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잠룡은 이제 기지개를 켠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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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 #8]
‘라그나르의 피가 아까운 병신 새끼’ 칭호에서 벗어나세요.
· 난이도: E
· 보상: ■■■의 발■
· 실패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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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의 권한이 상승하여 정보를 재출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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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 #8]
‘라그나르의 피가 아까운 병신 새끼’ 칭호에서 벗어나세요.
· 난이도: E
· 보상: 비기너의 발찌
· 실패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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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퀘스트, 비기너라?’
처음으로 노이즈 없이 모든 정보가 출력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게임’과 기능이 전체적으로 많이 비슷해서 그런지, 낯선 단어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여전히 패널티 항목은 가려져 있었지만.
덕분에 머릿속이 확 하고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테오는 자신의 정보창과 메시지 창을 번갈아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분명히 율리우스와 이블린의 인정을 받았을 때에도 [운]이 오르지 않았었나?”
마침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이걸 정말 ‘좋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공하고 나면 반향은 크겠지. 일석삼조, 아니, 사조까지 노릴 수 있어.’
딸랑.
탁상에 있던 종을 가볍게 흔들자, 밖에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현재 장미궁에 있는 사용인들 중에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불러 모아줘.”
* * *
이튿날, 새벽 6시 정각.
테오는 평상시처럼 제4 연무장으로 향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등에 자기 키보다 큰 츠바이핸더를 매달았다는 정도?
걸을 때마다 검끝이 땅에 질질 끌리면서 짙은 고랑을 길쭉하게 남기는 모습이 퍽 우스우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야, 저기 봐.
-저 사람……?
-어. 장미궁의 ‘그’ 사람이야.
-겉보기에는 되게 왜소해 보이는데.
-아직 <창천검>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며? 그런데 어떻게 2성 검사를 잡았다는 거야?
-그거 알아보려고 온 거잖아?
그리고 제4 연무장의 광경 역시 평상시와 많이 달랐다.
꽤 많은 인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볍게 몸을 푸는 척하면서 테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고 있었다.
모두 어젯밤 테오와 관련해 추가 소문이 빠르게 돌자, ‘확인’을 위해서 직접 모인 사람들.
-장미궁의 병신 새끼가, 글쎄 2성 검사를 이겼을 뿐 아니라 백갑용기대장의 입대 제안도 받았다더라.
-그런데 놈이 주제도 모르고 그 제안을 거절했다더라!
물론, 그 소문을 들은 대다수가 그럴 일이 없다며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만에 하나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절대 가만히 둘 수 없다!
그게 검사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라그나르 가에 몸을 담근 검사라면 누구나 율리우스를 존경한다.
그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은 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었다.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테오의 훈련을 천천히 지켜보면서 사실 여부를 판단하려 했던 건데.
철그럭-
촤아아악!
갑자기 테오가 등에서부터 츠바이핸더를 높이 빼 들더니 연무장 땅바닥에다 길쭉한 선을 그었다.
정확하게는 테오와 감시꾼들의 중간 사이.
“……?”
“……?”
“……?”
당연히 영문을 모르는 감시꾼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고.
테오는 그들을 향해 선 안쪽으로 들어오라며 손을 까닥였다.
“다들 어차피 날 보러 왔겠지? 일일이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덤벼.”
“……!”
“……!”
“……!”
“뭐해, 안 오고?”
“…….”
“…….”
“…….”
여전히 머뭇거리는 그들을 바라보는 테오의 입가에 냉소가 잔뜩 맺혔다.
‘역시 소문이 아주 제대로 먹혔군.’
사실 어젯밤부터 급속도로 퍼진 소문의 진원지는 바로 테오였다.
사용인들에게 제4 연무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최대한 많이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사용인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다른 검사들과 다르게, 테오는 그들과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거기다 소정의 대가까지 따로 챙겨주니,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인 모양이었다.
‘이번 기회에 내가 노릴 수 있는 건 총 네 가지.’
첫째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유명세를 퍼뜨리는 것으로 [운]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연속 대련을 통해 경험치를 쌓아 레벨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셋째는 이제 갓 익히기 시작한 검술에 숙달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는.
‘기세.’
테오는 전생들처럼 그저 그런 인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드날리고, 가문의 권좌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타오르는 불꽃처럼 ‘테오’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겨야 했다.
불꽃처럼.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들은.
