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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308화 (308/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08화

쿠구궁!

대성검의 참격을 버티지 못한 성당이 반으로 갈라진 채 허공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하늘을 뒤덮었던 검은 장막 역시 유리처럼 무너져 내렸다.

자신의 참격이 만들어낸 거대한 흉터.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의 모습에 이세훈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각을 느꼈고.

퍼엉─!

그와 동시에 심장이 폭발했다.

“커헉!”

반응할 틈도 없이 명치에 뚫린 주먹만 한 구멍.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용한 마혈기. 거기에 방금 휘둘렀던 대성검의 반동까지 더해지면서 마력을 집중시켰던 심장이 아예 터져 버린 것이다.

“으으…….”

심장에 구멍이 뚫린 것을 넘어서 아예 터져 버린 상황.

사실상 죽음을 앞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정작 이세훈은 피를 한 바가지 토해내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우웅!

몸에 상처가 생기기 무섭게 대성검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며 명치의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러자 시간을 되감듯 모든 상처가 깔끔하게 사라졌고, 재생된 심장이 다시금 격렬하게 뛰며 잠시 멈췄던 혈류를 다시 움직였다.

“후우…….”

영연신마법으로 몸 상태를 빠르게 정상으로 되돌려놓은 이세훈은 옷의 구멍 너머로 보이는 명치를 내려다보았다.

‘심장 터지는 것도 오랜만이네…….’

다른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밖에 못 겪어볼 일이었지만 영연신마법 덕분에 생명력이 남달랐던 이세훈은 이와 비슷한 상처를 여러 번 겪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회귀 전에 인류연합과 만마전에 자신이 심장을 빼놓고 다닌다는 괴소문이 돌았을 정도.

그 본의 아닌 경험 덕분에 심장이 터지는 치명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세훈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도 영혼의 상태가 더 안 좋았던 모양이야.’

이전에 꿈속에서 빙견한테 마혈기의 사용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듣긴 했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그나마 대성검이었기에 무사히 넘겼지 다른 혼원무구를 꺼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리라.

‘근데 이쪽도 안 좋기는 똑같네.’

겉보기에는 상처 하나 없는 깔끔한 몸.

하지만 그 안쪽에서는 다른 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푸콱!

영연신마법으로 통제하던 마력들이 난동을 부리며 장기와 혈관, 마력회로가 쉴 새 없이 터지며 재생되기를 반복한다.

언젠가 찾아오리라 생각했던 영혼의 한계, 심상의 붕괴 현상이 전신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건 한 번 겪어봤는데도 기분이 더럽구만…….’

두 발이 성당의 천장을 디디고 있는 데도 어디론가 떨어지는 것 같은 부유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자신의 몸을 채우고 있는 무언가가 어디로 새어나가는 듯한 공허하면서도 오싹한 감각.

평범한 탈진과는 비교도 안 될 탈력감에 이세훈이 대성검의 재생력을 끌어올리며 영연신마법으로 몸을 다잡았다.

‘아직은 안 돼.’

자신이 원하던 상황이긴 하지만, 눈앞의 전장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휩쓸리면 자폭이나 다름없다.

한 차례 숨을 고르며 몸을 안정시킨 이세훈은 아래로 떨어진 배교자를 바라보았다.

주르륵─

벽에 기댄 채 간신히 서 있는 배교자.

오른쪽 어깨에서 허리 왼쪽까지 대각선으로 베였는데 조금만 더 파고들었다면 그대로 몸이 두 동강났을 만큼 상처가 깊었다.

물론 배교자의 힘을 생각하면 신성마법이든 육체의 재생력이든 간단히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였지만.

푸콰악!

대성검이 남긴 상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크윽…….”

회귀 전 카말 총대주교를 비롯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교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 만들어낸 성법기.

오직 마신과 마인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대성검의 신성력이 상처에 뿌리를 내리며 전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치이익!

상처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황금색 균열.

무력하게 타들어가는 자신의 육체에 배교자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피를 토해냈다.

“쿨럭!”

새하얀 면사가 검붉은 피로 물들었고 눈앞이 가려진다.

그 답답한 시야에 배교자가 눈매를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더러워진 면사를 뜯어내 옆으로 패대기쳤다.

“……!”

회귀 전후를 통틀어서 처음 드러난 배교자의 맨얼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세훈은 뒤늦게 그 얼굴이 누구와 닮았는지를 깨닫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그 얼굴은…….”

검은 머리카락에 핏기 없는 새하얀 피부.

시체처럼 창백한 데다 깡마른 탓에 인상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 얼굴은 어딜 봐도 칼 안데르센과 똑같았다.

“쿨럭…… 왜. 내 모습이 우습나?”

“…….”

“후후…… 생각해 보니 우스울 수밖에 없군. 적을 숭배하며 얼굴까지 흉내 내는 녀석이 또 어디 있을까.”

