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테오 라그나르 (4)
라그나르 가에서 테오의 평가는 최악에 가까웠다.
-라그나르의 피가 아까운 병신 새끼.
다들 쉬쉬하지만, 원로원에서 개화식이 끝난 뒤에 테오를 가문에서 내쫓을 예정이라는 건 공공연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블린 역시 테오에게 인간적인 호의를 갖고 있는 것과 별도로,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츠바이핸더를 쥐었을 때에는 평가가 아예 극단적으로 변할 정도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세가 정갈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테오가 자세를 잡은 뒤, 첫걸음을 내딛고, 검을 휘두른 순간.
이블린의 머릿속에서 그런 의심이 모두 사라졌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한없이 느린 동작들.
남들이 보면 ‘뭐야, 저게?’라고 코웃음을 칠 수 있었다.
실제로 테오의 갑작스런 기행을 구경하러 왔던 구경꾼들은 따분함을 느끼고 모두 자리를 뜬 상태.
하지만 저 느린 동작들 하나하나. 그 모든 것들이 틀린 구석 하나 없이 아주 정교했다.
이블린도 과거에 꽤 끗발을 날린 고수였기에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분명히…… 저 양반, 검을 제대로 쥐어본 적이 없었을 텐데……?’
오죽하면 렌던인지 뭔지 하는 사기꾼 용병도 테오를 포기했단 말을 떠들고 다닐까.
그런데도 저 정도 수준이라면 이유는 딱 하나.
‘천재! 그래. 테오 도련님은 게으른 천재이셨던 거였어.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나서 따로 검을 쥘 필요를 못 느꼈던…… 그런 천재.’
이블린은 테오에 대해서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일찍 검에 관심을 기울이셨다면 좋았을 걸.’
개화식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행사가 아니었다.
아무리 테오가 천부적인 자질을 가졌다고 해도, 개화식까지 반년도 안 남은 지금부터 훈련을 한다고 해서 다른 형제들과의 격차를 좁히기란 불가능했다.
그만큼 테오의 다른 형제들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이었으니까.
‘아니면 내가 좀 도와드려?’
그럼 좀 더 빠르게 발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블린이 안타까움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엉덩이를 들썩이던 그때였다.
“팔이 하나 없어지더니 엉덩이가 아주 날아다니는구만?”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이블린의 상념이 확 깨졌다.
한쪽 팔이 없다는 언급은 이블린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절대 입에 담지 않는 금기 사항이었다.
“어떤 시부럴 개놈의 새끼가 함부로 지껄이……!”
이블린은 쌍심지를 켜면서 뒤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다 말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 개놈의 새끼가 나다만.”
거기엔 포근한 인상을 가진 중년인이 뒷짐을 쥔 채로 서 있었다.
젊은 시절에 귀족가 영애들의 밤잠을 여럿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 같은 꽃중년이었다.
“대, 대장님?”
“대장이라니. 개놈의 새끼라고 불러야지. 아, 그래도 개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게. 우리 형님께서 사실 개를 끔찍하게 사랑하시거든.”
이블린의 전직 상사, 백갑용기대 대장 율리우스가 짓궂게 웃으며 던진 농담에 이블린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급검사 이블린 네레빌이 백갑용기대장께 인사를……!”
“됐네, 됐어. 이미 부대를 떠난 지 한참 된 사람에게까지 꼬박꼬박 인사를 받을 정도로 꼰대는 아니라고?”
마룡(魔龍) 율리우스 라그나르.
라그나르 가를 대표하는 4대 부대 중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다는 백갑용기대(白鉀龍騎隊)의 수장으로,
그는 외지인 출신 중 유일하게 라그나르의 성씨를 하사받고 원로원에 입적할 예정일 정도로 뛰어난 무용과 공적을 세운 일등공신이었다.
“아, 꼰대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 꼰대의 습성이었나? 이런. 좀 어려운데.”
평상시엔 지금처럼 잘생기고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씀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내 갈 곳까지 자네에게 미리 말해줘야 하나?”
이블린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옛날 성격 같았으면 아무리 상사라고 해도 무슨 헛소리를 하시냐고 한 마디 쏘아붙였을 텐데.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하하. 농담일세. 그냥 심심해서 거닐고 있던 참이라네. 자네는 성격이 여전하군?”
