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2화 (12/224)

12화

교룡회 (2)

악시온 라그나르.

3부인, 동백궁주 ‘에밀’의 둘째 아들.

에밀은 동부의 명문가인 트로이반 후작가의 여식으로, 트로이반은 검술에 있어서 라그나르에 못지않은 명성을 자랑했다.

대단한 외가를 배경으로 둔 덕분에 악시온의 입지는 어렸을 때부터 대단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뛰어난 재능까지 지녔으니.

혹자는 북부와 동부를 대표하는 검술 명가 간의 결합, 혹은 라그나르와 트로이반의 결실이라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악시온은 성인이 되었을 무렵부터 후계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후보가 되었다.

‘휘하 조직인 교룡회가 가진 위세도 대단했었고.’

기회주의자인 렌던이 장미궁을 벗어나자마자 악시온에게 의탁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런데.

‘렌던이 죽자마자 악시온이 움직였다……? 이걸 단순한 우연이라고 할 수 있나?’

사실 그동안 테오는 렌던과 악시온 의 연결 고리에 대해 가능성만 점쳤지, 현실성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트로이반이나 되는 곳이 그런 허술한 사기꾼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

설사 쓴다고 해도, 세실리아나 테오가 그들이 굳이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냐면…… 글쎄? 굳이?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단순하게 여길 사안이 아니었다.

‘누가 어디의 끄나풀일지 몰라서 그동안 사람들과도 거리를 뒀던 건데…… 이렇게 된단 말이지?’

정보 조직에서 제법 높은 직급까지 밟아본 경험이 있기에, 테오는 절대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가서 직접 확인해보면 알겠지.’

어쩌면 초대장에 맺혔던 푸른빛과도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끼익!

마차가 멈췄다.

“도착한 모양이오.”

웰링턴이 마차 문을 열고 먼저 내리고, 뒤따라 테오가 내렸다.

장미궁보다 족히 두세 배는 될 것 같은 크기를 지닌 성이 보였다.

바로 그때.

“테오 공자!”

웰링턴이 뭔가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테오가 반응하고 있었다.

하늘에서부터 묵직한 포대가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파앗!

테오가 벗어난 자리로 포대가 터졌다.

그리고 뭉게뭉게 퍼져 나오는 밀가루 안개.

“악시온! 이게 무슨 짓이야!”

웰링턴의 성난 시선이 닿은 곳.

꺄하하.

악시온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 있었다.

때마침 입구에 있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어색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무슨 짓이긴. 처음 만나는 친구에게 주는 환영 인사지. 그런데 누군가 했더니 테오였잖아? 이야, 오랜만이네. 반가운걸?”

라그나르의 직계가 수십 명이 넘는다지만, 그중에서 열다섯 동갑내기는 끽해야 서너 명.

교류는 가지지 않더라도 서로 간에 면식 정도는 있었다.

테오는 살짝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악시온을 응시했다.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고생해서 꾸며주신 게 엉망이 되지 않았을까.

녀석은 정말 전생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애당초 녀석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았고.’

[‘악시온 라그나르’를 관찰합니다.]

+

악시온 라그나르 (15세/남)

· 칭호: 암표(暗彪)

· 재능: 광기. 사이코패스.

· 상태: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에 대한 기대감.

+

‘장난감? 날 장난감으로 본다는 건가?’

역시 정보창의 내용도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아무 말도 없네. 화났어? 에이, 그래도 형제의 인사 정도는 받아줄 수 있는 거 아냐?”

“아니. 화나기보다는 이렇게 격하게 환대해줄 줄은 몰라서.”

“환대가…… 고맙다고?”

악시온이 의외라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무관심보다는 관심이 낫잖아?”

테오의 태연한 대답에 곧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너.”

곡선을 그리는 악시온의 시선이 테오를 동공에 담았다.

“못 보던 새에 많이 재미있어졌구나?”

* * *

잔잔하게 음악이 흐르는 연회장.

원래는 떠들썩해야 하는 사교 모임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조용했다.

악시온의 돌발 행동으로 웰링턴이 화가 많이 나 있어 다른 사람들도 그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소.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닌데…… 오늘 흥이 조금 과했던 것 같소.”