자조적으로 웃는 배교자의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인의 외형은 보유한 스킬이나 심상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는 본인의 ‘욕망’을 따라간다.

자신이 바라는 힘이나 목적, 마음 같은 것들을 마기가 증폭시켜 육체를 변이시키는 것이다.

‘그만큼 칼의 존재가 크다는 건가.’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자 스승을 배신하면서까지 순례교의 신, 황금의 고리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배교자.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비밀에 이세훈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휘몰아쳤다.

‘도대체 그 고리는 뭐지?’

거기에도 자신이 모르는 어떤 목적이 숨겨져 있을까, 아니면 정말 자연의 법칙처럼 단순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걸까.

이전부터 순례교의 신이 수상쩍다고 생각했지만 신력을 각성하고 그 편린을 보게 되니 더더욱 많은 의문이 생겨났다.

그렇게 이세훈이 잠깐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쁘지 않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배교자가 미소를 지었다.

“너를 끌어들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겠어.”

“그게 무슨 소리지?”

“너도…… 쿨럭!”

대답하려던 배교자가 다시금 피를 토해냈다.

어떻게든 목숨을 붙들고는 있었지만 상처가 재생되지 않는 시점에서 배교자는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바깥과 격리시켰던 장막까지 붕괴된 상황. 어떤 식으로든 끝을 맞이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 이 기묘한 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후우…… 그들을 곁에서 봤으니 알고 있을 텐데. 완등자는 정상적인 존재가 아니야.”

“…….”

“네놈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생각하려는 것 같다만…… 내가 확실하게 말해주지.”

이세훈을 바라본 배교자가 두 눈을 빛냈다.

“그놈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무슨 헛소리를…….”

“육체의 차이를 말하려는 거라면 생각을 달리하는 게 좋을 거다. 탑과 늪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너도 알 텐데.”

배교자의 이야기에 이세훈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황금의 고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영웅의 탑과 만마의 늪. 즉, 배교자는 본질적으로 영웅들과 마인의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추측이 사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설사 그 말이 맞더라도 영웅과 마인을 같은 종으로 볼 순 없어.”

“영웅과 마인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건 탑의 정상에 도달한 그 괴물들을 말하는 거다.”

이세훈을 바라본 배교자가 피와 내장 조각을 토해내면서도 즐겁게 이야기했다.

“늪은 추락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한 번 발을 들인 이들은 누구라도 자신의 ‘끝’에 도달할 수 있지…….”

“…….”

“하지만 탑은 달라. 누구든지 정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들을 가려내는 선별장…… 그게 바로 탑이다.”

배교자의 이야기에 이세훈의 눈이 가라앉았다.

영웅의 탑을 정상까지 올라섰기에 완등자가 된 것이 아니라 완등자가 될 수 있었기에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전후가 뒤바뀌었을 뿐이지만 그 차이는 절대 작지 않았다.

“선악의 구분도 없는 그 재앙이 과연 어떤 기준으로 완등자를 선별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이든 정상은 아니겠지…….”

스르륵

기대고 서 있는 것도 힘들어졌는지 배교자가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영웅의 탑과 완등자의 비밀을 말해주는 배교자. 그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이런 걸 말해주는 거지?”

자신이야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니 이득이지만, 죽어가는 배교자에게 이 대화에 무슨 이득이 있는가.

그런 이세훈의 물음에 배교자가 희미해져가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네가 어중간한 존재니까…….”

“뭐?”

“완등에 오르기에는 불안정하고, 끝으로 추락하기에는 견고한…… 흑도 백도 될 수 없는 회색의 존재가 바로 너다.”

이세훈을 올려다본 배교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네가 양 끝에 위치한 흑백을 가만히 놔둘 수 있을까? 아니, 그럴 리 없겠지. 이건 순서의 차이일 뿐이야.”

“…….”

“이세훈. 네가 나의 신을 완성시켜라. 그러면 오늘 나의 죽음도 사명을 전한 ‘순교자’로서 남게 되겠지.”

환한 미소를 지은 배교자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런 결말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마.”

죽어가는 데도 만족스럽게 웃는 배교자의 모습에 이세훈이 뭐라고 하려다가 이내 그만뒀다.

1학년짜리 생도한테 방심했다가 개죽음 당한 걸 순교라고 포장하는 놈인데 뭐라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래서 사이비들이랑 어울리면 안 된다니까.’

방금 대화 때문인지 아니면 심상이 붕괴되는 중이라 그런지 몰라도 속이 울렁거린다.

그 불쾌한 감각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

“이건…….”

갑작스레 하늘을 올려다보는 배교자. 그리고 무언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고개를 내려 태연하게 서 있는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감당할 수 있는 거냐?”

무언가를 기다린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이쪽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믿기지 않는 눈으로 보는 배교자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쩌적─

장막 너머로 펼쳐진 푸른 하늘.