이블린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그보다 재미난 걸 구경 중인 것 같았는데, 같이 봐도 되나?”
율리우스는 이블린이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불쑥 옆으로 다가와 연무장 쪽을 응시했다.
“오. 저만한 대검을 쓰는 건 아주 오랜만에 보는데? 꽤 동작이 깔끔한 청년이로군. 검에 제법 힘도 실려 있고. 아주 오랫동안 기초 훈련을 꾸준히 한 것 같은데. 저런 청년이 가문에 있었던가?”
인재는 미리미리 포섭해두지 않으면 개화식 때 다른 부대에 모두 뺏기기 마련이다.
율리우스 역시 인재 욕심이 아주 대단했기 때문에 곳곳에서 추천을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저런 아이는 처음 봤다.
2미터짜리 대검을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데도 불구하고 호리호리한 체구. 저게 계속 눈에 밟혔다.
잔근육이 아주 실하다는 뜻이니.
원래 저런 것들이 물건이었다.
특히 율리우스는 테오의 눈빛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범처럼 예리하면서도 총명했다.
“테오 라그나르입니다.”
“……뭐?”
이블린이 던진 말에 율리우스가 순간 흠칫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세실리아 부인의……?”
“예. 맞습니다.”
“허!”
율리우스는 크게 감탄을 터뜨렸다. 세실리아와 테오 모자의 이야기는 그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분의 아드님이 재능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었는데? 원로원에서도 사실상 내놓은 자식 취급 아니었었나?”
“원로들의 눈이 삐꾸였던 거겠죠.”
율리우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 내 앞에서만 꺼내고 다른 곳에서는 절대 조심하게. 그러다 큰일 나.”
“대장님이라면 비밀을 지켜주실 걸 알기에 꺼낸 겁니다.”
율리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블린이 원로원을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꽤 눈길이 가는데……. 그동안 때를 노리기 위해 자신을 숨기고 있던 잠룡인가 보군.”
율리우스도 어느새 이블린처럼 테오에게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저 정도라면 꾸준히 단련을 했었다는 뜻인데. 검을 제대로 쥔 지 얼마나 되었는지 혹시 아나?”
제대로 키우면 아주 괜찮은 보석이 될 것 같은데.
율리우스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블린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하루입니다.”
“응?”
……뭔가 대답이 이상했다.
이블린이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하루입니다. 아, 정확하게는 반나절이겠군요. 조금 전에 저 검을 처음으로 쥐었으니까요.”
“……!”
쩌적!
이블린은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율리우스의 가면에 처음으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재미있었다.
“아무리 라그나르가 사기라고 해도, 뭔 그런 사기 같은…….”
“저라고 알겠습니까? 원래 라그나르가 그런……!”
이블린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뭐라고 말하던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테오 쪽으로 누군가가 씩씩대면서 신경질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
이블린은 그가 누군지 깨닫고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혹시 무슨 사달이 난다면 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허리춤에 매단 검집에 슬쩍 손을 얹으면서.
* * *
‘……진짜, 뭐야 이거?’
테오는 츠바이핸더로 검술 훈련에 집중하다 말고 얼떨떨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집중을 깨뜨린 알림음 때문이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퀘스■ #2을 무사히 성공하였습니다.]
[평가: A]
[보상으로 ‘■■■의 목■■■’을 얻었습니다.]
[평가에 따른 추가 보상으로 오러홀에 1년치 마력이 쌓였습니다.]
이전처럼 이번에도 보상으로 얻었다는 물건은 글자가 깨져서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추가 보상으로 받은 ‘1년치 마력’이 눈에 걸렸다.
‘설마?’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오러 연공법으로 1년 동안 꾸준히 쌓을 수 있는 마력량을 보통 ‘1년치 마력’이라고 부른다.
현재 테오가 오러 하트에 쌓은 마력량은 총 34년치.
그것도 전생에 겨우겨우 고생하면서 쌓은 양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려 1년치나 추가되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용의 심장을 체크해봤다.
그리고.
‘정말로 늘었어!’
