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309화 (309/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09화

쿠웅!

이미르의 머리와 조율자의 상반신이 열대우림 위로 떨어졌고, 거대한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목의 단면에서 검은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허공에서 일렁이다가 천천히 바스러지는 황금빛의 검기에 아리아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후우…….”

배교자가 난입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준비한 일격.

늘 최전방에서만 싸웠지 이런 식으로 후방에서 대기하다가 지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것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취향은 아니네.’

계속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 자신의 실력을 못 믿는 것 같아 기분도 나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리아 본인의 감정이었다.

스릉

자신의 전력에도 부서지지 않고 멀쩡한 클레어.

이 정도만 해도 그동안 봐온 다른 검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이었지만, 조금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금 더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더 많은 것을 베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클레어를 바라보는 아리아의 황금빛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아가던 그때.

“─하하.”

바닥에 떨어진 조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까지예상했지?단순히우연?남은수는뭐지?숨겨둔게더있나?이전에사용한기술은?권능이또있나?더보고싶어좀더좀더좀더─”

쿠드득! 콰득!

바닥에 떨어졌던 이미르의 머리와 조율자의 상체가 자석처럼 달라붙어 압축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몸이 만들어졌다.

네 개의 팔에 검은색의 근육질 몸을 만들어낸 조율자. 이미르의 유전자를 이용하여 단숨에 전투용 육체를 만든 것이다.

쿠구궁!

거기에 이미르의 어깨 위에 남아 있던 하체도 몸 안에 스며들었고, 전신에 벌어졌던 상처들이 단숨에 재생되었다.

자신의 육체를 이용해 이미르를 단숨에 수리한 것이다.

“자. 다시 해보자고! 우리만 밑천이 털리면 억울하잖아!”

콰앙!

단숨에 태세를 정비한 조율자와 인형사가 다시금 덤벼들었고, 그 모습에 류은하와 아리아도 자세를 다잡았다.

그리고 모두가 격돌하기 직전.

“늦었어.”

이세훈이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두두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이 든 순간. 푸른 화살들이 바닥을 박찼던 조율자의 육체를 벌집으로 만들며 이미르에 연결된 인형사의 실을 모조리 끊어버렸다.

“천안 이 쓸모없는 새끼가……!”

모처럼의 연구가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조율자가 진심으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퍼엉!

공격을 피하든 막든 그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사각에서 푸른 화살이 쏘아지며 겨우겨우 재생한 몸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처럼 공격해 오는 하백연의 저격.

그 지긋지긋한 공격에 조율자는 이를 갈면서 결정을 내렸다.

“뒤로 빼!!”

쿠구궁!

이미르의 몸이 검은 아공간 너머로 다시 끌려들어갔고,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푸른 화살비가 안쪽으로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으악……!”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만든 이미르가 걸레짝이 되어가는 모습에 조율자가 다급히 검은 아공간을 닫으며 뒤돌아보았고.

“두고 보─”

퍼엉!

경고도 제대로 못 하고 머리가 터져 버렸다.

후드득─

조율자의 몸을 이루던 검은 고깃덩어리들이 그대로 흩어지며 바스라졌고 열대우림 속에 적막이 찾아왔다.

방금까지의 소란이 환영처럼 느껴지는 풍경.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류은하와 아리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저걸 또 살아가네. 하여간 징그러우케헥!”

불평하던 이세훈이 검은 피를 한 바가지 토해냈다.

“이, 이세훈 생도!”

“괜찮아?!”

그 엄청난 모습에 류은하는 물론 아리아까지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고, 이세훈이 창백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괜찮으니까 걱정…… 쿠헥.”

잠깐 말하는 데도 입에서 철철 흘러내리는 피.

여태까지 압도적인 재생력으로 이세훈의 육체를 유지해 주던 대성검이 류은하한테 먹히면서 힘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례자의 향로는 아까 다 썼고…… 권능은 애매한데.’

심상이 무너지는 상태에서 스킬이나 권능을 섣불리 사용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이번에 얻은 무구를 사용하기로 하며 류은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 챙겨두라고 했던 그것 좀…….”

“아!”

이세훈의 이야기에 류은하가 다급히 아공간 포켓에 넣어뒀던 초록색 창, 목련장창을 꺼내 오른손에 쥐어줬다.

스르륵

손에 닿는 순간 착 달라붙듯이 감겨오는 목련장창.

별다른 집중을 안 했는데도 창이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안쪽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우우웅!

대성검을 쥐고 있을 때와 비슷한 속도로 재생되는 몸.

오행무구의 명성에 걸맞은 엄청난 효과였지만, 부작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드득─

본래의 상태보다 더 굵고 기괴한 형태로 재생되는 뼈.

목련장창의 대표적인 효과 중 하나인 성장의 힘이 이세훈의 몸을 제멋대로 뜯어고치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성장이지 사실상 개조나 다름없는 효과.

자신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누군지 몰라도 진짜 거지같이 만들어놨네.’

사용자의 육체를 제멋대로 건드리는 무구라니.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력과 인성 모두 글러먹은 놈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거…… 괜찮은 거 맞니?”

