 보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충동적인 선택을 내린 건 아니었다.

‘로드브로크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계승권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입지를 갖출 수 있게 돼.’

시조 시구르드와 함께 라그나르를 부흥시킨 수호룡의 ‘반려’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정통성을 얻게 되는 것이므로.

게다가 로드브로크의 둥지에 있는 것들도 모두 뛰어난 보물들이니, 앞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게 분명했다.

“끝까지……!”

로드브로크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곧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다시든 얼굴은 어쩐지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어쩐지 시구르드를 생각나게 만드는 놈이로군.”

그러다 로드브로크가 다시 입을 뗐다.

“좋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니 한 번 믿어보마. 날 이렇게 해친 녀석의 아들에게 도움을 받는 꼴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구명의 은을 받는 것이니 반려로 삼을 만한 자격은 충분하니. 단, 조건이 있다.”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상태로 둥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랬다간 마력 유실로 석 달도 채우지 못하고 죽을 테니.”

로드브로크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서고 한 부분이 들썩거린다 싶더니 두꺼운 책자 하나가 날아와 그녀의 손에 붙잡혔다.

“그러니 네가 ‘방법’을 찾아올 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동면을 취할 것이다. 너는 이걸 가져가거라.”

“이게 무엇입니까?”

“<아몬>이라는 마도서이다.”

“……!”

테오는 떨리는 눈길로 그녀가 건네는 책자를 받았다.

설마 여기서 아몬을 접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

“어쩐지 아는 눈치로군?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진본인데 말이야.”

“……악마의 이름을 가진 마도서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악마? 아, 너희들에겐 그렇게 알려져 있나 보구나.”

로드브로크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긴 나중에는 분노로 타락해서 자아를 상실하기도 했으니 그렇게 불려도 이상하지 않으려나……. 하지만 원래 아몬은 그런 하찮은 족속 따위가 아니다.”

테오는 책자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부들부들한 감촉이 좋았다.

악마의 이름을 지닌 마도서라고 하기엔 경건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몬은 원래 ‘감추어진 존재’라는 뜻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상징하고, 아몬의 또 다른 이름인 ‘옴(oṃ)’은 태초에 울렸다는 소리이자 우주의 모든 진동을 응축한 신성한 음으로서 단순히 외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정화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지.”

테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드브로크의 설명만 들어서는 마도서라기보다 ‘성서’나 ‘경전’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 같았다.

“그동안 이것을 익혀라. 그런다면 여기가 깨일 테니.”

로드브로크가 검지로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테오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를 리가 없었으니.

-뇌문(腦門)이 열린다.

인간의 뇌는 영혼이 자리 잡는 장소.

이곳이 ‘깨다’는 말은 사고력과 판단력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흐르는 대자연의 기운과 접점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즉,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단 뜻.

이를 통해 아주 큰 발전을 이뤄낼 수 있으니.

<격>의 상승.

검을 쫓는 무도가로서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기연을 얻게 된 것이다.

‘흑설이 이걸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격의 상승은 그들이 모시던 계승권자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을 테니.

“아몬은 곧 ‘영혼의 소리’이자 ‘진리의 진동’이다. 영적 파장을 확장해 사물의 본질을 깨우고, 그 속에 잠재된 사념의 목소리를 듣게 하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되면 내 목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소리? 진리의 진동?

영적 파장은 무엇이고 사물의 본질은 또 무엇일까.

하나같이 어려운 단어들이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곳을 떠나도 로드브로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의미는 하나.

“그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로드브로크의 힘을 빌릴 수 있겠군요.”

로드브로크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시조 시구르드가 얻었던 것과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단 의미.

즉, ‘진짜’ 용군주가 될 수 있단 의미였다!

두근두근두근!

예부터 용군주란 시조 시구르드 이후로 라그나르의 검사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던 자리.

테오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 벌써 눈앞에 열린 것 같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벌써 이름으로 부르는 거냐? 건방진 반려로군.”

“반려라면 이름 정도는 불러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만약 불편하시다면 다시 ‘수호룡 님’으로 부르겠습니다.”

“되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벌써 팔뚝이 간지러울 정도이니.”

로드브로크는 훠이훠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나와 본격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될 때부터 너 역시 네 시조가 받았던 것과 같은 특혜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네 피 속에 잠재된 ‘용의 인자(因子)’가 깨어나게 되는 것이지.”

시조의 힘.

테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내 회복이 우선이 되어야겠지만. 명심해라. 말했지만 내게 남은 기간은 끽해야 2, 3년이 고작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안에 어떻게든 해내겠습니다.”

“큰소리를 쳤던 만큼 실력도 좋기를 바라지.”

[추가 보상으로 ‘마도서-아몬’을 획득했습니다.]

[사용법은 책자 안쪽에 기술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

[막대한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로드브로크는 크게 박수를 쳤다.

짜악!

“그럼 이로써 태초의 맹약을 모두 끝났음을 선언한다. 앞으로 잘 부탁하자꾸나.”

엄숙했던 로드브로크의 입가가 다시 엷은 미소를 띠었다.