물론, 같은 양이라고 해서 마력의 순도나 밀도에 따라 효율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절대량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게 말이 돼?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다면 따로 고된 훈련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이쯤 되면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이 기쁘면서도, 고된 훈련만이 올바른 성장의 정도(正導)라고 배웠던 가치관의 혼란, 정체를 알 수 없는 메시지에 대한 두려움까지.
하지만 테오의 그런 혼란을 놀리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퀘스■가 도착했습니다.]
+
[튜토리얼 퀘스■ #3]
오러홀을 더 깊이 단련하십시오.
· 난이도: E
· 보상: ■■■의 귀■■
· 실패시: ■■
+
세 번째로 나타난 미션.
이 순간, 테오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미쳤다.
-굳이 이걸 경계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강해지기 위해서 오러 하트를 단련하는 건 필수였다.
지금 하고 있던 훈련도 전부 오러 하트의 적응을 위한 것.
그렇다면 굳이 피할 게 아니라 즐기면 되지 않을까.
추가로 주는 보상 따위야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고, 나중에 청구서를 받게 되더라도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나는 강해지는 데에만 집중해야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메시지는 메시지대로, 자신은 자신대로.
테오는 다시 츠바이핸더를 들어 모든 의식을 검 끝에 집중시켰다.
마력량이 늘었기 때문일까?
이전보다 훨씬 집중도가 올라간 느낌이었다.
두근. 두근.
용의 심장이라고 할 만큼 커다란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고.
쿵. 쿵.
거기에 따라 맥동하는 검의 울림이 손끝에 느껴졌다.
동시에 검과 관련된 정보가 뇌내 속으로 쏟아졌다.
검의 무게,
검의 균형,
검의 재질,
검의 사연,
그리고.
-검의 목소리.
‘목소리.’
검이 말하는 목소리가 정말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34년치에서는 알 듯 모를 듯, 들릴락 말락 하던 것이, 35년치가 된 순간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검의 전체를 세세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막혀 있었던 해자를 건너게 해준 것이다.
쩌어어엉!
츠바이핸더가 거칠게 몸을 떨었다.
맑은 쇳소리.
[검명(劍鳴)을 깨달았습니다.]
[신검합일을 이뤘습니다.]
.
[축하합니다. 검의 의지를 깨달아 튜토리얼 퀘스■ #3을 무사히 성공하였습…….]
[보상으로…….]
[평가에 따른 추가 보상으로 오러홀에 1년치 마력이 쌓였습니다.]
테오는 그 목소리를 따라 츠바이핸더를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 사선을 따라 비스듬하게 그려지는 검로.
심장이 꽉 조여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오러 하트가 더 크게 맥동하면서 마력과 활력을 신체 곳곳에다 불어넣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쉬쉬쉬쉭-
테오는 츠바이핸더가 움직이고 싶은 방향대로 휘두르고 또 휘두르면서 검로 위에 검로를 겹쳤다.
그 때문인지 검이 주는 무게로 육체에 적잖은 피로가 쌓여도, 상쾌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스스로가 자유로워지는 느낌.
테오가 검에 정신이 온통 쏠리는 사이에 추가된 1년치 마력은 삼매경을 더욱더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띠링!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퀘스■ #4를…….]
[보상으로…….]
[추가 보상으로 1년치…….]
띠링!
[추가 보상으로 1년치…….]
띠링!
[추가 보상으로 1년치…….]
테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려 3년치 마력을 추가로 쌓았을 무렵, 츠바이핸더가 새로운 검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테오가 도서관에서 찾아냈던 비전 검술 중 하나인 <용의 세 이빨>이었다.
그동안 탐독만 해왔던 검술이 처음으로 그의 손아래에 빚어지려 하고 있었다.
[퀘스■가 도착했습니다.]
+
[튜토리얼 퀘스■ #7]
총 열 가지 검술을 오러홀과 연동시키십시오.
· 난이도: D
· 보상: ■■■의 팔■
· 실패시: ■■
+
쉬이이익!
테오가 머릿속에 구현된 검로를 따라 츠바이핸더를 돌리려던 바로 그때였다.
“도련님! 스승인 제게 대체 어떻게 이러실 수 있으십니까!”
갑자기 난입한 불청객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렌던이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