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테오 라그나르 (3)
보통 전통적인 가문이나 세력들은 제자들의 첫 마력 감응 시기를 다섯 살에서 열 살 정도로 잡는다.
하지만 라그나르 가는 반대였다.
열다섯.
라그나르의 넘치는 재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능에 잡아먹힐까 봐 최대한 미루는 것이다.
대신에 그 전에 육체를 극한으로 단련시켜 재능이 개화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오러홀을 개방하는 때가 바로 <개화식>이었다.
입문검사에서 수련검사로 직위가 올라가게 되는 대규모 의식(儀式).
라그나르 가에서도 손꼽히는 대행사에는 열다섯 살이 되는 가문의 직‧방계는 물론, 기수 가문의 자제들도 강제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개화식을 다섯 달 앞둔 지금, 원칙대로라면 테오는 절대 오러홀을 개방할 수 없었다.
그것이 라그나르의 ‘유구한 전통’이었으니까.
만약 개방했다가 걸린다면?
바로 즉결 처분, 즉 사형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5년 뒤, 그런 전통을 깨뜨린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무괴(武怪) 뉴위츠.’
어느 산골에서 조용히 연구나 하던 방구석폐인 학자.
바로 테오의 스승님이었다.
* * *
라그나르 가는 스스로를 고룡(古龍)의 핏줄이라 자부한다. 하지만 그들의 호흡법은 용과 다르고, 마력 운용 방식도 용과 다르고, 오러의 구성식도 용과 다르다…….
뉴위츠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던진 말은 라그나르 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너네들, 용의 후예라매? 그런데 마력 쓰는 건 왜 용이 아니라 인간들 따라하냐?
-너네 구라지?
테오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평상시에는 그토록 오만하게 굴던 가문의 꼰대란 꼰대들이 죄다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던 꼴이란.
분명히 맞는 말이기 때문에 항의하지도 못하고 억지로 화를 삭이더랬다.
그러다 결국 라그나르 가의 모든 원로와 장로들, 그리고 13명의 기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으니.
‘용처럼’ 호흡하고, ‘용처럼’ 마력을 쓰며, ‘용처럼’ 오러를 만들기 위해 한 가지 비전을 탄생시켰다.
그게 바로 <용의 심장>.
오러홀은 전통적으로 배꼽 우측 아래쪽, 테오가 <단전>이라고 부르는 곳에다 설치한다.
하지만 용의 심장은 단전과는 반대 방향인 왼쪽 가슴, 즉 심장에다 설치했다.
단순히 용이 심장을 마력회로의 코어로 삼아 에너지를 비축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문제는 선천적으로 마력을 다루는 게 자유로운 용과 다르게, 라그나르 가의 검사들은 결국 인간이라는 것.
심장에다 오러홀을 설치하려다가 상당수의 사람들이 폭주하는 마력을 막지 못해 죽거나 폐인이 되고 말았고.
결국 원로원에서는 ‘불가’ 판정과 함께 용의 심장을 폐기 처분하는데 이르렀다.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심장에다 마력을 고정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승님은 오히려 그걸 살려내셨지.’
뉴위츠는 사장된 용의 심장을 손에 넣어 개량을 거듭하였고 이를 테오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새로운 용의 심장을 두고 달리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오러 하트(Aura Heart).
단전에 있는 오러홀과 공명(共鳴)을 일으키는 제2의 마력기관이라고.
-용은 용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그걸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니까 안 되지. 병신들.
스승님이 터뜨리시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왱왱 울리는 것 같았다.
껄껄껄…….
“그런데 그때 만들었던 오러 하트가 또 여기 있단 말이지?”
[평가에 따른 추가 보상으로 전생(前生)의 마력을 발견했습니다.]
[전생의 마력이 모두 새롭게 탄생한 오러 하트에 귀속됩니다.]
테오는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 환생이나 회귀를 한 것도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몸이 어려졌는데 전생의 오러 하트까지 복구된다고?
‘너무 좋은데?’
물론, 테오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을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 이 시대에는 오러 하트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얼마든지 가문의 눈을 피해서 오러를 연마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내게 숨겨진 비장의 한 수가 될 거야.’
전생에 쌓은 마력량은 절대 적은 수준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5성 기사급의 수준.
‘고수’라고 할 정도는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단전의 오러홀까지 열어 두 개의 마력기관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다면.
