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05화
푸화악!
경계 너머에서 날아간 압그룬트가 도끼를 든 전투원의 명치에 박혔고, 황금색 검기를 머금은 클레어가 남은 네 명의 전투원을 난도질했다.
여백의 휘장을 이용해서 만든 완벽한 반격.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 자체로 치명상이었지만 두 사람을 습격한 다섯 명은 달랐다.
꾸드득─
무구를 붙잡은 손에서 핏줄이 울긋불긋 솟아오르더니 전신의 출혈이 멈추며 두 눈이 번뜩였다.
영웅 등급 최상품, 사실상 전설 등급이나 다름없는 무구와 동화의식을 치러서 강력한 힘을 얻은 『공양』의 정예들.
무구와 한 몸이 되었기에 이미 평범한 인간으로 볼 수 없었고 기존의 급소 역시 의미가 없었다.
‘이 정도라면……!’
감쪽같이 속아 선공을 내주긴 했지만, 이 정도 상처라면 사실상 찰과상이나 다름없다.
아직 자신들에게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전투원들이 재빠르게 무구의 힘을 끌어올리며 반격을 펼치려던 찰나.
“아바돈.”
압그룬트를 중심으로 검은 구멍이 뚫렸다.
콰드드득!
명치를 꿰뚫린 전투원, 태월부가 순식간에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허무하기 그지없는 최후의 전투원들은 봉인당하거나 환영으로 자신들을 속이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검은 구멍에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마력에 금방 현실을 깨달았다.
‘진짜 죽었다고……?!’
‘무슨 저딴 무구가…….’
전투 중에 딱 한 번, S급 이상의 강자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 만들어진 극악한 무구인 압그룬트.
수많은 장인이 소속된 『공양』에서도 본 적 없는 극단적이고 흉흉한 물건에 전투원들이 경악했고.
“정신 못 차리네.”
그 찰나의 틈 속에서 황금빛의 검기가 사방으로 폭발했다.
콰가가각!
폭발에 휩쓸린 주변의 나무들이 산산 조각나며 흩뿌려졌고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서 넓은 공터가 만들어지며 전투원들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크윽…….”
“커헉…… 켁…….”
전신이 난도질당해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전투원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지만 전투원들은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기만 할뿐 모두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흐음…….”
그 질긴 모습에 아리아의 눈이 가늘어졌고 이세훈이 가볍게 몸을 풀면서 살아남은 넷을 바라보았다.
‘특화의식을 거친 놈들인가. 질긴 건 여전하구만.’
연구시설의 보호와 공양의식의 재료, 인간을 수급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양』의 인간사냥꾼.
대인전을 전제로 만들어져 화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생명력이 질기고 연계에 특화된 귀찮은 놈들이었다.
‘류은하면 순식간에 박살 냈을 텐데…… 뭐, 저놈들도 그걸 아니까 이쪽을 노린 거겠지.’
너덜너덜한 상태에서도 자신들을 포위하는 네 명의 전투원.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소광의 망치를 꺼내 쥐며 아리아에게 이야기했다.
“급소 말고 무구를 노리세요. 그쪽이 약점이니까.”
“아. 그런 쪽이었구나.”
그제야 상대를 파악한 듯 아리아의 눈이 빛났고, 전투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무구를 다잡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을 배경음삼아 조금씩 고조되어가는 주변. 팽팽하게 조여지는 긴장감 속에서 아리아가 등 뒤의 이세훈에게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한 명만 고르렴. 나머지는 내가 상대할 테니까.”
몸도 질기지만 앞선 전투에서 자신의 공격에 반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인전에서는 준S급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
그렇기에 이세훈의 실력으로는 한 명이 최대라 생각하여 제안한 것이었지만.
“고르긴 뭘 고릅니까.”
이세훈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씩 웃으며 대답했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죠.”
반으로 나누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더 많이 죽이겠다.
그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아리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고.
“그거 재밌겠네.”
두 사람이 동시에 전투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가가강!
아리아와 요화검의 검이 서로 맞부딪치기 시작했고, 남은 전투원들은 재빠르게 이세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세훈만 제압하면 우리의 승리다.’
S급인 아리아를 굳이 상대하느니 한 명이 시간을 끌고 셋이 합공을 펼쳐서 빠르게 이세훈을 제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후웅!
다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노란색 창.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소광의 망치를 휘둘렀다.
카앙!
창과 망치가 서로 튕겨나가고 이어서 푸른색 도와 보라색 낫이 기다렸다는 듯이 뒤쪽에서 파고들어온다.
그 공세에 이세훈은 몸을 날려서 피하는 대신 왼손에 쥐어져 있던 투명한 천, 여백의 휘장을 등에 휘감았다.