목련장창과 이세훈을 번갈아보던 아리아가 두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감각이 예민한 아리아였기에 몸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단번에 꿰뚫어 본 것이다.

“괜찮아요. 어차피 다시 부술 거니까.”

“그렇…… 응?”

“슬슬 내려가죠.”

허공에 펼쳐졌던 경계의 권능이 해제됐고, 세 사람이 이디그나 열대우림 아래로 다시 내려왔다.

황무지처럼 초토화되어 버린 숲.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는 풀 한포기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그 광경을 본 이세훈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도시에서 싸웠으면 다 날아갔겠구만.’

만마전과의 전투에서 가장 골치 아픈 부분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저쪽은 어차피 전 세계를 만마의 늪으로 오염시키는 게 목적이기에 도시가 파괴되든 말든 상관없지만 인류는 까딱 잘못하면 수십만의 인명피해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마인의 수급을 위해서 만마전도 자중하는 쪽이었지만…… 앞으로는 다르겠지.’

어쩌면 회귀 전의 마신들처럼 작정하고 거주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지도 모른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여러 숙제들을 떠올리던 이세훈은 금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눈앞의 일부터.’

조금씩 재생되고 있는 열대우림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곧장 목련장창의 창대 끝을 지면 아래에 꽂아 넣었다.

콰드득!

창대의 끝에서 순식간에 뿌리가 자라나며 퍼졌고, 기존의 식물들과 연결되어 엄청난 속도로 확장되어갔다.

본래라면 열대우림에 뿌리내린 마기 때문에 이렇게 장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배교자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종말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고리에서 비롯된 존재, 마력이나 신성력은 물론 마기까지 통째로 소멸시켰던 기술.

배교자가 방심한 탓에 간단히 파훼되긴 했지만 제대로 쓰였다면 완등자들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리라.

‘내 신력으로 그걸 재현할 수 있다면…….’

앞의 전투를 곱씹으며 이세훈이 계속해서 열대우림을 장악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이세훈의 감각에 잡혔다.

콰득!

파악을 끝낸 이세훈이 창대를 가볍게 돌리자 열대우림의 생명력이 크게 출렁이며 곳곳에서 거대한 나무줄기를 급속도로 성장시켰다.

파앙─!

나무줄기들이 채찍처럼 거세게 휘둘러졌고, 그 끝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날아와 세 사람이 있는 황무지 위로 떨어졌다.

콰아앙!

거대한 캡슐, 혹은 보석이나 부적 같은 걸로 가사상태에 빠진 수십 명의 사람과 마인들.

배교자의 영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가사상태에 빠져 몸을 숨긴 것이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이세훈에게 걸린 것이다.

“흐음. 생각보다 많이 살았네?”

“이런 곳에 올 정도면 뭐라도 숨겨둔 게 있는 법이죠. 어디보자…….”

가사상태에 빠진 이들을 살피던 이세훈은 나무로 변한 마인, 목련장창을 들고 나타났던 드리아스를 발견했다.

“학과장님. 이 녀석은 나중에 학원장님 오시면 그쪽으로 넘겨주세요. 몇 가지 알아낼 게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협회에 넘기면 되고…… 뭐, 이걸로 끝났네요.”

아까 하백연이 이쪽으로 지원사격을 보냈으니 더 이상 십악이나 주시자가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다.

상황이 마무리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명치에 손을 집어넣어 몽상수납에 보관해 둔 물건을 아공간 포켓에 옮겼다.

“두 사람 모두 고생 많았어요. 어느 정도 여유롭게 싸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어쩔 수 없네요.”

“이세훈 생도는 충분히 잘 싸우셨습니다.”

“맞아. 이쪽은 딱히 피해는 없었잖아?”

주시자의 정예 병력과 조율자가 개조한 몬스터들, 그리고 십악의 배교자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에 하백연의 지원을 받긴 했어도 한 명도 죽지 않고 이만한 전적을 펼쳤으니 외부에 알려진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되리라.

“뭐…… 그렇긴 하네요.”

피식 웃은 이세훈이 물건을 모두 옮긴 뒤 아공간 포켓에서 딱 하나만 꺼내들었다.

핏빛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수정.

이전에 류 메이린에게서 받은 마혈정을 챙긴 이세훈은 허리춤의 아공간 포켓을 떼서 류은하에게 던졌다.

“잠깐 맡아주세요.”

“예?”

반사적으로 아공간 포켓을 받은 류은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던 그때.

화르륵!

이세훈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투명한 불꽃.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류은하와 아리아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 괜찮으니까 다가오지 마세요. 이건 학과장님도 닿으면 위험하니까요.”

전신이 불타오르는 채로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다급히 다가가려던 류은하가 걸음을 멈췄고, 아리아가 이세훈이 앞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뭘 할 생각이야?”

걱정보다는 호기심이 느껴지는 아리아의 물음. 그에 이세훈이 앞서 빼놨던 마혈정을 입안에 털어 넣었고.

“잠깐 수리 좀 하고 올게요.”