“천 년 만에 맞은 새로운 반려여.”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그리고.

파아앗!

테오는 빛무리에 잠긴다 싶더니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다른 구역으로 튕겨 났다.

빛무리가 시야를 가득 메우기 전에 테오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본체로 돌아가 다시 동면에 들어가는 로드브로크의 모습이었다.

눈꺼풀이 감기기 직전.

그녀의 두 황금색 동공은 다른 어딘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머나먼 과거 같은 어딘가를.

* * *

휘이이이……!

테오가 나타난 곳은 수호룡의 둥지 위쪽 낭떠러지, 하이드 일당과 부딪쳤던 바로 그 장소였다.

꿈같다.

테오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호룡을 만난 것도, 그녀의 반려가 된 것도, 아몬을 얻은 것도. 전부 꿈에서 겪었던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른손에 들린 마도서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전부 현실임을 말해주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로드브로크를 되살리려면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특히 드래곤 하트의 대체품을 찾는 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카일이 로드브로크의 드래곤 하트를 가져간 이상, 그녀를 되살리려 한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좋게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짜악!

테오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볍게 두들기면서 정신을 차렸다.

‘우선 여기서 가장 가까운 안전구역부터 찾아야 할 것 같은데.’

2차 개화식의 시험 내용은 보름 동안 사냥한 마물들의 점수를 합산하는 것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숨겨진 ‘또 다른’ 시험도 있었다.

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여러 종류의 토템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일단 방향은…… 서남쪽인가?’

테오가 용의 심장이 주는 예민한 감각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중에 주변의 여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눈보라로 반쯤 덮여 있다지만, 설원 곳곳에 남은 핏자국과 전투 흔적들.

로드브로크의 둥지에서 감지했던 충격의 흔적들이 분명했다.

테오는 자세를 숙여 검지로 핏자국이 남은 흙을 만져보았다.

‘전투가 끝난 건 고작해야 십여 분 전. 부딪친 인원은 아홉? 아니, 열 명 정도야. 부딪친 세력은 크게 세 개. 인원수는 각각 다섯, 넷, 하나.’

테오는 전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빠르게 추론했다.

인원수도 실력도 엇비슷한 두 곳이 부딪치는 와중에 근처에 있던 남은 한 명이 휘말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 한 명이 다른 두 세력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라는 것.

때문에 충돌이 아주 크게 벌어졌고.

그 한 명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큰 부상을 입은 채 도주를 시도했다.

‘그 한 명이 향한 곳이 토템이 있는 장소야. 남은 두 세력이 그 뒤를 쫓고 있는 중이고.’

테오는 대략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자마자, 발을 바쁘게 놀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있는 곳을 콕 집어서 나타난 것이라면, 분명히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저들이 한창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뒤를 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테오의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 쫓기고 있는 한 사람은 그도 잘 알고 있는 응시생일 게 분명했다.

* * *

“하아, 하아, 하아……!”

눈보라에 반쯤 가려져 주변 지리를 잘 모른다면 절대 찾을 수 없을 어느 동굴 안.

레이 라그나르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왼쪽 옆구리에 난 상처에다 손을 갖다 댔다.

상처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흐읍!”

치이이익!

손이 희뿌옇게 변한다 싶더니 상처 부위가 얼음으로 뒤덮이면서 출혈이 뚝 그쳤다.

<빙백신장>.

구음절맥으로 고생하던 레이가 스승님으로부터 치료를 위해 전수받은 기술 중 하나였다.

“후우……!”

레이는 그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된 전투와 추격 때문에 피로가 턱 밑까지 차오른 상태.

만약 토템이 있는 이 동굴을 미리 물색해두지 않았더라면, 피 냄새를 맡고 찾아올 마물들까지 경계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대체 이런 상황을…… 그동안…… 어떻게…… 극복한…… 거지……?”

이쯤 되니 레이는 테오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홉이나 되는 놈들을 상대한 자신도 이렇게 지칠 정도인데.

대체 2차 개화식이 시작되자마자 견제부터 받았을 테오는 어떻게 이걸 감당했을까?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레이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현재 시험장에서 응시생들 사이에서 제일 큰 이슈는 ‘테오가 대체 어디로 숨었느냐’는 것.

레이도 그런 테오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따로 움직였고.

그런 가운데 두 파벌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교룡회 소속의 일당.

그리고 매화궁 소속의 수련검사들.

교룡회 놈들이 왜 테오를 쫓는지는 뻔했다.

악시온이 시킨 것일 테지.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왜 매화궁의 수련검사들이 테오를 두고 ‘살의’를 띠었냐는 것이었다.

매화궁주가 테오를 제자로 삼고자 한다는 건 이미 윈터러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레이는 그들 두 세력을 테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충돌했다.

이 부상도 모두 그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놈들이 그 아이를 찾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아이를 찾아야만 해.’

아직 갚지 못한 어린 시절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조금만 쉬고 다시 움직이자.

레이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으려던 바로 그때였다.

촤아악!

별안간 레이가 바닥에다 내려놓았던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쩌저저적-

삽시간에 동굴 내부가 얼음으로 뒤덮였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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