콰앙!
“?!”
도와 낫이 이세훈을 통과하며 서로 부딪쳤고, 그사이 이세훈이 창을 든 전투원에게 천충검을 펼쳐냈다.
카카강!
새하얀 검과 황금색 검, 천충검으로 만들어진 백광과 금원이 허공을 누비며 매섭게 적을 몰아붙인다.
살아 있는 것처럼 끈질기게 달라붙는 두 어검에 창을 든 전투원, 뇌성창이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또 잔재주를……!’
공격은 제법 날카롭지만 위력은 얼마 안 된다.
어검을 무시하고 공격을 준비하기로 한 뇌성창은 재빠르게 무구의 힘을 끌어올렸다.
쿠르릉!
창끝에 맺히는 뇌전.
전투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전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뇌성창은 이상한 공간마법을 펼쳐대는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보이진 않지만 왼손을 계속 휘두르는 걸 보면 막을 수 있는 면적이 정해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뇌전으로 광범위공격을 펼쳐 공간마법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곳을 노린다.
처음처럼 모든 범위를 막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쪽은 그쪽대로 힘을 소모시킬 수 있을 테니 나쁘지 않다.
콰앙!
어검에게 난도질당하던 뇌성창이 이세훈을 향해 달려들었고, 동료의 전략을 파악한 두 전투원도 곧장 무구의 힘을 끌어올렸다.
세 방향에서 쏟아지는 광범위 공격. 그 앞에서 이세훈은 여백의 휘장을 휘감는 대신 앞으로 손을 뻗었고.
스스슥
우화하는 꿈이 발동되며 꿈이 피어올랐다.
주변을 뒤덮은 벼락에 감전되는 꿈. 칼날처럼 날카로운 물줄기에 꿰뚫리는 꿈. 사방에 흩뿌려진 맹독에 중독되는 꿈.
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의 수에서 이세훈이 찾아 헤매던 꿈이 나타났다.
후웅!
모든 공격이 이세훈을 스쳐 지나가 세 전투원의 앞에서 충돌하여 폭발을 일으키는, 그야말로 꿈같은 상황.
그 비현실적인 가능성이 우화하는 꿈을 통해 현실로 끌려나왔고.
콰아아앙!
폭발에 휩쓸린 세 전투원이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게 또 무슨 개 같은……!’
어떻게 그 수많은 공격이 단 하나도 적중하지 않고 모조리 빗나갈 수가 있단 말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전투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질풍가속〉”
이세훈의 언령각인이 푸른색 도와 보라색 낫을 든 전투원의 몸에 새겨졌다.
콰아앙!
언령각인에서 터져 나온 질풍이 두 전투원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 날려 보냈고, 홀로 착지한 뇌성창이 그 모습을 보고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나부터 처리하겠다는 건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오를 다진 뇌성창이 재빠르게 창을 다잡으며 바라보았고.
“음음. 잘 날아갔네.”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이세훈의 모습이 보였다.
“…….”
자신에게 달려들기는커녕 긴장까지 다 풀어버린 모습.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그 모습에 뇌성창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너……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 두 명이 돌아오기 전에 날 쓰러뜨리려고 해야 할 거 아냐!!”
뇌성창의 발악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자신이 왜 그래야 하냐는 듯,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 그 모습에 뇌성창은 분노를 넘어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에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는,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감이 되어버린 듯한 모멸감과 무력감.
‘도대체 뭐를…….’
이세훈이 또 무엇을 준비할지 몰라 덤비지도, 도망치지도 못하는 뇌성창. 그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그 둘은 못 돌아와.”
“……뭐?”
“나 대신 죽여줄 사람들한테 보냈거든.”
콰아앙─!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굉음.
처음에는 류은하와 『탈각』의 몬스터들 쪽에서 들리는 것인가 했지만, 귀를 기울이니 방향이 조금 달랐다.
다른 전투원들이 날아갔던 방향. 뇌성창이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자 이세훈이 설명을 덧붙였다.
“좀 있으면 저쪽에 있는 S급 영웅들한테 죽을 거야.”
목련장창을 노리고 이디그나 열대우림에 왔다가 류은하 때문에 대피한 S급 영웅들.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이세훈은 포착의 권능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냈고, 그 즉시 언령각인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
마치 예언이 이뤄지듯 저 멀리서 들려오던 굉음이 잦아들었고, 뇌성창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되지?”
자포자기한 뇌성창의 물음에 이세훈이 뒤를 슬쩍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쪽.”
이세훈의 말과 동시에 뒤쪽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
그에 뇌성창이 이를 악물며 자신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을 향해 자신의 창을 내질렀고.
