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2화 (2/224)

2화

테오 라그나르 (2)

꿀꺽, 꿀꺽-

테오는 700g도 넘는 돼지고기를 혼자서 다 먹어치운 뒤, 미리 만들어뒀던 ‘특제 샐러리 주스’를 단번에 들이켰다.

“으윽…… 이 맛은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네.”

텅 빈 500㎖ 맥주잔을 바닥에다 아무렇게나 던지면서 인상을 팍 찡그렸다.

챙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체내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돌아다니는 느낌이 났다.

“대체 혈검제(血劍帝)는 6년 내내 이걸 어떻게 견디고 마신 거지? 아니, 설마 이것 때문에 헤까닥 돈 건 아니겠지?”

앞으로 9년 뒤. 대륙 남단에서 테오와 동갑의 절대고수가 한 명 탄생하게 된다.

피에 반쯤 미쳐서 ‘광혈(狂血)’이니 ‘혈마(血魔)’니 하는 별명으로도 불리던 녀석은 동방에서 전래된 <연단술>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수련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테오는 우연히 혈검제와 관련된 특별 조사 기록을 열람할 기회가 있었다.

라그나르 가에서 혈검제를 포섭할 목적으로 움직였다가, 시비가 붙어 전쟁을 치르면서 뒷조사를 하게 되어 남은 기록이었다.

‘당시에 나는 검술에 재능이 없어 보인다면서 강제로 참모부에 배속됐었지.’

이제는 ‘없는’ 미래가 되어버린 일들.

‘오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덕분에 신기했던 연단술의 재료나 배합율까지 외울 수 있었고.’

전생에서 테오는 검술을 익히는 데에만 관심이 없었을 뿐, 마력을 쌓는 데는 관심이 많았다.

마력 쌓기의 기본은 호흡법.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단다.

그럼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혈검제의 연단술도 마찬가지였다.

특정 재료를 모아 배합하고, 그걸 꾸준히 섭취하기만 하면 끝.

테오는 전생에서도 이를 꾸준히 복용했었다.

오랜 나이로 혈관과 기혈이 꽉 막혀 있어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뿐. 체력은 많이 올라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겠지. 기혈이 비교적 덜 찬 어린 나이니까.’

테오가 선점한 전생의 지식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새벽 6시마다 쉬지 않고 꼬박꼬박 하던 달리기.

단기간에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이때 사용한 호흡법은 아직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스승님의 호흡법이었다.

덕분에 한 달 새에 테오는 심폐 지구력은 물론, 근질(筋質)도 많이 탄탄해진 상태였다.

-도서관에서 가져온 이상한 제목의 책들.

전부 나중에 ‘심심했던 선조들이 비밀리에 숨겼다’고 밝혀질 비급서들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상상(上上)’의 등급을 받게 될 검술들.

하지만 이제 세상에 드러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테오는 드디어 오러홀을 열려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단전에다 단순히 마력을 쌓기만 하는 기존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일단 연단술로 체내에 쌓아둔 마력을 전부 격발시키고, 심장 쪽으로 끌어 모아서…….’

테오가 기억을 더듬으면서 마력을 순서대로 돌리려던 바로 그때였다.

“테오! 내 아드님, 테오! 여기 있으신가요!”

밖에서부터 까랑까랑하게 울리는 히스테리 섞인 목소리.

시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

한 달 넘게 얼굴도 안 비치셨던 사람이 왜?

쾅!

테오의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방문이 활짝 열렸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이십 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귀부인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미모와는 다르게 걸음걸이는 매우 신경질적이었고, 시녀들을 보는 시선은 아주 사나웠다.

“마, 마님! 여기서 이러시면……!”

“놔라! 내가 내 아들을 만나겠다는데 대체 누가 방해를 한단 말이냐!”

“하오나……!”

귀부인을 만류하면서 따라 들어왔던 시녀들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슬쩍슬쩍 테오를 훔쳐보는 것이 송구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되었다. 다들 그만 나가봐.”

시녀들은 꾸벅 테오에게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방을 벗어났다.

“시녀들을 단속시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주 맹랑한 것들입니다. 감히 어미가 아드님을 뵙겠다는데 막는 꼴이라니. 아드님이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해서 기고만장해진 것이에요.”

이대로 뒀다간 정말 나중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제가 지시한 것입니다.”

“뭐라구요?”

“제가 시녀들에게 일러서 제 별도의 허락 없이 외부인의 출입을 누구도 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게 이 어미라고 해도 말씀이십니까?”

“예.”

“어찌……!”

그야 지금처럼 당신께서 소란스럽게 굴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어 그런 것이지요.

테오는 절대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 대신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용의 심장을 만드는 것은 그만큼 상당한 노고와 집중, 그리고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와중에 외부의 방해를 받게 되면 자칫 마력이 폭주를 일으킬 수 있어 반병신이 될 수 있었으니.

그래서 시녀들에게 특별히 디저트까지 쥐어 주면서 아무도 들이지 말아 달라고, 설사 가주가 찾아와도 막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인데.

‘그래도 아직 시작하기 전이었으니 망정이지. 후우!’

테오는 전생이나 현생이나 자꾸 방해만 되는 귀부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세실리아 라그나르.

‘테오 라그나르’를 낳은 친모.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가주의 하렘에서도 유일하게 성(姓)을 가지지 않은 천민 출신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녀는 자신의 출신에 열등감이 심한 편이었고, 이를 아들에다 온통 쏟아부었다.

테오의 입지가 상승하게 되면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거라 여겼던 것이다.

문제는 테오가 그동안 그렇게 뛰어난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것.

