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04화
S급 영웅 웨폰이터 류은하.
무구를 섭취해서 힘을 얻는 특이성에서 만들어진 이 별명은 듣는 이로 하여금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 싸우는데?’
보통 영웅들의 별명은 자주 사용하는 무구 혹은 기술을 묘사하기 마련.
그렇게 봤을 때 류은하의 별명인 ‘웨폰이터’는 무구를 먹는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목격담이나 영상에서 비치는 모습도 무구를 먹고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뿐. 그 이후에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려진 바가 하나도 없다.
그 때문에 류은하의 무력에 대해서는 모호한 부분이 많았었는데 이세훈은 그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했다.
콰아아앙──!
그냥 무식할 정도로 강하다고.
쿠구궁─
이디그나 열대우림 전체를 후려치는 무시무시한 충격파.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터져 나온 폭발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자욱한 먼지구름 속에서 붉은 유성이 떨어졌던 장소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미터를 파고 들어간 거대한 크레이터. 간신히 살아남은 분신으로 그 광경을 본 드리아스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게 느껴졌다.
“일격에…… 3분의 1이…….”
처음 지하에 숨었을 때. 드리아스는 자신을 노리는 고위영웅들의 존재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기를 잔뜩 머금어 강철보다 단단한 지반. 거기에 목련장창의 힘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뿌리의 천장.
완등자가 오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그렇게 확신하며 미끼 역할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아…… 하아…….”
하지만 그 견고한 방공호가 일격에 3분의 1이 증발한 것을 목격한 순간. 드리아스는 처음으로 공포가 밀려왔다.
정말 여기가 안전한 걸까?
계속되는 혼란에 드리아스는 재빠르게 고개를 털어냈다.
‘아냐. 걱정할 필요 없어. 저만한 공격을 연달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걸 생각해 보면 자신의 위치를 알아낸 다음 일격에 제압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다음 공격이 준비되기 전에 계획대로 빠르게 이곳에서 이탈한다.
정신을 다잡은 드리아스가 재빠르게 생명주술을 펼치려던 그때.
콰득!
크레이터에 울려 퍼지는 쇳소리.
그 섬뜩한 소리에 드리아스의 분신이 소리가 들린 장소, 크레이터의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아직 먼지가 남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쪽. 그곳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묵직한 파동이 울려 퍼졌다.
쿠구구궁!
땅 전체가 울리는 무거운 구동음.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힘이 먼지 속에서 일점으로 압축되어 다시금 붉은 유성처럼 빛났고.
“흐읍……!”
류은하의 주먹이 다시 한번 땅을 후려갈겼다.
───!
크레이터의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붉은 섬광.
그 끝에서 터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충격파와 진동에 이디그나 열대우림에 흩어진 영웅, 마인들은 누가 나타난 것인지 곧장 알아차렸다.
“이런…… 당장 뒤로 빠지게!”
“야 텄다! 그냥 방벽까지 달려!”
류은하의 등장을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폭발의 중심지로부터 멀어지는 영웅과 마인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뒤로 빠진 이유를 설명하듯이 크레이터의 안쪽에서 연달아 굉음과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수십 미터에서 끝난 크레이터를 기어코 수백 미터 아래까지 파헤쳐 버리는 류은하. 하늘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본 이세훈이 혀를 내둘렀다.
‘힘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비슷하구만.’
류은하의 전투방식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독단적으로 움직여 목격담이 적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전력을 다했을 때 힘 조절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쿠구구궁!
S급 중에서도 독보적인 파괴력을 자랑하는 류은하.
그 무시무시한 힘이 사방으로 마구 터져 나오니 아군이든 적이든 근처로 다가갈 엄두도 못 냈는데, 이는 똑같은 S급들조차 질색할 정도였다.
‘괜히 전력무기라고 불리던 게 아니었지.’
인류연합이 대상의 좌표를 불러주면 방금처럼 하늘에서 떨어져서 일대를 초토화시켰던 회귀 전의 류은하.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이세훈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그 옆에 같이 서있던 아리아가 입을 열었다.
“나온 것 같은데?”
그 이야기에 이세훈이 크레이터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고, 먼지로 자욱하던 안쪽의 상황이 보였다.
“하아…… 하아…….”
지면에 뿌리내린 목련장창을 지팡이처럼 움켜쥐며 간신히 서 있는 드리아스.
폭발에 휩쓸렸는지 옷 군데군데가 찢어져 있었는데 평범한 피부가 아니라 나무들이 한데 뒤엉켜 육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생명주술에 매료되어 전신을 나무로 교체한 마인. 그 특유의 재생력 덕분에 사지는 멀쩡했지만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살짝 스쳤을 뿐인데…….’
천장을 다 부수고 남은 약간의 힘. 그 일부분에 휩쓸렸을 뿐인데 전신이 증발할 뻔했다.