“정말 괜찮습니다. 악시온이야 원래 장난기가 많았잖습니까?”

테오의 거듭된 만류에도 웰링턴은 도저히 옆을 떠나질 못했다.

‘이래서야…… 테오 공자를 앞으로 볼 면목이 없는데.’

웰링턴은 자신의 친한 친구들을 소개해주면서 테오와도 마음을 터놓는 ‘진짜’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리가 더 멀어질 걸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더군다나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도 섣불리 테오 주변으로 얼씬거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모로 답답했다.

‘악시온은 갑자기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하지만 테오는 악시온의 우려와 다르게 이번 연회가 마음에 들었다.

말을 붙이는 사람이 없다 보니, 동백궁 내부를 느긋하게 살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분명히 푸른빛과 연결되는 무언가가 여기에 있을 텐데……?’

혹시 초대장에서 봤던 빛을 여기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르거나.

그러다 2층 계단으로 향하는 중앙 복도쯤에서 테오의 시선이 멈췄다.

계단의 끝.

창고방으로 보이는 허름한 방문 틈 사이로 아주 잔잔하지만 푸른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다.

테오의 눈이 반짝였다.

2층까지 아무 의심도 사지 않고 어떻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던 그때.

“연회 같이 안 즐기고, 여기서 죽치고 앉아서 뭐해?”

악시온이 위스키가 든 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다가왔다.

웰링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테오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손에 든 거. 그거 술인 것 같은데?”

“어. 맞아. 어떻게 알았냐?”

“성인식 전에는 금지일 텐데.”

“흐흐. 이럴 때 어른 기분 내보는 거지, 아니면 또 언제 해봐?”

테오는 헛웃음이 나왔다.

규율이 엄격한 라그나르에서 저런 태연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건 아마 악시온이 전부일 테지.

“그런데 테오, 너 왜 이렇게 달라졌어? 키도 엄청 커지고. 체격도 단단해진 것 같고. 너 원래 말도 엄청 많고 그랬었잖아?”

“좀 달라져 볼까 해서.”

“응? 갑자기 왜?”

“개화식에서 너무 죽 쓰면 쪽팔리니까.”

“아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이는데 쪽팔리면 수치사지, 수치사.”

웃는 낯짝을 하는 악시온의 모습에서 테오는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조금 전의 일, 미안해. 웰도 그렇고, 집사도 그렇고 나 되게 많이 혼나고 오는 길이야. 그러니까 사과 받아줄 거지? 응? 응?”

이게 정말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가 맞나 싶었지만.

“사과 하고 말 게 있나?”

“응?”

“네가 말한 대로 형제 사이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인사’인데.”

“그렇지? 우리 인사 나눈 거지?”

“그럼.”

“꺄하하. 역시 우리 테오, 마음 넓다니까.”

퍽!

퍽!

악시온이 테오의 어깨를 세게 두들겨대면서 깔깔 웃어댔다.

누가 봐도 테오를 아래로 보는 모습.

이쪽을 힐끔힐끔 응시하는 구경꾼들의 속삭임도 들렸다.

-그래도 별다른 갈등 없이 원만하게 풀리네? 어휴, 나는 웰이랑 시온이 다투는 줄 알고 식겁했잖아.

-그러게. 둘이 다투기라도 하면, 으으!

-근데 사실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웰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은데.

-내 말이.

-근데 좀 웃기지 않냐. 따지고 보면 사실 화가 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근본도 없는 서자 따위가 트로이반의 고귀한 혈통에게 따진다는 것부터가 이상하잖아?

-그거야 뭐, 따지고 보면 사실 웰도……!

-야! 입조심 해!

-아, 맞다. 그거 금지어였지?

제들 딴에는 조용히 말한답시고 나눈 대화였지만.

원래 눈치를 보지 않는 족속들이다보니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적나라하게 다 들렸다.

웰링턴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모두 속이 넓고 이해심이 넓은 녀석들이라고만 여겼었는데.

설마 이렇게 편협한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마디 쏘아붙일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러니까.”

“응?”

“나도 새로운 친구들에게 ‘인사’ 정도는 해도 되겠지?”

갑자기 테오가 악시온에게 건넨 말에 웰링턴의 시선이 돌아갔다.