공명을 통해 능력 증폭까지 이뤄낼 수 있다면.
그 폭발력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두 개의 엔진을 단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니까.’
또한, 육체는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지치기는커녕 더 단단해지는 라그나르 가의 축복받은 무골(武骨).
폭발력으로 인해 육체가 받게 될 부담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수련부터 해볼까?”
과연 개화식까지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 *
“테오 도련님, 혹시 옷에 뭘 엎지르셨을까요?”
“왜?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뇨. 도련님께서 평상시 입으시던 옷이 갑자기 시큼한 냄새가 나면서 삭기 시작해서…… 아! 저, 절대 도련님께 이상한 냄새가 난다거나 그런 건……!”
“알아. 오해 안 하니까 걱정 마. 밤에 부엌에서 뭐 만들어 먹다가 옷에다 쏟았는데 그것 때문인가 보네. 미안해.”
“아뇨! 미안하시다니요. 사과를 받으려고 그런 말씀을 드린 게……!”
테오는 방을 나서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력회로 닦는 게 재미있어서 밤새 마력을 순환시켰더니……. 다음에는 버릴 옷이라도 준비해야겠는데.’
전생의 마력까지 더해진 오러 하트는 성능이 아주 대단했다.
마력회로를 개척하기 위해 마력을 계속 운용하는데, 체력적으로 지치긴 해도 마력은 쉽게 마르질 않았다.
덕분에 테오는 밤새 마력회로를 쉴 새 없이 닦아 1라인을 성공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혈과 세맥에 쌓여있던 노폐물도 대량으로 배출되면서 입고 있던 옷도 이제 못 쓰게 되어버렸고.
당분간 계속 이렇게 라인 구축과 확장에 집중해야 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마력을 운용하는 동안에는 입는 옷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오러 하트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마력량이 처음부터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효율도 전생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고 아주 좋아.’
테오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제4 연무장으로 향했다.
마력회로를 닦고 오러를 깨우쳤으니 다음에는 뭘 하겠는가?
당연히 검술 훈련이지.
‘이 추가 보상이라는 것 덕분에 편해지긴 했는데. 정말 이거, 정체가 뭘까?’
테오는 이동하는 내내 여전히 망막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메시지를 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한 번 생긴 의심이 사라지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의심의 날은 더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이 세상에 대가 없는 선의란 것은 절대 없었으니까.
‘분명히 나중에 뭔가를 요구할 것 같단 말이지.’
이미 다음 메시지도 받은 상태였다.
[퀘스■가 도착했습니다.]
+
[튜토리얼 퀘스■ #2]
오러홀을 단련하십시오.
· 난이도: E
· 보상: ■■■의 목■■
· 실패시: ■■
+
오러홀을 단련하라?
마력 수련을 하라는 건지, 아니면 오러를 담는 육체를 단련하라는 건지.
‘게다가 글자도 너무 많이 깨져 있어. 마치 누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처럼.’
그러다 보니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생겼다.
바로 [보상]과 [실패시]라는 항목.
‘뭔가 심상치 않으리라는 건 확실한데…….’
이 [보상]이란 것들은 과연 추가 보상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난 걸까?
그렇다면 [실패시] 받게 되는 패널티는?
그건 또 얼마나 위험할까?
결국 생각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였다.
“아, 안녕하세요. 도련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갑자기 시녀 한 명이 달려와서는 넙죽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어떻게 인사를 할 새도 없이.
테오는 어안이 벙벙했다.
‘……오늘따라 유독 시녀들이 내 얼굴을 제대로 못 보는 것 같은데. 볼도 계속 붉어져 있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 * *
“으하암.”
이블린은 늘어져라 하품을 해대면서 텅 비어 있는 왼쪽 어깨를 손으로 벅벅 긁어댔다.
심심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드는 생각이었다.
소싯적엔 상급검사까지 지내며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일까. 그녀에게 제4 연무장 관리라는 업무는 너무 따분하기만 했다.
‘저 양반 구경하는 거라도 없었으면 큰일 났지, 큰일.’
무료한 일상의 활력제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요즘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있었다.
테오 라그나르.
가주님의 수많은 자식들 중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던 도련님 구경이었다.
하지만 사실 테오의 이름은 원로나 검사 같은 현역들에게나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시녀나 집사들에게는 제법 유명한 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인기가 아주 많았다.