생명주술이 조금만 늦었어도 죽을 뻔 했었다는 사실에 드리아스가 떨리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
진홍빛으로 타오르는 머리카락과 주홍빛으로 달궈진 눈동자. 그만한 위력의 공격을 펼쳐냈음에도 숨을 헐떡이기는커녕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본다.
목련장창을 내놓으라든가 그런 흔한 말 한마디 없이 응시하는 류은하의 모습에 드리아스는 몸 안이 얼어붙는 것처럼 서늘함을 느꼈다.
‘날…… 안 보고 있어…….’
눈은 이곳을 향해있지만, 그 안에 드리아스라는 마인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이미 죽은 시체처럼 취급하고 있는 류은하의 모습에 드리아스가 목련장창을 꽉 움켜쥐었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바로 근처에서 대기 중이면서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가.
처음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공포와 초조함으로 가득 찬 드리아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대로 계속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야하는가.
그 고민 중에 류은하가 다시 움직이려는 것을 보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순간.
쩌적─
땅 아래에서 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콰앙!
두 팔로 공격을 막아낸 류은하가 뒤로 튕겨져 나갔고, 지하에서 난입해 온 적이 곧장 따라붙었다.
용을 연상케 하는 얼굴에 전신에 날카롭게 일어난 비늘. 3m에 달하는 ‘용인龍人’이 거대한 두 손을 움켜쥐며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콰아아앙!!!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균열.
제대로 적중한다면 S급 영웅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일격. 하지만 용인, 파프니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콰가가강!
파프니르의 주먹이 류은하의 몸을 내려찍을 때마다 땅이 갈라지며 묵직한 진동과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탈각』에 개조되어 완전한 S급에 도달한 몬스터. 그 전력 앞에 괴물처럼 보이던 류은하조차 밀리기 시작한다.
“돼, 됐어……!”
그 모습을 본 드리아스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고,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아리아가 담담히 물었다.
“괜찮겠어?”
모습을 드러낸 류은하와 다르게 이세훈과 아리아는 꿈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 모습을 숨긴 상태였다.
상대가 준비해 둔 함정을 확인하기 위한 전략. 숨어 있던 적도 나타났으니 이제 슬슬 움직일 때라고 생각했지만.
“괜찮습니다.”
아리아와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저놈으로는 몸 풀기밖에 안 돼요.”
콰득─!
이세훈의 이야기와 동시에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쉴 새 없이 휘둘러지던 파프니르의 두 주먹이 멈췄다.
[뭐…….]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빼내는 것도 할 수 없다.
무언가에 꽉 움켜쥔 채로 미동도 않는 자신의 주먹에 파프니르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쿠구구궁!
그러자 보이는 것은 고풍스러운 단검을 입에 문 채 두 주먹을 맞잡은 류은하.
큰 상처 없이 모습을 드러낸 류은하가 그대로 파프니르의 주먹을 밀어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크윽……!?]
파프니르가 버티려 해도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이내 류은하가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와 정면에서 마주봤다.
콰드득─콰득─
그리고 자루만 앙상하게 남은 영웅 등급의 단검을 닭 뼈 뱉듯이 옆에다 뱉어냈고.
[2번 용광로 ‘주안朱眼’이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3번 용광로 ‘혁심赫心’이 가동됩니다.]
“내 차례군.”
전신의 불꽃이 명치에 모여들어 붉게 타올랐다.
퍼엉─!
류은하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고,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파프니르의 허리 3분의 2가 통째로 증발했다.
[?!]
주먹이 아니라 강력한 광선에 지워진 듯한 비현실적인 상처. 뒤늦게 밀려오려는 고통에 파프니르가 경악하며 재빨리 육체를 재생시키려 했다.
반격을 하든 도망을 치든 다리가 움직여야 가능하다. 파프니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지만.
“흐읍……!”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콰가가강!
파프니르의 연타를 되돌려주듯 전력을 다해서 후려갈기는 류은하. 그 주먹이 닿을 때마다 파프니르의 거대한 육체가 구멍이 뚫리며 증발하며 9할이 날아갔다.
[────!!]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오는 죽음.
지긋지긋한 배양 캡슐에서 벗어나 이곳으로 올 때까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파프니르가 괴성을 내질렀다.
부글부글!
그 공포에 반응하듯 파프니르의 육체가 주변의 마기를 빨아들이며 빠르게 재생을 시도했지만, 그걸로 뭔가를 시도해 보기도 전에 다시금 터져 나갔다.
그리고 5초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파프니르가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려던 순간.
감겨라
저 멀리서 검은 탄환이 쏘아졌다.
여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었던 거대한 뱀, 『탈각』이 준비한 또 다른 S급 몬스터 ‘아포피스’가 네 개의 눈을 번뜩였다.