서걱─
황금색 검기가 창날과 함께 몸을 반으로 갈라냈다.
털썩
뇌성창의 시체가 힘없이 쓰러졌고, 클레어를 가볍게 털어낸 아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쉽게 들어갔는데…… 혹시 뭔가 해뒀어?”
“살짝 양념만 쳐뒀습니다.”
맨 처음 있었던 소광의 망치와 창날의 충돌.
그때 살짝 틈이 만들어졌는데 아리아가 그곳을 정확하게 노리고 단칼에 베어버린 것이다.
‘내가 부수려면 몇 번은 더 두들겼어야 했는데…… 절삭력 하나는 여전하네.’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갈라내는 아리아의 황금빛의 검기.
회귀 전에 완등자였던 시절보다는 못하지만 이 성장세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따라잡을지도 모르겠다.
이세훈이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쿠웅!
류은하가 싸우는 곳에서 다시금 울려 퍼지는 굉음. 그 소리에 이세훈이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런데 먼저 가서 도와주실 수 있어요?”
“흐음…… 알았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달려가는 아리아.
아마 자신이 전력을 다하는 류은하 곁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생각해 본 것이 분명하리라.
‘조금 불편하긴 해도 그럭저럭 잘 싸우긴 했지.’
당장 회귀 전, 사이가 안 좋음에도 류은하와 종종 마주치던 이유가 협공이 가능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옛 기억을 떠올리던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고…… 체력이나 마력도 괜찮네.’
압그룬트는 미리 저장해 둔 명계의 마력으로 펼쳐낸 것이기에 소모가 없었고, 여백의 휘장과 우화하는 꿈 역시 최소한으로 펼쳐내서 마력 소모가 크지 않았다.
마지막에 포착의 권능을 사용한 것 때문에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이 정도는 금방 가라앉으리라.
‘그럼 남은 건…….’
하늘을 올려다본 이세훈은 경계의 권능으로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 위쪽으로 몸을 날렸다.
발 아래로 보이는 이디그나 열대우림의 풍경. 류은하가 전투를 벌이던 곳은 수백 미터가 초토화되었고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저쪽은 곧 정리되겠네.’
용인은 시체도 안 남았는지 사방에 핏자국만 남긴 채 사라졌고, 검은 뱀은 육체를 안개처럼 바꿔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아마 저 능력으로 류은하의 공격을 간신히 버티다가 아리아의 난입으로 확 기울은 것이 분명하리라.
‘목련장창은 그대로 있고…… 마인은 도망쳤나?’
찾으면 금방 보이겠지만 이세훈은 그러는 대신 하늘을 향해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저쪽도 슬슬 마음을 먹었는지 희미하게 느껴지던 시선이 노골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만큼 보여줬는데 설마 내빼진 않겠지.’
다른 녀석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놈이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리 확신하며 이세훈이 쨍쨍한 하늘, 그 너머에 숨겨진 검은 장막을 올려다보았고.
“얼굴 좀 봅시다. 배신자 선배님.”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 * *
이디그나 열대우림의 상공에 펼쳐진 검은 장막.
그 안쪽에서 이세훈의 모든 행동을 살펴보고 있었던 배교자가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준비한 계획이 다 틀어졌군.’
검은 뱀, 아포피스로 이세훈이 불러낸 언데드 군단의 제어권 강탈하는 계획은 언데드를 부르지 않아 실패.
『계승』이 준비한 무구로 류은하를 ‘과열’ 상태로 만들어 폭주시키는 계획은 어째선지 그 무구를 먹지 않아 실패.
마지막으로 은신한 이세훈을 찾아내 기습하는 것마저 마치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반격을 펼쳐 모두 제압당했다.
‘겉보기에는 매 순간 적절하게 대응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무언가 찝찝함이 느껴졌지만 배교자는 금방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감정을 털어냈다.
‘아무래도 좋아.’
앞의 계획은 결국 이세훈의 힘과 아군을 확인하는 용도로 준비했던 것. 그 역할을 다했으니 남은 것은 자신이 정리하는 것밖에 없다.
생각을 정리한 배교자가 반으로 갈라진 검은 고리를 꺼내며 아래에서 건방지게 올려다보는 이세훈을 보았다.
‘총대주교라고 했던가.’
자신을 대신해서 받아들인 저 녀석이 얼마나 시답잖은 녀석인지,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반드시 깨닫게 할 것이다.
면사 너머로 두 눈을 빛낸 배교자가 자신의 신성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고.
성역선포聖域宣布
참회의 성당Cathedral of Penitence
하늘을 가린 검은 장막 속에서 거꾸로 뒤집힌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