그걸 위한 좋은 장작이 되어 줄 터였다.
실제로 테오에게 모욕을 받은 감시꾼들의 얼굴은 모두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
그들의 입장에서 아무리 테오가 라그나르의 직계라지만, 지금 보인 행동은 명백히 그들을 무시하는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가 난 것과 별개로, 감시꾼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함부로 선은 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잘못 린치라도 가하면……!
-소문이 개같이 나잖아.
-제기랄. 그렇다고 모욕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어린애가 도발했다고 해서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몰매를 놨다고 해봐라. 그것도 검을 쥔 지 며칠 안 된 아이를.
그냥 사회적 매장감이었다, 매장감.
하지만 도발에 응수를 하지 않는 것도 라그나르의 검사로서 있을 수 없는 일.
결국 한 명이 총대를 메고 앞으로 성큼 나섰다.
“본인은 남부검문소의 검문검사 시빌 드레이라고 합니다.”
검문검사. 최소 2성 이상이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직책이었다.
“공자께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지금 보이시는 태도는 세간에 퍼진 의혹과 소문이 전부 진실임을 인정한다고 봐도 되는 것인지요?”
“나와 백갑용기대장 님 간에 있었던 일이다.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할 의무가 내게 없지 않나?”
“그럼 대체 왜 이런 도발을……!”
“나는 개화식을 앞두고 혼자서 훈련하기도 바쁘니까. 방해가 있을 거면 미리 치워두는 게 편하지 않을까?”
“…….”
시빌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다만, 이번에는 분노가 아닌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테오의 말은 이런 뜻이었다.
-내가 무슨 변명을 해도 너희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할 거잖아? 계속 연무장에 남아서 소란스럽게 굴 거고.
-그런데 나는 훈련하는데 방해받는 게 싫거든? 그러니까 너희들을 치워버리겠다는 건데 뭐가 잘못됐냐?
시빌도 사실 의욕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제4 연무장을 떠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러니까 오라니까?”
“…….”
“…….”
“…….”
문제는 이런 말을 듣고 그들이 움직이기에는 난처해졌다는 점이었다.
정말 덤볐다간 이제 스스로가 좀생이(?)라는 사실까지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설마 주도권이나 명분을 가져 오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시빌은 평소 들었던 테오의 평가와 다른 테오의 태도에 어떤 생각이 미쳤지만.
“안 온다면.”
테오가 츠바이핸더를 들며 자세를 갖췄다.
“내가 가고.”
오싹!
순간, 시빌의 등골을 따라 오한이 스쳤다.
콰아앙-
쐐애애액!
테오가 순식간에 선을 넘어 선두에 있던 시빌에게 달려들었다.
시빌은 다급하게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을 뽑아야만 했다.
차아아앙!
* * *
침대 밑 가장 구석진 곳에다 숨겨뒀던 함을 밖으로 꺼낼 때까지.
그리고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뚜껑 위를 조심스럽게 털고 열 때까지.
이블린 속으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
‘내가 또 대장님의 간악한 술수에 말려든 건 아닐까?’
‘또 그때의 트라우마가 발작하면 어떡하지?’
‘이전 같은 기량을 더 이상 발생할 수 없으면?’
‘아무리 잘린 게 왼팔이라고 해도, 양팔인 것과 외팔인 건 무게 중심이 많이 다르잖아. 정말 검술을 잊지 않았을까?’
‘이래도 되는 걸까?’
‘정말로?’
‘난…….’
‘난……!’
머릿속을 울리는 수많은 악마들의 속삭임.
불안, 걱정, 초조, 분노, 슬픔……. 모든 감정들이 그 속에 꾹꾹 담겨 있었다.
하지만.
딸칵-
뚜껑을 여는 소리가 방의 적막을 가득 채운 순간, 악마들이 속삭이던 감정들은 모두 말끔히 사라졌다.
‘예쁘…… 네.’
함에 담겨 있던 레이피어는 너무 고왔다.
별다른 장식 없이 매끈한 검신만 자랑거리일 뿐이었지만, 그 담백함이 이블린의 눈에 확 꽂혔다.
내가 그동안 이걸 들고 미친 듯이 싸워댔었구나.
이 애한테 너무 몹쓸 짓을 했는걸.
이블린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천천히 오른손을 뻗어 레이피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파르르.
손길이 떨렸다.
검도 떨렸다.