그 사이로 균열이 퍼지는가 싶더니 잠시 후 수십 개의 검은 기둥이 좌우로 움직이며 공간을 찢어발겼다.

파카앙!

푸른 하늘을 깨부수며 나타난 어두컴컴한 아공간.

그리고 그 안쪽에서 공간을 찢어 가른 검은 기둥, 손가락들의 주인인 몬스터가 천천히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콰앙!

비정상적으로 긴 네 개의 팔이 짐승의 다리처럼 지면을 지탱했고, 수백 미터에 다다르는 거대한 몸이 그림자를 만들며 얼굴을 보였다.

빈틈없이 꿰매진 눈코 입과 누더기처럼 기워진 검은 육체. 회귀 전에도 본 적 있는 괴물의 모습에 이세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미르인가.’

존재만으로 별을 좀먹는다는 행성포식자 중 하나이자 조율자에게 수만 번의 개조를 받은 생체병기.

회귀 전 수많은 도시를 파괴한 거신병 ‘이미르’가 이세훈을 붙잡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자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움직여!”

이미르의 어깨에 올라 타 있던 조율자가 목덜미를 팡팡 때리며 명령을 내렸고, 그와 동시에 이미르의 몸 곳곳에 연결되어 있던 실이 움직였다.

콰아앙!!!

이세훈과 배교자가 있던 성당을 단숨에 짓뭉개는 이미르의 두 손. 그 모습에 조율자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잠…… 너무 세잖아!”

[시끄러워. 이런 고깃덩어리를 움직이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줄 알아?]

조율자의 불평에 연구소에서 이미르를 조종하던 인형사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본래라면 조율자의 명령에 따라 이미르가 직접 움직여야 했지만 아직 미완성이라 제대로 반응을 못 하다 보니 인형사가 대신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방금 보니까 공간마법으로 빠져나가려던 것 같던데 제대로 잡았어?”

[잡았으니까 빠질 준비나…… 음?]

갑작스레 떨리기 시작한 실. 그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인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밀어낸다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이미르의 두 손이 밀려나고 있다.

만전의 상태도 아니고 방금까지 배교자와 싸운 녀석이 어떻게 이런 힘을 발휘하는가.

‘잠깐.’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던 인형사는 문득 배교자의 성역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열대우림을 내려다보았다.

성역의 법칙 때문에 흉측하게 파괴된 땅. 하지만 S급 영웅 둘, 특히 그 류은하가 날뛰었다고 보기엔 너무 깔끔하다.

‘설마…….’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에 인형사가 다급히 이미르를 움직이려던 순간.

콰드득─

쇠를 씹어 먹는 소리가 이미르의 손안에서 울려 퍼졌다.

콰아앙!!!

단단히 맞물렸던 이미르의 손이 처참하게 박살 나며 튕겨져 나갔고, 방금까지 안쪽에 갇혀 있던 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명치에서 불꽃이 터져 나올 것처럼 요동치는 류은하와 누군가에게 한입 먹힌 대검을 움켜쥐고 있는 이세훈.

후웅!!

그 상황을 예상했던 인형사는 이미르의 남은 팔을 두 사람에게 다급히 휘둘렀다.

거대한 빌딩이 통째로 날아오는 듯한 압도적인 공격.

그 무시무시한 광경 앞에서 류은하는 이세훈을 데리고 도망치는 대신 자신의 주먹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고.

“흐읍……!”

콰아아앙!

전력을 다해 마주 지르는 것으로 이미르의 두 주먹을 으깨 버렸다.

────!

류은하에게 모든 손이 박살 난 이미르가 고통에 찬 울음을 터뜨렸고, 주먹에 파고든 충격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푸화악!

누더기처럼 기워졌던 이미르의 몸 곳곳이 검은 피를 쥐어짜내며 찢어졌고 인형사의 실들도 연달아 끊어졌다.

[무슨……!]

수백 배의 체격 차이마저 무시하는 압도적인 힘.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힘을 모아온 듯한 일격에 인형사가 깜짝 놀랐고, 조율자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잠깐…… 저 녀석 설마, 배교자랑 혼자 싸워서 이긴 거야?’

주시자들과 다르게 이세훈의 능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조율자는 배교자가 지는 것까지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군의 도움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

아무리 이세훈이 여러 권능을 익혔다고 해도 혼자서 이기리라고는 상상지도 못한 것이다.

‘뭐 저런 새끼가…….’

자신들보다 더 많은 수를 숨기고 준비해 둔 이세훈. 예상을 뛰어넘은 힘에 조율자가 경악하고 있을 때.

후웅!

다시 한번 발동되는 공간마법.

그러자 방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금발의 검사, 아리아 마이어스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검을 치켜든 채 이세훈의 옆에 나타났고.

“아. 망할─”

한계까지 압축된 검기가 이미르의 목과 조율자의 몸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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