오만하고 이기적이기만 한 다른 라그나르의 혈족들과 다르게 인성이 너무 좋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블린도 그런 테오를 내심 마음에 들어 했다.
구경하는 맛도 쏠쏠했고.
한데, 그런 테오가 오늘 따라 평상시와 루틴이 조금 달랐다.
꼭두새벽부터 시작한 달리기는 똑같았다.
한 달 전에는 한 바퀴도 제대로 뛰지 못하던 것이 이제는 몇 바퀴를 돌아도 거뜬해 보여서 작게 감탄했었는데…….
‘엥? 무기 보관소?’
그 뒤로 궁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연무장 한편에 딸린 창고로 향하시는 게 아닌가.
거기에는 연무장을 찾는 입문·수련 검사들에게 연습용으로 사용하라며 배치해둔 여러 무기들이 있었다.
테오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연습용 무기들을 일일이 점검했다.
직접 들어보기도 하고,
휘둘러보기도 하고,
양손으로 쥐어보기도 하고,
자세를 잡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무기가 마음에 안 들면 제자리에 내려놓고 다음 무기를 찾아 또 한참 동안 살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찾으려고 저러시나 싶다가도,
이블린의 눈에는 꽤 잘 맞는 것 같은 무기를 찾아도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내려놓으시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도무지 알 수가 없네.’
무기 탐색이 약 5시간이 넘어갔을 무렵부터는 이블린도 대체 왜 저러시나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테오가 갑자기 창고를 다시 한참 뒤지다가, 뭔가를 찾았는지 두 눈을 크게 뜨며 그걸 높이 들었다.
이블린은 그걸 보고 자기도 기함을 터뜨리고 말았다.
“츠, 츠바이핸더?”
크기만 약 2미터, 무게는 최소 수십 킬로그램에 달할 대검이 테오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낡은 대검에 비친 테오의 얼굴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숨은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 * *
“테, 테오 님?”
“손에 드신 게 대체……?”
“아, 이건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마저 해.”
테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제4 연무장에서 훈련을 하던 검사며 사용인들까지 모두 입을 쩍 벌렸다.
그만큼 앳된 얼굴을 한 소년이 2미터도 넘는 대검을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저, 저걸 쓰신다고? 개화식도 아직 치르지 않으신 분이?’
‘그런데 들긴 드시네……?’
‘심지어 가벼워 보인다?’
‘테, 테오 님이 저렇게 힘이 좋으셨었나?’
구경꾼들이 하나 같이 충격과 감탄을 터뜨리는 동안.
붕, 붕붕붕-
테오는 츠바이핸더를 이리저리 허공에다 흔들면서 무게 중심을 가늠하고 있었다.
‘역시 이게 맞아.’
한 손으로 무지막지한 대검을 이리저리 흔들어 봐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
그동안 꾸준히 달리기로 근질을 올리고, 오러 하트까지 완성되면서 육체가 크게 변화했단 증거였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강인한 용의 심장을 갖췄으니, 그 다음에는 심장에 걸맞은 검을 쥐어야 하지 않겠냐고.
츠바이헨더가 거기에 딱 제격이었다.
크고, 무겁고.
또…… 우람하고.
신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빠르게 성장하기에 이만한 것도 없었다.
-강해지고 싶다.
강렬한 목소리가 가슴 안쪽에서부터 울리고 있었다.
이 순간, 테오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모른 척해서 그렇지, 사실 이 감정과 욕망과 충동은 아주 오랫동안 가슴 한쪽 구석에서 자신들을 불러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한 이 순간, 모두 가슴 밖으로 튀어나와 육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미 메시지에 대한 고민은 모두 말끔하게 사라진 뒤였다.
‘나도 라그나르의 핏줄이긴 핏줄인가 보네.’
그런 생각과 함께.
‘한 번 해보자.’
“후우……!”
테오는 길게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츠바이핸더를 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비웠다. 모든 정신을 손에 든 검에다 온통 쏟아 부었다.
고요한 평온이 전신을 지배했다.
쿵쿵쿵쿵!
반대로 심장은 다른 어느 때보다 미친 듯이 뛰었다.
오러 하트에서 샘솟은 혈액과 마력이 혈관을 타고 흘러 육체 곳곳에 강인한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쾅!
테오가 첫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