마찬가지로 심장도…… 떨렸다.
-내가 자네의 은퇴 신청을 받아준 건 더 이상 고삐를 쥐지 못해서이지, 검을 못 쥐어서가 아니었어.
-그러니 이참에 다시 검을 쥐는 걸 고민해봐. 이제 다시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대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귓가를 스치고.
-아마 그 친구의 투쟁심이 자네의 꺼져버린 마음에 다시 불을 지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네.
이블린은 레이피어를 꽉 쥐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연무장에 계시겠지?’
정말 테오가 그녀의 식어버린 마음을 태워줄 수 있을지.
심장을 다시 뛰게 해줄 수 있을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 * *
부르르-
시빌은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짜다! 정말 독하게 마음을 드신 거야!’
뛰어난 검사들은 단순히 검을 섞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시빌이 딱 그랬다.
테오가 품고 있던 전의(戰意)가 너무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마치 전장에서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한평생 윈터러는 떠나보지도 못하셨던 분이……?’
따다다당!
시빌은 순식간에 테오와 여러 합을 겨루고 난 뒤에 간격을 잔뜩 벌렸다.
지잉, 지이잉-
검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울어댔다. 날붙이 곳곳에 흠집까지 나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츠바이핸더의 무게가 대단하다고 해도, 실력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
이 정도면 충분히 ‘한 명의 검사’라고 해도 되었다.
‘……율리우스 님이 스카웃을 하셨던 게 이유가 있었구나.’
시빌은 순간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가 검문검사가 된 지도 벌써 10년 째.
하지만 그는 여전히 2성이라는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오랫동안 시빌의 마음을 좀먹어 가고 있었다.
-나도 한때 멋들어진 백갑을 차려입고, 전장의 선두에 서서 라그나르의 위용을 빛내고 싶었던 때가, 그런 꿈을 꾸던 때가 있었는데…….
꿈과 현실에 큰 괴리가 있는 사람의 심정을 아는가?
그것은 겪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같이 웃고 떠들던 동기들은 이제 어엿한 선임 급이 되어 저만치 빛나고 있는데, 자신은 한없이 뒤처지고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다.
자신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찾아온 좌절감이 얼마나 크던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어떻게든 찾아서 깎아내리고 무시했던 것이.
그중 한 명이 바로 테오였다.
-테오 라그나르? 아, 얼굴만 허여멀건 장미궁의 그 공자님? 어떻게 그분을 나랑 비교를 하냐? 아예 삶에 의욕도 없고 재능도 없는 그런 분과 다르게, 어? 나는, 어?
뭣도 아니면서 운 좋게 라그나르의 핏줄을 타고난 애송이.
딱 그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어젯밤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뭐? 근데 그분이 율리우스 님의 관심을 받았다고……? 말도 안 돼! 왜 그분이 그런 놈을?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무시하고 괄시했던 대상이 동경하던 대상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만 뒤처진다는 느낌이 싫었던 것일지도.
시빌은 평소 편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함께 테오를 찾았다.
사실 같이 온 감시꾼들 대부분이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한때 풍운에 부푼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으나, 부족한 재능과 팍팍한 현실에 지쳐 단념해야만 했던 이들.
그들은 확인하고 싶었다.
율리우스 님이 ‘실수’를 하셨다는 것을.
아무리 완벽하게 보이는 분이어도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응징하고 싶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율리우스 님의 제안을 걷어찬 시건방진 놈을.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테오가 내뿜는 전의를 보라.
저것은 절대 ‘운 좋게 라그나르의 핏줄을 타고난’ 도련님 따위가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밟히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거리고,
일어서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던,
아무도 보지 못했던 곳에서 수없이 검을 휘둘러댔던,
악착같이 버티고 또 버텼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의지였다.
시빌, 그 자신도 가지지 못했던.
그런 의지.
“…….”
시빌은 당장 쥐구멍이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도망치는 것에 불과할 뿐,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무례를 바로잡지는 못 한다.
처척!
다시 테오가 걸음을 옮기기 직전, 시빌은 재빨리 검을 아래로 내리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덮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검례(劍禮).
검사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예법이었다.
“뭐하는 거지?”
“제 실수와 무례를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테오는 걸음을 멈추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공자님의 실력을 괄시하고, 감히 수련을 방해하려 했습니다. 용서하기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늦게나마 인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무례를 사죄드리겠습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