뭘 하려고?

악시온이 질문을 던지기 직전.

테오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낄낄 웃어대던 놈팡이들 쪽으로 던졌다.

퍼억-

챙그랑!

혈통 운운하던 녀석의 머리통이 크게 뒤로 젖혀졌다.

“……!”

“……!”

“……!”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던 녀석들의 눈이 커지고.

“이 병신 새끼가, 감히!”

머리가 크게 찢어져 피투성이가 된 녀석이 테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테오는 아무 감흥도 없다는 투로 덤덤하게 일어났다.

“병신 새끼라니. 그래도 새롭게 생긴 친구라고 만나서 반가워서 그런 건데.”

안면을 노리고 날아오는 주먹.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 섭섭하잖아?”

테오는 아주 간단하게 고개를 옆으로 까닥이면서 주먹을 피하고, 동시에 간격을 바짝 좁혀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업어치기.

테오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될 것 같은 거구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콰앙!

“아아악! 놔! 이거 놓으라고! 내 말 안 들려?”

녀석은 어떻게든 테오를 떨쳐내기 위해 악을 썼지만, 이상하게 위에서 제압하는 테오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아! 아직 통성명도 제대로 안 나눠서 그런가? 이봐, 시온.”

“왜?”

악시온은 친구가 당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웃고 있었다.

“우린 형제이기 이전에 친구지?”

“그렇다면?”

“네 친구들이면 내 친구도 되는 거 맞으니까 상관없겠군.”

테오가 피식 웃으면서 붙잡고 있던 팔을 그대로 돌렸다.

우드드득!

“으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어느새 멈춘 연주를 대신해 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말았다.

팔이 기형적인 각도로 완전히 돌아간 모습이 끔찍했던 것이다.

“반갑게 인사했으니 작별도 미리 해둬야겠지?”

“자, 잠……!”

콰드드득!

반대쪽 팔도 돌아갔다. 찢어진 근육 사이로 하얀 팔꿈치 뼈가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두 번 다시 검을 쥐지 못할 중상이었다.

테오는 고통 때문에 아예 거품을 물고 기절한 녀석에게서 떨어졌다.

“…….”

“…….”

“…….”

이렇게까지 독하게 손을 쓸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녀석들은 모두 기가 질린 상태였다.

악시온만이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만 있을 뿐.

테오는 피식 웃었다.

‘아직 애송이들이군.’

아무리 잘난 듯이 굴어봤자 이들 모두 아직 미성년에 불과한 녀석들.

가문의 울타리도 벗어나지 못한 온실 속 화초들에게는 아주 충격일 테지.

그동안 ‘병신’ 취급하던 테오에게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단 두 합 만에 당한 것도.

원래 천성이 잔혹한 악시온만이 이 순간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라그나르는 라그나르라고 해야 할지.

“더 인사 나눌 사람 있나?”

테오가 주변을 쓱 훑었다.

용을 닮은 싸늘한 눈매.

모두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적막이 깊었다.

“……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그러다 한 녀석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앞으로 나섰다.

다친 녀석의 절친한 친구였다.

“안다면?”

“아니. 모를 거야. 그 녀석은……!”

“하나비 가의 셋째라고?”

“설마 알면서도 이딴 짓을……!”

하나비 가문은 라그나르를 지탱하는 6설가 중 한 곳.

나르시오와 동급이라는 뜻이었다.

바로 그때.

파아앗!

스릉-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네 명의 검사가 빛살처럼 떨어지면서 테오의 목덜미에다 검을 겨누었다.

“도련님을 다치게 한 죄.”

“죽음으로 묻겠다.”

테오는 서슬 퍼런 날붙이가 자신을 위협하는데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 눈꼬리를 치켜세울 뿐.

“감히 라그나르의 가솔도 아닌 기수 가문의 일개 졸개 따위가 내 죽음을 묻는다고?”

그 순간, 네 명의 검사들은 알 수 없는 기백에 어깨가 짓눌리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 말, 감당할 수 있나?”

쿵……!

거칠게 뛰는 테오의 심장 소리에 맞춰 동백궁도 울리는 것 같았다.

쿵쿵쿵쿵-!

용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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