그 때문에 그녀는 테오를 볼 때면 늘 다그치기 일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냥 놔뒀다간 또 귀 아픈 잔소리만 들을 게 분명했다.

“그보다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세실리아는 울컥하던 화를 겨우 가라앉히면서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렌던이 그러더군요. 이번 수업에서도 딴 곳에 정신을 파셨다구요?”

‘역시 이것 때문이었군.’

테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그동안 ‘용의 심장’과 관련한 계획을 준비하면서 렌던의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었다.

별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까.

“대체 얼마나 이 어미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들 생각이십니까!”

“…….”

“뭐라고 말씀해보세요! 벙어리도 아니고, 멀쩡하게 말할 수 있으면서 왜 매번 대답을 안 하시는 겁니까!”

‘이걸 어떻게 하지?’

테오는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모자의 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연민을 느끼는 쪽에 가까웠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감옥 같은 하렘에 갇혀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이 살아야 하는 삶.

그래서 되도록 따뜻하게 상대하려고 했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단 말이지.’

“무슨 말씀이라도……!”

“어머니.”

그 때문인지 테오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도 어딘지 모르게 건조했다.

“하! 이제야 겨우 입을 떼시는군요. 켕기는 게 있긴 하신가 봅니다?”

“렌던은 사기꾼입니다.”

“무슨……!”

“어머니께서 렌던을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품을 들였는지 압니다. 하지만 그는 경력도 실력도 달리는 일개 용병에 불과합니다.”

“……!”

“그의 민낯은 제가 빠른 시간 안에 보이겠습니다. 그러니 이 이상 제게 왈가왈부하지 말아 주십시오.”

테오가 세실리아 앞에서 이렇게 날 선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매번 못 들은 척하거나 딴짓을 해도 고분고분하던 아들이었는데.

오늘은 유달리 정면에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때문에 세실리아는 말문이 턱 하고 막히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꺼낼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분명히 아들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닌 것 같았다.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이만 나가주십시오.”

* * *

“아드님이 이 어미에게 어찌 그리 모진 말을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내가 그동안 아드님을 어떻게 키웠는데! 그 승냥이 같은 것들 사이에서 아드님을 지키기 위해……!”

복도 저 멀리서 세실리아의 히스테리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왔다.

덕분에 시녀와 집사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테오는 모른 척 무시하고 넘겼다.

‘못 할 짓이네, 이것도.’

테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이 몸을 낳은 친모인데. 어떻게든 살리긴 살려야 할 텐데.’

세실리아는 앞으로 3년 후, 가주가 특별히 총애하던 애첩을 독살하려다가 발각되어 처형되고 만다.

다만, 거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평상시 세실리아의 행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테오는 그런 일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겉보기에만 저렇지, 어머니는 그럴 만큼 강단 있는 성격이 못 돼. 분명히 가주 경쟁과 관련이 있겠지.’

누굴까, 범인은?

그리고 테오와 식솔들을 죽였던 암살자들, 그들의 배후는 또 누굴까?

분명 둘 다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는 예감 아닌 예감이 들었다.

‘일단은 용의 심장에 집중하자.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내 힘이야.’

테오는 더 이상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부탁을 시녀들에게 남기고, 천천히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자 몸 내부 곳곳에 퍼져있는 마력 덩어리가 느껴졌다.

지난 한 달 넘게 연단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체내에 겹겹이 쌓인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용의 심장>을 만드는데 아주 요긴한 재료이자 연료가 되어 줄 것이다.

“흐읍……!”

테오는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러자 마력 덩어리들이 크게 들썩이면서 의지에 따라 조금씩 마력회로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은 시계 방향.

목표는 왼쪽 가슴, 심장.

마치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다가 바다처럼 모이고…… 해일처럼 들이닥친다!

쾅!

“큭!”

마치 해머로 가슴팍을 거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

테오의 상반신이 들썩거렸다.

하지만 고통으로 시야가 뱅글뱅글 돌아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자칫 여기서 소리를 잘못 냈다간 호흡이 흐트러져 마력 폭주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럼 그 뒤엔?

뒤가 어디 있을까. 그냥 반병신이 되는 거지.

‘정말 어질어질하네.’

테오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지금 그가 시도하는 건, 심장에다 마력 인자를 강제로 새겨 넣는 작업이었다.

체내의 모든 피가 거치는 심장을 단순한 생체기관이 아닌 마력기관(魔力器官)으로 개조하려는 것이니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테오는 자신 있었다.

용의 심장과 관련해서는 스승님과도 많은 연구를 진행했었고, 실제로 완성하기도 했었으니까.

‘꽤 많은 마력도 모았었고.’

결국.

쾅! 쾅! 쾅!

테오는 단단한 심장벽을 부수고 그 안에다 어떻게든 마력을 쏟아붓고자 노력했고.

쾅쾅쾅쾅-

두근두근두근두근!

이에 맞춰서 심장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면서.

콰아아앙!

육체가 다른 어느 때보다 거칠게 들썩이면서 마력이 단숨에 심장 안쪽으로 콸콸 쏟아졌다.

‘됐……!’

됐다. 테오는 쾌재를 외치면서 마력을 심장 안쪽에다 강제 고정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뭐지, 이거?’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뭔가 조금 이상했다.

심장 안쪽에.

상당한 양의 마력이 잔뜩 뭉쳐 있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퀘스■ #1을 무사히 성공하였습니다.]

[평가: A]

[보상으로 ‘■■■의 반■’을 얻었습니다.]

[평가에 따른 추가 보상으로 전생(前生)의 마력을 발견했습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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