거세가 타오른 성화의 불꽃이 목련장창과 함께 이세훈의 몸을 완전히 휘감았다.

* * *

비릿한 쇠 냄새와 붉게 물든 시야.

바닥은 끈적거렸고, 소름끼치는 적막이 피부를 통해서 서늘하게 다가온다.

“하하…….”

그 광경을 보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신을 부르짖었지만, 그들 중에 구원받은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처음부터 예상했던 결말인 데도 어째서 이렇게 우습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하하!”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하염없이 웃음을 터뜨리던 그때. 익숙한 발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끼이익

손톱자국이 흉측하게 남은 성당의 문이 열렸고, 한 사내가 빚을 등진 채 걸어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 풍경 속에서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아…….”

사내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고, 바닥을 더럽힌 핏물 속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자애와 슬픔으로 가득 찬 얼굴이 이쪽으로 향했고.

“─이제 인간이 아니게 됐군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텅 빈 얼굴이 자신을 응시했다.

첨벙!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초록빛 용액.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약 냄새에 배교자, 막스 싱클레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어째서 자신이 이런 곳에서 알몸으로, 그리고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인가.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기에 막스가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뭐야. 이제 일어났어?”

맞은편 욕조에 담겨져 있던 검은색 부정형 덩어리가 반갑다는 듯이 얇은 촉수를 까딱였다.

“넌…… 조율자냐?”

“나 아니면 누가 이 꼴로 살아있겠어? 에휴…….”

한숨을 내쉰 검은 덩어리, 조율자가 촉수로 턱을 괴듯이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무난하게 확보할 줄 알았는데 괜히 뻐겼다가 이미르에 몸까지 박살 나고…… 하여간 그 녀석하고 엮이면 남는 게 없다니까.”

“…….”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다른 녀석들도 끌어들었어야…….”

“너.”

조율자의 투덜거림을 잘라낸 막스가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날 죽이려고 했던 거냐?”

막스의 물음에 조율자가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 죽어가던 걸 살려놨더니 저런 소리나 하고…… 진짜 서러워서 못 살겠네.”

“헛소리를…….”

말을 돌리려는 조율자의 모습에 막스가 욕조에서 일어서며 자신의 신성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치이익!

“윽?!”

하지만 신성력 대신 엄청난 열기와 통증이 몸을 찢어발기듯 밀려왔고,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욕조에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이게 무슨…….’

조율자가 자신의 몸에 무언가 수를 쓴 것인가.

막스가 당황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이내 방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까지 이어진 황금색 흉터. 그 형태에 막스가 놀라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율자가 태연히 이야기했다.

“뭔지 몰라도 그 상처 엄청 지독하더라. 몸이 아니라 심상에 달라붙어서 수술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이세훈이 남긴 상처는 자신의 신성력뿐만 아니라 마기까지 불태웠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인가. 그 물음에 조율자가 담담히 대답했다.

“널 인간으로 개조했거든.”

“……뭐?”

“못 느끼겠어? 잘 살펴봐.”

조율자의 대답에 막스가 자신의 몸을 다시 내려다보았고, 그제야 방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밀려들어왔다.

마인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

처음에는 부상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바로 자신이 잊고 있었던 인간의 몸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마인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다니. 막스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조율자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때. 잘 만들었지?”

“넌…….”

“그나저나 소감은 어때?”

갑작스러운 물음에 막스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조율자가 히죽거리듯 물었다.

“다시 인간이 되는 게 네 소원이었잖아?”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막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그 반응을 본 조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핫. 그동안 면사 때문에 몰랐는데 너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타입이었네?”

“…….”

“아, 근데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고의로 보려던 게 아니라 수술 중에 우연히 보게 된 거거든.”

아무런 반응도 없는 막스를 보며 조율자가 씩 웃었다.

“다른 녀석들도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거야. 순례자라면 이를 갈던 네 소원이 다시 인간이 되어…….”

푸콰악!

막스의 황금빛의 흉터가 흉측하게 찢어졌고, 그 사이로 붉은 피와 검은 신성력이 꿀렁거리며 새어나왔다.

“한마디만 더 나불거리면…… 내 모든 걸 불태워서라도 널 죽여 버리겠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신성력을 끌어올리며 핏발이 선 눈으로 노려보는 막스. 그 격렬한 반응에 조율자의 몸이 찌그러지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게 얼마나 비싼 몸인데…… 알았어. 말 안 하면 될 거 아냐.”

자신의 몸을 보며 투덜거리는 조율자의 모습에 막스가 계속해서 노려보다가 신성력을 거둬들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역은커녕 신성마법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몸. 아마 조율자에게 덤볐어도 곧장 제압당했으리라.

“넌……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무슨 이유로 자신을 이세훈에게 죽도록 유도하고, 이렇게 쓸모없는 몸으로 다시 되살린 것인가.

“뭐. 별로 거창한 건 아냐.”

막스의 경계어린 물음에 조율자가 새롭게 만들어낸 몸을 육조에 푹 담구며 대답했다.

“그냥 완등자들을 다 죽이는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