자신의 육체에 자리 잡은 불명자의 뼈. 그 힘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저 탄환이라면 S급 영웅 따위는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신하며 아포피스가 파프니르를 재생시키기 위해 빠르게 접근했고.
파앙!
류은하의 주먹이 검은 탄환을 터뜨렸다.
[……아?]
제압은커녕 정면에서 박살 나버린 완등자의 힘.
그 모습에 아포피스는 물론 간신히 재생해서 물러나던 파프니르도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류은하는 담담하게 아공간 포켓에서 영웅 등급 무구 세 개를 꺼낸 다음 한 입씩 베어 물었다.
콰드득─
희미해졌다가 다시금 거세게 타오르는 명치의 불꽃.
연료를 충전한 류은하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나타난 S급 몬스터 두 마리를 바라보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죽어라.”
콰아앙!
크레이터의 안쪽에서 다시금 굉음이 터져 나왔고, 멀리서 그 전투를 본 아리아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력이 저 정도였다니…….’
이전에 괴검을 상대로 같이 싸웠을 때 힘을 억누른다는 느낌을 받긴 했었지만 그래 봐야 큰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류은하의 전력을 보면서 아리아는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옆에 있어서 어중간했던 거야.’
본인의 강점이 압도적인 화력인데 자신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상성에서 조금 불리해도 충분히 괴검을 상대할 수 있었을 류은하의 무력에 아리아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고, 이세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괜히 차기 완등자라는 소리를 매번 듣는 게 아니지.’
보통 S급까지 빠르게 도달하거나 재능이 뛰어나면 차기 완등자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 별명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완등에 도달할 수 없는 ‘평범한’ 천재였다는 게 금방 밝혀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S급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에 도달하여 오랫동안 차기 완등자로 주목받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류은하였다.
‘결국은 완등에 실패했지만…….’
무엇이 모자랐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저 둘로는 류은하를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슬슬 다음 패가 나올 때가 됐는데.’
이세훈이 전장을 주시하며 다음 함정을 기다리고 있을 때.
“허억! 허억!”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인영들.
그 모습을 자세히 보니 장벽에서 만났다가 헤어졌던 루파엘과 세라핌의 길드원들이었다.
전투가 있었는지 갑옷 곳곳이 상해있는 이들.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 모습에 아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상하네.”
이 광활한 열대우림 속에서 하필이면 자신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아리아가 클레어를 치켜들자 이세훈이 곧장 가로막았다.
“괜찮아요.”
“하지만…….”
“잘 보세요. 이쪽을 전혀 모르고 있어요.”
정말 우연히 방향이 맞았을 뿐. 겁에 질려서 도망치기에 바쁠 뿐이다.
“…….”
이세훈의 이야기에 아리아가 다시금 검을 내렸고, 저 멀리서 달려오던 루파엘 일행이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왔다.
후웅
아무런 저항도 없이 두 사람을 뚫고 지나가는 이들. 그렇게 저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리아가 피식 웃었다.
“진짜 우연이었네.”
“그렇다고 했잖아요. 저 녀석들이 다인 것 같으니까 저희도 슬슬 움직이죠.”
“알았어.”
아리아가 어깨에 손을 얹었고, 이세훈이 경계의 권능을 사용하여 육체를 다시 현실로 옮겨간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순간.
푸욱!
다섯 개의 무구가 두 사람의 몸을 꿰뚫었다.
검, 도, 창, 낫, 도끼. 다섯 개의 무구가 이세훈과 아리아의 몸을 난도질하며 피를 머금었다.
방심했다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둘의 모습에 검을 쥔 『공양』의 전투원 ‘요화검’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연 같은 소리하기는.”
이세훈이 몽환의 마력을 이용한 은신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거기에 당했던 인형사의 제보로 이미 파악된 상황.
그렇기에 『공양』의 전투원들은 몽환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로 이세훈이 숨어 있는 위치를 알아냈고, 루파엘 일행을 그쪽으로 도망치게 해서 방심을 유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은신술을 해제하면서 움직임에 제약이 걸렸을 때 곧바로 습격한 것이다.
‘저쪽에서 알아차리기 전에 빠르게 정리해야겠군.’
이세훈과 아리아의 시체를 수거하기 위해 요화검이 목을 관통한 검을 뽑아내려던 그때.
탁
검신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
그에 요화검이 이상함을 느끼던 찰나. 난도질당했던 두 사람의 몸이 변했다.
무구에 꿰뚫렸는데도 상처는커녕 흠집조차 없는 두 사람. 우화하는 꿈이 해제됨과 동시에 습격한 전투원들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느낌이 없다.’
사람이 아니라 허공을 찌른 듯한 감각.
그 상황에 전투원들의 눈이 점점 커지며 다급히 무구를 빼내려했고.
“늦었어.”
명계의 어둠과 황금빛 검기가 전투원들의 몸을 꿰뚫었다.